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추격과 반격 (2) (31/38)


30화. 추격과 반격 (2)
2023.06.1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왜 아까부터 자꾸 캣닙 냄새를 풍겨대는 건데!”

콰잡!

“끄엇?”

수장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보였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고양이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손목을 저렇게 콱 깨물리면 눈이 확 뜨이는 법이겠지. 그리고 아마도 그건 인간이 아닌 란족 또한 예외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그긋? 그앗!”

기겁한 수장이 팔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루이샤는 오히려 두 손의 발톱을 한껏 끄집어냈다. 그리고 수장의 팔뚝을 콱.

“아아악!”

……보는 내가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수장의 손목과 팔뚝은 순식간에 루이샤의 송곳니와 발톱에 꿰뚫리고 찍혀 엉망진창이 되었다. 투명한 수액이 피처럼 흘러나오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수장님!”
“이런! 저걸 어서 끌어내!”

당황한 란족 병사들이 수장을 돕고자 움직였다. 그러나 루이샤는 고양이였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냄새를 참다참다 폭발, 아니, 폭주해 버린 고양이였다.

“냐항!”

루이샤가 액체처럼 유연하게 스르륵 움직였다. 병사들이 달려들기도 전에 란족 수장의 팔뚝을 타고 어깨로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덜미를 콱!

 
“거흑! 빌어먹을 것이!”

목덜미를 물린 수장이 악을 쓰며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 손아귀에 루이샤가 꼬리를 잡혔다. 그걸 보는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수장이 저대로 루이샤의 꼬리를 잡고서 바닥에 패대기를 친다면? 루이샤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도와야 한다. 돕고 싶다. 그런데…….
그때였다.

츠스스!

“……!”

두 다리를 집요하게 묶고 있던 새싹 줄기가 느슨해졌다. 이유? 모르겠다. 다만 짐작이 가는 구석은 있었다.

‘이 새싹, 수장의 조종을 받는 거였어!’

그런데 졸지에 루이샤의 공격을 받게 되자, 수장의 새싹에 대한 지배력이 잠시 약해진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절감하는 순간 땅을 박찼다. 요재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자이언트 러너 아저씨들처럼 힘차게 돌진하는 것도 할 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이이이아악!”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뛰어갔다. 수장의 허리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마침 루이샤를 진짜로 패대기치려던 수장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윽?”

수장의 다리가 흔들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달려가던 힘을 그대로 살렸다. 어깨를 더 낮추었다. 수장의 허리를 어깨로 밀어붙이며 두 팔을 뻗었다. 수장의 무릎 뒤를 감싸 쥐고 막무가내로 끌어당겼다.

“어어엇!”

마침내 수장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가 우당탕 크게 나자빠졌다. 나는 그와 얽히기 전에 얼른 일어났다. 때마침 루이샤가 내 어깨로 올라탔다.

“잘했어! 도망치자!”

당연하다.

방금 짜낸 용기는 여기까지. 수장과 맨손으로 더는 맞설 수는 없으니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사이, 수장이 넘어지며 새싹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히 잃은 건지, 다리가 자유로워진 친구들이 보였다.

“뛰어!”

누가 외쳤는지 모르겠다.

세나? 다비?

따질 겨를도 없었다.

우리는 비행장 밖으로 달렸다. 잠깐 구조용 비행선을 탈취할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쪽을 막고 있는 병사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조조바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외쳐 물었다. 다비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도 몰라! 세나가 알겠지!”
“그건 나도…… 요재야?”
“아니, 나한테 왜들 그러는 건데!”

세나의 저토록 당황하는 얼굴은 솔직히 처음 봤다. 아마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막막한 거겠지. 나도 그렇다. 일단 수장을 들이받기는 했는데, 무작정 뛰고는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도망쳐 봐야 공중정원 안이니까. 이곳 어디에서도 저 커다란 생명수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잠깐. 생명수?

나는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려던 생각을 붙잡았다.

“저기!”

반사적으로 외쳤다.

“저기로 가자!”

내가 가리킨 곳은 공중정원의 중앙에 우뚝 선 거대한 나무, 생명수였다. 그걸 가리키며 외친 내 목소리에 모두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나무로? 무슨 뜻이야?”
“고치!”

나는 외쳤다.

“아까 피코가 그랬잖아! 란족은 사람들을 호의로 속여서 손님으로 초청한다고! 방심한 손님은 숙소에서 사로잡혀 생명수의 고치에 갇힌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저 고치들 속에 갇혀 있을 사람들을 꺼내자!”
“뭐?”
“가능해. 아니, 그나마 지금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 이거 같아! 세나야?”
“응?”
“혹시 여기서도 볼 수 있어?”
“어딜? 설마 고치 안쪽?”
“응! 안쪽의 사람들 상태를 좀 봐줘.”

나는 달리느라 가빠진 숨을 내쉬며 세나를 바라보았다. 나란히 뛰던 세나의 눈동자에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해볼게.”

그때부터였다.

우리 모두는 세나를 보호하듯 둘러싸며 뛰었다. 뜀박질을 조금 늦춘 세나가 생명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이내 세나의 입이 열렸다.

“……될 거 같아.”
“정말?”
“응. 방금 고치 안쪽이 살짝 엿보였어. 덕분에…… 눈이 마주쳤고.”
“눈이? 혹시?”
“맞아. 희생자가 갇혀 있었어. 의식이 또렷한 채로.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고, 또…….”
“또?”
“다들 화가 잔뜩 나 있어. 속았다고. 이럴 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갚아주겠다고. 그런 사람들, 동물들, 그 외에도 처음 보는 종족들이 너무 많았어. 거의 모든 고치가 다 그랬으니까.”
“…….”

나도, 우리 모두도 대답할 말을 잃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다. 아니, 거의 모든 고치에 희생자들이 의식이 또렷한 채로, 분노한 채로 감금되어 있는 거라니.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그만큼 역설적으로 고무적이었다.

“좋아. 잘만 하면 저들이 지원군이 될 수 있을 거야. 서두르자. 내가 먼저 길을 살필게.”

요재가 특유의 속도를 앞세워 먼저 달려 나갔다. 우리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앞길의 모든 골목을 다 뛰고, 미리 정찰했다. 덕분에 우리는 란족 병사들이 실시간으로 짜고 있는 포위망이 미처 만들어지지 않은 허술한 틈으로 길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중정원의 중앙 광장은 이미 빽빽했다.

“후우. 아주 난리가 났네.”

다비가 어깨로 숨을 몰아쉬며 난폭하게 웃었다. 우리 모두는 비슷한 심정으로 광장을 바라보았다. 병사들. 란족 병사들이 완전히 집결해 있었다. 머릿수가 얼마나 될까. 얼핏 보아도 몇백 단위는 넘을 것 같았다.

그들의 선두에선 수장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향긋한 캣닙.”
“……!”

수장을 보자마자 내 어깨에 올라타 있던 루이샤가 입맛을 다셨다. 그 눈길에 수장이 움찔한 것도 잠시, 그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치는 것도 여기가 끝이다. 너희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공중정원을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저들처럼 말이다.”

수장이 가리킨 것은 생명수에 수없이 매달린 고치들이었다. 그가 손짓하는 것과 동시에 란족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지나쳐왔던 길목 쪽에서도 수십 명이 뛰어오는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렸다.

완벽한 포위였다.

더할 나위 없는 궁지였다.
하지만 우리 중에 두려움에 떠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쯤은 각오했으니까. 그리고 알고 있으니까.

“가자!”

나는 외치며 병사들을 향해 마주 달려나갔다. 세나도, 다비도, 조조바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렇듯 우리가 역으로 달려나올 줄은 몰랐던 걸까.

“어?”

선두의 병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향해 풀잎으로 만들어진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철썩!

“……읏!”

채찍에 얻어맞은 팔뚝과 어깨가 화끈해졌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앞으로 더욱 내달렸다. 세나와 다비가 뻗어오는 손을 맞잡았다. 나란히, 선두의 병사들을 몸통으로 들이받아 와르르 무너뜨렸다.

“와아악?”
“너억!”

란족 병사들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역시나. 아까 란족 비행체를 추락시켰던 때가 떠올랐다. 란족 수장의 아들. 우리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던 그는 생각보다 힘이 약했다. 아까 란족 수장을 넘어뜨릴 때도 그랬다. 란족의 특성, 약점인 걸까. 역시나 란족 병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밀어붙여!”

나와 세나, 다비와 조조바 모두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썼다. 란족 병사들이 우르르 넘어지며 길이 열렸다. 물론 그건 정말로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버텨라!”
“잡아!”

란족이 힘이 약하다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우리라고 딱히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약간 더 센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할 뿐, 결국엔 숫자에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란족 병사들도 그걸 아는지 악다구니를 쓰며 버텼다. 우리를 더욱 겹겹이 에워쌌다. 사방에서 사나운 외침과 채찍이 날아들었다. 팔뚝이며 목덜미며 따갑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버텼다. 달려오며 내내 눈길로 나눈 작전을 떠올렸다. 그 작전이 실현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귓가에, 그토록 기다렸던 외침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도차악!”

거대한 나무 생명수. 그 꼭대기에서 요재의 외침이 광장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우리는 뻘뻘 흘리던 땀방울 사이로 웃었다. 동시에 란족 병사들이 의아한 눈길을 나누며 멈칫거렸다. 병사들을 독려하던 수장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요재가 생명수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언제?”
“언제긴요. 우리가 당신들과 몸싸움을 하며 아득바득 버티고 눈길을 끄는 사이에 요재가 열심히 달려간 거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리는 수장. 그의 혼잣말을 듣자마자 냉큼 대꾸했다. 그가 울컥하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에겐 나와 실랑이를 벌일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요재가 생명수 꼭대기의 고치를 향해 손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수장이 외치는 순간, 요재의 손길이 고치 위쪽의 매듭을 잘라냈다. 커다란 고치가 선물상자 열리듯 순식간에 확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툭 떨어져 나왔다.

“……크워억!”

처음 보는 생김새의 사람 비슷한 종족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엄청난 근육질을 자랑하는 팔이 네 개랄까. 멀리서 봐도 보통 체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었다. 누구를 향해? 자신을 속이고 붙잡아둔 란족을 향하여.

“크오오!”

그가 네 갈래의 팔뚝을 휘두르며 나뭇가지를 박찼다. 옆에 매달려 있던 다른 고치 윗동이 삽시간에 잘렸다. 다시금 툭, 새로운 ‘누군가’가 감옥 같던 고치에서 풀려났다.

“감히! 내게 이런 치욕을 안겼나!”

이번에는 거대한 입과 송곳 같은 이빨을 지닌 자였다. 그가 울분에 차서 외치더니 주변의 고치들을 맹렬히 물어뜯었다. 툭, 투둑, 고치들이 차례차례 풀려갔다. 풀려난 새로운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다른 고치를 풀었다. 아니, 해방했다.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마침내, 수백에 달하는 각양각색의 해방자들이 저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일치된 목소리로 포효성을 토해냈다.

“다들! 저 가증스러운 란족 놈들을 찢어 버립시다!”

포효가 생명수를 뒤덮었다.

광장을 갈아엎듯이 몰려왔다. 란족 병사들과 수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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