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29화 (29/193)

29화 : 다가오는 위험

1901년 11월 모일.

나는 기관단총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다는 슈마이서 부자의 편지를 받고 오랜만에 베르크만 조병창이 있는 줄(Suhl)로 향하고 있었다.

편지에 따르면 아직 보완해야 할 곳이 많다지만 사격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했던가.

생각보다 빠른 개발 속도에 나는 은근한 기대감을 품었다.

이번 시제품의 완성도가 괜찮다 싶으면 군에게 공식적으로 투자 요청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나쁜 소식도 있는 법.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라디오 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라디오 기술의 선구자인 레지날드 페슨든이 내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일반적인 투자라면 몰라도 이미 미국 기상청에서 일하는 것도 있어서 나와 함께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나?

이해는 간다.

페슨든 입장에선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굳이 연고도 없는 바다 건너 독일까지 와서 나를 위해 라디오 개발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결국 난 레지날드 페슨든을 영입하는 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테슬라 뿐.

그런데 그 테슬라에게선 지금 어떠한 답장도 도착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거절할 거면 거절한다고 페슨든처럼 단 한마디라도 적어서 보내던가, 아예 연락이 없으니 테슬라가 내 제안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분명 저번에 확인하기론 테슬라가 편지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고 했으니, 실수로 편지를 못 봤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일부러 읽씹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고민 중인 건지.

어쨌든 아쉬운 건 내 쪽이니만큼, 일단 테슬라에게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내보는 게 좋겠다.

이번엔 반드시 답장을 달라고 덧붙여서 말이다.

‘그나저나 미국 하니까 생각난 건데 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Jr.)가 암살당했지.’

신축조약이 체결되기 하루 전인 1901년 9월 6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신축조약 체결 날, 뜬금없이 이홍장이 죽었고.’

아무래도 순친왕의 일 때문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긴 원 역사에서도 신축조약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으니까.

정작 그 순친왕은 청나라에 돌아가서도 멀쩡하게 목이 붙어있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백성이고 자금성이고 다 버리고 도망쳤던 서태후와 청 황실이 무슨 염치로 순친왕을 나무라겠나?

오히려 그들은 신축조약으로 땅에 떨어진 청 황실의 위엄이 완전히 박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순친왕의 행동을 미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쑨원을 비롯한 청을 무너뜨리려는 중국의 혁명가들이 이번 일을 빌미로 청에 무능함에 질린 중국인들을 선동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해혁명이 원 역사보다 더 빨리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미국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매킨리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것은 다름 아닌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암살 사건을 일으키는 무정부주의자였다.

암살자의 총에 맞은 매킨리 대통령은 급히 병원에 실려 갔지만, 결국 며칠 후인 14일에 사망했다.

윌리엄 해리슨,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가필드에 이어 테쿰세의 저주가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앗아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매킨리의 암살이 아니라 매킨리의 뒤를 이은 새로운 대통령이지.’

시어도어 ‘테디’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곰 인형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인 행보는 그런 귀여움과는 거리가 불곰 그 자체였다.

‘열정적인 미국 패권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

물론 전임인 매킨리, 전전임인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미국은 이미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으로 대표되는 불간섭주의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의 제국주의 노선을 공식화한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앞으로 미국은 태평양과 카리브해, 남아메리카 방면으로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펼치기 시작할 거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독일이랑 부딪힌 적은 없었지?’

하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기 미국과 독일이 부딪힐 뻔했던 적은 있었다.

베네수엘라 위기(Venezuelan crisis of 1902-1903).

베네수엘라 대통령 시프리아노 카스트로(Cipriano Castro)가 외채상환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분노한 독일 제국과 영국이 합심해 베네수엘라를 해상 봉쇄한 사건.

원 역사에선 미국의 중재를 영·독이 받아들이면서 무난하게 끝났지만, 미국이나 독일이 강경하게 나왔으면 미국 해군과 독일 해군 간의 교전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내가 굳이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일이야.’

베네수엘라 위기는 갑자기 빌헬름 2세의 머리가 돌아서 베네수엘라를 점령하라는 미친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그냥 무난무난하게 지나갈 일이었다.

괜히 나서서 미합중국이란 벌집을 쑤시느니 그냥 원 역사처럼 흘러가게 두는 게 최선이다.

‘그 미국과의 전쟁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의자에 몸을 뉘었다.

***

“오셨습니까. 남작님!”

베르크만 조병창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날 반겨주었다.

베르크만 조병창의 사장, 테오도어 베르크만.

아무래도 날 마중하러 나온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베르크만 씨. 기관단총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성능은 좀 어떤가요?”

“아! 그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처음엔 솔직히 이게 가능할지 긴가민가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 나와버렸거든요.”

오. 역시 원 역사에서 MP18을 개발한 멤버라는 건가?

나는 기대감으로 부푼 발걸음으로 베르크만 사장을 따라 조병창 안으로 옮겼다.

조병창 내부는 처음 방문했던 날과 다름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슈마이서 부자의 모습이 보인다.

“슈마이서 씨!”

“아! 남작님!”

아버지 루이스 슈마이서가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아들 한스와 후고 형제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시제품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받으신 모양이군요.”

“예. 그러니 이렇게 몸이 달아서 얼른 찾아왔죠.”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얼른 구경시켜드려야죠.”

루이스 슈마이서는 그리 말하며 아들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가서 시제품을 가져오너라.”

“예. 아버지.”

슈마이서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한 크기의 나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저 안에 있구나.’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관단총이.

“자, 열어보시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는 기분으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내 두 눈에 슈마이서 부자가 야심 차게 만든 기관단총의 첫 번째 시제품의 모습이 들어온 순간, 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스텐······?’

왜 이게 여기서 나와?

“어······. 이, 이게 정말 슈마이서 씨와 아들분들이 만든 기관단총이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루이스 슈마이서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단언했다.

하지만 난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스텐이었다.

대 참호용 투척병기, 배관공의 악몽, 죽음의 탭댄스 등등 총기로선 붙어선 안될 별명들이 덕지덕지 붙은 다른 의미로 전설이라 불리는 기관단총.

홍차국 놈들이 만들어낸 싸구려 총의 대명사인 그 스텐 기관단총이었다.

‘아니, 왜 MP18이 아니라 스텐이 만들어지냐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원래 스텐 자체가 MP18의 발전형인 MP28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총기이니까.

게다가 그나마 개머리판 같은 건 다행히(?)도 나무 부품으로 만들어져있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관단총의 외양은 너무 스텐의 그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초기형인 Mk.1?

본격적인 전설의 시작인 Mk.2나 Mk.3 같은 게 튀어나왔으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작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신데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으십니까?”

“아···. 그 외양이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서요.”

“아. 그 부분이요.”

루이스 슈마이서가 한숨 쉬며 말했다.

다행히 슈마이서 부자도 원래 기관단총을 이렇게 만들 생각은 없던 모양이다.

“그···저번에 남작님께서 편지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면 좋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확실히 저번에 그리 말하긴 했죠.”

그렇다고 스텐을 만들라고 한 뜻은 아니었다.

어디까지 ‘가능하면’ 이라고도 적어놨단 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것입니다.”

“오···.”

“그래도 아직 시제품이니까요. 그 부분은 고치면 그만이죠.”

“예. 부디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파이프 같은 모습으론 군에 납품하려고 해도 거절당할 게 뻔하니까요.”

“하하하, 그건 그렇겠죠.”

루이스 슈마이서가 자신도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죠. 모습은 이래도 성능은 확실하니까요.”

“그건 다행이네요.”

다행히 겉모습만 스텐이지, 속은 멀쩡한 모양이다.

“예. 제 둘째 아들 후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후고 슈마이서가 내 시선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아직 어리긴 해도 그 재능은 어디 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실험 사격을 해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베르크만 씨, 사격장 준비되었죠?”

“그래. 가서 우리 못생긴 아가씨의 화력을 보여주게나!”

우리는 껄껄 웃는 베르크만 사장을 뒤로한 채 사격장으로 향했다.

기관단총의 사격은 루이스 슈마이서의 장남인 한스 슈마이서가 맡기로 했다.

“탄창은 말씀하신 대로 32발들이 박스형 탄창을 사용했습니다.”

“총탄은 9x19mm 파라벨럼이겠죠?”

“물론입니다. 처음엔 까탈스럽게 굴던 DWM이 남작님의 소개장을 보여주니까 곧바로 고분고분해지더군요.”

“하하.”

그야 그렇겠지.

내 뒤엔 카이저가 있으니까.

“발사 속도는 어떻습니까?”

“500rpm 정도입니다. 최소 600rpm이 목표인 만큼, 아직 그 부분엔 개량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낮긴 하지만 그래도 기관단총으로 못 쓸 수준은 아니다.

“그럼 시작하죠.”

루이스 슈마이서의 말에 나는 미리 준비된 귀마개를 끼고 한스 슈마이서의 사격을 지켜보았다.

한스 슈마이서는 이런 시범 사격을 자주 해봤는지 능숙하게 50m 앞에 있는 사람 모형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탕───!

사격장에 울려 퍼지는 기관단총 특유의 경쾌한 발사 소리.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다 떨어지며 총성이 멎었다.

“어떻습니까? 남작님.”

“끝내주는군요.”

난 걸레짝이 된 사람 모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슈마이서 부자야.

총 하나는 끝내주게 만드는구만.

나는 사격을 마치고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는 한스 슈마이서를 향해 물었다.

“한스 씨. 기관단총을 사용해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일단 화력은 좋아요. 소총보다 훨씬 가벼워서 확실히 들고 빠르게 이동하기엔 제격이고요. 하지만 역시 내구성을 높여야겠어요. 이 발사 속도로도 총이 꽤 불안정하네요.”

한스 슈마이서는 그 밖에도 단발 사격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총검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등의 여러 의견을 내놨다.

그리고 동생 후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의 말을 그대로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만족스러운 사격이었습니다. 슈마이서 씨.”

“예. 계속 개량을 거듭해서 다음엔 더 좋은 성능의 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루이스 슈마이서가 기관단총 시제품을 힐끗 쳐다봤다.

“외양도 좀 더 총답게 바꾸고요.”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나와 슈마이서 부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은 뜬금없는 스텐의 등장으로 당황했지만, 성능은 확실히 첫 시제품치고 괜찮았다.

이대로 한 반년에서 1년 정도 계속 만지다 보면 총기 계의 걸작이 탄생하리라.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포츠담으로 돌아왔다.

“남작님. 남작님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요? 혹시 미국에서 온 것입니까?”

“아뇨. 슐리펜 백작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참모총장께서요?”

그러나 그런 나를 기다리는 것은 갑작스러운 슐리펜 참모총장의 편지였다.

‘슐리펜 참모총장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슐리펜 참모총장과는 빅토리아 황태후의 장례식 때 마지막으로 보고 그다지 만난 적이 없었다.

순친왕의 일도 그렇고 여러모로 바쁜 일이 많았으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한스 폰 초이 남작에게.

올해도 벌써 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네.

남작 자네를 만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나는 나대로, 자네는 자네대로 바빠서 교류를 많이 못 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

노인네의 투정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자네에게 편지를 전한 것은 경고를 전하기 위해서이네.

중국 원정군의 귀환이 다가오고 있네.

그리고 그 말은 중국 원정군의 사령관이자 의화단 전쟁에서 8개국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은 발더제 원수가 돌아온다는 뜻이지.]

“······!”

[그는 군인으로서 존경스러운 남자이지만, 그의 사상은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 이네.

긴말은 하지 않겠네. 남작.

발더제 원수를 조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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