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공중정원으로 (2)
(27/38)
26화. 공중정원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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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공중정원으로 (2)
2023.05.1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예쁜 건 뭘까.
아기의 볼에 비친 햇살?
가장 이른 아침 창가에 맺힌 이슬?
사실 나는 그런 걸 봐도 딱히 예쁘다며 감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예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뭐랄까. 마음을 두드리는 느낌을 받은 경험은 딱히 없었달까.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와아…….”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발밑으로 펼쳐진 지평선. 무한한 땅과 하늘의 속삭임. 돌아보는 모든 방향에 지평선이 놓여 있었다. 혹시 이 세상은 아름답고 거대한 접시처럼 생긴 것이 아닐까.
“항상 이런 풍경을 보면서 사는 건가요, 당신들은?”
란족의 공중정원에 첫발을 디디며 나는 물었다.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내 질문을 받은 란족 수장이 소리없이 웃었다.
“아름다운가? 그럴 수밖에.”
“무슨 뜻이죠?”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란족 수장의 대답에서 냉소적인 뼈가 느껴진 까닭이었다. 역시나, 란족 수장의 미소는 금세 씁쓸한 기색으로 변했다.
“다 그런 법이거든. 세상 대부분의 것은 멀리서 봤을 때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거라서.”
“아.”
“예외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뇨. 딱히는요. 다만…….”
“다만?”
“남의 감탄에 초를 치는 재능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아? 내가 그랬나?”
“조금은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란족 수장의 입꼬리가 소탈하게 휘어졌다.
“그랬군. 모처럼의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른 셈인가. 부디 용서해 주면 좋겠는데.”
“네. 기꺼이요.”
“그럼 나는 이쯤에서 물러남으로써 방문객들의 편의를 훼방하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지. 다들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쉬어주길. 이만.”
수장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덕분에 잠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보니 참 괜찮은 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조금, 이상해.”
“응? 뭐가?”
내 혼잣말에 반응한 아이는 요재였다. 나는 묘한 기분을 곱씹으며 말했다.
“란족 수장 말이야. 아까는 몰랐는데 친해지고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뭐랄까, 꼭…….”
“꼭?”
“세상 대부분의 것은 멀리서 봤을 때에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했잖아? 사람은 반대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
“친해지고 나서야 좋은 점들이 보이는 거 같다고?”
“응. 바로 그거.”
“하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아까까진 살벌하게 죽이니 마니 그랬는데.”
“그러게.”
참 묘한 일이다.
이렇게 란족의 공중정원에 올라서고 보니, 아까 겪었던 일들이 마치 거짓말이나 낮잠을 자면서 흘려보낸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 불과 20분 남짓 지난 일들인데도 그랬다.
심지어 란족의 매너(?)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기까지 했다.
스르륵?
란족 수장이 우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우리가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까를 몰라서 잠시 당황하려던 때였다. 우리 근처의 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새싹이 돋아났다. 그냥 새싹이 아니었다.
“이거 혹시 화살표?”
다비의 물음대로였다.
삽시간에 돋아난 새싹 수백 줄기가 화살표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볼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닥의 새싹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우리의 걸음에 맞추어서 새로운 새싹이 돋아났다. 화살표가 우리를 인도하고, 걸으면 다시 돋아나서 다시 인도하고.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거대한 식물 줄기로 이루어진 건물과 길목을 수차례 건너고, 지났다. 몇 번의 모퉁이를 돌아서 우리는 머무를 숙소에 도착했다. 앞서 지나쳤던 건물들처럼 나무줄기의 비어 있는 안쪽 공간이 방과 거실을 이루는 곳이었다.
“저기, 있잖아요?”
나는 안내받은 숙소 입구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바닥의 새싹 화살표를 향해 물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어요?”
솔직히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르륵……?
화살표 모양으로 돋아났던 새싹들이 바닥으로 쏙 숨었다. 그리고 모양을 바꾸어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새싹들이 새로 만든 모양은 동그라미였다.
“어? 정말?”
이거 실화냐며 귀를 쫑긋거리는 루이샤와 말없이 감탄하는 조조바.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바닥의 새싹을 향해 계속 물었다.
“그럼 우리, 이제 여기서 머무르면 되는 건가요?”
이번엔 새싹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대로 동그라미.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우리, 여기 말고 다른 길가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머물러도 될까요?”
스르륵!
재빠르게 모양을 바꾸며 다시 돋아나는 새싹. 이번에는 X 모양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여기 새싹, 우리 말을 다 알아듣나 봐.”
“그런 거 같은데. 게다가 여기 건물과 길을 이루는 식물이 사실은 전부 나무 한 그루인 거 같아. 어쩌면 공중정원 전체가.”
세나가 내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보탰다. 동감이다. 아무리 봐도 이곳 공중정원은 전체가 한 그루의 거대한 식물로 이루어진 듯했다.
“어쨌건 그럼, 우리 이제 고생은 덜 해도 되겠구나…….”
“그러게.”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정원. 이게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를 안도감을 준 걸까. 요재와 다비가 숙소로 들어가며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란족 수장은 분명 우리를 반딧불이의 섬까지 태워다 주겠노라고 약속했으니까. 적대감을 풀고서 이야기를 나누어봤더니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으니까.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잊고 있던 피로감과 허기가 확 몰려왔다.
다른 친구들도 이럴까.
“다들 배고프지 않아?”
내 물음에 급격하게 반짝이는 모두의 눈망울. 루이샤가 통통거리는 걸음으로 숙소 안쪽을 구석구석 탐색했다. 하지만 그 눈가에 실망감이 배어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뭐야? 왜 먹을 게 없어?”
“정말? 아무것도 없어?”
“응.”
다비의 물음에 루이샤가 귀를 팍 낮추었다.
“없어. 있는 거라곤 호두 비슷한 몇 조각이 다야. 저기 접시 위에.”
“…….”
확실히 좀 적긴 하다. 저런 걸로 배를 채우려면 한 사람당 최소한 100접시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저게 란족의 1인분 식사인 걸까.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시금 바닥의 새싹을 향해 쪼그려앉았다.
“저기 있잖아, 란족은 적게 먹어?”
스르륵?
새싹이 ‘ㅇ’ 모양을 그렸다.
역시.
“그럼, 숙소에 있는 저 호두 비슷한 게 우리 모두한테 지급된 음식인 거야?”
새싹이 모양을 바꾸지 않았다. 내 물음에 긍정한다는 뜻이겠지. 나는 계속 질문했다.
“혹시 그럼, 저 호두 말이야. 하루치 식사인 거야?”
사라락?
이번 대답은 ‘X’였다.
나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에이 설마.
부정하고 싶은 기분으로 다시 물었다.
“설마, 최소 열흘쯤 저것만 먹으면서 버티라는 거야?”
사라락!
냉큼 동그라미를 그리는 새싹 무리.
덕분에 우리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반딧불이 섬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만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뭐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걱정을 하게 생겼다는 것도.
“움직이자.”
세나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숙소를 박차고 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먹는 일은 중대사항이니까.
“그럼 이제 어떡하지? 수장을 찾아가야 할까?”
“아마도? 그분한테 부탁하는 게 제일 빠르고 간편할 거 같아.”
다비가 물었고, 세나가 답했다.
나는 모두를 대표해서 새싹을 향해 물었다.
“저기 새싹님? 혹시 우리를 이곳의 수장님한테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사라락!
“…….”
의외로 X를 그리는 새싹 무리의 모습에 우리는 망연자실해졌다. 나는 황당함을 억누르며 물었다.
“어째서? 왜? 혹시 수장님이 바빠서?”
사륵!
이번엔 동그라미.
그 모습을 본 다비가 말했다.
“어쩔 수 없겠다. 우선 우리들끼리라도 찾아보자. 란족 사람이든, 먹을 걸 파는 곳이든. 찾아보면 뭔가 답이 있지 않을까?”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숙소를 나선 우리는 란족의 공중정원을 탐색했다. 혹시나 길을 물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드넓은 공중정원의 시가지와 길목 곳곳을 돌아다녀도 우리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못했다.
심지어 새싹 무리도 이제는 우리를 따라오며 안내하지 않았다. 아마 숙소까지의 안내가 자신의 임무였다는 듯이.
“이건 좀 이상한데.”
세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어디 있는 거지? 꼭 아무도 안 사는 곳 같잖아.”
“그러게…… 냄새도 안 느껴져. 호흡도 조금 불편하고.”
“아마 지상보다 공기가 희박해서 그럴 거야.”
냄새를 맡으려 애쓰며 투덜거리는 루이샤. 숨을 몰아쉬며 대꾸하는 다비. 말없이 스카프를 느슨하게 푸는 조조바까지. 우리 모두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나마 지상과 달리 푸른 반딧불이 가루가 없는 듯해서 좋았지만, 란족 사람들도 보이질 않아서 난감해졌다. 설마하니 이토록 드넓은 공중정원이 온통 인적 없는 곳이었을 줄이야.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그럼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내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씩 빨라지는 걸음을 바쁘게 옮겼고, 초조해지는 눈길을 사방으로 던졌다. 그렇게 얼마나 인적 없는 공중정원을 탐색했을까.
“어?”
요재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이상한 벽화가 있어.”
벽화는 거대한 줄기로 이루어진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아니, 이 경우는 새겨졌다기보다는 마치 줄기의 주름 자체가 벽화나 조각처럼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했다. 벽화의 규모가 양옆으로 20미터쯤 된다고 말하면, 레퓨지아의 사람들은 내 말을 믿어줄까.
게다가 이 벽화, 어쩐지 모르게…….
“섬뜩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거대한 벽화의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묘하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 언뜻언뜻 보이는 형상들. 뭔가에 사로잡혀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다비의 배낭에서 삐빅거리는 소리가 났다.
삐빅!
[축하합니다. 당신들은 란족의 역사가 담긴 벽화를 발견했습니다, 피코. 이에 따라, 저 피코가 이제부터 당신들의 혈통, 위카족 선조의 유구한 기억 속에 깃든 란족의 역사를 알려드리겠어요, 피코!]
기계음과 함께 작동을 시작한 피코.
아, 그랬지.
피코는 특정한 장소에 우리가 도착을 해야만, 우리에게 깃든 위카족 선조의 기억을 통해 해당 장소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고 했더랬지. 덕분에 지금, 피코의 그 기능이 자동으로 작동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피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란족은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푼 후에 그들을 거름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종족입니다, 피코!]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