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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11화 (11/193)

11화 : 카이저의 동생들

뿌우우우웅───

포츠담에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 후.

기차 경적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새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도착을 알렸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냉전 시절 서독의 중심지였던 도시.

다만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 크론베르크.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쇼프 성이었다.

“오셨습니까. 황후마마.”

아우구스테 황후를 따라 기차에서 내리니 기차에서 짐을 옮기기 위한 사람들 틈에서 처음 보는 얼굴의 신사가 황후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우구스테 황후가 그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폰슨비(Frederick Edward Grey Ponsonby) 경. 독일에 와 계신 줄은 몰랐군요.”

폰슨비?

사람 이름이 어떻게 폰슨비.

“왕자님. 누굽니까. 저 사람은?”

“프레데릭 폰슨비 경. 영국 귀족이야.”

요아힘이 속삭이며 대답했다.

왜 영국 귀족이 여기 있는지 묻자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와 할머니 빅토리 아 아델레이드 황태후의 대자라고 한다.

“에드워드 7세 폐하께서 대모님의 마지막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렇군요. 폐하께선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여전히 배가 나오셨죠.”

그리 농담 하며 껄껄 웃는 폰슨비 경.

그의 시선은 곧 황후의 뒤에 있는 요아힘과 루이제, 그리고 나를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요아힘 왕자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님.”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폰슨비 경.”

“예전에 뵐 때보다 많이 자라셨군요. 그런데 이 작은 신사분은?”

폰슨비 경이 나를 바라보며 황후를 향해 질문했다.

누가 혐성국 출신 아니랄까 봐, 그 눈이 마치 나를 가늠하는 듯이 느껴져 어쩐지 꺼림칙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일단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했다.

“한스 초이입니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폰스비 경.”

“아아. 그 유명한 ‘카이저를 구한 동양인 소년’이군요.”

“네. 저희와 가족같이 지내는 아이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이거 반갑습니다. 초이 군.”

폰슨비 경이 빙긋 사람 좋은 미소 지은 채 나와 악수를 하였다.

그리곤 다시 아우구스테 황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짐은 하인들에게 맡기시고 어서 프리드리히쇼프로 가시죠. 하인리히 왕자님과 빅토리아 공주님, 조피 왕세자비님, 헤센-카센 방백과 마르가레테 공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샤를로테 공주께선 아직 도착하시지 않으셨나요?”

“일단 연락은 드렸습니다만 아직 소식이 없군요.”

폰슨비 경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의 사람들은 전부 빅토리아 황태후의 자식들.

그러니까 빌헬름 2세의 동생들이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나와는 면식이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될 모양이다.

“이 마차를 타시면 됩니다.”

우리 일행은 폰슨비 경의 안내에 따라 미리 준비된 마차 위에 올랐다.

마차는 곧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태후 마마의 상태는 좀 어떠신가요?”

마차 안에서 아우구스테 황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폰슨비에게 물었다.

폰슨비 경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만, 의사의 말로는 길어야 몇 주라더군요.”

“···그런가요.”

“예. 다들 많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특히 공주님들은 더더욱이요.”

“그분들은 다른 남매분들과 달리 황태후 마마와 아주 가까우셨으니까요.”

프리드리히 3세와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황후는 모두 6명(본래 아들 둘이 더 있었으나 어렸을 때 사망함)의 자식이 있었다.

첫째, 독일 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

둘째, 작센-마이닝겐 공작부인 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Viktoria Elisabeth Auguste Charlotte).

셋째,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Albert Wilhelm Heinrich).

넷째, 샤움부르크리페 공자비 프리데리케 아말리아 빌헬미네 ‘빅토리아’(Friederike Amalia Wilhelmine Viktoria).

다섯째, 그리스 왕세자비 ‘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알리체(Sophie Dorothea Ulrike Alice).

그리고 막내인 헤센-카셀 백작부인 ‘마르가레테’ 베아트리체 페오도라(Margarethe Beatrice Feodora).

이 중 빌헬름 2세와 샤를로테 공주, 하인리히 왕자는 보수적인 할머니 아우구스타 손에 자란 탓에 자유주의자였던 어머니와는 서먹한 관계였다.

하지만 빅토리아, 조피, 마르가레테 공주는 어머니인 빅토리아 황태후가 직접 키웠기에 오빠들과 큰언니와는 다르게 어머니와 매우 친밀했다.

그렇기에 빅토리아 황태후는 딸들이 먼 곳으로 시집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슬슬 도착할 시간이군요.”

시계를 확인한 폰슨비 경이 말했다.

창밖을 살짝 내다보니 저 멀리 회색 지붕의 저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프리드리히쇼프 성은 이름 그대로 성이라긴 보단 그냥 돌로 지어진 커다란 저택이었다.

하긴 근대에 지어진 ‘성’이라 불리는 건축물들은 이름만 성일 뿐, 사실상 대저택에 가까웠다.

다만 예외 중의 예외긴 한데 근대에 지어진 진짜배기 중세식 성도 실제로 존재하긴 했다.

다름 아닌 이 독일 제국에 말이다.

그 정체는 바로 디X니 신데렐라 성의 모티브로 유명한 바이에른의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심지어 이 성은 17, 18세기도 아닌, 지금으로부터 무려 9년 전에 완공된 말그대로 돈지랄과 낭만의 결정체였다.

괜히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설한 루트비히 2세가 미친놈 소리를 들으며 신하들의 손에 강제퇴위 당한 게 아니다.

“어이쿠, 드디어 오셨군.”

“하인리히 숙부님!”

“하하하! 요아힘, 오랜만이구나!”

마차에서 내려 저택 쪽으로 걸어가니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가 호탕한 목소리로 우릴 반겨주었다.

하인리히라.

아무래도 저 남자가 바로 빌헬름 2세의 유일한 남동생인 하인리히 왕자인 모양이다.

“오빠, 누가 왔어?”

하인리히 왕자의 목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던 여성들이 다가왔다.

왕자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왕자의 여동생들, 즉 공주들인 모양이다.

“아, 오셨군요. 황후마마.”

“오랜만에 뵙네요. 빅토리아 공주님, 마르가레테 공주님.”

공주들과 아우구스테 황후가 서로를 향해 방긋 미소 지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헤센-카셀 공자께서도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딜 가셨나요?”

“예. 남편은 볼일이 있어서 잠깐 시내에 나갔어요.”

마르가레테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황후의 옆에 있던 루이제를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안녕. 루이제?”

“안녕하세요. 마르가레테 고모님.”

“루이제. 빅토리아 고모께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빅토리아 고모님.”

아우구스테 황후가 그리 말하자 루이제가 빅토리아 공주를 향해 똑같이 인사했다.

“그런데 저 아이는?”

일행의 뒤에 있던 날 발견한 마르가레테 공주가 나에게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주님. 전···”

“한스 초이! 드디어 형님을 구한 용감한 소년을 직접 보게 되는군!”

내가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하려는 찰나, 하인리히 왕자가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순 당황했지만 나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왕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하인리히 왕자님. 한스 초이입니다.”

“형님과 티르피츠 제독에겐 이야기 많이 들었네! 코레아 출신이라지?”

“예? 아, 네. 일단은······.”

“하하! 괜찮은 나라였지. 황제는 좀 겁쟁이 같았지만 말이야!”

내 등을 팍팍 두들기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하인리히 왕자.

그러고 보니 하인리히 왕자는 동아시아 함대 사령관으로 근무 중, 재작년인 1889년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외국 국빈으로서 대한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다만 하인리히 왕자가 대한제국을 마음에 들어 한 것과 달리, 하인리히 왕자 일행에 대한 대한제국 측의 평은 안 좋았다.

누가 외교 못하는 독일 제국 아니랄까 봐 오만하게 굴며 깽판을 쳤기 때문이다.

“그만해. 오빠. 애가 곤란해하잖아.”

“음? 하하! 이거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흥분한 모양이야.”

“하여튼 어린 시절이랑 전혀 변하게 없다니까.”

마르가레테 공주가 짧게 한숨 쉬곤, 나를 바라봤다.

“그···초이 군?”

“그냥 한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마르가레테 공주님.”

원래 내 이름인 한수라고 불리는 건 이제 포기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그냥 한스로 살아야 할 팔자인가보다.

“그래. 한스. 만나서 반갑구나. 이쪽은 내 언니인 빅토리아.”

빅토리아 공주가 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너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신문들이 워낙 난리였으니 모르실 수가 없죠.”

“후훗, 재미있는 아이구나? 하지만 솔직히 놀라기도 했어. 내가 아는 큰 오라 버니는··· 너 같은 사람들에 대해 많이 ‘부정적’이었거든. 어머니도 너에 대해 듣고 얼마나 놀라시던지.”

“황태후께서요?”

“그래. 어머니가 네 이야기를 듣고 뭐라 하셨냐면······.”

끼익─

“모지(Mossy, 마르가레테 공주의 애칭)? 밖이 소란스러운데 무슨 일···아.”

밖의 소란이 저택 안까지 들렸는지, 한 여인이 저택 밖으로 나왔다가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폰슨비 경에게 듣기론 프리드리히쇼프엔 빌헬름 2세의 여동생이 셋 있다고 말했다.

두 명은 이미 만나 봤으니 남은 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스 왕세자비인 조피 왕세자비로군.’

그리스 왕국의 왕세자, 콘스탄티노스 1세의 아내.

훗날 남편이 그리스 국왕이 되면서 소피아 왕비라 불리게 되는 인물이다.

‘그나저나 설마 임산부였을 줄이야.’

말 그대로 조피 왕세자비는 임신 상태인지 배가 상당히 부풀어있었다.

저 상태면 한 5~6개월은 됐을까?

거동하기 힘든 상태일 텐데 아무래도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한 모양이다.

“···조피 왕세자비님.”

“···황후 마마.”

황후와 조피 왕세자비가 서로를 향해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까와는 달리 서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고 보니 조피 왕세자비와 빌헬름 2세 부부는 사이가 안 좋았지.’

원인은 다름 아닌 종교 문제 때문이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그리스는 트루 로마인 비잔틴의 후예답게 유서 깊은 정교회 국가다.

그렇기에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에 시집온 조피 왕세자비가 정교회로 개종하길 원했고, 조피 왕세자비도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루터파에서 정교회로 개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족 대부분은 조피의 이런 결정을 받아들였지만, 오빠 빌헬름 2세는 아니었다.

자신을 자칭 프로이센 연합 교회의 수장이라 여겼던 빌헬름 2세는 여동생의 개종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조피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에게 불복종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우리의 빌리는 여동생을 프로이센 왕족 명단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여동생의 개종을 막으려 들었다.

독실한 루터파 신자였던 아우구스테 황후도 조피 왕세자비를 만류했지만, 조피는 굳건했고 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이 일로 충격을 받은 아우구스테 황후가 요아힘을 조산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카이저 부부와 조피 왕세자비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그리고 결국 조피 왕세자비는 오빠를 거역하고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해버렸다.

빌헬름 2세는 당연히 분노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피가 다신 독일로 돌아오지 못하게 3년 동안 독일 입국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지.’

졸렬한 빌헬름 2세는 자신을 거역한 여동생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특히 오스만 제국과의 30일 전쟁의 패배로 그리스에 반왕정 분위기가 퍼졌을 때, 빌헬름 2세는 여동생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만 제국을 지지하고 그리스가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하도록 압박했다.

이 때문에 조피는 남편과 그리스를 떠나 독일에 피난했어야 할 정도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물론 그 꼴을 보다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들의 간청으로 조피가 독일에 왔을 때 화해를 하긴 하지만.’

조피 왕세자비에겐 아직도 그 일이 상처로 남은 모양이었다.

아직도 아우구스테 황후와 조피 왕세자비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 보이니 말이다.

“황후 마마. 날이 덥습니다. 이만 안으로 들어가시죠.”

“예.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그러도록 하죠. 가자. 애들아.”

어색한 분위기를 보다 못한 마르가레테 공주와 빅토리아 공주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우리 일행을 저택 안으로 들였다.

영국의 프린세스 로열이자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아꼈다는 장녀.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황태후를 만나볼 시간이었다.

삽화

위 사진은 프리드리히쇼프 슐로스의 현재 모습으로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더군요.

여담으로 하인리히 왕자는 방한 당시 국궁을 쏴보기도 하고, 군사 퍼레이드를 구경하기도 하는 등 꽤 즐겁게 놀다 갔습니다. 기후도 좋고 사람들도 착하다며 한국에 호의적인 평가를 남기기도 했고요.

다만 하인리히 왕자가 고종을 알현할 때 고종은 어째선지 공포와 불안 증세를 보였는데 이는 왕자의 방한 며칠 전, 웬 정신병자가 하늘이 자신 보고 왕이 되라 했다며 고종보고 왕위를 내놓으라고 난동을 일으키거나 경운궁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를 반란으로 오해하고 고종이 피신하는 등의 해프닝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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