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불꽃의 전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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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불꽃의 전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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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불꽃의 전령 (1)
2023.04.1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조심해요, 피코!]
“어?”
나는 토끼눈을 뜨고서 다비를 돌아보았다. 방금 들려온 기묘한 목소리가 다비의 배낭에서 흘러나온 까닭이었다.
‘기계음?’
배낭 속에서?
휴대폰은 아닐 텐데?
“저기, 다비야?”
“응?”
다비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나 보다. 어쩌면 나보다 눈이 더 동그래진 것도 같다.
나는 다비에게 물었다.
“방금 소리, 혹시 네가 낸 건 아니지?”
“응. 물론.”
“너 휴대폰이 하나 더 있었어?”
“아니. 물론.”
“그럼?”
“내 배낭에 남은 기기라곤 iPS 밖에 없는데.”
“…….”
그게 말을 했다고?
그때였다.
[누구야? 누가 기계음을 내었어, 피코?]
“…….”
확실하다.
다비의 배낭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다. 그런데 다비의 배낭에 있는 기기는 iPS 밖에 없다. 우리를 모이게 했던 레퓨지아 관측 기기. 하지만 레퓨지아 밖에 나와서는 먹통이 되어 버렸던 애물단지.
그런데 그게 말을 한다고?
“잠깐 볼게.”
다비가 배낭을 열었다. 그러고는 마치 위험한 무언가를 살피듯 자신의 배낭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반응(?)이 곧바로 왔다.
[와하핫! 갑자기 만지면 간지러, 피코!]
“꺄앗!”
다비가 깜짝 놀라며 손을 움츠렸다. 나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놀랐다.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미, 미안.”
무안한 걸까.
루이샤의 말에 다비가 조금 빨개진 얼굴로 대꾸했다. 그리고 다시 배낭에 손을 넣어 iPS를 꺼냈다. 그런데…… iPS의 정사각 위쪽 면에 전에는 본 적이 없던 녹청색 불빛의 기호가 떠올라 있었다. 누군가가 따로 건드린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지니고서 전원이 켜진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의아함을 느끼던 무렵이었다.
[다들 안녕, 피코?]
화아악!
중성적인 목소리의 인사말과 함께 녹청색 불빛이 위쪽으로 쏘아졌다. 이윽고 동글거리고 말랑거리는 모양의 형체가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이게 무슨…….”
제일 놀란 아이는 다비였다. 엄마가 iPS를 설계했고, 그걸 직접 제일 많이 다룬 아이가 다비였으니까. 그런 iPS에 자신도 모르는 기능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들 뭘 그렇게 놀라서 쳐다봐, 피코?]
“…….”
이거 실환가.
우리 모두는 멍해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저기 있잖아. 혹시 우리 말을 듣고 대답을 한 거야?”
[대답인 걸 아는 거 보니까 바보는 아니네, 피코?]
“뭐어?”
생각지 못한 일침에 나는 대답이 궁해져 버렸다. 대신 다비가 나섰다.
“너, 뭐야?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혹시 iPS에 숨겨진 대화 기능이야?”
[숨겨진 적 없다, 피코.]
“그럼?”
[나는 처음부터 쭈욱 있었다. 그런데 너희가 내 존재를 몰랐던 거지, 피코.]
“처음부터? 그럼 설마, 우리 엄마가 iPS를 만드셨던 때부터?”
[엔지니어 Q?]
“응, 우리 엄마.”
다비의 고갯짓이 조금 빨라졌다.
iPS도 즉시 대답했다.
[그녀는 내 엄마이기도 하다. 날 만들었으니까. 너희가 단지 레퓨지아 내부의 지형을 탐색하는 용도라고만 생각하는 기능도. 그 외의 훨씬 광범위한 기능도 모두, 피코.]
“그 외의…… 광범위한 기능?”
[그래. 너흰 iPS가 그저 레퓨지아 내에서만 쓰이는 기기라고 여겼지, 피코?]
“어, 응.”
[멍청이, 피코.]
“…….”
[자신이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하고 위험한 일은 없다, 피코.]
“그건…… 우리 엄마가 자주 하셨던 말씀인데?”
[나도 배웠다. 내 엄마기도 하니까.]
“어쨌건 그럼, 너한테 우리가 모르는 기능이 더 있다는 거지?”
[당연하지, 피코.]
“어떤 게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공짜로, 피코?]
“…….”
이번엔 다비의 말문이 막혔다. 말끝마다 피코, 피코라고 붙여대는 저 iPS의 인공지능인지 뭔지, 은근히 까탈스러운 성격인 걸까.
하지만 세나가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비야? 일단 iPS 전원부터 끄자.”
“……응?”
세나의 말에 다비가 깜짝 놀랐다. 세나가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여긴 그늘도 없는데 햇볕은 너무 따가워. 이렇게 우두커니 있다간 금방 지쳐 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 당장 도움도 안 되는 iPS는 꺼 버리자. 나중에 쉴 곳을 찾은 다음에 다시 여러 가지를 물어보면 되잖아?”
좀 돌직구 같지만,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물론 iPS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 듯했지만.
[나, 나 도움 된다, 피코!]
iPS의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해졌다.
[무시하지 마라, 피코!]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하지만 무시하는 거 아니야. 네가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은 쉽지 않아.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야. 지금 이렇게 네 말장단에 맞춰줄 여유는 더더욱 없고.”
세나의 말은 부드럽고도 단호했다.
iPS의 반응이 볼 만하게 변했다.
[여기 기둥 건너편 앞쪽부터는 플람족의 땅이라서 지열이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플람족은 불꽃 그 자체로 이루어진 존재들로, 자신들의 땅을 온통 불태우면서 살고 있으며, 평범한 인간, 즉 가연성 신체를 가진 종족이 부주의하게 영역에 들어오면 자비 없이 태워서 그 에너지를 빼앗는 방식으로 생활합니다, 피코!]
“…….”
어, 음, 대단하다. 나도 저렇게 숨도 안 쉬고 빠르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후로도 iPS의 재빠른 설명이 이어졌다.
[플람족은 원래 나무 위에 둥지를 이루어서 햇볕으로 만족하며 공생하던 종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푸른 반딧불이 때문에 욕심이 과해져서 나무를 다 태워 버렸어요. 그래서 저 모양 저 꼴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걸어 들어가면 빠져나올 틈도 없이 까맣게 타 버릴 수가 있습니다, 피코!]
“설명은 거기서 끝?”
[옙, 피코!]
“혹시 그럼 말이야. 너, 레퓨지아 외부의 정보들을 알고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다만, iPS가 현재 위치한 지역의 정보만 검색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피코!]
“왜? 다른 지역은 안 되는 거야?”
[저를 소유한 당신들, 마법을 쓰는 위카족의 눈과 귀를 통해서, 그 핏줄에 새겨진 유구한 기억을 읽어내는 작업이니까요, 피코?]
위카족?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교과서도, 어른들도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위카족이 뭐지?”
세나가 물었다.
[당신들 같은 마법 종족입니다. 혹자는 마법의 선도자, 또 누군가는 두려움과 경외를 담아 마녀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어쨌건, 레퓨지아가 건설되기 전에는 이 땅의 문명을 이끌던 종족이었지요. 지금은 당신들처럼 대부분이 그 시절의 영광을 잊고서 살아가고 있지만요, 피코!]
“그래, 알겠어.”
[예! 그럼 저 강제종료 안 하시는 거죠, 피코?]
“너 하는 거 봐서.”
“…….”
세나, 대단해.
그토록 까칠하고 까다롭게 굴던 iPS를 단숨에 길들여 버렸다. 하지만 내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못했다. 세나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요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피코?”
[……네, 피코?]
“넌 참 똑똑하구나?”
[헤헷, 그, 그렇습니까, 피코?]
“응. 네가 아니었으면 우린 아무 대비도 못 하고 이 앞으로 걸어갔을 거잖아? 그럼 네 말대로 까맣게 타 버렸을 거고. 고마워.”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피코라고 부르시는 건지요, 피코?]
“그냥 이름 붙여준 거야. iPS보다는 부르기 편할 거 같아서?”
[……고마워요, 피코!]
세나의 채찍에 이은 요재의 당근인가. 둘의 연이은 냉탕과 온탕 작전에 iPS 인공지능, 피코가 제대로 휘둘렸다.
그걸 보면서 감탄하는 한편으로 나는 의아함 또한 느꼈다. 조금 전에 피코가 해주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쓰는 위카족.
그게 우리의 정체란다.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먼 곳을 투시하는 세나, 미세한 소리를 잡아내는 다비, 산들바람처럼 달리는 요재까지. 모두가 레퓨지아를 떠나온 뒤부터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니까.
나만 빼고.
“…….”
시간이 지나다 보면 뭔가가 생기겠지. 성급해하지 말자. 나는 살짝 느껴지려던 자괴감을 애써 누르듯, 점퍼 위에서 안쪽의 목걸이를 눌러 확인했다. 그리고 iPS, 피코에게 물었다.
“그럼 말이야. 네 말을 따르자면 여기가 플람족이라는 이들의 땅이라고 했잖아? 혹시 우리가 이곳을 안전하게 건널 방법이 있을까?”
제일 중요한 건 그거다.
우리는 체험학습을 하러 나온 게 아니니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이곳을 빠르고 안전하게 지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마침 피코는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네, 있습니다, 피코!]
“어떤 방법이야?”
[모닥불을 피우면 됩니다, 피코!]
“응?”
나는 의아해졌다. 모닥불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피코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야 플람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도와줄 통역사가 찾아올 테니까요, 피코?]
“…….”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과연 저 말을 믿어야 할까. 일단은 확인이 필요할 듯했다. 가장 간단한 확인 방법은 직접 해보는 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리 중에 땔감 가진 사람?”
“…….”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땔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심지어 우리 중에 제대로 된 가방을 지닌 아이는 다비와 조조바 뿐일 정도였다.
심지어 주위엔 흔한 나뭇가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아도 온통 붉은 빛이 감도는 황무지가 다였다.
‘이런 곳에서 모닥불을 어떻게 피우지?’
조금 난감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루이샤가 나섰다.
“음, 드디어 다들 내 도움이 필요해진 거 같네?”
돌아보니 루이샤가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슨 뜻일까. 루이샤가 피코를 향해 물었다.
“그럼 피코? 모닥불을 태우는 시간은? 잠깐이라도 괜찮은 거야?”
[네! 아주 잠깐 태우는 걸로도 충분해요, 피코.]
“그래애?”
루이샤의 눈웃음이 의미심장해졌다. 이내 루이샤가 우리 모두를 돌아보며 더욱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져 왔다.
“여기 빗 있는 사람?”
“빗?”
“응.”
“그건 왜?”
다비의 물음에 루이샤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게 있으면 땔감을 잔뜩 만들 수 있을 거니까? 암튼, 있어?”
“어, 있긴 한데.”
“그럼 꺼내봐. 얼른.”
“…….”
다비가 배낭에서 빗을 꺼냈다. 루이샤가 샐쭉 눈웃음을 지었다.
“잘됐네. 마침 털 정리가 좀 필요했는데.”
그 말이 끝난 직후였다.
루이샤의 전신이 은은한 빛에 휩싸였다. 변신은 순식간이었다. 빛이 사라졌을 때, 루이샤는 우리와 처음 만났던 때의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자, 내 등을 좀 정리해 줄래?”
“……아.”
비로소 우리는 루이샤가 뭘 생각하는지를 깨달았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조조바에게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중에 조조바의 손재주가 제일 좋으니까. 게다가 나나 세나, 다비나 요재는 동물의 털을 빗질해 본 경험이 없으니까.
“어…… 내가?”
돌연 모두의 시선을 받은 조조바가 얼결에 빗을 건네받았다. 루이샤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조바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식빵 같은 자세를 잡아주었다. 마치, 너에게 내 털을 맡기노라, 라고 선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음, 어, 그럼, 해볼게.”
조조바가 자신 없는 기색으로 빗을 들었다. 조심조심, 루이샤의 등을 빗질해 주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신중하게.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풍성한 털뭉치가 빗질을 따라 끝도 없이 나왔다.
“아, 시원해. 이거 오랜만이다아.”
루이샤도 기분이 좋은 걸까. 어느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신감(?)을 얻은 조조바의 빗질이 조금씩 과감해졌다. 더욱 많은 털뭉치가 나왔다. 루이샤의 저 작은 몸에서 저만큼 나올 수가 있나 싶을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이불도 만들 수 있겠어.’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떠올릴 무렵. 마침내 조조바의 빗질이 끝났다. 땔감(?) 채집이 완료된 것이었다.
우리는 털뭉치를 모았다. 돌돌 뭉쳤다. 불을 붙이는 방법은 쉬웠다. 피코의 말대로라면 여기 앞쪽부터는 땅에 닿는 모든 것이 타오른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던졌다.
커다란 털뭉치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플람족의 땅에 닿았다.
화륵!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화려한 자태로 공간을 휘감는 불꽃.
이내 그 속에서 뜻밖의 통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