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공중정원의 진실 (2) (29/38)


28화. 공중정원의 진실 (2)
2023.06.0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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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란족 수장이 내 목걸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어떻게?’

팔뚝의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혹시 내 눈동자가 떨리고 있을까. 나는 란족 수장의 눈치를 살폈다. 내 목덜미 언저리를 슬쩍 훑는 란족 수장의 시선. 그저 잠깐, 우연히 이쪽으로 시선이 향한 걸까.

아니.

어쩐지 아닌 것 같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눈치라는 게 있잖아. 특히 나는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할 수 있다. 왜냐고. 학교에서 내내 혼자가 되어, 은근히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내내 살펴야 했으니까.

그때의 감 덕분에 감히 말하는 건데, 지금 란족의 수장은 단순히 내 목덜미를 훔쳐보는 게 아니다. 목덜미 옷깃 안쪽에 감추어진 뭔가를 살피려 들고 있다. 궁금해하고,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런 기색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대체 어떻게?’

내가 지닌 목걸이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몰라야 한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아직 밝히지 않았으니까. 내가 지닌 이 목걸이 때문에 모두가 레퓨지아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사실을 아직, 차마 말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란족의 수장은 어째서 내 목덜미를 저렇게 갈망과 탐욕이 어린 시선으로 곁눈질하는 걸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금방이라도 확인하고, 손에 넣고 싶다는 듯이.

나는 쿵쿵 날뛰려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리고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는 물었다.

“만약에 우리가 수장님의 말씀처럼 저 고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른 척을 하면…… 정말로 우리를 안전하게 손님으로 대우해 주실 건가요?”
“당연한 소리를.”

란족 수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꺼낸 약속의 무게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나는 뱉은 말은 지킨다. 그대들이 이곳의 규칙을 어기지 않고, 선을 넘기지 않는 이상은 계속하여 승객으로서 존중받고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테지. 내가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그 약속이 깨지리라 걱정을 하는 건가?”
“아뇨, 저는…….”
“참으로 애석하군.”
“…….”
“혹여 그대들은 우리 종족의 생활 방식에 참견을 할 셈인가?”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수장의 추궁에 재빠르게 나서며 대답한 아이는 세나였다.

“혹시 새싹들의 보고를 받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숙소에 준비된 음식이 너무 모자랄 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하러 돌아다니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우리에겐 이곳 공중정원의 길은 너무 낯설고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어딘가 도움을 청할 란족과 만나보지도 못하고서요.”
“이곳에 다다른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우연까지는 아니고요.”
“그럼?”
“거대한 나무가 보였습니다. 보자마자 아, 저곳이 공중정원의 중심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왔습니다. 여기에 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됐지요.”
“흐음…….”
“우리가 이곳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란족의 비밀을 들추게 된 것도 유감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우린 도움을 요청할 생각으로 여기로 온 것이지, 당신들의 비밀을 캐내려고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질책을 받을 일은 아니다?”
“수장께서 화를 내실 일도 아닌 것 같고요?”
“하, 하하?”

한마디도 지지 않는, 그럼에도 묘하게 상대의 신경을 긁지는 않는 세나의 정중하고도 빈틈없는 화법 덕분이었을까. 란족 수장의 굳어 있던 표정이 처음으로 풀렸다.
세나가 말했다.

“그러니 다시금 밝히자면, 저희는 란족을 비난할 생각도, 당신들과 적대할 의도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저희는 초청을 받은 손님이고, 그 대우가 유지된다면 굳이 서로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군. 내가 흥분을 했던 건가.”
“방문객이 우연히 이곳까지 들어온 상황이 처음이셨던 거라면, 충분히 흥분하며 화를 내실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배려까지? 고맙군. 나의 섣불렀던 태도를 이해해 주어서. 그리고 미안하군. 내가 모처럼 평정심을 잃고 그대들에게 무례를 범하였어.”
“아닙니다. 저희도 함부로 이런 곳까지 들어와 죄송한 마음인 걸요.”
“그런가.”
“네, 수장이시여.”

……세나, 잘한다!

나는 세나의 화법에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깨달았다. 말은 저렇게 살갑게 나누고 있긴 하지만, 세나가 수장에 대한 경계를 전혀 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세나는 겉으로는 웃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저건 평소에 세나가 웃던 옆얼굴과는 다르다. 묘하게 굳어 있으니까. 특히 눈은 별로 웃고 있지 않으니까.

평소부터 침착하고 감정을 잘 절제하는 세나이기에, 진심으로 웃을 때는 오히려 그게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저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웃는 게 아니다. 세나를 모르는 수장은 알아볼 수 없겠지만, 내게는 보였다.

‘세나는 수장을 믿지 않고 있어.’

물론 나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은?

“…….”

나는 친구들의 기색을 차례로 살폈다. 덕분에 발견했다. 다비는 한 손을 돌려 등에 멘 배낭을 더듬더듬 확인하고 있었다. 요재는 꼭 모은 두 손을 희미하게 떠는 모습이었다. 루이샤의 꼬리는 불안하게 좌우로 흔들렸고, 조조바는 그런 루이샤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그래.

모두가 아는 거야.

저 수장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걸.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피코가 알려줬으니까. 저들 란족이 호의를 베푸는 척 방문객을 속이고, 그 방문객을 거름으로 삼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 모두가 알아 버렸으니까.
하지만 수장은 우리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하하. 그대의 말을 들으니 내가 더욱 부끄러워지는군. 그럼, 사죄의 의미로 내가 그대들을 직접 숙소까지 안내해도 될까?”
“저희를요?”
“그래. 듣자하니 이곳이 처음이고 낯설어 길을 잃었다지 않았나? 어차피 누군가는 그대들을 숙소까지 안내하여야 할 것일 터이니 말이야.”
“하지만…….”
“일족의 치부를 내보였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흥분하여 그대들에게 무례를 저지른 내 부끄러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부디 말뿐만이 아닌, 성의가 담긴 사죄를 할 기회를 주면 더욱 좋겠고.”
“…….”

이번엔 세나가 대꾸할 말을 잃었다.

나도 조금 막막해졌다.

란족의 수장, 이제 보니 정말 교묘한 화법을 쓰는구나. 저렇게 말하는 걸 어떻게 거절해. 거절하면 우리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그렇다고 수장의 말을 따르면? 그건 더 곤란하다. 감시하려고 직접 안내를 해주겠다는 거니까. 우리가 아무 데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속하려는 거겠지. 그렇게 우리를 숙소에 밀어넣고, 숙소를 잠그면?

완벽한 감금, 완성인 거다.

‘그건 안 되는데.’

이대로 있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거름 신세로 끝장이 날 판이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세나를 쳐다보았다. 세나도 내 눈길을 느꼈는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급한 눈치가 모두에게 차례로 전해졌다. 다비와 요재가, 루이샤와 조조바가 재빠른 눈길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내가 번득이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수장이 우리를 안내하겠다며 첫걸음을 떼려던 무렵이었다.

“그런데요, 수장님.”
“음?”

수장이 날 돌아보았다.

나는 내 눈빛과 표정이 평온하게 보이길 바라며 물었다.

“혹시 숙소를 바꿔주실 수 있나요?”
“뭐?”
“지금 숙소가 조금 마음에 안 들어서요.”
“마음에 안 든다니, 어떤 점이 말인가?”

내 요구가 당돌하게 느껴진 걸까.

수장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일단 좁고요. 전망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전망?”
“네. 그래서 좀 더 넓고, 확 트인 곳에 있는 방으로 좀 옮겨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여기 광장에서 제일 먼 곳, 저 나무가 보이지 않는 방이요.”
“어째서지? 혹시 우리의 생명수에 매달린 고치가 끔찍해 보여서인가?”
“네.”

나는 티가 나지 않도록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당신들 일족을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아까 수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저 고치는 정당한 사냥감일 테니까요. 그래도 저…… 생명수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끔찍하긴 해요.”

당연하다. 사람이 잡혀 있는 광경이니까. 죽어가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나는 어느 정도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래서 숙소 창밖으로 저 생명수가 보이면 잠이 잘 오지 않을 거 같아요.”
“아까 그 숙소에서는 생명수가 보이던가?”
“네.”
“흐음, 하지만 생명수가 보이지 않는 방은 제일 가장자리의 외진 곳밖에 없는데.”
“상관없어요.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모쪼록, 부탁드립니다. 염치없지만 저희의 기분을 조금만 헤아려 주시기를요.”

나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내심 빌었다.

제발 통해라.

수장님, 제 말에 속아 주세요.

그런 간절한 염원 덕분이었을까. 숙인 고개 위쪽에서 수장의 나직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숙소로 직접 안내해 주도록 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속아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진심으로 웃었다. 그리고 수장이 돌아서는 순간, 내내 의아한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에게 눈짓했다. 특히 요재에게 슬쩍 눈치를 보냈다.

‘쾅.’

나는 두 주먹을 부딪치는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요재를 한 번 바라보고, 그다음에 수장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손동작으로 두 주먹을, 쾅.

“…….”

처음에 요재는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아,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작전을 이해한 모두는 의미심장하게 눈빛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들 묵묵히 수장의 뒤를 따라갔다.

그동안 수장이 드문드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데 그대들은 구석진 숙소에 머물러도 정말 괜찮겠나? 거긴 공중정원의 가장 끄트머리라서 위험해. 문 앞 길목의 난간만 넘으면 까마득한 허공으로 떨어져 버리곤 하지. 물론 멍청한 추락자를 안전하게 구출하는 비행대기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닐 거라고 일러두고 싶은데.”
“괜찮아요, 수장님.”
“진심인가?”
“네. 생명수가 보이는 것보단 고소공포증 쪽이 나을 거 같아서요.”
“흠, 그런가.”

그제야 수장은 포기한 건지, 같은 우려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장을 따라 수많은 모퉁이와 길목을 지나쳤고, 마침내 공중정원 가장 끄트머리의 위험천만한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길은 좁았다.

한 사람만 통과할 너비인 길목의 한쪽엔 나무뿌리로 이루어진 숙소 벽면이, 다른 쪽은 얇은 나뭇가지로만 이루어진 난간이 세워져 있었다.

난간 밖은 까마득한 허공이었다.

“조심히들 따라오도록. 가급적 난간 너머를 보지 않도록 주의하고.”

수장이 먼저 길목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음?”

수장이 의아한 듯 우리를 돌아보았다.

“혹시 많이 무섭나?”
“아, 조금…….”
“괜찮아. 만약 떨어지더라도 지면에 내리꽂히기 전에 비행대기조가 구출해 줄 것이야. 물론 가급적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겠…….”

수장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내 눈짓을 받은 요재가 급가속, 아니, 급발진을 하며 수장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려준 덕분이었다.

콰앙!

“……찌므안!”

괴상한 비명과 함께 수장이 난간 너머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려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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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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