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하늘의 습격자 (1)
(24/38)
23화. 하늘의 습격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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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하늘의 습격자 (1)
2023.04.2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저기 있잖아. 나무가 저렇게 커도 돼?”
“응 안 돼. 게다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그건 더 안 돼.”
“그렇지?”
“응. 당연히.”
요재가 멍하니 건네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고 싶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다. 왜냐고. 온 힘을 다해서 뛰는 것만 해도 숨이 차니까!
“후! 허억!”
나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고르며 옆을 흘끗 돌아보았다. 세나와 다비가 나란히 뛰고 있었다. 그 건너편으로는 벌써 지쳐가는지 비틀거리는 조조바와, 그런 조조바를 부축하는 루이샤가 보였다.
그나마 요재는……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산들바람처럼 가볍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급히 말했다.
“저기! 나는 괜찮으니까! 다함께 숨을 곳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어? 그래, 알았어.”
내 뜻을 알아챈 걸까. 혹여나 낙오하는 친구가 있을까 근처를 맴돌며 속도를 맞춰주던 요재가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먼저 주위를 정찰하며 몸을 숨길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일단은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간단하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살벌한 기세의 꽃잎 비행체로부터.
……슈욱!
달음박질을 하는 와중에 간신히 떠올리기 무섭게, 내 머리 위쪽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꽃잎이다. 아까 우리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나무. 그곳에서 분리되어 하늘하늘 떨어져 내려온 꽃잎.
처음엔 예뻤다. 레퓨지아 만큼이나 거대한데 허공에 더 있는 나무도. 우아한 춤사위로 허공을 수놓던 꽃잎의 낙하도. 전부. 적어도 우리가 공격받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이를 악 물며 더 빨리 뛰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이었다. 가느다랗고 이질적인 소리가 머리 위 뒤쪽에서부터 들려왔다.
퓨퓻!
“읏!”
그걸 듣자마자 나는 몸을 날렸다. 무릎이건 팔꿈치건 어딘가는 까지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저 소리가 내 뒤에서 들렸다는 건, 꽃잎에서 발사된 독침 탄환이 나를 노린다는 뜻이니까.
그 짐작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으읏!”
콰당탕! 푸푹!
내가 우당탕 넘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뒤쪽 땅바닥에 가시가 꽂혔다. 손바닥보다 큰 가시가 열 개가 넘었다. 저기에 찔리면 많이 아프겠지. 아니, 무사할 수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를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는 꽃잎 비행체. 그 위에 탑승한 초록 피부의 괴상한 종족. 마침 그도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일순간이지만 눈길이 마주쳤다. 날 보며 아쉬워하는 눈빛. 뭐가 아쉬운 걸까. 독침이 빗나가서? 사냥에 실패해서?
의문을 떠올리며 나는 문득, 5분쯤 전부터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을 떠올렸다.
***
처음엔 그냥 먹구름인 줄 알았다.
따가운 햇볕 가득한 황야에 갑작스러운 먹구름이라니.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너무 컸으니까. 파랗던 하늘을 온통 가릴 정도로 드넓은 실루엣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뭐야…… 이거?”
멍하니 묻던 요재.
그런 요재 곁으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려오던 작은 꽃잎 가루.
그걸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아야 했다. 먹구름이 아니다. 꽃이었다. 태어나서 본 가장 거대한 물체가 하늘에 떠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 같은데.”
“저게 말이 돼?”
“응, 안 돼.”
“그렇지?”
“응.”
세나와 다비가 멍하니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나무에서 꽃잎 몇 장이 분리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꽃잎이 그냥 떨어진 걸로만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거…… 우리한테 날아오는 거 같지 않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확실했다. 저 꽃잎, 조금 이상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늘하늘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건…… 비행이다, 확실히.
“조안 말이 맞는 거 같아.”
“게다가 저 꽃잎도 엄청 큰데?”
조조바와 루이샤의 목소리에 희미한 불안감이 배어났다. 둘의 말대로였다. 커도 너무 컸다. 말이 꽃잎 한 장이지, 어림잡아도 어지간한 집 한 채만큼이나 커 보였다.
게다가 문제는…….
“더 빨라지고 있어. 그리고 꽃잎 위에…… 사람 같은 게 보여.”
눈을 가늘게 뜬 세나가 말했다.
“사람?”
“응. 그런데 피부가 이상해. 초록색이야.”
“어? 설마.”
세나의 대답을 듣던 루이샤가 콧등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혹시 머리칼이나 옷차림 모양이 잎사귀를 붙인 것처럼 생겼어?”
“정확해. 저들을 알아?”
“응. 어른들한테 들어서 대강은?”
루이샤가 몸을 긴장시키며 낮추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리기를 시작할 것처럼. 아니, 실제로 루이샤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외치면서 말이다.
“란족이야! 도망쳐!”
그 순간이었다.
푸슛, 푸푸푸푹!
“……!”
공기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지면에 연달아 박혔다. 화살? 아니. 가시였다. 사람 팔뚝만큼이나 크고 굵은.
‘무슨.’
루이샤의 외침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때쯤 나는 이미 뛰고 있었다. 세나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우리한테 왜 저러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다비의 물음에 루이샤가 외치며 대답했다. 그사이에도 꽃잎 비행체는 우리와의 거리를 더욱 삽시간에 좁혀왔다. 너무나 빨라서 금방 따라잡힐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저들이 쏘는 커다란 가시에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후! 후웁!”
그것이 우리가 5분쯤 전에 겪은 일이었다. 5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늘에서 빠르게 날아다니며 공격을 퍼붓는 란족? 저들의 비행체를 따돌릴 수도, 뿌리칠 수도 없이 일방적으로 쫓기고만 있는 신세가 됐다.
‘어떡하지?’
거칠어진 숨결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숨을 곳을 찾겠다며 멀리 뛰어간 요재는 어떻게 된 걸까. 언제쯤 돌아올까. 그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는 있을까.
‘아니.’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혹여 요재가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을 찾아낸다 해도, 거기까지 가는 우리를 저 란족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어떡하지. 레퓨지아에서 도망치던 때처럼 목걸이의 힘이라도 발현되기를 빌어야 할까. 아니, 생각해. 뭐라도 좋으니까. 생각을…….
그때였다.
- 그우읏! 그런데 난! 왜 너희랑 같이 도망을 쳐야 하는 거야?
뜻밖의 불평이 들려왔다. 어디에서? 내 손아귀에서. 다급히 뛰는 와중에 나는 믿겨지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내 손에 들려 있는 플람족의 문지기, 화염의 도마뱀 파이어뉴트의 존재를 말이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 그럼 넌 왜 날 붙잡고 뛴 건데?
어이가 없어져서 던진 내 질문에, 파이어뉴트가 더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을 날려왔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5분쯤 전, 란족의 비행체가 우리를 습격하던 때부터, 그래서 우리가 허겁지겁 도망치던 때부터 줄곧 파이어뉴트를 붙잡고 달린 거다, 내가.
“내가 어째서?”
-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다짜고짜 날 움켜잡았잖아?
“내가 그랬어?”
- 그래!
“왜?”
-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고!
“……응 미안.”
솔직히 급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것 같았다. 아마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파이어뉴트도 보호하려고 했던 걸까, 나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이어뉴트의 따지는 말에 난감함을 느끼던 나는 문득, 뭔가가 떠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파이어뉴트에게 물었다.
“저기, 있잖아? 부탁 하나만 해도 돼?”
- 부탁은 내가 하고 싶은데? 나부터 좀 내려놔 줘!
“아니. 내 부탁부터.”
- 뭐어?
“너 아까,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때에 말야. 그때 우리한테 보여줬던 거, 다시 할 수 있어?”
- 내가 너희한테 보여줬던 거?
“응. 불꽃 거인!”
문득 떠올랐다.
아까 파이어뉴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때에, 우리를 굽어보던 엄청난 덩치의 불꽃 거인이 말이다. 물론 그건 파이어뉴트가 허세를 부리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했다. 하지만 충분히 진짜 같았다.
그러니까 통할 거다, 저들 란족에게도.
나는 확신을 품으며 빠르게 말했다.
“솔직히 아까, 네가 불꽃 거인의 모습으로 우릴 놀래켰을 때 말이야. 난 그거 진짜인 줄 알았거든. 내심 엄청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웅장하고 위대한 모습은 처음이라서.”
- 그, 그랬어?
되묻는 파이어뉴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내게서 들은 뜻밖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나는 그 감정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응!”
- 정말?
“정말이야. 살면서 그렇게 위압적이고 거대하면서 멋진 광경은 처음이었으니까. 만약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당장 바닥에 납작하게 꿇어 엎드렸을지도 몰라. 진심으로.”
……사실 뻥이 좀 많이 섞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달리는 와중에 숨이 차도록 말하면서도 파이어뉴트의 표정을 살폈다. 파이어뉴트는 내 입발린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과연 돌아오는 반응은…….
- 허? 하! 하하? 그렇게 멋졌단 말이지?
파이어뉴트의 입이 싱글벙글 귀에 걸리는 게 보였다. 됐다. 통했다. 나는 잽싸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응, 당연하지!”
……그래. 애초에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니까 처음 만나는 상대 앞에서 그런 모습으로 위장을 했겠지.
내 추측은 정확했다.
파이어뉴트는 내 맞장구에 한층 즐거운 기색을 보였다. 급기야 이런 말까지 했다.
- 그럼 그게 또 보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응, 당장. 가능해?”
- 물론!
파이어뉴트가 호기롭게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공기 찢어지는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란족의 비행체 꽃잎이 가시를 내쏘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까보다 훨씬 가까웠다.
“……!”
피할 수 있을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가시에 맞지 않기를 바라며. 땅을 구르기 직전에 파이어뉴트를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외쳤다.
“그럼 지금! 부탁해!”
내 외침이 울려 퍼지는 순간.
……투화학!
파이어뉴트가 던져진 자리에서 거대한 불꽃 거인의 환영이 대지를 박차고 일어났다. 실로 웅장하게. 너무나 위압감 넘치는 모습과 자세로. 하늘을 향해 불꽃의 포효를 한껏 터뜨리며.
- 누가 내 잠을 함부로 깨우는가! 쿠워어어어억!
너무나 갑작스러운 거대한 등장과 포효.
그 서슬에 추격을 해오던 꽃잎 비행체 한 장이 당혹감에 젖어 급선회를 시도하는 게 보였다. 무리한 선회 때문에 허공에서 균형을 잃는 모습도. 아래로 틀어박히듯 추락하는 모습까지 전부.
쿠콰앙!
“…….”
이게 진짜로 되는구나.
상황을 깨달은 나는 쓸린 무릎을 살필 틈도 없이 땅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추락한 꽃잎 비행체를 향해 냅다 뛰었다.
이제는, 우리가 저걸 탈취할 때가 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