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죽을 바엔 차라리 (2) (35/38)


34화. 죽을 바엔 차라리 (2)
2023.07.1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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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예 목을 잘라주지. 그러면 목걸이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테니.”

수장이 비릿하게 읊조렸다.

칼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촉수. 그 손이 내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쐐애액!

“……!”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목이 잘리는 건 싫었다. 죽는 게 싫어서? 두려워서? 그건 아니었다. 죽는 것보다는, 수장의 손에 목걸이가 넘어가는 게 더 싫었다.

‘그건 안 돼.’

자신의 욕심을 위해 온갖 끔찍한 짓을 다 저지른 수장이었다. 수많은 무고한 이들을 고치에 가두고, 플람족의 불길에 바치고, 오늘은 내 목을 자르려 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목걸이를 얻으면?

그걸로 무슨 짓을 할까.

아니, 그 전에 내 친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건…… 절대로 안 돼.’

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친구들이었다. 내가 낡은 도서관에서 목걸이를 찾아내지만 않았더라면. 그걸 목에 걸지만 않았더라면. 그날, 목걸이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지만 않았어도.

모두들 레퓨지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나는 여전히 전교회장으로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는 오늘을 보내고 있었겠지. 다비도 마찬가지다. 조금 모나고 별난 성격이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모두를 감탄하게 했을 거다. 요재도 그렇다. 둥글둥글한 성격 덕분에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꺄르르 웃는 하루를 맞이했을 거야.

그런데 나 때문에. 전부 나 때문에.

그곳을 떠나와 이런 날을 맞이해 버렸다. 그런데 친구들은 이게 나 때문이라는 사실도 아직 모르고 있어.

그게 더 미안했다.

이제라도 밝히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것뿐.

나는 고개를 숙이고서 수장의 가슴팍을 향해 몸을 날렸다. 두 다리에 온 힘을 쏟았다. 좌석을 박찼다. 제발. 내 뜻대로 되길 바라며. 모든 기운을 끌어내며.

“이야아아아악!”
“……엇?”

수장의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 내 행동이 뜻밖이었던 걸까. 수장의 상체가 뒤로 기우뚱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급하게 한쪽 발을 뒤로 보내는 그의 몸짓도. 제대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미끄러지는 그의 걸음도. 한층 뒤로 기울어져 버리는 그의 몸도. 그런 그의 몸을 더 밀어내려고 애쓰는 내 몸짓도.

모두, 똑똑하게 느껴졌다.

“무슨 짓을!”

수장이 당황하며 외쳤다.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 방법밖에 없잖아.”
“……!”
“어차피 당신한테 잡혀서 죽는 거, 나만 혼자 목이 잘려서 죽으면 억울하잖아.”
“뭐……?”
“그러니까 같이 떨어져서 죽자고. 그러면 당신이 내 친구들한테 아무 짓도 못 할 거니까.”
“그게, 무슨! 어아악?”

타앗…….

체중이 사라졌다.
수장이 버둥거렸다.

마침내 그의 몸을 받아든 까마득한 허공. 그와 한 덩이가 된 나를, 비행선 밖의 파란 창공이 맞이했다. 아래에서부터 불어온 돌풍이 머리칼을 쉴 틈 없이 헝클어뜨렸다. 수장이 온몸으로 버둥거리며 외쳐댔다.

“이런 미친! 무슨 이런!”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솔직히 서러웠다. 이런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내가 죽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제 수장이 친구들을 건드릴 수 없겠지. 비행선에 남은 친구들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거고.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은 기분으로 시선을 내렸다. 저 아래쪽에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 지상을 바라보았다. 몇 초나 걸릴까. 다 떨어지기까지. 그 시간이 길면 좋겠다. 아니, 짧으면 좋겠다. 무서워. 차라리 얼른 이 순간이 끝났으면.

그때였다.

“그렇게! 네 생각대로 될 줄 알고!”

터억!

“……!”
수장의 손아귀가 내 목걸이줄을 움켜쥐었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길이 정면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시에 그의 등에서 뭔가가 그물처럼 뿌려지듯 튀어나갔다.

파라라락!

그가 온몸에 휘감았던 수천 줄기의 새싹을 등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넓게 퍼뜨렸다. 마치, 거대한 우산을 허공에 펼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덜컥!

“……읏!”

추락 속도가 늦추어졌다. 온몸을 해방시키는 듯하던 감각이 사라졌다. 전신의 체중이 순간 아래로 쏠렸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수장은 내 목걸이를 집요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이대로! 내가 끝날 줄 알았나!”
“……!”
“내놔!”

그가 목걸이줄을 당겼다. 나는 버둥거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목걸이에 목이 매달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으니까.

다행히 목걸이의 힘 덕분인지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목이 졸려 죽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목에서 피리 소리가 나는 것만 같은 착각. 아니, 절박한 현실. 실종된 숨결 사이로 눈앞이 흐려져 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죽어도, 당신도 같이 끝장이 나야 하는데. 그래야 친구들이 무사할 텐데.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나만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건데.

“……쿨럭! 컥! 으큽, 윽!”

조금이라도 숨을 들이마시려 발버둥을 쳤다. 목을 죄는 목걸이줄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수장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끝인가.’

이제는 정말로 끝인가보다. 나도 모르게 쓰라린 웃음이 나왔다. 숨이 막히는 감각마저 조금씩 멀어졌다. 내 몸뚱이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죽음의 감각인 걸까.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제는.

나도 더는.

“포기하지 마! 눈 떠!”
“……!”

아득한 외침.

손길을 건네어 오듯 달려온 외침.

나도 모르게 눈이 뜨였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 조안! 놔줘어어억!”

다비의 악다구니 가득한 외침이 들려온 순간이었다. 외침보다 더욱 세찬 돌풍이 옆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보고야 말았다.

비행선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아니 정정. 수장을 향해. 단호하기 짝이 없는 직진본능을 뽐내듯. 앙다문 표정으로 조종간을 밀고 있는 다비의 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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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세나와 요재, 조조바, 루이샤의 비장한 얼굴처럼.

“너헛?”

수장이 기겁했다.

그의 기겁하는 소리가 충돌음에 묻히기까지 소요된 시간, 0.5초.

콰아앙!

비행선이 수장의 옆구리를 정통으로 들이받았다. 그 서슬에 내 세상도 확 뒤집혔다. 수장이 놓친 내 온몸이 위쪽으로 튕기며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비행선에 직접 치이지는 않았지만, 나라고 완전히 무사할 수는 없었다. 용케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비행선은?’

간신히 의식을 잃지 않은 나는 황급히 시선을 뿌렸다. 친구들의 비행선 걱정부터 들었다. 혹시나 충돌하면서 망가진 건 아닐까. 추락하면 친구들이 위험해질 텐데.

다행히 아니었다.

“조안! 여기!”

요재의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비행선이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비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잘못 맞은 야구공처럼 날아가는 수장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는 달리 기절한 걸까. 그의 등에서 뻗어나와 낙하산 역할을 했던 새싹 줄기들이 제법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도 수장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새싹 줄기를 수습하지도, 팔다리를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추락.

“…….”

수장이 떨어진 지점에서 피어난 흙먼지를 보는 사이, 친구들의 비행선이 위태로운 선회를 마치고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라고 아직 안전한 게 아니다. 아니, 이제 곧 땅에 추락할 처지다. 그러면 어김없이 죽겠지. 그러니까, 좀.

“여기!”

이제는 아까와 달리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았다. 당연했다. 수장한테 꼼짝없이 죽을 상황이었으니까 기꺼이 그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거지, 나라고 죽는 걸 즐길 리가 없잖아.

“조아안! 손!”

지상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 없었다. 100미터? 아니, 50미터?

나는 루이샤의 목소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루이샤의 꼬리가 마주 뻗어왔다. 붙잡았다. 그 순간, 다비가 조종하는 비행선이 아래로 기수를 쭉 내렸다. 최대한 나를 부드럽게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쐐애애애액!

수장과의 충돌 때문에 찌그러진 비행선 동체가 바람 새는 듯한 비명을 토해냈다. 나는 비행선에게 제발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빌었다.

그런 기도가 통한 걸까.

“지금!”

다비가 비행선 기수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루이샤가 꼬리를 당겼다. 떨어지는 나와 루이샤의 몸이 한데 엉겼다. 요재가 손을 뻗어 우리 둘을 받쳐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덩어리로.

쿠당탕!

“……으읍!”

우리는 한데 엉킨 채 비행선 뒷좌석에 찌그러지듯 넘어졌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나도, 친구들도 왜 그런 걸까.

“후, 후우, 다들? 살아는 있어?”
“그럭…… 저럭?”

루이샤와 조조바가 나누는 이야기를 귓가로 흘리며 쑤시는 몸을 일으키고 보니, 어느새 비행선이 지상에 착륙해 있었다.

나는 문득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한 푸른 하늘, 구름 사이로 떠 있는 공중정원이 언뜻 보였다. 새삼 실감이 났다. 우리, 저기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거구나.

그럼…….

“수장은?”

세나의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비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아까 저기서 흙먼지가 일어났어.”
“가보자.”

요재가 나를 부축해 주었다.

수장이 추락한 지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서서히 걷히고 있는 흙먼지 사이를 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곧, 수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그륵! 그르륵! 너희, 들……!”

놀랍게도 그는 살아 있었다.

추락 직전에 정신을 차렸던 걸까. 그 틈에 새싹 줄기들을 방패처럼 만들어 몸을 감쌌던 듯, 사방에 끊어지고 잘린 새싹 줄기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물론 그도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다. 치명상만 간신히 면했을 뿐, 두 팔의 줄기는 부러져서 덜렁거렸고, 한쪽 다리도 뒤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은 듯했다.

“도망…… 못 간다…… 절대로…… 내 허락…… 없이느으은!”

온통 망가진 수장이 우리를 보자마자 발악하듯 외쳤다. 남은 새싹 줄기를 모조리 끌어모아 휘두르며 달려왔다.

순간 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집착하게 만든 걸까. 저 모습도 푸른 반딧불이의 가루가 불러온 욕망의 결과인 걸까. 그렇다면 이건 너무 슬픈 일이다. 저 수장에게나, 모두에게나.

‘하지만…….’

서글픔과는 별개로, 우리 사이엔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절감했고, 이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요재가 나섰다. 온전한 상태의 수장이라면 감히 시도도 해보지 못하겠지만, 지금처럼 망가진 수장이라면 요재의 고속 충돌에 충분히 기절할 수 있을 테니까.

“얼른 끝내고 올게.”

요재가 걸음을 떼었다.

단호한 가속을 준비했다.

그사이에도 수장은 발악하듯 흙먼지를 피워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노려보며. 맹목적으로. 악다구니를 쏟아내다가.

그런데 요재의 가속이 채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그워억!

돌연 엄청난 포효와 함께, 옆에서 돌진해 온 자이언트 러너 우두머리 아저씨가 거대한 몸뚱이로 란족 수장을 들이받고 말았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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