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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62화 (62/193)

62화 : 그립고도 낯선 고향이여 (3)

킬 군항에서 출발하여 수에즈를 지나 홍해와 인도양을 통과하는 긴 항해 끝에 산둥반도에 위치한 독일 제국의 조차지 키아우초우에 도착한 나와 아달베르트 왕자.

키아우초우에서 하루 동안 짧게 머무른 우리는 동아시아 전대에 소속되어 있는 빅토리아 루이제급 방호순양함 2번 함인 SMS 헤르타(SMS Hertha)를 타고 제물포로 향했다.

아달베르트 왕자는 일주일 동안 대한제국에 머무를 예정이었고 삼촌 하인리히 왕자처럼 고종을 알현하는 것은 물론, 대한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이었던 세창양행과 독일인 교관 에케르트가 지휘하고 있는 대한제국 군악대, 덕어학교 등을 시찰할 계획이었다.

참고로 우리의 예정에는 왕자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자 묘가 있는 충남 아산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충사는 이 시대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문을 닫아 방문하진 못할 테지만 말이다.

“왕자님. 곧 제물포에 도착합니다.”

SMS 헤르타의 함장, 프리드리히 잉게놀(Gustav Heinrich Ernst Friedrich Ingenohl)의 말에 아달베르트 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디어 도착했다는 듯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우웩, 우웨엑!”

그리고 난 이번에도 역시나 속을 뒤집어 놓는 듯한 뱃멀미로 항해 내내 고통받았다.

“한스, 네 고향이 이제 코앞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니?”

“우욱……. 제가 원해서 뱃멀미를 앓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왕자님.”

“쯧쯧.”

아달베르트 왕자가 한심하단 눈으로 혀를 찼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엔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대체 오늘따라 파도는 왜 이리 높은 건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으니 한시라도 빨리 땅을 밟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우웅~

“항구다!”

그로부터 얼마 뒤.

견시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수병들이 분주하게 정박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저편에 서양식 건축물과 전통적인 기와집 건물이 어우러진 항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물포(濟物浦).

훗날의 인천이었다.

드디어 대한제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SMS 헤르타가 제물포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광경은 나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와아아아아!!!”

“……이건 또 뭐시여.”

귀를 울리는 듯한 함성 소리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월드 스타가 입국한 것처럼 항구를 꽉 채운 사람들.

사방에서 넘실거리는 태극기와 흑백적기.

그리고 ‘최한수 남작님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부담스러운 현수막들까지.

이건 누가 봐도 내가 대한제국에 온 것을 환영하는 인파였다.

대체 왜 이런 게 있는 것인지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말이다.

“오! 봐라. 한스. 다들 우릴 환영하고 있어!”

아까 뱃멀미를 겪었을 때보다 어지러운 내 속도 모른 채, 아달베르트 왕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프리드리히 잉게놀 함장과 SMS 헤르타의 승조원들도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는지 왕자를 따라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긴, 이 시대 아시아에서 서양인이 이 정도로 환영받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아마 그들이 보기에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대한제국에서 그렇게 유명했나?’

물론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을 외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니 대한제국에 내 이름이 알려져도 이상하진 않았다.

20세기 초에 서양에서 작위까지 받은 조선인, 아니 동양인이 어디 흔한가?

하지만 그렇다 쳐도, 눈앞의 펼쳐진 나를 향한 조선인들의 반응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난 지금까지 딱히 대한제국과 관련된 발언이나 행동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럴 기회도 딱히 없었지만, 호시탐탐 내가 실수하기만을 벼르고 있는 융커들에게 괜한 빌미를 주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 설마 그것 때문인가?’

문득 머릿속에 2년 전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순친왕이 의화단 사건을 사죄하기 위해 빌헬름 2세 앞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했던 일 말이다.

그리고 그제야 난 조선인들이 왜 이리 날 반기는 것인지 이해했다.

그야 저들의 눈에는 내가 200년 만에 삼전도의 복수를 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

나로선 그때 딱히 삼전도의 굴욕을 갚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조준, 발포!”

타아앙───!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와 함께 대한제국군 병사들이 우리 일행의 방한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하늘에 예포를 쏘았다.

그 사이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바로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뚱뚱한 체구의 중년의 남성이 한국의 뜨거운 여름 햇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왕자 전하. 주한 독일 공사인 콘라드 폰 잘데른(Conrad Adam Leopold von Saldern)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잘데른 공사.”

“반갑습니다. 공사님. 한스 폰 초이 남작입니다.”

우리가 잘데른 공사와 인사를 마치자 대한제국의 고관들로 추정되는 2명의 노인이 통역관을 대동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궁내부대신 민병석(閔丙奭)입니다. 대한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이라 합니다.”

그리 자신들을 소개한 두 사람은 아달베르트 왕자와 나를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웃으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던 아달베르트 왕자와 달리 나는 도저히 웃질 못했다.

왜냐하면 박제순과 민병석은 머지않은 미래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동참한 친일 매국노들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박제순.

대한제국의 외무부 장관 격인 외부대신으로서 저항은커녕 자포자기한 태도로 2년 후, 을사조약 체결에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한 사람.

그리고 경술국치 때 한일합방조약에도 동의하면서 경술국적에도 이름을 올린 매국노 2관왕이다.

그리고 민병석.

여흥 민씨의 거두로 대부분의 민씨처럼 탐욕스러운 전형적인 탐관오리이자 박제순과 마찬가지로 한일합방조약에 동참한 경술국적이다.

사실 을사조약에 분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민영환 정도를 제외하면 여흥 민씨 대부분이 친일파로 전락했다.

“반갑습니다. 한스 폰 초이 남작입니다.”

“오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보여 줄 순 없었기에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고, 두 사람은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괜히 친한 척하는 이 미래의 두 매국노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잘데른 공사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후, 그나저나 사람들이 이리 몰려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도 꽤 놀랐다네. 한국인들은 내 예상보다 더 열성적인 사람들이군.”

“하하하, 이유가 다 있으니까요.”

아달베르트 왕자의 말에 잘데른 공사가 나를 향해 눈을 찡끗하며 말을 이어 갔다.

“이 나라에서 지금 남작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거든요. 덕분에 이 나라에서 우리 독일 제국의 평판도 예전보다 꽤 좋아졌습니다.”

“아, 한스. 하긴 같은 조선인이니까.”

“전 부담스러워서 위가 쓰릴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멋쩍게 웃음을 짓는 잘데른 공사.

뭐야. 불길하게 왜 그래?

“한성에 가시면 이것보다 더 심할 겁니다.”

“그 정도라고요?”

나도 모르게 되묻자 잘데른 공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물포에서 한성까지는 철도(경인선)가 깔려 있어 기차를 타고 가실 테니 괜찮으실 테지만, 기차역에서 공사관으로 가시는 길은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지금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광경에 질릴 것 같은데 이것보다 더 심할 거라니.

아달베르트 왕자를 따라서 느긋하게 대한제국을 돌아보다 독일로 돌아가려고 했던 내 계획이 처음부터 망가졌다.

“자, 그럼 가시죠. 이 나라의 여름은 더우니까요.”

잘데른 공사는 그리 말하며 앞장섰다.

나와 아달베르트 왕자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참고로 제물포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 * *

“저자가 소문의 최가인가?”

“예. 면암 선생님.”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거두였던 최익현(崔益鉉)은 한성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은 채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달베르트 왕자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는 한스를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삼전도의 굴욕을 갚았다는 소문의 꼬마 남작을 보러 오랜만에 한성에 올라왔건만, 최익현은 오히려 단 한 사람을 보러 이리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것에 더 놀랐다.

물론 자신도 그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황상의 행차를 한다 해도 이리 많은 사람이 모이진 않을 테지.”

“크흠. 면암 선생님. 잘못했다간 또 경을 치실 수도 있으십니다.”

이미 오래전 단발령을 비판하다 흑산도에 유배된 적도 있던 최익현이었다.

최익현을 따르는 선비들은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 어린 마음에 그리 경고를 한 것이지만, 최익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저 어린아이의 위세가 대한제국의 황제보다 더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전형적이어도 너무 전형적인 유학자였던 최익현은 그 사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검은 머리카락과 피부색만 빼면 영락없는 양인이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듣기론 아주 어렸을 때 구라파로 떠나 양인들 틈에 섞여 살았다고 하니까요.”

최익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양인들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의 한스를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리자 선비 하나가 그리 말했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조실부모까지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모도 없이 양인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가 조선의 전통과 풍습에 대해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 꼬마 남작이 과연 삼강을 알겠는가, 오륜을 알겠는가.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지요.”

“맞습니다. 저런 어린아이가 양인들의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제 뿌리만큼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정말 자신을 양인이라 여겼으면 삼전도의 굴욕을 갚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죠. 안 그렇습니까?”

선비 하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다른 선비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최익현만큼은 다른 이들과 달리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서양물 먹었다고 거들먹거리는 천덕꾸러기들과 다를 바 없는 자인지는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겠지.”

최익현이 그리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멀지 않은 곳에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한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길 보게. 우당(友堂). 저기 꼬마 남작이 탄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어.”

“순오(舜五). 자넨 이 먼 거리에서 그게 보이는가?”

“우당 이 친구야. 양인들 사이에서 조선인 어린아이 찾는 게 뭘 그리 어렵겠나?”

헤이그 특사 삼인방 중 하나였던 이상설(李相卨)의 말에 이상설과 같이 학문을 공부했던 오랜 친구이자 훗날 동생 이시영을 비롯한 5명의 형제와 함께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던 독립운동가 이회영(李會榮)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옆에 앉은 젊은 서양인은 신문에 나온 독일 황제의 셋째 아들인 모양이야. 생각보다 둘 사이가 꽤 가까워 보이는군.”

“그야 꼬마 남작은 황제의 가족들과 함께 동고동락한다니까 그런 것이겠지. 나라가 다르더라도 사람 사는 곳은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이회영이 그리 말하자 이상설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남작과 어떻게든 대화를 한번 나눠 보고 싶구만.”

“듣기론 저 소년과 연 한번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로 줄을 세우면 한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자네가 나라의 녹을 먹는 관원이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급이 좀 달리지 않나?”

“그래도 한 번 청하긴 해 봐야지. 세상사 어찌 될지 모르는 일. 잘하면 남작이 우리를 만나 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이상설은 그리 말하며 멀어지는 한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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