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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50화 (50/193)

50화 : 에드워드 7세의 초대

“그럼 올해 말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봉쇄에 들어가는 것으로 영국과 합의가 된 것입니까?”

“음. 그래.”

나와 함께 점심 식사를 즐기던 빌헬름 2세가 접시 위에 올려진 두툼한 고기를 썰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과 영국이 군사 행동에 들어가려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시프리아노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 정부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계속되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독일인들과 영국인들이 실시간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국과 독일 정부가 요구하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손 놓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렇기에 베네수엘라가 독일과 영국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협상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뷜로 총리와 얼마 전 사임한 솔즈베리 후작을 대신해 새롭게 영국의 총리가 된 아서 밸푸어는 함께 손을 잡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칼을 뽑아 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날 놀라게 한 것은 뒤에 이어진 빌헬름 2세의 말이었다.

“뚱보 에두아르트, 아니 에드워드 외숙부가 날 영국으로 초대했다.”

“에드워드 폐하께서 말입니까?”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확정 지을 겸, 오랜만에 애들이랑 샌드링엄으로 놀러 오라더군. 한스 너도 포함해서 말이다.”

샌드링엄이라.

빅토리아 여왕이 에드워드 7세 부부를 위해 구매한 영국 왕실의 컨트리 하우스인 샌드링엄 하우스(Sandringham House)가 있는 곳이다.

내가 알기론, 에드워드 7세는 샌드링엄 하우스를 꾸미면서 그곳에 잉글랜드 최고의 사냥터를 만들었다던데.

참으로 에드워드 7세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폐하의 사촌이신 웨일스 공께서도 샌드링엄에 거주하고 계시죠.”

“아, 조지 말이구나. 그래. 그곳에서 우표 수집이나 하는 따분한 삶을 보내고 있지.”

웨일스 공.

다들 알다시피 영국의 왕세자에게 주어지는 작위로 현 웨일스 공은 에드워드 7세의 차남인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는 샌드링엄 하우스를 ‘세상 어느 곳보다 사랑하고 친애하는 오랜 샌드링엄’이라 불렀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렇기에 웨일스 공이 되기 전인 요크 공작 시절부터 샌드링엄 하우스의 조그마한 별관인 요크 별장에서 살았는데, 이는 활발하고 사교적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조지 5세가 사교에 거리를 둔 채 시골에서의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단조로운 삶이 조지 5세에겐 만족스러웠을지는 몰라도 조지 5세를 만나러 온 영국 상류층 사람들 눈엔 매우 지루하게 보였는지, 요크 별장은 영국 상류사회에서 ‘작고 침울한 별장(glum little villa)’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아버지와 대비되는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녀석의 얼굴을 본지도 꽤 됐는데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겠군. 적어도 외숙부의 기름진 얼굴을 계속 보는 것보단 낫겠지.”

혐오해 마지않는 외삼촌 에드워드 7세와 달리, 사촌 조지 5세와는 그럭저럭 사이가 괜찮았던 빌헬름 2세가 그리 중얼거렸다.

정작 조지 5세는 빌헬름 2세보단 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자신과 똑 닮은 외사촌인 니콜라이 2세와 더 친했지만 말이다.

“그럼 영국엔 언제쯤 가실 생각이십니까?”

“11월이 적당할 것 같구나. 다음 달인 12월에 해상봉쇄를 진행할 예정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영국이라.

언젠가 갈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번에 러시아에 간 것도 그렇고. 또 해외로 나가게 생겼네.’

솔직히 러시아 때는 너무 피곤했다.

맡은 일의 무게도 무게지만, 차르를 비롯한 러시아 귀족들과 어울리는 게 만만치 않았다 보니.

그래도 이번엔 가족 여행 같은 느낌으로 편하게 다녀오는 거니 안심해도 되겠지? 그치?

* * *

“어서 와라. 빌리!”

많은 일이 있었던 여름이 끝나고 짧은 가을을 지나 다시 찾아온 겨울.

난 빌헬름 2세가 예고했던 것처럼 황실 가족들과 함께 영국 땅을 밟았다.

다만 전생에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눈 덮인 런던을 제대로 눈에 담을 시간은 별로 없었다.

도버 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곧바로 영국 왕실이 준비한 특별 기차를 타고 샌드링엄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도착한 샌드링엄 하우스는 전형적인 영국식 귀족 저택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마차에서 내리자 만화에서 부자들이 자주 입는 귀족 가운 차림새의 에드워드 7세와 그보단 깔끔하게 차려입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왕비가 우릴 맞이했다.

그 모습이 살짝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언밸런스했기에 추위를 이기기 위해 두꺼운 코트를 입고 서로 딱 붙어 있던 나, 요아힘, 루이제는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 추운데 어서 들어와라. 들어와.”

“큼. 그럼 사양하지 않죠.”

어서 따뜻한 벽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싶었는지, 빌헬름 2세는 외삼촌을 향해 그리 말하며 곧바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요아힘, 루이제도 그 뒤를 따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 조지. 여기 있었군.”

“빌리.”

하인들을 따라 응접실로 향하자 그곳엔 니콜라이 2세, 아니 차르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조지 5세가 서 있었다.

‘와. 진짜 똑같네.’

전생에서도 사진으로 봤지만, 실제로 본 조지 5세는 쌍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니콜라이 2세와 똑같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폐하?’라고 부를 뻔했을 정도로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빌헬름. 도나(아우구스테 황후의 애칭).”

“아, 메리.”

그때 조지 5세의 뒤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오자, 아는 사람인 듯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황후가 친밀하게 인사를 했다.

웨일스 공비, 테크의 메리.

조지 5세의 부인. 그리고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 형제의 어머니로 남편인 조지 5세를 훌륭히 내조해 왕실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던 여성이다.

손녀인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는 모습을 봤을 정도로 장수하기도 했고 말이다.

“소식은 들었어요. 다음 달에 출산 예정이던가요?”

아우구스테 황후가 달처럼 부풀어 오른 메리 공비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메리 공비는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시기를 생각하면 조지 5세의 사남인 켄트 공작 조지인가.’

사랑 때문에 왕위까지 버린 그 에드워드 8세가 선녀로 보일 정도로 문란함의 끝을 달리는 막장 사생활을 자랑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와 관계를 맺은 여성만 해도 재즈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국의 흑인 여가수 플로렌스 밀스, 베어링 은행의 상속녀 포피 베어링, 아가일 공작부인 마거릿 캠벨, 영국의 뮤지컬 스타 제시 매튜스 등등 너무 많아서 다 셀 수가 없을 정도.

심지어 이 인간은 양성애 성향까지 있어서 영국의 배우이자 극작가인 노엘 코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와도 놀아났다.

그도 모자라 코카인과 모르핀에도 손을 댄 마약 중독자이기도 했기에 켄트 공작 조지는 형들과는 절대 TV나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영국 왕실에서 그의 취급은 흑역사를 초월해 영국의 모 유명 마법사 소설에 나오는 이름을 불러선 안 되는 그 사람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저 배 안에 희대의 방탕아가 들어 있다니 믿기질 않네.’

“음? 이쪽은 처음 보는 얼굴이군.”

내가 세상의 놀라움에 잠시 취해 있는 사이, 조지 5세가 날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조지 5세 부부를 향해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고 합니다.”

“아. 소문은 익히 들었지.”

조지 5세가 역시나 나를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쯤 되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역시 에드워드 7세가 날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뭐랄까, 에드워드 7세는 보고만 있어도 재밌는 그런 활기찬 아저씨인데 이쪽은 분위기부터가 뭔가 무거워 보인다.

“조지. 애들은 잘 지냈나?”

“평소와 같지. 그러고 보니 인사를 시켜야겠군.”

빌헬름 2세의 말에 고개를 위쪽으로 향하는 조지 5세.

“데이비드! 앨버트!”

조지 5세가 큰 목소리로 호통치듯이 외치자 천장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곧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에 둘이 허겁지겁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큰 쪽이 에드워드 8세, 작은 쪽이 조지 6세인가.’

물론 이 당시엔 왕으로서의 이름이 아닌 각각 데이비드, 그리고 앨버트로 불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두 형제는 아버지의 부름에 상당히 급하게 달려왔는지 옷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상태였는데, 조지 5세는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들들을 향해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영국의 왕자라는 놈들이 단정치 못하게 그게 뭐냐!”

“죄, 죄, 죄송합니다. 아, 아버지.”

훗날 이혼녀랑 결혼하겠다고 왕의 책임 따위는 저버린 제 형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기에 처한 영국을 훌륭하게 이끌었던 영국 국왕 조지 6세, 앨버트는 아버지가 두려운 듯 몸을 움츠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자기가 갑자기 불러 놓고선.”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반면 훗날의 에드워드 8세가 되는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호통이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형제의 성격 차이를 대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데이비드. 너 어른 앞에서 건방지게 굴지 말라고 몇 번이나……!”

“그쯤 해 둬라. 조지. 왜 넌 항상 애들한테 화만 내는 거냐.”

조지 5세는 그런 데이비드를 향해 또다시 뭐라 하려다가 아버지 에드워드 7세의 제지에 마지못해 물러났다.

에드워드 7세는 누나 빅토리아 아델레이드만 예뻐하고 자신은 엄하게 대하는 차별적인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식들에게 그리 엄하게 대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조지 5세는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게 자식들을 대함에 있어 무척이나 엄한 편이었다.

다만 조지 5세가 가정폭력을 저지르거나 자식들에게 아예 정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해군에서 보낸 영향으로 인해 자식들을 군대식으로 다뤘기에 문제지.

덕분에 에드워드 8세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나빴고, 조지 6세는 성격이 소심해진 것은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그를 고생시킨 말을 더듬는 버릇이 매우 심해졌다.

조지 5세와 얼굴이 똑 닮은 니콜라이 2세가 자식들에게 매우 온화하고 가정적이었던 것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쯧. 어서 빌헬름과 그 가족들에게 인사나 하거라.”

조지 5세가 혀를 차며 아들들을 향해 그리 닦달했다.

데이비드와 앨버트는 그제야 빌헬름 2세를 발견한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빌리 아저씨.”

“안, 안, 안녕하세요.”

“그래. 데이비드. 앨버트.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빌헬름 2세는 사람 좋은 얼굴로 5촌 조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데이비드가 내 쪽으로 눈을 향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저 칭키는 누구…… 악!”

“데이비드!!”

누가 원 역사에서도 히틀러랑 친구 친구 하며 지내던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었을까 봐, 다짜고짜 날 향해 C 워드를 날리는 데이비드.

순간 분위기가 싸해질 찰나, 조지 5세가 얼굴을 붉히며 데이비드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음……. 쌤통인가?

“미안하군. 남작. 아들놈 대신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화 안 났다. 화 안 났어.

고작 꼬맹이 말에 상처받을 내가 아니다.

이 시대엔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오랜만에 칭키 소리를 들어서 꽤 신선하기도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나와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데이비드 저 자식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한스, 괜찮아?”

“멀쩡해요. 멀쩡해.”

“데이비드 녀석 말은 신경 쓰지 마라. 한스. 애가 아직 어려서 사리 분간을 못 해.”

어째 나보다 방방 뛰는 요아힘과 루이제를 달래던 도중, 에드워드 7세가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아니, 정말 신경 안 쓴다니까 그러네?

“아, 한스. 그러고 보니 말할 게 있다. 저쪽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지. 빌리 너도.”

조지 5세가 아들을 향해 호통치며 잔소리를 사이, 에드워드 7세가 나와 카이저를 옆 방으로 데려왔다.

빌헬름 2세는 그렇다 쳐도 나는 왜 부르는 걸까?

뭔가 기분이 싸했다.

“뭡니까. 숙부.”

빌헬름 2세가 그리 퉁명스럽게 말하자, 에드워드 7세가 진지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빌리, 네가 북해를 건너오는 동안 베네수엘라에 파견한 우리 쪽 사람이 보내온 사진이다.”

“사진 말입니까?”

대체 무슨 사진이길래 에드워드 7세가 이리 진중하게 나오는 것일까.

나와 빌헬름 2세는 에드워드 7세에게 사진을 건네받곤 눈을 집중했다.

그리고 나와 카이저는 동시에 눈을 찌푸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빌헬름 2세였다.

“이거 군함 아닙니까?”

확실히 사진에는 흑백이지만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당한 크기의 군함의 모습이 제대로 찍혀 있었다.

문제는 이 사진이 베네수엘라에서 찍혔단 것과 베네수엘라 해군은 이런 대형 함선을 보유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함을 지원했네.”

“예?”

당황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에드워드 7세를 향해 그렇게 되물었다.

지금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뭘 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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