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순친왕
베르크만 조병창에서 돌아오고 몇 주 후.
나는 별다른 일 없이 신궁전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째 내가 남작이 되고 나서 부수가 더 올랐다는 ‘불멸의 리 제독’을 쓰고, 주에 한 번씩 슈마이서 부자에게서 기관단총의 개발 진척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그렇게 바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달력의 날짜는 8월을 지나 9월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페슨든과 테슬라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은 아직인가?”
아무래도 대서양 건너편이다 보니 편지가 오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모양이다.
전보가 아닌 이상, 먼바다 건너 미국으로 보내는 편지는 보통 여객선들을 통해 운반되니까.
예를 들자면 그 유명한 RMS 타이타닉 또한 여객선인 동시에 편지 운반선이었다.
애초에 RMS라는 영국 여객선 앞에 자주 붙는 용어 자체가 로열메일(Royal Mail) 이라는 영국 우편 회사와 계약을 맺은 우편선(Royal Mail Ship)이란 뜻이었으니까.
물론 타이타닉은 침몰해서 안에 있던 편지들도 깡그리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렸지만 말이다.
‘설마 내 편지에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어째 걱정이 된다.
있다가 확인 좀 해봐야겠다.
그냥 전보를 보냈다면 하룻밤 사이에 미국에 도착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성의가 없어 보였다.
원래 이런 일은 정성이 중요한 법이다.
게다가 아쉬운 쪽은 어디까지나 내 쪽인 만큼, 내가 더 예의를 차리고 상대방을 향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페슨든과 테슬라도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한스 남작님. 폐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카이저께서요?”
한창 신문에 연재할 글을 쓰는 도중에, 빌헬름 2세의 비서 중 하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렇게 사용인을 보내는 식으로 카이저가 나를 부른 적은 내가 알기론 거의 없다.
‘대체 무슨 용건이지?’
어째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폐하. 한스 폰 초이 남작이 오셨습니다.”
“오. 들어오라 이르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의 빌헬름 2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근위병들이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안에는 당연히 빌헬름 2세와 뷜로 총리,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의 엄격해 보이는 노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군부 쪽 사람은 아니야.’
군인이었다면 당연히 제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성은 뷜로 총리와 마찬가지로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내각의 관료라도 되는 것일까?
“폐하.”
“잘 왔다. 한스.”
반갑게 나를 맞이한 카이저가 시선을 노년의 남성 쪽으로 옮겼다.
“뷜로 총리는 당연히 알겠고 이쪽은 처음 보겠지? 외무장관인 오스발트 폰 리히트호펜(Oswald von Richthofen) 남작이다.”
그렇구만.
참고로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은 성씨랑 작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독일의 전설적인 파일럿,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이랑 같은 가문 사람이다.
가까운 가족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먼 친척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리히트호펜 외무장관님. 한스 폰 초이 남작입니다.”
“드디어 프랑스 놈들에게 엿을 먹인 장본인을 만나보게 되는군. 잘 부탁하네.
남작.”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씨익 웃으며 나와 악수를 하였다.
아무래도 전에 프랑스에 불장난했던 일 덕분에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나저나 뷜로 총리 뿐만 아니라 외무장관까지 있는 자리에 날 부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그 답은 이어진 빌헬름 2세의 말에 의해 풀렸다.
“한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너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다.”
“조언 말입니까?”
“곧 중국에서 조약이 체결되는 것은 알고 있을 거다.”
“의화단 의정서 말이군요.”
의화단 의정서(Boxer Protocol).
한국에는 베이징 의정서(北京議定書) 또는 신축조약(辛丑條約)으로 알려진 조약이다.
이름 그대로 의화단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조약으로 며칠 후인 9월 7일에 체결될 예정이었다.
신축조약으로 청나라는 서구 열강들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어버린 채 시름시름죽어가다가 10년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대로 멸망하고 만다.
사실상 청나라에 있어선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조약.
하지만 청나라에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신축조약,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의화단 전쟁은 어디까지나 청과 서태후의 자업자득이었으니까.
‘아무리 열강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한다는 착각에 빠져도 그렇지, 중국판 ISIS, 탈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의화단이랑 손잡고 열강 전체에 선전포고를 때린다는 발상을 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 했던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는 미친 짓이었다.
거기다 진주만 공습은 미국에 타격을 주기라도 했지, 이쪽은 그저 열강들의 분노만 돋구기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중국 백성들이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칭(Ching)의 황족이 며칠 후에 이곳 포츠담에 도착할 예정이다. 의화단 놈들에게 살해당한 케텔러 공사의 일을 사죄하기 위해서 말이다.”
“순친왕 애신각라 재풍(愛新覺羅 載?, 아이신기오로 자이펑) 말이군요.”
청나라의 현 황제인 광서제의 이복동생.
그리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친아버지다.
‘청의 마지막 섭정이자 청의 최후를 지켜본 인물이기도 하지.’
1908년. 광서제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사망하자, 같은 항렬에 단 한 명의 황제만이 존재할 수 있는 청나라식 왕위계승법에 따라 순친왕의 장남인 푸이가 황위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푸이의 나이가 3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버지인 순친왕이 섭정이 되어 아들 대신 청을 이끌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1911년에 신해혁명이 터지고, 이를 막으라고 보낸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가 기어코 통수를 치면서 청나라는 296년 만에 나라의 문을 닫고 만다.
여러모로 비운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널 부르길 잘했구나. 자, 그래서 내가 그 자이펑인지 자이팡인지 하는 자에게 어떤 식으로 사죄를 받으면 좋을 것 같으냐?”
“예?”
“한스, 넌 아시아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으냐. 난 그 칭의 황족에게 최대의 굴욕을 주고 싶다. 놈들의 방식으로 말이다.”
빌곶제에게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다.
고작 이런 걸 물어보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본래 폐하께서는 순친왕에게 어떤 식으로 사죄를 받으려고 하셨습니까?”
“나에게 절을 하라고 할 생각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케텔러 공사를 잔인하게 살해한 죄에 비해 너무 자비롭긴 하구나.”
아니, 청나라 황족에겐 그것만 해도 최대의 굴욕 아닌가?
게다가 원 역사에서 순친왕은 그것만큼은 절대 못 하겠다고 빌헬름 2세가 포기할 때까지 끝까지 버텼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저리 기대하는 카이저를 실망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순친왕이 폐하의 앞에서 그냥 절을 하는 것보다 더 큰 굴욕을 줄 수 있는 게 있긴 있습니다.”
결국 난 빌헬름 2세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난 이제 모른다. 순친왕이 알아서 하라지.
“오. 어서 말해 보아라.”
“청에는 ‘세 꿇기와 아홉 조아리기(ilan niyak?n uyun hengkin i doro, 일란 냐퀀 우윤 헝킨 이 도로)’란 예법이 있습니다. 오로지 황제만이 받을 수 있는 인사법으로 청의 신하들은 이에 따라 황제를 대면할 때 이를 행합니다.”
‘삼궤구고두례(三?九叩頭禮)’라 알려진 그것 맞다.
“그리고 이는 청의 신하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사신들이나 항복한 나라의 왕이 황제를 대면할 때 반드시 행해야 하는 예법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제 고향 조선의 왕이 청의 황제에게 항복할 때 사용되기도 했죠.”
“호오. 그것참···마음에 드는구나. 특히 ‘황제’와 ‘항복’이란 부분이 말이다.”
빌헬름 2세가 만족스러운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다 큰 콧수염 아저씨가 저러니까 솔직히 징그럽다.
“뷜로 총리. 리히트호펜 장관. 나는 이 예법으로 칭(Ching)에게 사죄를 받아야겠소.”
“하지만 순친왕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히 순친왕으로선 청의 자존심과 자신의 체면이 걸린 이상, 절대 안 받아 들일 거다.
원 역사에서도 절 만큼은 절대 못 한다고 분노한 빌헬름 2세 앞에서도 끝까지 뻐팅겼던 인물이었으니까.
“안 받아들이면 받아들이게 만들어야지. 한스.”
“예, 폐하.”
“리히트호펜 외무장관과 함께 방법을 찾아봐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칭의 황족에게 그 예법을 받고 싶구나.”
나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곤란하군.’
‘곤란하네요.’
우리는 카이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삼궤구고두례 이야기를 꺼냈나 보다.
***
1901년 9월.
독일 함부르크 근해.
“전하, 선장이 곧 독일에 도착한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순친왕 애신각라 재풍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항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태후, 그 늙은 여우가 저지른 실책으로 나만 굴욕을 당하게 생겼구나.’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자신이 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리 먼 독일까지 와야 한단 말인가.
의화단 같은 난신적자들과 손을 잡은 것도 서태후요, 형님 폐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 강대한 열강들에 전쟁을 선포한 것도 서태후였다.
그리고 그 결과 중국은 분노한 열강들이 파견한 군대에 말 그대로 짓밟혔다.
수도 베이징에선 의화단의 만행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양인들에 의해 대대적인 학살과 약탈이 벌어졌고, 심지어 순친왕 자신의 약혼녀마저 양인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자결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서태후는 자금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쳤다가, 자신의 권력을 보전해준다는 말에 뻔뻔히 북경으로 돌아왔다.
순친왕은 서태후의 신임을 얻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 구역질 나는 작태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젠 나보고 독일 황제에게 사죄하라니.”
아직 18살밖에 안 된 젊은 순친왕에겐 너무나도 버거운 짐이었다.
게다가 순친왕은 북경에서 독일군이 어떤 식으로 중국인들을 대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자비.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떠한 관용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
듣기론 자국 공사의 잔혹한 죽음에 분노한 독일 황제가 중국으로 떠나는 독일원정군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던가.
[용서도 없고, 포로도 없게 하라. 1,000여 년 전 에첼(아틸라) 왕이 구축해 지금도 건재한 그 명성처럼, 어떤 중국인도, 그들의 눈이 찢어졌건 말건, 감히 독일인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도록 하라!]
마치 중국인을 인간으로도 대하지 말라는 듯한 명령.
그리고 독일군은 그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다른 열강 군대도 잔혹하고 비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인들은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과거 중국을 공포에 떨게 한 흉노의 재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두렵구나. 그 악명높은 독일 황제가 나와 대청에 대체 무엇을 요구할지.”
“전하. 용기를 잃으셔선 아니 되옵니다.”
“양성(梁誠, 리앙쳉).”
청나라의 외교관이자 이번 사절단에서 순친왕의 고문을 맡은 양성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께서 덕의지(德意志, 도이치)의 황제에게 굴복하시는 것은 전 중국이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옵니다. 그러니 굳건, 또 굳건하게 버티셔야 하옵니다.”
“하지만 내가 과연 버틸 수 있겠소.”
“신이 최대한 돕겠나이다.”
양성이 결연한 눈으로 순친왕을 바라봤다.
실제로 원 역사에 양성은 외교적 로비를 통해 순친왕이 빌헬름 2세 앞에 절을 하는 수모를 막은 일등 공신이었다.
‘양성처럼 능력 있고 깨어있는 충신이 조정에 많았다면 이런 수모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을.’
하지만 작금의 청 조정은 원세개같은 탐욕스러운 간신배들만 넘쳐나는 판국이었다.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청이 어쩌다 이리 몰락했단 말인가.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씨를 물려받은 자로써 순친왕은 도저히 저세상에서 태조천명제 누르하치를 뵐 명목이 없었다.
부우우우웅~
순친왕의 어지러운 마음을 대변하듯이 뱃고동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범의 아가리로 들어갈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