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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23화 (23/193)

23화 : 미래를 위한 투자

“어, 저기 폰 초이 남작이 지나간다!”

“와. 한스 폰 초이 남작님!”

포츠담으로 돌아온 뒤.

나는 며칠 째, 요아힘과 빅토리아 루이제, 두 잼민이의 깐죽거리는 얼굴을 봐야만 했다.

오랜만에 놀림거리가 하나 생기니 살판이 난 모양이다.

“···부탁이니까 적어도 폰 초이라고만 부르지 말아 주세요.”

어떻게 사람 이름이 폰 초이.

내가 한스까진 참아도 그건 진짜 아니다.

“싫은데? 싫은데?”

“아! 흐즈믈르그!”

결국 내가 이 악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요아힘과 루이제가 깔깔거리며 날조롱하는 것을 멈췄다.

이래서 애들은 싫다.

‘나도 애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한스 이제 부자잖아. 그 돈 어디다 쓸 거야?”

“여행 가자. 여행!”

요아힘이 신난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얘들아. 내 돈이지, 너네 돈 아니다.

“다 쓸 곳이 있어요.”

“쓸 곳?”

루이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일단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두죠.”

신무기를 비롯해 라디오, 비행기, 항생제 기타 등등···.

빅토리아 황태후의 깜짝 선물 덕분에 그것들을 드디어 손에 넣을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그렇듯 가지고 싶은 것을 한 번에 다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일단 비행기는 보류.’

비행기는 앞으로 다가올 세계대전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손에 넣고 발전을 시켜야 하는 물건이지만 지금 당장 가질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후인 1903년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체펠린 백작(Ferdinand Graf von Zeppelin)이 비행선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맘때쯤이었나?’

아마 첫 비행이 작년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비행선은 남자의 로망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쓸모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대전 초기라면 모를까 나중에 가면 너무 크고 느려서 비행기의 밥이 되고, 무엇보다도 그놈의 수소 때문에 폭발과 화재 위험이 너무 컸다.

‘헬륨을 쓰자니 너무 비싸고.’

굳이 내가 생돈을 들여 투자할 물건은 아니었다.

크고 웅장한 비행선 뽕맛에 취한 독일인들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쪽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그다음으로 관심 있는 건 항생제인데···.’

페니실린.

푸른곰팡이가 만들어낸 기적의 항생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약물.

그 영향과 가치를 생각하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제약 사업이라는 건 돈 먹는 하마.

잘못했다간 결과는 결과대로 안 나오고 빅토리아 황태후가 남기신 유산만 까먹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일단 이것도 보류.’

그러면 결국 지금 내가 손을 대기 좋은 것은 라디오와 세계대전에 사용할 신병기 정도였다.

우선 라디오는 전에 말했듯이 군사용으로도 활용도가 굉장히 높았고, 또 무엇보다 매력적인 선전매체였다.

마음 같아선 내 손으로 직접 개발하고 싶을 정도다.

‘이럴 때 내가 공돌이가 아니라는 게 아쉽네.’

애석하게도 난 내추럴 본 문돌이였다.

그렇기에 나를 대신에 라디오와 필요한 기술들을 만들어줄 천재들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 영입하고 싶은 건 역시 라디오 기술의 선구자인 레지날드 페슨든(Reginald Fessenden).

1901년엔 아마 미국 기상청 소속으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역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비운의 천재 과학자.

‘한편으론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괴짜지.’

그만큼 까다로운 인간이긴 하지만 잘만 다룬다면 획기적인 신기술과 발명품을 뽑아낼 수 있을 거다.

전생에 읽었던 대체역사 소설에선 틈만 나면 주인공들이 테슬라를 노예처럼 굴리던데, 나도 좀 써먹어 보자.

게다가 니콜라 테슬라는 마르코니보다 무선통신 기술을 먼저 개발한 이 분야의 선구자.

비록 불운이 겹쳐서 마르코니에게 특허를 빼앗겼지만, 그 기술과 지식은 지금의 내게 있어 굉장히 탐나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내가 이 시기에 테슬라가 어디서 뭘 했는지 잘 모른다는 거지.’

내가 알기론 작년까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그 유명한 테슬라 코일 실험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이후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수소문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령 크로아티아 출신이니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을 테고 말이다.

나중에 페슨든과 테슬라에게 독일에 와서 나와 라디오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기로 하자.

‘마지막은 신병기인데···.’

마음 같아선 전차를 뽑고 싶었지만, 그건 당장 무리고 지금은 총기 쪽을 생각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이 시대의 근본 중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기관단총’ 말이다.

‘참호전엔 이만한 무기가 없지.’

비록 원 역사에선 제1차 세계대전이 다 끝나갈 때쯤 나와서 그리 많은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지금부터 기관단총을 미리 선점해놓을 수 있다면 나중에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보자, 편지를···. 아니, 이건 내가 직접 가는 게 낫겠지.”

“응? 한스, 어디 가게?”

“내일 잠깐 줄에 다녀오려고요.”

“줄? 튀링겐 말이야?”

“네.”

줄(Suhl).

동독 시절에도 수많은 사격 선수들이 이곳에서 훈련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독일 총기 산업의 중심지였던 곳.

그곳에 내가 원하는 기관단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

***

다음 날.

줄에 위치한 베르크만 조병창의 수석 총기 개발자인 루이스 슈마이서(Louis Schmeisser)는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직장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아침부터 이 무슨 소란입니까?”

“오! 루이스, 왔나?”

루이스 슈마이서의 질문에 베르크만 조병창의 사장인 테오도어 베르크만(Theodor Bergmann)이 들뜬 얼굴로 루이스를 맞이했다.

“어서 와서 이것 좀 보게나.”

“전보 아닙니까?”

말 그대로 베르크만의 손에는 작은 전보용 종이가 들려있었다.

“어제저녁에 포츠담에서 온 것이네. 오늘 귀족 나리께서 우리 조병창에 방문하고 싶다는군!”

“예? 귀족이요?”

“그래. 자네도 ‘카이저를 구한 동양인 소년’ 정도는 들어봤겠지?”

루이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신문 정도는 읽어서 그 소년이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이 분명 ‘한스 초이’였던가?

“그런데 그 소년이 귀족이라니 그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갠 황인종이잖아요.”

“자네, 소식이 느리구먼. 얼마 전에 카이저께서 그 친구에게 작위를 내렸다네. 무려 남작위를 말이야!”

“허···.”

살다 살다 이 독일 제국에서 동양인이 남작이 되는 일이 생기다니.

이게 20세기란 건가?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서 그 남작 나리께서 우리 조병창에 무슨 볼일이시랍니까?”

“자신이 구상한 획기적인 총기의 개발을 우리에게 의뢰하고 싶다더군!”

“예? 획기적인 총기요?”

“그래. 시제품 개발비도 자신이 댄다는구먼. 우리 남작 나리께서 황태후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던데 그 돈을 쓰고 싶어서 벌써 안달이 난 모양이야.”

획기적인 총기라는 말에 뼛속까지 총기 개발자답게 루이스가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이내 한스 초이, 아니 한스 폰 초이 남작이 기껏해야 9살짜리 꼬마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얼굴을 찌푸렸다.

“그냥 뭣도 모르는 어린애의 돈지랄 아닙니까?”

“그거야 모르지.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보자고.”

돈은 언제나 옳으니까.

베르크만이 그리 말하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더 강했던 루이스는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지, 불편한 얼굴을 지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서 오십시오. 남작님! 제가 이 조병창의 주인인 테오도어 베르크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베르크만 씨.”

베르크만 조병창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한스 폰 초이 남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쪽은 베르크만 조병창의 수석 총기 개발자인 슈마이서입니다.”

“루이스 슈마이서입니다.”

“유럽에서도 명성이 드높은 마이스터를 만나 영광입니다. 슈마이서 씨.”

루이스는 남작의 칭찬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남작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의젓하고 예의 바른 것이 철없는 도련님이나 비열한 황인종이란 편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베르크만이 한스의 뒤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덩치 큰 떡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경호를 맡으신 분들입니다. 황후 마마께서 혼자 줄에 간다니까 걱정이 많으셔서요.”

“아, 예.”

독일 제국의 황후를 태연스럽게 언급하는 모습에 루이스와 베르크만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역시 카이저가 총애한다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베르크만과 루이스의 안내에 따라 한스와 그 경호원들이 조병창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저 두 청년분은 슈마이서 씨와 비슷하게 생겼군요.”

총기 공장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한스가 말했다.

루이스는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제 아들들입니다. 저처럼 총기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한창 공부 중이죠.

큰 녀석은 한스고 작은 녀석은 후고라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한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슈마이서 형제를 바라봤다.

한스의 두 눈은 사냥감을 발견한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찾았다!’

나는 루이스 슈마이서의 아들들, 그중에서도 작은아들 쪽을 바라보며 쾌재를 불렀다.

후고 슈마이서(Hugo Schmeisser).

세계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기관단총 MP18의 개발자.

그리고 나치 독일 시절,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인 StG44를 개발한 돌격소총의 아버지이다.

‘미국엔 유진 스토너, 러시아엔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있다면 독일에는 후고 슈마이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나로선 반드시 붙잡아야 할 인재였다.

“슈마이서 씨. 아드님들도 같이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예? 하지만 제 아들들은 아직 총기 개발자로서 미숙한 것 많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젊은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보고 싶거든요.”

내 말에 루이스는 자기 아들들이 폐를 끼치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슈마이서 씨.

당신의 아들은 나중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총기 개발자가 되거든요.

“자, 이쪽이 제 사무실입니다.”

나와 베르크만 사장, 그리고 슈마이서 부자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경호원들은 그대로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저 덩치들이 안에 있어봤자 부담되고 숨이 막힐 뿐이다.

“우선, 제가 구상한 총기에 관해 설명해 드리죠.”

나는 미리 준비한 계획서를 서류 가방에서 꺼내 슈마이서와 베르크만에게 나눠주었다.

슈마이서 형제도 흥미로운 눈으로 계획서를 바라봤다.

“기관단총(MaschinenPistole)···?”

“휴대용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기관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엔 권총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이건 총의 반동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까?”

나는 슈마이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획기적이군요. 소총탄을 사용한 완전자동 총기는 너무 반동이 심하니 아예 권총탄을 사용한다니.”

“최근 DWM에서 개발된 9x19mm 파라벨럼을 사용하면 좋겠는데요. 아무리 권총탄을 사용한다고 해도 기존의 7.65x21mm로는 제대로 된 위력이 안 나올 테니까요.”

후고 슈마이서가 그 재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듯, 곧바로 덧붙였다.

실제로 MP18도 9x19mm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라면 기존의 볼트액션식 소총보다 사거리가 너무 짧아질 텐데요.”

슈마이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다.

이 시대의 총들은 어디까지나 장거리 교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 분이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기관단총은 어디까지나 장거리 교전이 아닌, 참호전이나 시가전 같은 근거리 교전을 상정하고 구상한 총기이니까요.”

그리고 또 휴대성과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소총보다 짧고 훨씬 가벼워야 했다.

괜히 기관’단총’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확실히 매우 흥미로운 총입니다만, 걱정되는군요. 저희 조병창은 자동권총을 주로 제작해왔기에 이런 총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거든요.”

베르크만이 그리 말하며 루이스 슈마이서를 바라봤다.

“루이스, 가능하겠나?”

“······.”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루이스 슈마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입을 연 것은 그가 아닌 둘째 아들 후고 슈마이서였다.

“후고?”

“이미 개념은 잡혀있으니 남은 것은 오로지 총기 개발자들의 실력뿐. 아버지와 저희 형제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기관단총이란 것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저희 부자의 이름이 역사 속에 남겨질 테니까요.

후고 슈마이서는 그리 말하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이의 패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좋다. 그럼 까짓거 해보자.”

하지만 아들의 패기에 오랜만에 장인의 혼이 뜨거워진 모양인지 루이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굳혔다.

계약 성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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