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카이저를 구했다
“자네 관상이 좋구먼.”
“예?”
내 인생이 확실히 불운하긴 불운한가 보다.
교대 시간까지 앞으로 20분.
조금만 버티면 고대하고 고대하던 퇴근 시간인데 진상, 그것도 외국인+노인+사이비라는 사탄도 기겁할 것 같은 끔찍한 혼종을 만나버렸다.
“하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있긴 있지. 근데 그것보다도 젊은이. 생일이 어떻게 되나?”
애써 서비스용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려보려 했지만, 노인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적이었다.
외국인답지 않은 유창한 한국어는 둘째치더라도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
“어허, 안 잡아먹으니까 빨리 얘기해보게.”
노인이 뭐가 그리 조급한지 나를 닦달했다.
그냥 노인공경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경찰에 신고할까?
‘근데 그러면 내 퇴근이 늦어지잖아.’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것만큼은 못 참는다.
게다가 생일 정도야 말해줘도 큰 문제가 일어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말해줄 테니까 빨리 나가달란 마음을 듬뿍 담아 입을 열었다.
“하···. 1월 18일이요.”
“1월 18일···. 그래. 그렇구먼.”
내 생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날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건 아닌 듯하다.
“나는 보다시피 독일인이라네.”
“아,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전혀 몰랐다.
애초에 겉만 보면 그냥 서양인인데 독일인인지 영국인인지 프랑스인인지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1월 18일은 우리 독일인에게 있어 뜻깊은 기념비적인 날이지. 왜 그런지 알고 있나?”
독일의 기념비적인 날?
우리나라 기념일이라면 모를까 머나먼 외국의 기념일을 내가 어찌 알까.
다만 짚이는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혹시 독일 제국이 성립한 날 아닙니까?”
“오, 자네 잘 아는구먼?”
“제가 역사에 관심이 좀 많아서요.”
한땐 역사학자를 꿈꾼 적도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와 역사학도들의 춥고 배고픈 현실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애초에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니.
결국 꿈을 뒤로 한 채 적당히 명문대라 불릴만한 대학에 들어가 적당한 전공을 택했지만, 그 끝은 보다시피 이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하는 신세다.
가뜩이나 가혹한 문돌이 인생.
거기다 나날이 기록을 경신해가는 사상 최악의 불경기와 코로나란 희대의 판데믹 사태는 험난한 취업이란 인생의 길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하게 불행한 청년.
그것이 바로 나였다.
“그래.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에서의 영광스러운 날.”
물론 노인은 쓸쓸한 이런 내 마음을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 감상에 잠긴 얼굴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 독일인들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순간이었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방 소국들로 나뉘어 있던 독일의 첫 번째 통일이었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왕국은 적국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로 이센 국왕 빌헬름 1세를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로 추대하고 독일 제국을 선포했다.
그림으로도 그려져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유명한 티배깅.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같은 방, 같은 장소에서 독일에 이때 당했던 굴욕을 베르사유 조약으로 되갚아준다.
“제국은 위대했다네.”
노인은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상수시 궁전에서의 화려한 연회.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가는 카이저의 군대. 모두가 우리를 우러러보았고 또 부러워했지.”
“마스에서 메멜, 에치에서 벨트까지.”
“그래, 그래. 요즘은 잘 안 쓰이는 말들이네만.”
내가 말한 이름들은 현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 1절 가사에 나오는 지명들이다.
마스는 뫼즈강으로도 불리는 마스 강 유역을 뜻하며 룩셈부르크, 넓게 보면 알자스-로렌.
메멜은 프로이센의 최북동단이자 현 리투아니아의 도시인 클라이페다.
에치는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는 아디제 강 유역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쥐트티롤.
벨트는 소 벨트 해협을 말하는 것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과 근처 해역을 의미한다.
이 4개의 지역은 독일 제국과 독일인들이 지배했던 최대 강역이자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장소.
그리고 독일인들이 영원히 상실한 옛 영토들이다.
하지만 그 영토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건 결국 독일인들의 자업자득이었다.
세계대전(World War).
독일은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대전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으켰다.
그리고 두 번 모두 패배했고 독일은 영토를 대거 상실한 것도 모자라서 쌍검마냥 서독과 동독으로 쪼개졌다.
옛말처럼 칼로 흥한 자는 결국 칼로 망하는 법인 것이다.
‘근데 옛 영토 타령하는 건 현 독일에서 사실상 금기 아닌가?’
괜히 독일에서 자기네 국가 1절을 안 부르는 것이 아니다.
성차별적이란 이유로 2절도 안 부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니 노인에 대한 의심이 무럭무럭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영감님, Hoxy···?
“어르신. 설마 나치···.”
"떽!"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노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분노가 가득 담긴 호통 소리가 내 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내가 그런 쓰레기 무리랑 한패로 보이나? 난 그저 옛 카이저의 제국을 그리 워하는 노인네일 뿐이야.”
“아니아니아니. 어르신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때 태어나시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독일 제국이 망한 건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918년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앞의 노인이 늙었어도 100살이 넘진 않았을 거 아닌가.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이곳에 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한 것을.”
노인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묻자 아이가 지도가 아닌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어느 인터넷 밈이 생각나는 건 내 착각일까?
‘그나저나 독빠, 그것도 독일 제국 빠라니.’
독일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켰단 트라우마로 애국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데 지금 보니 다 개소리였던 모양이다.
물론 지구작가가 만들어낸 쓰레기 중 당당히 탑 오브 탑을 차지하는 나치 독일보다야 독일 제국이 나은 건 맞다.
그러나 독일 제국도 결국엔 헤레로족 대학살 같은 짓을 저지른 전형적인 제국주의 열강.
내가 보기엔 그놈이 그놈이다.
“하지만 강대했던 독일 제국도 결국엔 무너졌다네.”
내 반응이 떨떠름하다는 걸 안 건지 노인이 내 얼굴을 슬쩍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빌헬름 2세. 그가 제국을 파멸로 이끌었지.”
빌헬름 2세.
끔찍한 외교력과 판단력으로 독일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마지막 황제, 마지막 카이저.
그 이름을 입에 담은 노인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분노?
아니, 그보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자네 같은 친구가 카이저의 옆에 있었더라면 제국이 그 지경까진 안 갔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풉! 제가요? 어르신 농담도 잘하시네. 누가 보면 제가 비스마르크인 줄 알겠네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내가 보기엔 자네에겐 재능이 있어.”
“에이, 또 그놈의 관상 얘기입니까? 그거 다 미신이에요. 미신.”
독일인들의 유머 감각은 파멸적이란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인제 보니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독일 제국을 실질적으로 건설한 철혈재상과 일개 편돌이를 비교하다니 이보다 더한 농담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그 날고 기는 비스마르크도 결국엔 빌헬름 2세에게 잘렸다.
내가 정말 노인의 말처럼 유능한 사람이라도 지도자가 그 모양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이다.
“허허, 좋을 대로 생각하게. 결국 믿고 안 믿고는 자네 마음이니.”
툭
“이거나 계산해 주게나.”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털털한 웃음소리와 함께 음료수 캔 2개가 카운터 위에 올라왔다.
“환타?”
“추억의 맛이지.”
추억의 맛이라.
그러고 보니 환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금수조치로 재료 공급을 받을 수 없었던 코카콜라 독일 지부에서 콜라의 대용품으로 만들어낸 음료수다.
독일에선 나름대로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음료수라 할 수 있으니 노인이 그리 부를 만하다.
‘근데 냉장고에서 뭘 꺼내는 것을 못 본 것 같은데 언제 가져온 거지?’
노인과 수다 떠느라 잠깐 정신을 놨던 모양이다.
“하나는 자네가 마시게나. 노인의 수다를 들어준 감사일세.”
“아이고, 뭘 이런걸 다~”
“그럼 고생하게나.”
“옙! 안녕히 가십쇼!”
딸랑~
“생각보다 좋은 어르신이었네.”
처음엔 한국에 와서 못된 것만 배운 사기꾼 비스무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오해였던 모양이다.
말이 많은 것이 흠이긴 하지만 일개 편돌이에게 음료수를 사줄 만큼 착한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엔 더더욱 말이다.
딸깍!
취이이익───
캔을 따자 탄산 특유의 시원한 소리와 함께 기포가 캔 밖으로 살짝 흘러나왔다.
꿀꺽~
꿀꺽~
꿀꺽~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켜자 환타 특유의 오렌지의 향과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탄산음료를 꽤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목이 기분 좋게 따끔따끔하다.
“크───이거지.”
스윽──
캔을 내려놓으며 입가에 묻은 자국을 손으로 훔치는 순간이었다.
“윽?!”
철퍼덕!
뭐지?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의 고통.
마치 온몸을 마구잡이로 난타당하는 것만 같다.
‘설마 방금 마신 음료수 상했나?’
하지만 포스기는 정상적으로 찍혔다.
게다가 유통기한 조금 넘었다고 이렇게 사람을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만들지는 않는다.
“윽···. 끄흐윽······!”
어쩐지 목이 막혀와 숨을 제대로 못 쉬겠다.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있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초, 2초가 지날수록 오히려 눈앞이 점점 희미하게 흐려져만 갈 뿐.
‘이대로 나 죽는 거야? 고작 환타 때문에?’
쪽팔리는 것 이전에 어이가 없다.
어쩐지 지금까지 한 고생이 다 허무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누가 보면 제가 비스마르크인 줄 알겠네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내가 보기엔 자네에겐 재능이 있어.’
어째서인지 다시 한번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은 방금 만난 독일 노인과 나눈 대화.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이딴 식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싶진 않았으니까.
***
내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교회에 다녔을 때 목사님이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한수야.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나쁘게 살면 지옥에 간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목사님도 그리 착하게 살진 않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연 천국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그래. 드디어 깨어났구나.”
아무래도 천국은 아닌듯싶다.
“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건가?”
사실 놀랐다기보단 당황스럽고 얼떨떨하다.
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땐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기쁨에 마음속으로 눈물까지 흘렸다.
“흠, 그럴 만도 하지.”
지금 내 앞에서 애써 근엄한 척을 하는 저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쨌든 고맙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쑥스럽다는 듯 특유의 W자 콧수염의 끝을 매만지는 남자의 이름은 그 유명한 빌헬름 2세.
“네가 짐의 목숨을 구했구나.”
독일 제국의 마지막 카이저였다.
‘그런데 뭐?’
누가 누굴 구해요?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