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시연회 (2)
“···하나님 맙소사.”
대체 뭐냐, 저 괴물 총은.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입을 떡 벌리며 그리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웠다.
처음에 루덴도르프는 한스가 기관단총이라 이름 붙인 총의 처참한 겉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발더제 원수의 명령으로 바람잡이가 되어 전문적인 군사 지식으로 한스를 압박하고 물 먹이려던 루덴도르프였지만, 저 동양인 꼬마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섬나라 놈들처럼 혓바닥도 길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장난감이라 생각한 한스의 신무기가 정말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루덴도르프는 설마 일이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자 심기가 심하게 불편해진 발더제 원수의 시선이 등에 내리꽂히기 시작했을 때, 루덴도르프에겐 다행히도 기관단총의 실물은 총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파이프 비스무리한 물건이었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루덴도르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침묵 속에서 칼을 갈고만 있던 발더제 원수가 이때다 싶어 한스를 신나게 비난하기 시작하고, 한스가 이로 인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을 땐 이미 이 시연회는 자신들의 승리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저 망할 애새끼 놈은 머리가 갑자기 돌아버렸는지 그대로 기관단총을 허공을 향해 갈겨버렸다.
그것도 카이저의 앞에서 말이다!
루덴도르프는 이 미친 짓에 경악하면서도 동시에 기관단총의 위력에 전율했다.
훗날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힌덴부르크와 함께 러시아 제국군을 박살 낸 장본인답게 루덴도르프는 유능한 군인이었다.
그는 보자마자 기관단총이 가져올 전장의 변화에 대해 순식간에 파악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연사무기라 할 수 있는 수랭식 기관총은 위력은 확실하지만 무겁고 둔했기에 주로 방어용 무기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기관단총은 달랐다.
딱 보기에도 가볍고 다루기에도 편해 보였다.
한스가 방금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린아이조차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근거리 한정이긴 하지만 일개 보병이 기관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루덴도르프는 좌절했다.
한스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게 증명된 이상, 이 시연회는 자신과 발더제를 비롯한 융커들의 패배였다.
‘출세 하나 해보자고 벌인 일이 패착으로 돌아오게 생겼군.’
루덴도르프에겐 야심이 있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일개 참모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독일 제국 육군의 중추인 참모본부, 그리고 언젠가 그 정점인 참모총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덴도르프는 참모총장의 자리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발더제 원수에게 시연회를 이용해 한스를 공격하는 건 어떻겠냐고 의견을 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정보가 잘만하면 발더제나 다른 장성들의 눈에 들 기회로 돌아왔으니까.
한스에게 미안한 감정? 루덴도르프에게 그딴 건 없었다.
애초에 루덴도르프는 한스 폰 초이 남작이란 인간을 싫어했다.
‘제 분수도 모른 채 날뛰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건방진 황인종 꼬맹이.’
그러면서 카이저의 총애는 한 몸에 받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 자신이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루덴도르프는 가난하진 않지만 그리 유복한 것도 아닌 작은 상인 가문 출신이었다.
어머니가 몰락 귀족 출신이었기에 그의 핏줄엔 푸른 피가 흐르긴 했지만, 작위는 없었고 다른 귀족들과 달리 이름에 폰(von)을 붙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스 폰 초이, 저 녀석은 대체 뭐길래 황태후에게 막대한 유산을 받은 것도 모자라 남작의 작위까지 받는단 말인가.
루덴도르프로선 열불 터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은 엉망이 되었고, 한스 폰 초이 남작은 또다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니, 아직이다. 아직 마지막 기회가 있어!’
바로 카이저의 반응이다.
황제의 앞에서 일언반구도 없이 다짜고짜 총을 쏘는 것은 불경죄를 넘어 반역죄로도 취급될 수 있는 일.
자신이 아는 카이저라면 분명 분노를 터트릴 게 분명했다.
“흐하하하! 녀석 또 저질렀군. 역시 배짱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
“?!”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 그렇소, 원수?”
“끄···끄으응···.”
카이저는 화는커녕 오히려 한스의 행동에 흡족해했다.
루덴도르프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른 황실 가족들을 바라봤다.
“후, 한스 쟤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또 이리 성급하게 행동하다니.”
“한스가 언제는 안 저랬답니까.”
그러나 황후도 황태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한스가 한스했다고 한숨을 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루덴도르프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대체 황실은 어떤 곳이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저리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정말 독일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대로 저 망할 꼬맹이가 ‘동양의 신비로운 요술’로 황실을 단체로 세뇌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젠 모르겠다.
루덴도르프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남, 남작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슈마이서 씨. 다만 팔이랑 어깨가 꽤 아프네요.”
나는 기관단총의 반동으로 인해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내가 어른이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역시 어린아이의 몸은 약했다.
‘그러게 왜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사람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고 제멋대로 떠드는 발더제와 융커들의 입을 다물게 할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
발더제와 융커들은 기관단총의 위력에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넋이 나갔다.
빌헬름 2세는 어째선지 흡족한 표정이고 말이다.
‘루덴도르프는···왠지 모르게 좌절했고.’
설마하니 여기서 그 루덴도르프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힌덴부르크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독일 장군 아닌가.
하지만 전세가 점점 독일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사실상 군부 독재를 펼치며 무리수를 던진 끝에 독일을 패망에 이르게 한 장본이기도 했다.
전후엔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배후중상설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다 나치와 히틀러의 발흥에 일조하기도 한 개자식이기도 했고.
하지만 타넨베르크라는 화려한 실적이 있는 만큼 군인으로서 유능한 것도 사실.
그야말로 나에게 있어선 계륵이 따로 없는 인간이었다.
‘루덴도르프에 대해선 일단 보류.’
지금은 시연회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슈마이서 씨. 한스 씨와 직원분들은 준비되었죠?”
“예. 하지만 이대로 시연회를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요?”
“괜찮아요. 절 믿고 계획대로 진행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남작님.”
루이스 슈마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들에게 돌아갔다.
다행히 발더제의 말에 상처를 입진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내 돌발행동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그런 건 진작에 잊어버렸다던가.
어쨌든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기관단총 시연이 시작되었다.
타다다다당!
타당! 타다다당!
“처리 완료!”
“Los! Los! Los!”
시연은 일반적인 표적 사격이 아닌 참호전이나 시가전을 가장한 모의 전투을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내 아이디어였는데 전생 시절 군대에서 받았던 모의전 훈련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단순한 시범 사격보다는 이쪽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올 테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타타탕!
“목표 점령 완료!”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그리고 마침내 적 참호를 점령한 채, 미리 준비된 독일 국기를 꽂는 한스 슈마이서와 직원들의 함성을 마지막으로 기관단총 시연이 종료되었다.
처음보다 훨씬 열렬한 환호와 박수 소리는 덤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빌헬름 2세와 군부의 평가뿐이었다.
“멋진 시연이었다. 한스. 역시 널 믿은 보람이 있구나!”
“감사합니다. 폐하.”
“발더제 원수. 원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소. 이거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오. 하하!”
“···과찬이십니다.”
발더제가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딱 보기에도 억지웃음이었다.
나는 더 열받으라고 발더제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끄흐읍······!”
내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트리며 좋아 죽으려는 발더제.
쌤통이다. 틀딱 노친네.
“슐리펜. 어떤가. 내가 보기엔 기관단총은 우리 제국군이 반드시 도입해야 할 무기라고 생각하네만.”
“동감입니다. 폐하.”
슐리펜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참모총장의 얼굴은 어째 처음 기관단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탐욕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오늘 보여준 기관단총은 아직 시제품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당장 도입은 무리겠죠.”
“호오, 저 무시무시한 성능의 총이 아직 미완성이라 그 말인가?”
“예. 폐하.”
내가 대신 대답했다.
“오늘 공개한 기관단총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군에 도입하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흠. 확실히 겉모습은 하루라도 빨리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솔직히 나는 한스 너의 그 괴멸적인 예술 감각이 또다시 발휘된 줄 알았다.”
“하···하하···.”
“오늘 시연에서 보여준 ‘모의전’도 실제 군사 훈련에 도입하고 싶군요.”
“예. 병사들의 기량과 전투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음. 그 건에 대해선 나중에 논의하도록 하지.”
내가 멋쩍게 웃는 사이, 몇몇 젊은 장교들이 오늘 시연회를 인상 깊게 보았는지 슐리펜에게 그리 의견을 내놨다.
가뜩이나 나 때문에 제대로 열받은 발더제가 뭐 하는 짓이냐는 듯 장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지만, 이미 망신을 제대로 당한 발더제를 신경 쓰는 장교는 없었다.
늙은 노원수가 시연회 이후에 겪게 될 미래가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럼 시연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오늘 수고했다. 한스. 내 나중에 너와 기관단총의 개발자를 비롯한 베르크만 조병창 직원들에게도 큰 상을 내리마.”
“예. 폐하.”
“영광입니다. 폐하!”
슈나이서 씨가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는 가운데, 발더제가 몇몇 장성들과 함께 똥 씹은 얼굴로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제대로 망신을 당했기에 당분간은 조용하겠지만, 발더제를 비롯한 융커들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도 기회만 있으면 나를 공격하려 할 게 분명했다.
‘스탈린 마렵네. 진짜.’
하지만 지금은 융커들을 숙청하기엔 내 힘이 모자라기도 하고 여건도 안 좋았다.
당장 내 편이라 할 수 있는 슐리펜 참모총장이나 뷜로 총리, 리히트호펜 총리도 일단은 융커였으니까.
언젠가는 저 꼰대들을 치워야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승리의 축배를 들어 올리자.
술을 마시기엔 아직 이른 나이지만 말이다.
***
“···누구시라고요?”
한편 그 시각, 마르가레테 공주는 황당한 얼굴로 어떤 기별도 없이 갑자기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방문한 정체불명의 남자를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미국에서 한스 폰 초이 남작을 만나러 왔다고 했잖습니까. 남작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마르가레테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남자는 앵무새처럼 한스를 불러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스를 만나러 왔으면 포츠담으로 가야지 왜 여기서 이러는 걸까?’
한스에게 프리드리히쇼프 성의 관리를 위임받은 이후, 어머니의 옛 저택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마르가레테 공주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죄송하지만 한스···아니, 남작은 이곳에 없어요.”
“그러면 언제 돌아옵니까?”
“그.러.니.까! 한스 군은 여기 안 산다고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여기가 남작의 저택 아닙니까?”
“그건 맞는데 사정이 있어서 제가 대신 관리를 맡고 있어요. 남작을 찾고 싶으면 포츠담에 있는 신궁전에 가야 해요.”
“오.”
남자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몰랐던 모양이다.
“제가 착각한 모양이군요. 남작이 미국으로 보낸 편지에는 독일에 오라는 말만 있었지, 주소는 안 적혀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그냥 답장을 보내 물어봤으면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편지를 받자마자 무작정 바다를 건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이다.
“남작이 그 신궁전이란 곳에 있다면 그곳으로 찾아가야겠군요. 실례했습니다.
부인.”
“잠, 잠깐만요. 거긴 카이저께서 계신 황궁이에요.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요.”
특히나 대놓고 ‘나 수상해요!’라고 외치고 있는 눈앞의 남자 같은 경우엔 곧바로 근위병들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내쫓기면 다행이였다.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런가요?”
“하아···. 제가 한스 군에게 연락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오. 그것참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
한숨 쉬며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마르가레테가 깜빡 잊었다는 듯,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테슬라.”
남자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