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두려움 없이 나아가라 (1)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함을 지원했다고요?”
“그래. 나도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땐 무척이나 당황했다.”
나는 황당한 마음에 재차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7세에게 돌아온 답은 똑같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 테디베어 아저씨가 미친 건가?’
이건 원래 역사에선 없었던 일이다.
물론 내가 나타난 이후 역사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긴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 가운데,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함을 지원하는 결과가 나올 만한 것에 대해선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20세기 독일에 떨어져서 미국이랑 엮인 것은 지금까지 딱 한 번.
테슬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워든클리프 타워를 날려 버렸던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나비 효과가 되어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함을 지원하는 사태로 번지진 않았을 것 같다.
애초에 내가 그 일에 엮여있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없었으니까.
“물론 미국이 대놓고 이걸 베네수엘라에 준 건 아니야. 정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남미의 제3국을 경유해서 공여하는 형식으로 지원했다더군. 물론 그래 봤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만.”
에드워드 7세는 그리 말한 채 자신의 콧수염을 수염을 배배 꼬았다.
그 역시 미국과 루스벨트 대통령의 강경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말에 영국은 우리 독일과 함께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 봉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매우 복잡해진다.
이는 최악의 경우 미국과의 군사 충돌로도 번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리되면, 우리 독일 제국이나 영국은 베네수엘라란 작은 혹을 떼려다가 미국이란 커다란 혹을 달게 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음. 이 배 어디서 본 것 같더니만 USS 필라델피아(USS Philadelphia)로군.”
“빌리?”
나와 에드워드 7세가 미국의 의도에 대해 고민에 빠져 있던 사이,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던 빌헬름 2세가 대뜸 그리 말하자 에드워드 7세가 그걸 어찌 아냐는 듯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양반은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래?’
배박이라 그런가?
어쨌든 나나 에드워드 7세와 달리 빌헬름 2세는 사진에 찍힌 군함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니 말이다.
“그게 어떤 함선입니까?”
“미국의 방호순양함이다. 한스. 1889년에 취역한 낡고 오래된 배지. 내가 알기론 곧 퇴역을 앞둔 배일 텐데, 그걸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준 모양이구나.”
곧 퇴역을 앞둔 배라.
하긴, 당장 미 해군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전함인 BB-01 USS 인디애나(Indiana)가 취역한 게 고작 7년 전이다.
아직 천조국으로 진화하기 전인 미국은 군함 한 척, 한 척이 아까운 상황.
그렇기에 동맹국도 아닌 베네수엘라 같은 곳에 아직 한창 현역으로 굴리고 있는 함선을 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한스. 지난번에 네가 미국이 베네수엘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거라 말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긴 했다.
실제로도 그럴 줄 알았고.
‘근데 테디 이 아저씨가 뭘 잘못 먹은 건지 갑자기 세게 나왔단 말이지.’
내 예상과 달리 미국이 전면전을 각오하면서까지 본격적으로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려는 걸까?
아니, 아니다.
미국이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면 베네수엘라에 고작 퇴역하기 일보 직전인 구식 순양함 한 척을 달랑 던져 줄 리가 없다.
“국왕 폐하. 혹 미국이 이것 말고 베네수엘라에 따로 지원한 것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론 없다.”
“그거 이상하네요. 미국이 영국과 독일로부터 베네수엘라를 돕기로 작정을 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순양함 한 척은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으음. 확실히.”
솔직히 베네수엘라 해군이라고 해 봤자 순양함은커녕 제대로 된 철갑함 하나 있을까 의문인 곳이다.
그런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고작 구식 방호순양함 하나 딸랑 던져 주고 영국과 독일의 연합함대에 맞서 싸우라는 건, 사실상 조조가 순욱에게 빈 찬합을 주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어.’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 미국이 이리 강하게 나오게 만든 것일까?
곰곰이 생각에 빠진 내 머릿속에 순간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한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폐하. 미국이 이리 나온 건 우리 독일 제국의 신형 전함 때문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때문에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순양함을 지원했다니.”
빌헬름 2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멍청한 얼굴로 나를 향해 물었다.
이와 달리 에드워드 7세는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 주먹을 손바닥에 탁하고 부딪혔다.
“그렇군! 확실히 시기가 공교롭긴 했지.”
“외숙부?”
“생각해 봐라. 빌리. 지금 미국은 우리 대영제국, 그리고 독일 제국과 베네수엘라 문제로 마찰을 빚는 중 아니냐.”
그런데 갈등을 빚고 있던 독일 제국에서 때마침 최신예 기술을 적용한 신형 전함을 진수했네?
그런데 얘들이 그 신형 전함을 진수하자마자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행동을 선언했네?
‘미국으로선 경계하고도 남지.’
“게다가 폐하. 현재 미국엔 우리 독일이 베네수엘라의 영토를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않습니까.”
“하!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아직도 떠돈다고? 우린 그냥 베네수엘라의 건방진 행동을 응징하려는 것뿐이야!”
‘누가 그걸 믿겠냐?’
실제로 미국인들도 안 믿었고, 심지어 일단은 독일과 같은 편인 영국인들도 안 믿었다.
게다가 사실 빌헬름 2세가 음해라며 방방 뛰어 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여기서 진실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말 자체가 미국인들에게 그럴싸하게 들렸다는 것이고,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미국 정부로선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단 거다.
“이건 경고입니다. 미국은 이리 베네수엘라에 진심이니 우리보고 허튼짓하지 말라는 경고 말입니다.”
동시에 영국과 독일이 계속 강하게 나온다면 미국도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할 것이란 엄포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영‧독이 군사 행동을 망설이기 시작하면, 그때 적당히 베네수엘라를 구슬리든 윽박지르든 해서 양쪽을 중재시키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만 되면, 미국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동시에 국제적 위상마저 올라간다.
참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다운 행동이었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빌헬름 2세는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동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양키 놈들이 나와 독일 제국을 우습게 보는군……!”
빌헬름 2세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으르렁거렸다.
이 시기 유럽인들이 보기에 미국은 여전히 돈만 많은 이류 열강에 불과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런데 그런 미국이 독일을 얕보는 듯한 태도로 나오니, 빌헬름 2세로선 열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놈들이 우리 독일 제국의 신형 전함을 그리 경계한다면 이를 현실로 만들어 주겠다.”
“어…… 폐하?”
하지만 뒤이어 나온 빌헬름 2세의 말은 에드워드 7세는 물론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빌리야, 너 설마…….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베네수엘라로 파견하겠다.”
“예? 폐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가 취역하려면 아직 이르지 않습니까?”
군함이란 게 원래 진수되고 바로 임무 배치, 그러니까 취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이 배에 문제는 없는지 최소 몇 달에서 몇 년 동안 시험 항해를 거쳐야만 했다.
물론 원 역사의 HMS 드레드노트도 진수된 지 10개월 만에 취역하긴 했지만,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는 진수된 지 이제 고작 6개월이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굳이 전함을 보낼 생각이시라면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말고 다른 전함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리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미국의 강경책에 제대로 화가 난 빌헬름 2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기상천외한 발언으로 날 또다시 놀라게 했다.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는 법이지. 베네수엘라 정도면 딱 좋은 상대 아니냐. 외숙부. 영국으로선 불만 있습니까?”
“아니, 없다. 빌리, 네가 좋을 대로 하거라.”
드레드노트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
에드워드 7세는 그리 중얼거리며 카이저를 향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젠장.
왜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기껏 영국이 드레드노트에 대해 무시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러면 드레드노트의 가치가 만천하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영국엔 드레드노트의 진정한 창조주라 할 수 있는 피셔 제독이 있으니까.’
게다가 기술적 한계로 설계가 수정되지 않았더라면, 세계 최초의 드레드노트가 될 수도 있었던 일본의 사쓰마급이나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급처럼 굳이 영국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타국도 알아서 드레드노트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니까.
‘잠깐,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거 꽤 좋은 기회 아닐까?’
베네수엘라 위기, 드레드노트…….
이 둘을 잘 조합하면 어쩌면 못해도 중박, 잘하면 대박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내 계획에도 큰 도움이 될 테고 말이다.
그리 생각한 나는 곧바로 태도를 바꿔 빌헬름 2세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경험 쌓기와 데뷔전이란 측면에서 보면 폐하의 말대로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베네수엘라에 파견하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으음?”
“베네수엘라 해군은 위험하다고 말할 가치도 없는 상대고, 어차피 미국도 이쪽과 진심으로 싸울 생각은 아닐 테니까요.”
만일에 대비해 미국이 함대를 파견할 가능성도 있긴 한데 그래도 실제 교전이 일어날 확률은 낮을 것이다.
독일도, 영국도, 그리고 미국도 서로를 향해 내뱉는 말은 과격할지라도 진짜로 전쟁할 마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하하하! 한스, 너도 이해할 줄 알았다.”
내 태세 전환에 빌헬름 2세가 흡족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뭐, 카이저의 기분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영국에 머물러 있어야겠네.’
때가 되면 에드워드 7세와도 나눌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말이다.
* * *
얼마 후. 독일 킬 군항.
“베네수엘라 파견 함대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포함하겠다고?”
“예. 부함장님.”
“벌써 취역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가 진수된 지 이제 막 6개월이다.
그런데 당장 취역하는 것도 모자라 곧바로 원정에 합류하라니.
“티르피츠 제독이나 해군 상층부가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없는데.”
시험 항해 과정에서 파악된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성능은 독일 황립 해군이 처음에 산정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그렇기에 현재 독일 해군 내에서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보는 시선은 골룸이 절대 반지를 보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해군 상층부가 이렇게 갑자기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베네수엘라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그렇다면…….’
“혹, 황제 폐하의 명령인가?”
“그렇습니다.”
역시 그런가.
부함장은 그리 곱씹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받은 명령서에는 ‘실전 훈련을 겸한 베네수엘라 원정 파견’이라 쓰여 있었다.
물론 자신과 이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는 설령 베네수엘라 해군 전부가 덤빈다고 해도 이들을 전부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승조원들이었다.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승조원들은 현재 독일 해군에서 받는 관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부분이 경험 많은 베테랑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아직 신기술이 잔뜩 적용된 최신예 전함에 완벽히 숙달되었다곤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어떤 임무든 보통은 하겠지만…….’
항해는 언제나 불분명한 위험을 동반한다.
솔직히 그로선 괜히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명령은 따라야지.”
그러나 그 또한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는 독일 귀족이자 자랑스러운 카이저마리네의 일원.
누가 명령하든 자신은 단지 따를 뿐이다.
“호프 함장님께 서둘러 소식을 전해야겠군, 대서양을 건너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
수많은 경쟁과 동료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뚫고 독일 제국의 신형 전함,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부함장으로 임명된 막시밀리안 폰 슈페(Maximilian Johannes Maria Hubert Reichsgraf von Spee)는 그리 명령을 내리며 모자를 고쳐 썼다.
전투에 나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