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자책과 책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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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자책과 책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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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자책과 책망 (1)
2023.07.2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그워억!
갑작스러운 돌풍.
돌연하여 예상치 못한 포효.
우리도, 란족 수장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외침과 함께 거대한 실루엣이 황야의 모래바람을 몰고서 달려왔다. 너무나 서슴없이. 거침없이. 막을 수조차 없이. 휩쓸듯이.
콰아아앙!
굉음이 울렸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자이언트 러너였다. 일족의 가장 덩치 큰 자이언트 러너 우두머리.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바로 그분에게 란족 수장이 들이받혔다. 온몸이 망가진 장난감처럼 비틀린 채 날아갔다. 너무나 멀리. 세차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콰터텅! 투컥!
무려 수십 미터 이상을 날려간 란족 수장이 형편없이 나동그라졌다. 장대한 흙먼지가 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흙먼지 속에서 때아닌 붉은 섬광이 격렬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란족 수장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였다.
“……그, 그아아아악! 아아악? 아그아아악!”
수장, 저렇게 비명을 지를 줄도 아는 이였나.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비록 덤프트럭 같은 자이언트 러너에게 들이받힌 충격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란족 수장이 갑작스럽게 저렇듯 괴로운 비명을 대놓고 질러대다니.
나는 곧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기…… 플람족의 땅 아냐?”
다비가 더듬거리듯 가리킨 곳.
우리와 란족 수장이 날려간 지점 사이. 그곳에 익숙한 형태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기억이 났다. 플람족의 땅을 나타내는 경계석. 이 황야에 처음 왔던 날 봤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우리와 란족 수장이 날려간 지점 사이에 세워져 있다는 것은, 즉…….
“수장 말야. 플람족의 땅에 떨어진 거 같아.”
“정말…… 이네.”
세나와 요재도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나도 마찬가지 기분을 느끼며, 조금은 섬뜩한 심정으로 란족 수장의 비명이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사이, 란족 수장의 비명은 구슬프게 변해 있었다.
“……꺼허흑……커거흑…… 커그그……흐극……! 누가…… 좀……!”
여전히 자욱한 흙먼지.
그 속을 밝히는 불길.
부들거리며 몸부림치는 란족 수장의 실루엣이 엇비쳤다. 전신이 불길에 휘감겨 있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듯 걷는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연민도 생겨났다. 저렇게까지 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때였다.
……푸르륵!
엄청난 규모의 숨결이 훅, 우리 옆을 휩쓸었다. 조금은 놀라서 돌아보니, 자이언트 러너 우두머리 아저씨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 가까이 가지 마. 위험해. 저자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니까.
우두머리 아저씨가 입 모양으로 천천히 말했다.
- 란족의 몸은 나뭇가지로 만들어져 있어서 아주 잘 타지. 천천히, 오래 타들어갈 거야. 잘 만들어진 장작처럼.
“그거…… 너무 끔찍한 거 아닌가요?”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우두머리 아저씨가 입모양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 수많은 산목숨을 불길에 던져가며 제 목숨을 연명하던 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이기도 하지.
“…….”
듣고 보니 그렇긴 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른 의문도 생겨났다.
“그런데 저기, 오늘은 어쩌다가 저희를…….”
- 도와주게 된 것이냐고?
“네.”
- 도와주던 게 아니야. 우린 그저 우리의 길을 달려가고 있었을 뿐이지.
자이언트 러너 아저씨가 말했다.
- 그런데 때마침 란족의 수장이 좌우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서 우리가 달려가는 경로에 제멋대로 끼어든 것이야. 그러니 사고가 날 수밖에.
“그거, 우연 치고는 너무 절묘한데요?”
- 때로는 우연이 필연을 이기는 법이기도 하지. 때마침 그 시간에. 때마침 그 공간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고리가 얽히듯이 말이란다. 그러니 이 세상 곳곳에서 매일 ‘사고’라는 것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니?
“…….”
나는 대꾸할 말을 집어삼켰다.
과연 정말로 ‘우연’이었을까. 자이언트 러너의 무리가 때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것이. 그러다가 때마침 란족 수장을 들이받은 것이.
모르겠다.
우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다만 확실한 것은, 자이언트 러너의 무리는 결코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멈추고 있다. 오직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잠시 멈추었던 달음박질을 뒤늦게야 이어가며 작별의 인사를 건네주고 있다.
- 그럼, 앞으로도 길목을 건널 때는 좌우를 잘 살피렴, 위카족의 작은 친구들.
“…….”
이쯤이면 아무래도 ‘우연’이 아니라 ‘고의’인 거, 확실한 듯한데.
하지만 나도, 세나나 다른 친구들도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저 멀어져가는 자이언트 러너 무리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어주기만 했을 뿐. 때로는 다 알아도 잠자코 있는 편이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고, 작별인 법이니까. 어쩐지 지금이 그런 순간인 듯하니까.
“……갔네.”
“그러게.”
“갔어.”
“그러네.”
나도, 세나도, 다비와 요재도 모두 참았던 숨을 훅 몰아쉬었다. 조조바와 루이샤도 마찬가지인 걸까. 스르르 주저앉는 둘을 보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한 박자 늦게 찾아온 피로감을 느끼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뒤늦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비행선에, 억류자 여자아이.”
내 말에 모두가 흠칫.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행선으로 바삐 돌아갔다. 다행히 억류자 여자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쌔근쌔근. 방금까지의 그 소란 속에서도 의외로 너무 곤히 잠든 모습이라 괜히 부럽기까지 했다.
아니, 사실 소란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산 채로 플람족의 땅에 떨어진 란족 수장의 끔찍한 비명이 아직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는 까닭이었다.
“……으, 안 되겠어. 일단 자리를 옮기자.”
“찬성. 난 찬성! 나 저거 계속 듣다간 꿈에도 나올 듯.”
세나가 어깨를 움츠리며 의견을 밝히자, 다비가 냉큼 비행선 조종석으로 뛰어들었다.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청각을 지녔으니, 그만큼 저 비명을 계속 듣고 있기도 더 괴로웠겠지. 아니나다를까, 루이샤도 두 손으로 귀를 꽉 막고서 일찌감치 비행선 구석에 자리를 잡은 모습이었다.
“출발한다? 응?”
다비가 조종간을 바쁘게 움켜쥐었다.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어? 잠깐만. 나 아직 자리에 안 앉았…….”
“일단 출발할게, 천천히 앉아!”
“……!”
다비가 정말 많이 괴로웠나 보다.
비행선은 아까의 추락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난폭하게 이륙했다. 한참을 날고서야 황야에 내려앉았다. 그 과정에서 약간 망가진 곳들이 덜컹거리긴 했지만, 일단 추락은 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마침내 수장의 비명성이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하자, 비로소 다비의 표정이 풀렸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다비의 안도감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우리 모두는 말없이 비행선 근처의 황야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버렸다. 어느새 저무는 노을이 시리도록 볼을 두드려 왔다.
나는 눈길을 들었다.
어둑해지는 하늘. 떠오르는 별무리. 그 틈새로 보이는 익숙한 형상 하나.
“공중정원. 어떻게 되는 걸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딱히 누군가의 대답을 바라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역시나 대답은 한참 뒤에야 돌아왔다.
“이젠 억류자의 공중정원이 될 거 같긴 한데.”
요재가 한 손을 물끄러미 들어올려 공중정원을 가리키며, 혹은 어루만지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젠 수장도 없어졌고. 억류자들의 숫자도 만만치가 않아 보였으니까.”
“그럴까.”
“응. 아마도.”
“그러면 좋겠다.”
“응. 나도.”
요재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다가 불쑥,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건네어 왔다.
“그런데 나 너한테 궁금한 거 있어. 목걸이…… 뭐였어, 그건?”
“…….”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손길은 저도 모르게 앞섶 속 목걸이를 쥐었다. 요재의 물음이 이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오늘 점심은 뭘 먹으면 좋을까를 의논하듯. 너무나 평범한 말투로. 하지만 그래서 어쩐지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워지는, 그런 질문을.
“사실은 말야. 나, 아까 수장이 말하는 거, 들었거든.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자기한테 목걸이를 빼앗기고 죽을 운명이라느니, 너한테 목걸이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냐느니, 막 다그치던 거.”
“그건…….”
“또 사실은 나, 전부터 네가 그 목걸이를 차고 있는 걸 봤어.”
“……!”
언제?
어디서?
나는 놀란 눈으로 요재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놀란 모습을 들킬 것 같아서. 그저 커다래진 눈으로 하늘의 희미한 별만 쏘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요재의 조곤조곤한 말이 이어졌다.
“그냥, 여러 번 봤어. 왜 못 보겠어. 우리 계속 같이 있었잖아. 같이 먹고, 자고, 온종일 그렇게.”
“…….”
“옷깃 사이로 보이더라구. 그래도 별로 상관하지는 않았어. 그냥 평범한, 조금 아끼는, 어쩌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인 건가 싶어서.”
“사실은 나도 봤어.”
가만히 있던 세나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세나의 목소리는 요재와 다르게 아주 약간은 날이 서 있었다. 아니, 그건 나만의 자격지심이 불러온 착각일까. 모르겠다. 어째서 내가 하필이면 반사적으로 세나를 돌아본 건지. 눈이 마주쳐 버린 건지. 세나의 밝은 갈색 눈동자를 차마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건지.
“아마 네 목걸이, 우리 중에선 내가 제일 먼저 봤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난 눈이 밝으니까. 안 보려고 해도 저절로 보일 때도 있었어. 그 목걸이가…… 이따금씩 스스로 붉은 빛을 머금는 모습도. 가끔은.”
“…….”
“조안?”
“응.”
“말해주지 않을래?”
“…….”
세나는 다른 복잡한 부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명료하게 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강압적인 말보다도 더욱 뿌리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모르겠다. 말이 엉켰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나, 다비, 요재, 루이샤, 조조바까지. 어느새 날 향하고 있는 친구들의 차분한 눈길을 마주하며, 이제는 모든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부터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낡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목걸이를 발견한 날 아침부터의 일을 모두 꺼낸 것도 같았다. 혹은 레퓨지아의 장벽 어름에서 목걸이가 붉은 빛을 토해내고, 우리 모두가 레퓨지아 밖으로 날려온 날의 일을 말한 것도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그 후로 내가 목걸이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시간들을 말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모두가 언노운의 황야를 헤매게 된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 때문에, 그걸 밝혔다간 더 큰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계속 비밀을 지녀왔다고 말했던 것도 같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내내 밤하늘의 별만 바라보았다. 달리 눈길을 둘 곳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야, 조안.”
다비의 어쩐지 이글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일침의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러니까, 그 목걸이가 우리 전부를 레퓨지아 장벽 밖으로 날려보낸 거라고?”
“어, 응.”
“그런데 그걸 왜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던 건데?”
“그건…….”
“일찍 말했으면 좋았잖아.”
“미안해.”
“아니, 미안할 게 아니고.”
“응?”
“장벽 너머로 날려보내준 거라며, 그 목걸이가. 공간도약, 막 그런 거 아냐? 그럼 그 목걸이를 일찍부터 제대로 써먹었으면 벌써 푸른 반딧불이의 섬에 도착해서 집도 한 채 지었을지도 모르는 거였겠네?”
“……으, 응?”
“어오, 진짜!”
“…….”
뭐가 그리도 아쉬운지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다비의 모습에 나는 더욱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자, 사소한 장난에 불과했다.
뜻밖에도 평소엔 가장 둥글둥글했던 요재가,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눈길을 내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