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베네수엘라 위기 (2)
“카이저께선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개입을 망설이고 계시네.”
“무력…… 개입 말입니까?”
“그래. 한스 자네도 현재 베네수엘라와 우리 독일 제국의 관계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예.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마침 조금 전까지 베네수엘라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고 있었거든요.”
“그럼 베네수엘라 정부와 시프리아노 카스트로, 그 정신 나간 베네수엘라의 카우디요가 우리 독일 제국을 향해 얼마나 큰 모욕을 주고 있는지도 알겠군.”
뷜로 총리는 생각만 해도 열불이 치밀어오른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어 갔다.
“베네수엘라가 채무 상환 중단을 선언했을 때, 진작에 베네수엘라에 군을 투입해서 베네수엘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야 했네. 카스트로 그 작자가 이 이상 기고만장하게 굴지 못 하게 해야 했단 말일세.”
“하지만 폐하께선 그리하지 않으셨죠.”
“그래. 베네수엘라에 내전이 일어났단 이유로 이를 연기하셨지. 하지만 이젠 결단을 내리셔야 할 때네.”
“혹시 이번에 베네수엘라가 영국 선박을 나포한 건 때문이십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뷜로 총리.
왜 영국 선박 나포 문제로 독일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대응을 고려해야 할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포 건으로 분노한 영국이 본격적으로 독일과 협력하여 베네수엘라에 압박을 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압박이란…….
“해상봉쇄.”
“그래. 영국은 이번에 우리 독일 제국으로 함께 해군을 동원해서 베네수엘라 해안을 봉쇄하자고 제안했네. 이탈리아 왕국도 동참 의사를 밝혀 왔고.”
“그리고 총리 각하께선 받아들일 생각이시고요.”
뷜로 총리는 베네수엘라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해군을 투입해야 한다며 줄곧 강경한 자세를 유지해 왔다.
영국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뷜로 총리지만, 나포 문제로 제대로 열 받은 영국이 손잡고 베네수엘라 레이드를 가자는 데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기엔 베네수엘라의 어그로가 너무나도 컸으니까.
‘게다가 베네수엘라 위기로 뿔이 제대로 난 기업가들의 압박도 있었겠지.’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벌이던 독일 기업가들은 사실상 카스트로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눈 뜨고 코 베인 격이었으니.
그런데 우리의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카이저께선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고 계시네.”
“먼로 독트린 때문이군요.”
먼로 독트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개입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외교정책.
먼로 독트린이 존재하는 한, 독일이 베네수엘라에 군을 파견하면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빌헬름 2세는 베네수엘라에 해군을 파견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실 빌헬름 2세는 맨날 전쟁, 전쟁 그러고 다녀도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게 생겼을 땐 정작 전쟁을 망설이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그건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도 그랬다.
빌헬름 2세는 니콜라이 2세와 계속 전보를 주고받으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고 애썼다.
독일은 물론이거니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해 그 누구도 세계대전을 원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구작가 특유의 개연성 밥 말아 먹은 우연의 연속과 괜히 동원령을 취소했다가 망하는 건 아니냐는 생각에 패닉에 빠진 군부, 그리고 정부의 제어가 듣지 않는 민족주의의 폭주가 맞물리며 최악의 시너지를 냈고, 이는 결국 인류 최악의 대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여튼 현재 빌헬름 2세는 미국과의 마찰을 두려워해 군사 행동을 망설이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위기 자체가 독일과 미국을 싸움 붙이려는 영국의 함정이라며 군사 개입을 반대한 티르피츠의 주장도 한몫했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갔지만 말이다.
애초에 영국은 최대한 빨리 베네수엘라 위기를 처리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굳이 독일과 미국 간의 무력 분쟁을 터트려서 영국이 얻을 이득이 대체 무엇이 있겠나?
‘물론 이를 제외하더라도, 미국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려는 빌헬름 2세의 생각은 제법 현실적인 판단이지만.’
아무리 이 시대 미국이 이류 열강에 불과하다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변변찮은 거점 하나 없는 독일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싸운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정말로 미국이 전쟁을 각오하고 베네수엘라 위기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려는 생각이었다면 말이지.’
미래를 아는 나는 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저한테 빚 하나 지신 겁니다?”
* * *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예. 솔직히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베네수엘라를 위해 자국 청년들의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뷜로와 함께 카이저의 집무실을 찾은 나는 빌헬름 2세를 향해 그리 단언했다.
빌헬름 2세는 내 말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미국은 독일이 베네수엘라에 군사 행동을 보이는 것에 경계심을 품긴 하겠지요. 그들은 독일이 베네수엘라 위기를 명분으로 아메리카에 진출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테니까요,”
“으음…….”
“하지만 미국의 생각과 달리 우리 독일 제국은 어디까지나 베네수엘라의 막 나가는 행동을 응징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려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빌헬름 2세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저 또한 다른 대륙이라면 모를까, 철 지난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를 건설하겠단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엔 대서양은 너무 멀고, 또 독일의 영향력도 높지 않았으니까.
“미국은 독일 제국이 베네수엘라를 점령하려고 드는 게 아닌 이상, 직접적으로 움직이진 않을 것입니다. 체면상 그저 비난만 하고 말겠죠.”
“뷜로. 자네 생각도 같은가?”
“예. 폐하. 게다가 이번엔 영국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총대는 영국이 메게 하고 우리 독일은 그저 얻을 것만 얻으면 그만입니다.”
뷜로가 그리 말하자 빌헬름 2세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알겠네. 뷜로 자네 말대로 영국을 앞장세우면 설령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 독일이 피해를 보진 않겠지.”
“그럼…….”
“그래. 그래.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개입을 허락하겠네. 영국과 협력하는 것도 말일세. 괘씸한 녀석들에겐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지.”
드디어 빌헬름 2세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나에게 감사의 뜻으로 윙크를 한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카이저의 허가를 받아 낸 뷜로는 미리 준비를 다 해 놨는지 순식간에 군부와 의회의 동의를 받아 내곤 곧바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응징을 선언했다.
“우리 독일 제국은 베네수엘라의 외채 상환 중지와 독일인들의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 거부, 그리고 아국에 대한 모욕적인 행동에 대한 강경한 대응에 나설 것을 선언합니다. 또한 이는 몇몇 외신들이 떠드는 것처럼 우리 독일 제국이 외채 상환 거절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의 영토를 제국의 식민지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베네수엘라 정부의 독일에 대한 모욕에 대한 응징과 우리 독일인들의 재산을 되찾기 위함임을 명백히 밝히는 바입니다.”
“총리님! 말씀하신 강경한 대응엔 혹시 베네수엘라에 대한 독일 제국의 군사적 개입도 포함된 겁니까?”
뷜로 총리의 발표를 취재하러 온 기자의 말에 뷜로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독일 제국은 베네수엘라가 끝까지 협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행동에 돌입할 의사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과 이탈리아 정부도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해 강경하게 나설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독일과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 간의 협의가 있었다고 봐도 되는 것입니까?”
“독일 제국은 연합 왕국과 이탈리아 왕국과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답이 되었습니까?”
웅성웅성.
“그, 그럼 독일, 영국, 이탈리아가 공동으로 무력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까?”
“필요하다면 그럴 것입니다.”
확언이나 다름없는 뷜로 총리의 말에 연신 펜을 놀리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독일 제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영제국,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이라는 유럽의 열강들과 함께.
그리고 이는 대서양 너머에도 파란을 일으키기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 * *
“독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독일뿐만이 아닙니다. 영국과 이탈리아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응징을 천명하며 무력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베네수엘라를 향해 삼국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단 것이겠죠.”
“독일 제국에 대영제국, 그도 모자라 이탈리아 왕국이라. 참 화려한 라인업이구만.”
남자는 그리 투덜거리며 잔에 몰트 위스키를 따랐다.
카스트로도 참 난놈은 난놈이다. 유럽 열강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적으로 만들다니.
“유럽 놈들 눈엔 우리 미합중국이 아직도 백 년 전, 갓 독립한 약소국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베네수엘라에 무력 행동을 보이겠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선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행위.
이 사태를 원인을 제공하는 베네수엘라는 제쳐 두더라도 미국이 이러한 유럽 열강들의 횡포를 지켜본다면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미국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기에 미국은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만 했다.
“연설문을 준비해야겠군. 대충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열강들의 과격하고 성급한 군사적 행동을 규탄한다는 내용이면 되겠지.”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먼로 독트린 침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어디 영국인들과 독일인들이 이쪽에서 떠든다고 그걸 그대로 따르는 족속들이었던가?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체면치레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리고 미국은 어차피 베네수엘라를 그렇게 진지하게 도울 생각이 없었다.
왜 자유를 사랑하는 합중국의 시민들이 부패하고 폭력적인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따위를 위해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얼마 전 상황이 바뀌었다.’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
영국인들은 드레드노트라 부르는 독일 제국의 신형 전함.
‘보고에 따르면 기존 전함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전함이라고 하던데.’
아직 이 드레드노트의 실 성능에 대해선 정보 부족으로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해군 차관보를 맡았을 정도로 해군에 관심이 많았던 남자에게 있어서 드레드노트는 상당히 흥미를 끄는 존재였던 동시에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하필이면 지금 독일 제국은 베네수엘라를 두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베네수엘라에 무력 개입을 한다면 무조건 해군을 동원할 텐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지금 시기에 신형 전함을 발표했단 말이지.’
이는 그저 우연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미국으로선 독일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현재 미국엔 독일이 베네수엘라 위기를 명분으로 베네수엘라령 마르가리타섬을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이 팽배한 상황 아닌가.
물론 독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래 2월에 방문 예정이었다가 갑작스러운 러시아행으로 얼마 전에야 미국을 방문한 하인리히 왕자는 독일에 적대적인 미국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자 노력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미국의 여론은 여전히 독일을 의심했고, 또한 독일이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을지라도 미국은 만약을 대비해 독일에 대한 경계 수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본래 생각과 달리 유럽을 상대로 조금 더 강하게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베네수엘라로 갈 준비를 끝마쳤나?”
“예.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잘못하면 영국과 독일을 지나치게 자극해서 걷잡을 수도 없는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대비해 듀이 제독의 함대를 베네수엘라 해안가로 파견하려는 것 아닌가. 걱정하지 말게. 나도 정말로 유럽과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어.”
이는 어디까지나 경고다.
건방진 유럽 제국주의자들을 향한 미합중국의 경고 말이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 실패하지 않을 테니. (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and you will go far.)”
남자 아니, 미합중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는 자신의 명언을 중얼거리며 위스키 잔을 거칠게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