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추격과 반격 (1) (30/38)


29화. 추격과 반격 (1)
2023.06.0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찌므안!”

괴상한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는 순간, 란족 수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뿔싸.’

내가 속았구나.

란족 수장은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위카족 마녀들이 자신을 속였다. 뭐? 생명수를 보면 두려워? 나무가 안 보이는 가장자리의 숙소로 옮겨달라고? 그게 전부 가식으로 가득한 거짓말이었다니, 기도 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으흡!”

란족 수장은 허공에서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사지를 활짝 펼쳤다.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의 저항이 조금 더해졌다. 추락 속도가 늦추어졌다. 그는 위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시시각각 멀어지는 공중정원.

날파리처럼 황급히 이륙하는 소형 비행선이 보였다.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기조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수하들을 재촉하였다.

‘어서 오란 말이다, 어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가증스러운 위카족 마녀들을 처단해야 한다. 그리고 조안이라 불리던 소녀, 그 소녀의 붉은 목걸이를 수중에 넣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이 수락한 거래 내용이니까. 보턴과 아크, 레퓨지아의 음흉한 두 지도자들에게 목걸이를 넘기고, 대신 푸른 반딧불이 가루의 저주에서 벗어날 비밀을 듣기로 하였으니까.

‘그러니…… 반드시!’

꽈드득!

빠르게 다가오는 소형 비행선을 재촉하듯 바라보는 란족 수장. 그의 눈동자가 탐욕의 빛으로 물들었다.



‘됐어!’

콰앙!

요재의 몸통박치기가 작렬하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성공이다. 수장을 완전히 속였다. 그 증거로, 수장은 저만치 날려가 추락하면서 살벌한 눈빛을 보내어 오고 있었다. 일순간 그 눈빛과 시선이 얽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움직일 때다.

“다들 뛰어!”

나는 앞장서서 몸을 돌렸다. 다른 아이들이 뒤를 따라 뛰어왔다.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이젠 어떡할 생각인 거야?”

제일 먼저 다가온 요재가 나란히 뛰며 물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소형 비행선이 어디에서 이륙하는지 확인했으니까, 일단 공중정원을 탈출할 장소는 알아낸 셈이겠지?”
“이륙? 방금…… 아!”

요재의 눈이 반짝였다.

“수장을 구하러 이륙한 추락사고 방지용 비행대기조?”
“응!”

바로 그거다.

“다들 방금 봤을 거야. 비행대기조가 수장을 구하러 우르르 이륙했잖아? 그러니까 이륙 장소는 평소보다 비어 있을 거고, 남은 이들이 있어도 많이 흐트러져 있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수장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으니까. 분위기는 안 봐도 알겠지?”
“그래. 확실히 어수선하겠네.”

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왔다.

“그래서, 비행장이 어수선한 틈을 타고 근처에 숨어 있다가 비행선을 훔치겠다는 거지?”
“응. 정답.”

나는 계획을 밝혔다.

“저들이 수장을 구해서 돌아오기 전까지만 숨으면 돼. 수장도, 비행장의 란족들도 설마 그 틈에 우리가 근처에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겠지. 아마 노발대발하는 수장의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거고.”
“그리고 수장과 란족이 우리를 찾으러 공중정원 내부를 탐색하는 틈을 타서 역으로 비행선을 훔치면 되겠구나.”
“응,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계획 수립 완료. 우리는 바쁘게 뛰었다. 비행장의 위치는 아까 봐두었다. 다행히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덕분에 수장과 그를 구한 비행대기조가 돌아오기 전에 비행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장은 예상대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수장 추락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당황한 란족 병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난간에 모인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아래를 향해 있었다. 아마도 추락하는 수장과, 그를 구조하기 위한 급강하를 감행하고 있을 비행체들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거겠지.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비행장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적당히 숨을 장소를 찾아낸 것도 물론이었다.

“다들 여기로.”

마침 이륙하지 않은 비행선이 하나 보였다. 비행선은 커다란 식물 줄기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었는데, 그 위쪽의 잎사귀가 크고 무성해서 몸을 숨기기 좋아 보였다.

“쉬잇.”

우리는 잎사귀 틈새에 몸을 숨기고서 숨을 죽였다. 그 직후, 비행장 난간에 모인 란족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해냈다는 둥. 다행이라는 둥. 다들 서로를 돌아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들이었다.

아마도 란족 수장이 땅에 추락하기 전에 무사히 구조된 거겠지. 그렇기에 저토록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 가득한 시선을 나누는 거겠지.

“아마도 저 병사들…… 란족 수장이 올라오면 엄청 깨지겠지?”
“몰라. 어쩌면 칭찬을 들을지도?”
“제때 구조에 성공해서?”
“그런가?”

다비와 요재가 소리 낮추어 소근거렸다. 그러다가 세나의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을 받고는 조용해졌다.

때마침 잠시 들떴던 병사들이 난간에서 물러나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황급히 비행장을 치우고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수장이 올라오고 있구나.

곧 도착하겠구나.

그리고 역시나,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몇 정의 소형 비행선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그중의 한 대에는 수장이 타고 있었다.

“이런…… 가증스러운 마녀들 같으니!”

수장은 비행장에 내리자마자 노호성을 터뜨렸다. 근처의 란족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움츠렸다.

“찾아라! 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날뛰어봤자 공중정원을 벗어나진 못하였을 것이야.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마녀들을 찾아서 산 채로 잡아와! 내가 직접 그것들을 심판할 테니!”

수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이 불길에 놀란 파리떼처럼 흩어졌다. 다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수장의 명령을 곳곳에 전달하고. 명령이 공중정원 구석구석 퍼지고.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행장이 한산해졌다. 병사들 대부분이 우리를 색출하기 위해 공중정원의 수많은 길목과 건물을 수색하러 몰려간 덕분이었다.

“……성공.”

다비가 중얼거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움직일 때가 왔다.

세나가 손짓했다.

“가자.”

 
우리는 덩굴 잎사귀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워낙 긴장한 채로 웅크려 있던 터라 저릿저릿한 다리를 이끌고서, 우리를 탈출시켜줄 소형 비행선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츠스스슷……!

돌연, 우리가 걷던 바닥에서 새싹들이 돋아났다. 아까 우리를 안내하기도 했던, 자그마한 새싹 무리였다.

그런데 이제 더는 자그마하지 않았다. 지면에서 돋아나나 싶더니 순식간에 자라났다. 새싹이 발목을 지나, 무릎을 넘어, 허리 높이까지 자라나는 데에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엇?”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자라난 새싹이 발목은 물론이고 다리 전체를 휘감아 버렸다. 당황스러웠다. 벗어나려 힘껏 용을 썼다. 소용이 없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족쇄처럼 두 다리가 꼼짝없이 묶여 버렸다.

곤경에 처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아앗?”
“으읏!”

세나도, 다비도, 루이샤와 조조바도, 심지어 우리 중에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요재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새싹의 기습적인 포박에 꼼짝도 못 하고서 당하고 말았다.
뒤쪽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그래.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이로군.”
“…….”

소름이 돋았다.

듣지 않아도 알겠다.

란족 수장의 목소리.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 저벅,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십 명의 란족 병사들을 대동한 채였다.

“우선 칭찬하지. 날 멋지게 속였어. 설마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날 농락할 줄은 몰랐거든.”
“…….”
“덕분에 무력하게 추락하면서, 지면이 가까워져 오는 걸 바라보면서, 구조대가 어서 와주길 기다리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나?”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휘었다.

“그대들만큼은 내가 직접 수확해서 플람족의 불바다에 던지리라고 다짐했지. 그리고 짐작했어. 내가 그대들이라면, 상대를 기습적으로 날려 버린 뒤에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보다 결론이 쉽게 나오더군.”
“…….”
“공중정원 안쪽이 아닌, 어수선한 비행장으로 숨어든 점은 칭찬하지. 실제로 거의 성공할 뻔도 했고. 좋은 생각이었어. 내가 그걸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대들에게 불운한 일이 되긴 했지만.”

저벅, 저벅.

어느새 수장은 두 걸음 앞까지 걸어왔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길이 차가웠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시선. 그렇기에 오히려 섬뜩해지는.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 하긴.”

다비의 물음에 수장이 입꼬리만 희미하게 들어 올렸다.

“내가 말했잖나. 그대들을 내 손으로 직접, 플람족의 땅에 던지겠노라고. 설마 방금 들어놓고도 그걸 잊었나? 보기보단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당황해서 이지가 흐트러진 건지. 그럴 것처럼 생기진 않았다고 봤는데.”
“…….”
“아. 그리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지.”

수장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삽시간에 마주친 눈길. 오싹하게 올라오는 소름. 그가 한 걸음, 내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귀한 것을 챙겨야 해서.”
“…….”

수장의 시선은 내 목덜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덕분에 확실하게 알았다. 그는 내 목걸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내 목걸이를 탐내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겠다.

한편으로는 불길한 깨달음이 몰려왔다. 수장의 목적은 처음부터 목걸이였던 걸까.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우리를 습격했던 것도. 그 습격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자 협상을 하자며 나타나고 화해를 했던 것도. 그 후에 호의를 베푸는 척 공중정원으로의 탑승을 권유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공중정원에 태워서 안심을 시키고, 내 목걸이를 빼앗으려는 계략이었던 걸까.

‘어째서? 왜?’

레퓨지아의 낡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은 붉은 목걸이. 호기심에 착용을 한 이후로 다시는 벗을 수 없게 되어 버린 목걸이.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를…… 레퓨지아 밖으로 날려보낸 이 목걸이.

이건 대체 어떤 물건인 걸까. 무슨 사연이 얽힌 것이기에 처음 보는 란족의 수장마저 저토록 탐을 내는 걸까.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두려워졌다.

수장에게 목걸이를 건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화가 나.’

고작 목걸이 하나를 얻겠답시고 사람을 이렇게 속이고, 괴롭히고, 악의를 드러내는 일이 옳을까. 아니. 부당하다. 나쁘다.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될 짓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저러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있다. 그게 너무나 화가 났다.

‘나는…….’

무력함에 몸을 떠는 나는. 목덜미로 다가오는 수장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뿌리치지도 못하고 있는 나는. 그럼에도 절박함에 몸서리치는 나는.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아…… 이젠 진짜 못 참겠다! 왜 아까부터 자꾸 캣닙 냄새를 풍겨대는 건데!”

곁에 나란히 묶여 있던 루이샤가 고함을 빽 내질렀다. 순식간에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루이샤를 단단히 묶고 있던 새싹이 느슨해졌다. 그 틈으로 액체처럼 스르르 빠져나온 루이샤가, 내 쪽으로 뻗어오던 수장의 손목을 와락 깨물어 버렸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포크로 푹 찍는 아이처럼.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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