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공중정원의 진실 (1) (28/38)


27화. 공중정원의 진실 (1)
2023.05.2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란족은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푼 후에 그들을 거름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종족입니다, 피코!]

“…….”

돌연 다비의 배낭에서 흘러나온 피코의 목소리. 나는 무의식중에 멈칫했다. 처음에는 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방문객? 친절? 거름?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비를 돌아보았다.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어, 어?”

다비도 많이 놀란 걸까. 온몸이 딱 굳어 있었다. 아마 방금 들은 피코의 이야기가 언뜻 이해가 안 된 까닭이겠지.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서. 나와 비슷한 심정이라서 저러는 거겠지.

“저기, 잠깐만.”

다비가 한 박자 늦게 배낭을 풀었다. 네모반듯한 피코를 꺼냈다. 피코의 윗면이 빛나며 홀로그램 영상이 올라왔다.

다비가 물었다.

“저기, 피코? 방금 말한 거, 무슨 뜻이야?”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알려드린 그대로입니다. 란족은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풀고, 방문객을 숙소로 안내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잠든 방문객은 숙소에서 그대로 식물 고치에 갇히게 됩니다, 피코!]

아까, 그 숙소에서? 우리가 나온 그곳에서?

“설마 그럼, 우리도?”

나는 황급히 물었다.

[그 어떤 방문객도 예외는 없습니다, 피코!]

“…….”

당연하다는 듯 평범하게 말해서 더욱 무섭게 들리는 피코의 대답. 나는 팔뚝에 돋아나려는 소름을 애써 쓸어내렸다.

“저기, 피코야. 내가 이해가 좀 안 돼서 그러는데. 더 자세하게 알려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피코!]

우리는 모두 피코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였다. 다비가 피코의 음성 볼륨을 낮추었다. 세나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사이, 피코의 말이 이어졌다.

[식물의 란족은 원래 플람족과 공생하던 관계였습니다. 플람족의 온기를 쬐며 걱정 없이 살아가던 종족이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란족이 ‘대화재’라고 부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날부터 플람족의 불길이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뜨거워졌습니다. 란족은 불길을 피해 하늘로 도망을 쳤지요. 공중정원이라 불리는 자신들만의 방주를 만들어서 말입니다, 피코.]

“그래서?”

[하늘로 피신했지만 란족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플람족의 불길이 언제든 치솟아 공중정원을 태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 이전처럼 플람족이 태우고 남은 재를 얻지도 못하게 되었지요. 종족을 유지시켜주던 유일한 영양분을 말이죠. 그래서였습니다. 란족이 궁여지책 끝에 자신들만의 사냥법을 개발한 것은 말입니다, 피코!]

“설마…….”

나는 물었다.

“그래서 방문객을 속이는 거야? 사로잡아서…… 자신들의 양분으로 삼으려고?”

[정답입니다, 피코.]

“…….”

[란족은 속여서 사로잡은 방문객을 고치에 가두고서 천천히 소화시킵니다. 소화된 방문객의 몸은 썩고, 침전되어 양질의 거름이 됩니다. 이 거름은 란족이 섭취하는 영양소, 공중정원의 동력, 비행체의 추진 연료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 알차게 쓰이고 말이지요, 피코!]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어째서 오늘, 란족이 우리를 습격했던 것인지를 말이다.

“그래…… 처음부터 꾸미고 있었던 거야. 영역을 침범당해서 우리를 공격하는 척을 하고, 란족의 수장이 내려와 우리와 화해를 하고, 공격했던 것에 대해 사죄하는 의미로 공중정원에 초대를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사로잡아서 거름으로 삼기 위하여.

“저기, 그런데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야?”

요재가 창백해진 얼굴로 피코에게 물었다. 물론 돌아오는 피코의 어조는 여전히 태연했다.

[전에 알려드렸다시피, 저는 당신들 위카족의 혈통에 새겨진 선조들의 유구한 기억을 통해서 정보를 검색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당신들의 눈과 귀를 통해 수집되는 현장의 정보가 반드시 단서가 되어야 합니다. 즉, 당신들이 특정한 장소에 직접 도착해야 제가 그곳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피코!]

“좀 일찍 말해주지…….”

나는 투덜거렸다.

물론 이런 투덜거림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도망치자.”
“비행선을 훔칠까?”

내 말에 다비가 결연한 눈빛을 떠올렸다. 다른 친구들도 말없이 눈빛을 나누었다. 우리 모두는 주위를 신중하게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이곳 공중정원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든 비행선을 훔쳐야 할 테니까.

그러나 공중정원은 넓고도 복잡했다. 덩굴로 얽힌 길목이 죄다 비슷하게 생겨서 더 헷갈렸다. 심지어 바닥의 새싹에게 길을 물을 수도 없었다. 아마 새싹도 한통속일 테니까. 아니, 이곳 공중정원을 이루는 바닥, 줄기, 나뭇잎 하나까지도 모두가 우리 편이 아니겠지.

“뭔가 이상해. 감시당하는 기분이야.”

요재가 어깨를 움츠렸다.

동감이다.

아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진실을 알고 보니 이곳의 공기마저도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잎새의 움직임에도 조금씩 소름이 돋았다. 혹시나 저 앞쪽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와 마주치는 건 아닐까. 혹은 머리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가 갑작스럽게 움직여 우리를 움켜쥐진 않을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게 미로 같은 모퉁이를 몇 번이나 맴돌았을까. 얼마나 많은 골목을 지나쳤을까. 그 끝에 우리는 엉뚱한 장소에 도착해 버렸다.

“여기, 아무래도 공중정원의 중심부인 거 같은데?”

다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리 모두의 시선도 위로 향했다.

골목을 갓 벗어난 우리 앞에 펼쳐진 드넓은 광장. 그 중심에 거대한 나무가 치솟아 있었다. 아니, 저걸 나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레퓨지아의 그 어떤 건물보다도 더 큰 것 같은데.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돌아가자.”
“응. 동의.”

루이샤가 어깨를 움츠렸고, 요재가 재빨리 대꾸했다. 동감이다. 우리는 공중정원에서 도망치려는 것이지, 이곳에 대한 탐구열을 불사를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거…… 뭐지?”

세나가 미간을 찡그린 채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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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중정원의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나무의 어느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조금 이상한 게 있어.”
“응?”

빨리 도망부터 쳐야 하는데 세나는 뭘 보고서 저러는 걸까. 나는 살짝 초조함을 느끼며 세나가 가리킨 곳으로 눈길을 던졌다. 커다란 나뭇가지 곳곳에 매달린, 수백 덩어리의 둥근 물체들이 보였다.

“과일 아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세나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아냐. 언뜻 보면 과일 같겠지만…… 자세히 보니까 조금 달라.”
“달라?”
“응.”

세나의 눈빛에 확신이 서렸다.

“포도 껍질처럼 얇은 막이 보여. 그런데 그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어.”
“꿈틀?”
“응. 마치…… 고치 속에 웅크린 무언가처럼.”
“…….”

그러고 보면, 세나는 엄청난 시력을 지녔지. 그 생각에 불현듯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아까 피코가 해주었던 경고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알려드린 그대로입니다. 란족은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풀고, 방문객을 숙소로 안내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잠든 방문객은 숙소에서 그대로 식물 고치에 갇히게 됩니다, 피코!]

식물 고치.

그렇다는 말은?

설마.

에이 설마.

“저 과일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전부 ‘고치’에 갇힌 희생자라는 거야?”

다비가 물었다.

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를 못했다. 머릿속 가득 떠오른 섬뜩한 추측, 불길한 확신, 그리고 몰려오는 공포감.

그 서늘한 침묵 속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아이는 다비였다.

“야, 다들 잘 들어. 이상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마.”
“…….”
“빨리 여길 빠져나갈 방법이나 찾자고. 저 꼴 되기 싫으면.”

솔직히 동감이다.

우리가 영웅은 아니니까. 당장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만도 벅차니까.

나는 세나를 돌아보았다. 세나는 자신이 본 끔찍한 모습을 잊으려고 애쓰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조조바가 세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다시 뜬 세나의 눈빛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래. 알았어.”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는 나왔던 골목으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광장에서 물러나며 나뭇가지 가득 매달린 고치를 향해 눈길을 던졌다. 다들 미안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우리가, 내가 이런 겁쟁이라서. 정말로 미안해요.

떨어지지 않는 눈길을 억지로 떼었다.

그때였다.

“저런. 모처럼의 손님들이 길을 잃었나 보군. 맞나?”
“……!”

위쪽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란족의 수장이었다. 그가 움직이는 나무줄기를 사뿐히 걸어 내려오며 우리 모두를 향해 웃었다.

“그대들에게 붙여준 새싹들이 알려주더군. 제공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듯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러 나섰다가 길을 잃고서 방황하는 것 같노라고. 맞나?”
“…….”
“맞나?”
“……네.”

고개를 끄덕이는 내 표정이 굳어 있지 않기를 바란다. 내 위아래를 가만히 훑어보는 란족 수장의 눈길이 내 불안감을 놓치기를 감히 바란다.

그런 내 바람 덕분이었을까.

란족 수장이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낯선 곳을 헤매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우선 사과부터 건네도록 하지. 오랜만에 맞이하는 손님이라 미처 식성의 차이를 헤아리질 못하였어. 그저 단순히 우리가 먹는 것처럼 그대들을 대하였으니, 명백한 나의 불찰이고 실수이며 잘못이지.”
“아, 아녀요. 그럴 수도 있죠.”
“이해해 주는 것인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요?”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별말씀을요.”
“나야말로 별말씀을. 그대들 또한 실수를 한 것 같으니까.”
“……네?”

인자하게 웃는 란족 수장.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더욱 소름 돋는 내용의 말이 수장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대들은 이미 보았겠지?”
“…….”
“여기까지 왔으니 저걸 못 보았노라 말하지는 못 할 것이고.”

거대한 나무. 주렁주렁 매달린 수많은 고치. 그걸 한 번 둘러보았다가, 우리를 다시금 굽어보는 수장의 눈빛. 이제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입술은 미소를 그리고 있으되, 눈빛만은 더없이 깊고 서늘했다.

“하나 알려두지.”

마치, 우리의 속내를 모조리 꿰뚫어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들은 저 고치를 보며 무언가를 느낀 거겠지. 그러니 두려움 섞인 미소로 나를 대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저 고치 속의 이들은 우리 일족이 사냥하여 얻은 정당한 소유물이야. 그리고 그대들은 내게서 안전을 약속받고서 공중정원에 탑승한 승객, 손님이지.”
“…….”
“우리 일족의 비밀을 함부로 들춘 것은 불쾌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이지. 그러나, 만약 그대들이 여기서 순순히 물러나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승객으로서의 예의와 선을 지킨다면, 나 또한 그대들에게 승객으로서의 안전과 혜택을 계속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야.”
“…….”
“내 말뜻을 알았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화사하게 웃는 수장. 우리 중에 선뜻 대답한 아이는 없었다. 그의 웃음이 진심인지 기만인지 판단이 되지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나는 수장의 눈빛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

내 목덜미.

수장이 내 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눈빛은 내가 목걸이를 숨겨둔 곳을 정확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잠깐만.

란족 수장이, 내 목걸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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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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