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죽을 바엔 차라리 (1) (34/38)


33화. 죽을 바엔 차라리 (1)
2023.07.0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내가! 너희를 놓칠 줄 알고!”

콰아앙!

서슴없이 달려오는 거친 진동. 뒷덜미를 움켜잡는 듯한 사나운 외침. 마침 비행선이 공중정원을 벗어나 급강하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아앗!”

조종간을 잡고 있던 다비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세나는 조조바의 손을 잡아주었고, 루이샤와 요재는 축 늘어진 억류자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보았다. 길게 뻗어온 수백 가닥의 새싹 촉수 다발이 비행선 뒤쪽 날개를 움켜잡은 모습을. 그 뒤편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수장의 얼굴을.

“……!”

오싹, 목덜미와 팔뚝 가득 소름이 돋아났다.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틈은 없었다. 수장이 비행선에 올라타면 끝장이 날 테니까.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다비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놓쳤던 조종간을 움켜잡고는 앞으로 밀었다.

큐우우우우웅!

잠깐 주춤했던 비행선이 굉음을 토해내며 몸부림을 쳤다. 뒤를 붙잡은 수장의 촉수로부터 벗어나려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수장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도망을? 감히!”

쿠쿵!

수장과 이쪽의 비행선을 이어주던 새싹 줄기가 확 줄어들었다. 수장의 몸이 딸려오며 비행선 뒤편에 올라탔다. 내내 그에게 붙잡혀 움직이지를 못하던 비행선이 급강하를 개시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

너무나 갑작스러운 가속.

추락이 선사하는 무중력.

마침내 공중정원을 벗어난 비행선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내리꽂혔다. 구름을 뚫었다. 두 발과 엉덩이가 좌석에서 떠올랐다. 황급히 조종간과 다비를 붙잡았다. 정신을 차린 다비도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수장은? 역시나 비행선 뒤편에 매달려 있었다. 한 손으로는 비행선을 붙들고서. 나머지 한 손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저자가 뭘 할 건지가 뻔히 보였다. 치켜든 손으로 날 후려치려는 거겠지. 날 죽이려고.

당연히 그건 싫다.

“꽉 잡아 다들!”

나는 외치며 조종간을 왼쪽으로 확 틀었다. 수직으로 추락에 가까운 급강하를 선보이던 비행선의 기수가 왼쪽으로 와락 틀어졌다.

“……어억!”

수장의 당황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그가 휘두른 거대한 주먹이 저만치 엉뚱한 곳을 휘저으며 빗나갔다.

나는 만족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조종간을 휙 돌렸다.

큐이아아아악!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쏠리는 체중. 곡예에 가까운 난폭한 비행이 부담을 주는 걸까. 비행선 날개가 부러질 듯이 휘청거리는 게 눈으로 다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장은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집요하게 비행선 뒷부분을 붙잡고서 기어왔다.

“허튼 짓거리를!”

수장의 포효와 함께 돌연, 파라라락 하는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그의 몸을 감싼 수천 줄기의 새싹이 얼굴로 자리를 옮겨가며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건, 설마?

“카아악!”

두 손으로 비행선을 붙잡은 채, 수장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의 얼굴로 모여들었던 새싹들이 굵은 나무줄기처럼 뭉쳐져 이쪽을 향해 쇄도해 왔다.

“……!”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아래로 더 밀어 버렸다. 비행선의 앞머리가 더욱 아래쪽으로 내리꽂혔다. 아니, 아예 수직을 넘어가 버렸다. 비행선 윗부분이 지상을 바라볼 정도로.

“게으억!”

수장이 입으로 쏘아낸 새싹 줄기가 등을 거의 스치듯 빗나가며 지나갔다. 하지만 우리라고 마냥 무사하지는 못했다.

“아악!”

세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손잡이를 놓친 걸까. 비행선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걸까. 뒤집힌 비행선 아래로 뚝 떨어지는 세나의 모습이 보였다.

“세나야!”

조조바가 기겁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늦었다. 마주 뻗은 세나의 손이 허무하게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순간 너무나 느릿하게 보였다. 안 돼. 잡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

그때였다.

추락하며 멀어지는 세나의 아래쪽으로 뭔가가 보였다. 연녹색 실루엣. 아까 수장이 입으로 쏘아냈다가 헛되이 빗나갔던 수백 줄기의 새싹 촉수였다. 그 촉수가 여전히 수장의 입에 매달린 채, 기다란 혓바닥처럼 허공에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조종간을 대각선으로 당겼다.

큐아악!

비행선이 순식간에 출렁거렸다. 뒤에 매달린 수장의 고개도 확 꺾였다. 기다란 혓바닥처럼 덜렁거리던 새싹 촉수도 함께 움직여졌다. 촉수가 추락하던 세나와 공중에서 교차했다.

“잡아!”

세나도 내 외침을 들은 걸까. 손을 뻗었다. 촉수 끄트머리를 움켜쥐었다. 당황한 수장이 촉수를 털어내려 했다. 하지만 세나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흡!”

세나의 두 눈이 빛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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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뛰어난 시각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자신이 움켜쥔 수장의 촉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감각적으로 미리 파악하는 걸까.

“그으읏! 크윽!”

수장이 연거푸 뒤흔드는 새싹 촉수 끝에 매달리고서도 세나는 끝까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세차게 흔들리는 새싹의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해서 차근차근 손을 뻗었다. 밧줄을 타고 오르듯이. 사다리를 올라가듯이. 수장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런다고 멀쩡할 줄 알고!”

수장이 남은 새싹을 한 손에 모았다. 날카로운 창을 만들었다.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진 세나를 겨누었다. 하지만 나라고, 우리라고 그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큐우우웅!

나는 다시금 조종간을 옆으로 밀었다. 수장의 균형이 흔들리며 창이 빗나갔다. 그 순간, 루이샤가 비행선 좌석을 박찼다. 도약과 동시에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수장의 등에 내려서고, 뒤통수를 밟고서 도약했다.

“잡아!”

세나를 향해 뛰어오른 루이샤가 허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손을 뻗었다. 세나의 손을 맞잡았다. 끌어당겼다. 둘이 한 덩이가 되며 서로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내 꼬리!”

루이샤가 끌어안은 채, 꼬리만 고양이의 것으로 바꾸어 이쪽을 향해 뻗었다. 요재가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루이샤의 꼬리를 잡았다. 다비가 요재의 다른 손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움켜잡았다.

“당겨!”

허공에 만들어진 인간 사슬. 모두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서로를 당겼다. 나도 조종간을 가볍게 위로 들어올렸다. 추락 속도가 아주 잠깐 늦추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세나와 루이샤, 요재와 다비가 한 덩이가 되어 비행선 안쪽으로 와르르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하지만 방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아아악!”

졸지에 세나마저 놓친 수장이 괴성을 내질렀다. 어느새 그의 괴성이 너무나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섬뜩한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세나와 모두가 안전하게 비행선으로 떨어져 들어오게 하려고 추락 속도를 늦추었던 내 행동을. 덕분에 수장도 균형을 회복할 수 있었고, 순식간에 바로 뒤쪽까지 수월하게 기어올 수 있었다는 것을.

“으읏!”

나는 황급히 조종간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장이 한 발 빨랐다.

터억!

삽시간에 뻗어온 수장의 손아귀가 내 손등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손이 그대로 짜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조종간을 움직이는 건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아아악!”
“쉬잇.”

어느새 바짝 다가온 수장이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을 흘려왔다.

“보기보다 조종이 거친데. 이대로 추락하고 싶은 건가? 다 같이 죽자고?”
“으, 으읏!”
“버둥거려봐야 소용없어. 이대로 손을 으스러뜨려줄까?”
“놔……! 놔아!”
“쯧쯧. 얌전히. 응? 어른이 시키면 잠자코 시키는 대로 굴어야지.”

끄그극……!

수장의 손아귀가 엄청난 힘으로 조종간을 지배했다. 수직에 가까운 급강하를 반복하던 비행선의 앞머리가 서서히 위로 들렸다. 안정적으로. 너무나 평화롭게. 역설적이게도.

“조안!”

다비가 외쳤다. 요재가 당장 수장에게 달려들 것처럼 주먹을 말아쥐었다. 세나가 가까스로 요재를 막았고, 루이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조조바가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다 끝났다.

내가, 인질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고분고분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응?”
“…….”

이번에는 반대편 귓가에 속삭이는 란족 수장. 뱀 혓바닥이 날름거리는 듯한 오싹함이 몰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서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겠다. 그럴 수는 없다. 잠깐 편하자고 아무 대책 없이 굴다간, 모두가 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나는 수장의 손길에서 벗어날 궁리를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과는 반대로, 수장의 다른 쪽 손이 내 목덜미를 향해 뻗어왔다.

“후우. 그러니까 말이다. 공중정원에 올라탄 순간부터 네 운명은 모두 정해져 있었던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목걸이를 빼앗기고 죽는 운명. 이게 너희에게 예정된 미래였던 것이지.”

스륵.

“……!”

수장의 섬뜩한 손길이 목을 스쳤다. 무어라 저지할 틈도 없이 목걸이 줄을 붙잡았다. 당겼다. 짤랑, 붉은 목걸이가 그의 손에 이끌려 모두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이걸 순순히 바쳤으면 서로 편할 수 있었잖아. 너희도 고생 없이 편하게 죽을 수 있었던 거잖나. 안 그래?”
“……!”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장은 목걸이의 존재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동안 집요하게 날 죽이려 들었던 걸까. 그동안의 의문이 풀리는 느낌과 동시에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이쪽을 향한 친구들의 시선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휘둥그레져 있는 친구들의 눈매. 나는 그만 고개를 숙여 버렸다. 지금까지 힘들게 숨겨왔는데. 이제는 목걸이마저 들켜 버렸다. 그럼 이제 다들 깨닫겠지. 내가 목걸이를 숨겨서,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거라고.

‘차라리…….’

처음부터 목걸이에 대한 걸 솔직하게 밝혔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친구들과 함께 수장의 속내를 약간은 더 일찍 알아챌 수도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저 내가 바보 같아서. 친구들이 날 거짓말쟁이로 보게 될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생각이 나지가 않아서. 그게 더 미안해서. 나는. 그저.

‘미안해.’

속으로만 되뇌었다.

목걸이를 잡아당기는 수장의 손길이 느껴졌다. 거친 손길에 목걸이 줄이 금방 벗겨지…… 지는 않았다.

“어?”

수장의 어리둥절한 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벗겨져?”

덜걱! 덜컥!

수장이 목걸이를 연거푸 끌어당겼다. 그런데 목걸이 줄이 벗겨지지 않았다. 마치 목걸이가 스스로 의지를 지닌 것처럼, 내 목에 달라붙어 버렸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레퓨지아의 낡은 도서관.

그곳에서 목걸이를 얻었던 때에도 이랬다. 도저히 벗겨지지 않았다. 막대를 넣고 잡아당겨도 결과는 똑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건 또 뭐야!”

수장이 버럭 짜증을 내며 더욱 거칠게 목걸이를 잡아당겼다. 그럼에도 목걸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신기한 점은, 수장이 저토록 거칠게 당겨대고 있는데도 내 목에는 전혀 충격이 오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카족 마녀, 목걸이에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이냐?”

그가 거칠어진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살의가 잔뜩 밴 눈동자. 그의 다른 손이 어느새 조종간을 놓고서 치켜들려 있었다. 마치 칼처럼 날카롭게 뭉쳐진 새싹 촉수를 두른 채로. 내 목을 겨누며.

“그럼 아예 목을 잘라주지. 그러면 목걸이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테니.”

수장이 비릿하게 읊조렸다.

그의 날카로운 손이 내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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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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