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하늘의 습격자 (2) (25/38)


24화. 하늘의 습격자 (2)
2023.05.0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나한테 이런 순간이 오다니.

- …….

플람족의 문지기 도마뱀, 파이어뉴트는 감격에 젖은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꽃 거인으로 변신하며 훌쩍 높아진 시야. 덕분에 주변의 반응이 한눈에 들어왔다.

꽃잎 비행체 몇 대가 허겁지겁 멀어지고 있었다. 이쪽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크게 놀란 듯했다. 그래. 무리도 아니지. 이 몸의 웅장하고도 압도적인 등장이 좀 충격이었어야 말이지.

‘하, 하하? 하하하…….’

불꽃의 거인으로 화한 파이어뉴트의 입꼬리에 웃음이 걸렸다. 조안이라고 했던가. 저 위카족 여자애의 꼬드김을 받던 때에만 해도 혹시나 했다. 거인의 모습으로 변하면 주위 모두가 놀라고 감탄할 거랬는데, 과연 저 란족 비행사들이 그래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에서 날던 비행체 하나는 추락하기까지 했다. 자신 덕분이다. 이 웅장하고 멋진 등장 덕분이다.

짜릿했다. 자신이 원한 게 바로 이런 거였다.

- 이것이 바로! 이 몸의 위대함이니라!

신이 난 파이어뉴트는 허공을 향해 포효했다. 포효에 뒤섞인 화염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주변을 수놓았다. 물론 진짜 불꽃이 아닌, 파이어뉴트가 만든 허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불꽃 거인의 등장 때문에 허겁지겁 놀랐던 란족 비행사들이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사방으로 불똥이 튀니, 더욱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저 불꽃에 맞으면 얇디얇은 꽃잎 비행체가 순식간에 불탈 테니까. 구멍이 나고, 추락해 버리고 말 테니까.

‘그건 안 돼!’

비행체를 잃으면 끝장이다. 종족을 이끄는 수장께서 그 책임을 엄격하게 물을 것이다. 무거운 벌을 받겠지. 어쩌면 공중정원의 거름이 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듯 거의 동시에 품게 된 공포심. 비행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행 고도를 높였고, 불꽃 거인과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에 파이어뉴트는 더욱 뿌듯해졌다. 자신의 모습에 겁을 먹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쿠워어어어억!

더욱 웅장하게 포효하며 두 팔을 휘둘렀다. 평소 플람족 주인들에게 문지기 취급이나 받으며 은근히 쌓였던 불만, 억눌러진 해방감을 일시에 털어내듯 마음껏 소리쳤다.

덕분에 란족의 꽃잎 비행사들은 감히생각도 품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듯, 불운하게 추락한 동료 비행체와, 그곳으로 접근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관측할 뿐이었다.

***

설마 이게 진짜로 되다니.

“…….”

나는 감탄에 젖은 눈길을 들었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덕분에 주변 하늘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꽃잎 비행체 몇 대가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었다. 파이어뉴트가 불꽃 거인으로 변신한 모습에 크게 놀란 듯했다. 그래. 무리도 아니지. 저들의 입장에선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을 테니까.

“다들 빨리 와봐!”

나는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각자 비행체에게 쫓기던 친구들이었다. 그런 탓인지 상태도 엉망이었다.

세나와 다비는 머리칼 가득 흙먼지를 덮어썼고, 조조바는 넘어진 탓인지 무릎이며 팔꿈치가 까져 있었다. 그나마 우리 중에 재빠르게 달릴 수 있는 요재와, 몸놀림이 유연한 루이샤 정도가 멀쩡함에 가까운 모습이랄까.

“뭐야, 저거? 파이어뉴트가 지금 왜…….”
“응, 내가 시켰어.”

제일 먼저 달려온 요재를 향해 나는 씨익 웃어 주었다.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마침 내 손에 파이어뉴트가 들려 있더라고. 혹시나 해서 부탁을 해봤는데.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나도 몰랐거든.”

- 쿠워어어억!

때맞추어 괴성을 질러 주는 불꽃의 거인, 아니, 파이어뉴트. 괴성에 섞인 흥분으로 미루어보건대, 지금 상황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어쨌건 빨리 가보자.”

나는 추락한 비행체를 가리켰다. 다행히 많이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비행체의 추락 지점에 도착한 우리는 뜻밖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다. 그 상황이란, 추락한 란족 비행사가 우리를 향해 오히려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하는 적반하장의 광경이었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어? 엉!”
“…….”

누군지 알게 뭐람.

내가 대꾸하기 직전에 루이샤가 먼저 콧잔등을 찡그렸다.

“저거 어떻게 하지?”
“으음, 많이 다치진 않은 거 같은데.”
“조조바? 넌 우릴 해치려다가 다친 놈까지도 신경이 쓰이는 거야?”
“그래도 다비야. 조조바가 착해서 그런 거야.”
“나도 요재 말이 맞다고 생각해.”
“그치만 세나야? 지금은 저 비행사가 안 다친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긴 다비 말도 일리가 있어.”

나는 갖가지 의견을 꺼내는 친구들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느새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내가 추락을 시켰으니까, 내가 대표로 저 비행사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하는 눈빛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잠깐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껴야 했다. 레퓨지아에 있던 때에는, 그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저런 눈빛들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없다. 내가 나서서 친구들을 대표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없었다.

신기했다.

그만큼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친구들이 이만큼 나를 믿게 됐구나, 싶어서.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이제야 찾았나 싶기도 해서.

하지만 지금은 말캉거리는 기분에만 취해 있을 때는 아니었다. 나는 나름의 각오로 정신을 무장하며 한 발짝 나섰다. 그리고 우리를 원망스럽게 쏘아보는 란족 비행사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저기요.”
“뭐!”

연두색 피부를 지닌 란족 비행사가 날 돌아보았다.

비행사는 키가 무척이나 크고 온몸이 호리호리했다. 마치 화분에서 껑충하게 자라난 식물을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았다. 온통 연두색인 팔다리는 가느다란 식물 줄기 여럿이 엮여서 이루어져 있었다. 머리칼은 풍성한 잎사귀였고, 숨을 씩씩 몰아쉴 때마다 망토처럼 어깨에 두른 수십 장의 노란 꽃잎이 파르르 떨리며 꽃가루를 뿌려댔다.

“감히 너희 따위가! 날 떨어뜨려? 응? 위대한 수장의 아들인 나를?”

비행사가 날 향해 따지듯 말했다.

나는 반문했다.

“수장의…… 아들요? 당신이?”
“그래!”

자칭, ‘수장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밝힌 비행사가 버럭했다.

“난 최고의 조종사야. 한 번도 남의 손에 떨어져본 적이 없다고. 아버지를 제외하곤 누구도 날 무시하지 못해! 그런데 감히!”
“한 번도 남의 손에 떨어져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당신을 떨어뜨리기가 부담스러워서 다들 주저한 것이었겠죠?”
“……뭐?”

비행사가 멈칫했다.

나는 심드렁한 기분을 삼키듯 말했다.

“그쪽 말예요. 착각이 심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먼저 우릴 공격했잖아요. 위협했잖아요. 우린 그에 맞춰서 대응했을 뿐이고. 하필이면 그 대응에 당신이 걸려서 추락한 거고. 거기에 무슨 억울할 이유가 있죠?”
“하지만 나는!”
“우리의 인질이죠, 지금은.”
“어?”

비행사의 얼빠진 표정에 나는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저 사람,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느린 타입인가봐.

“당신이 조종하던 비행체는 추락했고. 다른 비행체는 저 불꽃 거인 덕분에 다가오지 못하고. 이렇게 당신은 혼자가 돼서 우리한테 둘러싸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봐줘야 할 이유가?”
“…….”
“없겠죠?”
“…….”
“이젠 좀 알겠죠?”
“……그치만!”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이야 당신네 편들이 접근을 못하고 있지만, 이 상황도 오래 가진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니 우리도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은 당연한 말이었다. 지금은 파이어뉴트가 맹활약을 하고 있지만, 란족도 바보가 아닐 것이다. 불꽃 거인의 형상이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겠지.

그러면 끝난다. 무차별적으로 달려들 수많은 비행체의 공격 앞에 우리가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아니.

“그러니 당신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줘야겠어요.”
“…….”

비로소 상황이 파악된 걸까. 혹은 자신이 ‘수장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떠벌였던 행동에 뒤늦게 아차하는 걸까. 그래서 자신이 가치 있는 인질로 여겨지게 됐음을 깨달은 거겠지.

비행사의 굳은 표정에 침울함이 배어났다.

덕분에 나는 쓴웃음을 삼키고 말았다. 당신도 억울하겠지만, 사실은 나도 어처구니가 없거든요. 살다살다 인질극을 벌이게 될 줄은 몰랐단 거죠, 나도.

나는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이 사람 일단 묶자. 여기, 비행체에 달린 덩굴을 좀 떼어내면 충분할 것 같아.”
“그럼 비행체는?”

요재가 물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아까까지는 이걸 강탈해서 타고 도망칠까 싶었거든. 그런데 그랬다간 오히려 더 곤란해질 거 같아.”
“조안 말이 맞아. 우린 조종법도 모르고, 이 비행사가 우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조종을 해줄지 믿을 수도 없고. 설령 정상적으로 비행을 한다고 해도 곧바로 추격까지 당하게 될 거고.”

다비도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무작정 도망치기보다는 저들, 란족과의 갈등부터 원만히 해결하는 게 우선일 듯했다.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묶어.”
“자, 잠깐!”

비행사가 버둥거리며 반항했지만, 우리 전부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막상 묶으면서 보니, 식물 같은 가느다란 줄기가 얽혀서 구성된 란족의 팔다리 힘은 생각보다 약했다. 솔직히 나 혼자서도 제압이 가능했을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비행사를 꽁꽁 포박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꽉 묶은 나머지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읍읍! 으읍!”

입이 막힌 비행사가 애처롭게 꿈틀거렸다. 물론 우리는 그 몸짓을 애써 무시했다. 대신 저 상공의 나무에서 꽁꽁 묶인 비행사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흙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그 주위의 흙을 발로 파내며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

눕혀진 비행사를 가리키는 화살표였다.

“기왕 하는 거, 우리 뜻도 전달하자.”
“응, 난 다비 말에 찬성.”
“어, 나도.”

세나와 요재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이제부터 이 사람은 우리 인질입니다. 우리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면 이 사람을 풀어줄 거예요, 는 어때?”

내가 물었다.
다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만 하면 안 돼. 우리가 안전하게 도망칠 방법도 있어야지. 그러니까, 우리가 추락시킨 꽃잎 비행체를 순순히 넘겨주고, 조종법도 모두 알려줘! 는 어떨까?”

다비의 말에 요재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가 멀리 날아갈 때까지 추격하지 말 것! 그거까지 확인하고 이 사람 풀어줄 거예요, 라고도 쓰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서두르는 게 좋아요. 이 사람, 제법 다쳤어요. 라고 알려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조조바도 인질을 슬쩍 살펴보며 말했다.

루이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캣닙 내놔!”

 
“……캣닙이 뭐야?”
“엄청 화끈한 거.”
“그거도 쓰자고?”
“응.”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샤. 그런 우리 모두를 향해 세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들 내용이 너무 길어. 그거 다 써봤자 너무 멀어서 저기선 안 보일 거 같은데?”
“…….”
“그냥 간단하게 가자. 인질이 있으니 협상을 하자, 라고.”

결국 세나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어쨌건 그렇게 우리의 협박문이 완성되었고, 나는 조금은 초조해지는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떠 있는 웅장한 나무. 우리의 메시지가 저곳까지 닿았을까. 과연 인질극이 효과적으로 먹힐까.

그런 내 초조함은 기우에 불과했다.

잠시 후, 나무의 일부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란족의 수장이 우리 앞으로 내려왔다.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정중한 몸짓으로.

나는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협박이라는 거, 효과 확실하구나.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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