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테슬라
“예? 지금 누가 프리드리히쇼프 성에 와있다고요?”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수화기에 대고 그리 물었다.
시연회가 끝난 뒤, 홀가분한 기분으로 포츠담 신궁전으로 돌아온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에 가족들과 함께 프리드리히쇼프 성으로 이사한 마르가레테 공주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처음엔 또 무슨 큰일이 터졌나 싶었다.
마르가레테 공주가 나에게 안부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면 편지를 보냈지, 급한 것도 없는데, 굳이 전화를 쓰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마르가레테 공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내 상상을 가볍게 뛰어 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자가 말하길 자신의 이름이 니콜라 테슬라라고 하더구나.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 같던데···. 한스, 정말 네가 독일로 초청한 사람 맞니?
“아하하···.”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라니.
‘이 양반이 왜 프리드리히쇼프 성에서 튀어나오는 거야?!’
답장도 하나도 없길래 대체 어디서 뭘 하나 했는데,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내 뒤에서 깜짝 등장할 줄이야.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르가레테 공주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공주님. 이런 부탁드려서 죄송하지만, 그분을 저택에서 잠시 머물게 해주세요. 제가 내일 당장 프리드리히쇼프로 직접 찾아갈 테니까요.”
나는 마르가레테 공주에게 그리 부탁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쩐지 시연회가 끝났을 때보다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니콜라 테슬라···.”
확실히 괴짜는 괴짜였다.
설마하니 내 편지를 받자마자 곧장 대서양을 건너 독일로 달려올 줄이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행동력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테슬라가 라디오를 개발하자는 내 제안에 관심이 크다는 소리인 만큼, 나에게 있어선 나쁠 게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페슨든이 물 건너간 이상, 테슬라라도 확실히 붙잡아야 해.’
물론 라디오 분야의 선구자가 이 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탈리아엔 무선통신을 상용화시킨 그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Giovanni Maria Marconi)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양반은 이미 마르코니 무선 전신 회사라는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잘나가는 사람이었던 만큼 굳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뿐더러 테슬라와는 다른 방향으로 다루기 힘든 유형이었다.
그러니 이런 면에선 차라리 테슬라가 훨씬 나았다.
괴짜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순수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사람이었으니까.
“또 멀리 나갈 준비를 해야겠네.”
나는 테슬라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
“오랜만이구나. 한스.”
“강녕하셨습니까. 공주님.”
이틀 후.
오랜만에 프리드리히쇼프 성에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보는 마르가레테 공주와 살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테슬라 씨는 저택 안에 계십니까?”
“그래. 응접실에 있단다.”
마르가레테 공주가 말했다.
“조용하지만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저 사람이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과학자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니까?”
“원래 똑똑한 사람일수록 성격은 기이하게 뒤틀리는 법이죠.”
“아, 그래서 네가···.”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쿡쿡 웃으며 입가를 가린 마르가레테 공주가 나를 데리고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프리드리히쇼프 성은 빅토리아 황태후가 살아있었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 커다란 저택이 내 것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한스 폰 초이 남작이십니까?”
내가 응접실에 들어가자마자 낯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뜸 그렇게 말했다.
“니콜라 테슬라.”
교류의 아버지.
비운의 천재.
그리고 원조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유명한 괴짜 중의 괴짜.
“드디어 세기의 천재를 만나 뵙게 되는군요.”
테슬라의 얼굴은 전생에 본 사진과 완전히 똑같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미중년이었다.
에디슨 같은 동종업계 인물들이 질투를 할 정도로 미남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정작 테슬라 본인은 여자들의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결혼은커녕 연애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지만 말이다.
“제가 확실히 천재이긴 하죠.”
“하, 하하···.”
그리고 성격도 확실히 이상했다.
어쨌든 우리는 악수를 한 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최소한 답장이라도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시간은 유한하죠. 굳이 몇 달 동안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단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만큼 제 제안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제안서를 테슬라에게 건넸다.
“저는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무선통신 기술에 매우 큰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나 음악 등을 전파에 실어 먼 곳까지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무선 송신 기술 말입니다.”
“예. 편지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꿈만 같은 기술이지만 전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관련 기술이 이미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상태죠.”
당장 내 제안을 거절한 레지날드 페슨든이 최초로 장거리 무선 송신에 성공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며칠 후인 12월 23일이다.
라디오 전파에 목소리를 싣는 기술은 이미 개발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일단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이 단방향 통신을 수신할 수 있는 일종의 수신기입니다. 일단 편의상 ‘라디오’라 부르겠습니다.”
“라디오···.”
“예. 생각해보십시오. 테슬라 씨. 지금까지 외부 소식을 알기 위해선 남에게 직접 듣거나 신문을 읽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사건 당일에 먼 곳에 대한 소식을 즉각 즉각 듣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라디오가 있다면 사람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뉴스나 일기예보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내가 괜히 라디오를 어떻게든 선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20세기 초중반 라디오의 영향력은 가히 텔레비전, 그리고 스마트폰에 필적했으니까.
“그리고 그 라디오를 개발하기 위해 제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요.”
“테슬라 씨는 무선통신 기술의 선구자이시니까요. 그 마르코니보다 무선 전신을 먼저 개발한 것도 사실 테슬라 씨지 않습니까.”
“흠흠, 확실히 그렇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자신을 인정해주는 내 말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테슬라의 입가가 움찔거렸다.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테슬라가 언제나 그렇듯 기껏 기술을 먼저 개발해 놓고도 특허를 빼앗겨서 돈은 한 푼도 못 벌어서 그렇지.
“그러니 테슬라 씨. 저와 함께 라디오 개발을 위해 협력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마음 같아선 남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요?”
“사실 제가 이미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 중입니다. 그 JP모건의 투자를 받아서 말입니다.”
‘JP모건? 설마 그건가?’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테슬라를 향해 그것의 이름을 말했다.
“워든클리프 타워 말씀이시군요.”
워든클리프 타워(Wardenclyffe Tower).
니콜라 테슬라가 JP모건의 후원을 받아 건설한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무선통신 시설.
테슬라는 워든클리프 타워를 이용해 무려 전 세계 무선 시스템과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을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워든클리프 타워는 결국 테슬라의 흑역사가 되었다.
생각보다 시원찮은 성과에 JP모건이 가차 없이 후원을 끊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던 테슬라는 결국 워든클리프 타워의 건설을 포기했고 결국 커다란 빚만 지게 되었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가 고작 ‘돈’ 때문에 망해버렸단 사실에 충격을 받아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사실 테슬라가 돈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괜히 테슬라가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기껏 먼저 개발한 특허를 남에게 번번이 빼앗기고도 못 찾아온 이유도 소송비때문일 정도로 테슬라는 평생을 금전적인 압박에 시달렸다.
물론 테슬라가 연구와 발명에 생각 없이 돈을 펑펑 써댄 탓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라이벌인 에디슨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대로 테슬라를 포기할 순 없는 노릇.
나는 테슬라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워든클리프 타워는 이미 예산 부족 때문에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고 있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게다가 제가 알기론 JP모건도 프로젝트에 추가 투자를 해 달라는 테슬라 씨의 요청을 거부했고요.”
“예? 아, 아니 그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뭐든지 아는 건 아닙니다. 아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죠.”
그리 말한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테슬라 씨. 이런 말 드리긴 죄송하지만 워든클리프 타워는 가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테슬라 씨도 알기에 절 만나러 이 머나먼 독일까지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
“물론 워든클리프 타워가 테슬라 씨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억울하시겠죠. 고작 ‘돈’ 때문에 심혈을 기울인 대규모 프로젝트를 고작 1년 만에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으니 말입니다.”
“하아···. 남작님의 말이 맞습니다.”
결국 테슬라가 한숨을 내쉬며 내 말을 인정했다.
그는 좌절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의 예산이 부족한 것도 부족한 것이지만 마르코니, 그 빌어먹을 파스타 놈이 대서양 횡단 통신 실험에 성공해서 입지까지 좁아졌어요. 거기다 제 주머니 사정도 그리 좋지 않고요.”
“그도 모자라 JP모건은 추가 투자를 해주지 않는 상황이고요.”
“얼마 전 미국에서 철도 회사 간의 분쟁으로 공황이 일어났거든요.”
‘1901년 공황(Panic of 1901) 말이군.’
유니언 퍼시픽 철도의 EH해리먼과 그레이트 노던 퍼시픽의 주인인 JP모건 간의 북태평양 철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으로 촉발된 공황이다.
“그때 남작께서 보내신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죠. 돈과 투자자의 압박에 시달리며 워든클리프 타워에 집착하는 것보다 차라리 독일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바다를 건너 독일로 왔다는 건가.
“그러나 제가 먼저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랬다간 JP모건이 절 사기죄로 고소할 게 분명해요!”
그 JP모건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긴 하지.
“하지만 이대로 있어도 얼마 안 가 모건은 테슬라 씨의 후원을 끊을 것입니다. 그리고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겠죠. 결국 테슬라 씨에게 남는 것은 버려진채 녹슬어버린 철제 탑과 막대한 빚뿐일 겁니다.”
“그, 그런···.”
원 역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테슬라 씨.”
“남작님?”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일단 계약서부터 쓰자.
***
몇 주 후.
워든클리프 타워가 위치한 미국 롱아일랜드 쇼어햄에 한 무리의 수상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보이는 저 철제 탑이 목표다.”
리더로 보이는 한 남자가 워든클리프 타워를 가리키며 말하자, 부하로 보이는 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장, 꼭 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겁니까?”
“윗선의 명령이다. 듣기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명높은 과격단체의 정규 복장이라 하더군.”
“이게요?”
부하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미리 준비된 ‘위장복’을 흘겨보고는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키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간이 되었군.”
리더의 말에 부하들이 소총과 권총, 그리고 독일제 TNT를 손에 들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워든클리프 타워로 접근했다.
타워 가까이 가니 인부들이 타워 건설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명심해라. 절대 민간인들을 다치게 하지 마라.”
리더가 마지막으로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독일어는 금지다.”
타앙―!
그리고 허공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으엌?!”
“뭐, 뭐시여?!”
“모두 꼼짝하지 마!”
갑작스러운 총성에 인부들이 당황하는 사이, 무장한 리더와 그 부하들이 총을 겨누며 건설 현장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모두 얼굴에 하얀 고깔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다! 지금부터 저 악마의 탑을 정화하도록 하겠다!”
며칠 후.
악명높은 백인 우월단체 KKK가 하얀 고깔 두건을 쓴 기괴한 모습으로 워든클리프 타워를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렸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미국 전역에 대서 특필 되었다.
워든클리프 타워의 소유주였던 테슬라가 충격을 받아 프로젝트를 포기한 채 요양을 위해 독일로 떠났다는 소식은 덤이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