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평범한 소망 (1) (17/38)


16화. 평범한 소망 (1)
2023.03.1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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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어 버릴 때가 있다.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 말들을 듣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한 번도…… 수술을 하지 않은…… 너한테는…… 욕망에 무릎 꿇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네게는……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어…….”

눈을 감은 다비가 차근차근 전해주는 말들. 동굴 안쪽에서 오가는 대화인 듯했다. 누구의 말일까. 다비가 실눈을 뜨더니 우리 쪽으로 힐끗 눈길을 주었다.

“조조바는 아니야.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어. 아마도 그래프터족인 거 같아.”
“…….”

아까 세나가 보았다며 전해준 동굴 안쪽의 상황이 떠올랐다. 수많은 그래프터족이 모여 있다고 했던가. 그들의 몸이 온통 산 채로 썩어가고 있노라 했다.

그들이 조조바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걸까. 혹시 조조바에게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먹을 꾸욱 쥐었다.

그사이, 다비가 눈을 감았다. 더욱 집중하며 안쪽의 대화를 엿들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후회했지……. 수없이 많은 희생자의 신체를…… 속이고, 빼앗았고…… 그들의 팔다리, 심지어 얼굴까지…… 우리의 몸에 갖다 붙였어……. 그렇게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왔지…… 남의 몸을 약탈하고서…… 운명을 기만하며……. 하지만 그게…… 잘못된 욕망이라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단다, 일족의 어린아이야…….”
“…….”

나는 무의식중에 숨을 멈추었다. 아까 우리를 속였던 남자가 떠올랐다. 망토를 걸치고서 나긋한 소리로 우리를 유혹했지. 그리고 우리의 몸을 빼앗으려 들었지.

안쪽의 사람들도 같은 짓을 했던 걸까.

그런 것 같았다.

다비가 전하는 안쪽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 잘못된 욕망이었어, 그건…… 처음엔 인정하기 싫었단다. 하지만 어떡하겠니. 원래의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잊어 버린 채로…… 남에게 빼앗은 껍데기를 덮어쓴 채로 살아가는 것에…… 고깃덩이 같은 삶을 그저 연장하기만 하는 이런 목숨에…… 더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먹이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고…… 잡아먹고…… 배를 채우며 얻은 양분으로 다시금 먹이를 잡으려 그물을 치는…… 끝도 없이 그런 삶을 반복하기만 하는 거미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다비의 목소리가 차츰 낮아졌다. 마치 회한에 젖어드는 듯한 어조였다. 안쪽에서 조조바에게 말을 건네는 그래프터족의 말투가 그런 거겠지.

“그래서란다, 일족의 아이야. 우리는 덧없이 반복되는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로 결심했단다. 신체 약탈을 중단했지.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모습과 같고 말이다. 어떠니, 추하지 않니?”
“…….”

조조바는 무슨 대답을 할까.

곧이어 다비의 입을 통해 나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모르겠어요. 난…… 그저 당신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다. 옳은 결정이야……. 열여덟이 되도록 욕망을 참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남의 신체를 손쉽게 얻고서 더욱 우월해질 거라는 생각에 잡아먹히지 않는 일이 간단치는 않았을 터인데…… 장하구나, 장해. 그래서 우리가 너를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란다.”

결정?

무슨 결정?

다비가 전해 주는 이야기를 듣던 나는 멈칫했다. 결정이라. 어쩐지 오늘 들어본 말인 듯한데. 아, 그래. 아까. 조조바에게서.

‘사실은 공교롭게도 오늘이 내겐 ‘결정의 날’이거든.’

……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말을 꺼내던 조조바의 얼굴에 쓸쓸한 기색이 스쳤던 것도 같다.

아까 저 말을 들을 때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알 수밖에 없게 됐다. 다비가 전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단다. 말했지? 우리의 모든 역량을 모아서 만든…… 이 백신을 말이야…….”

백신이라.

무엇을 위한 걸까.

그 해답도 곧 알 수 있었다.

“전 그럼, 그 백신을 맞으면 앞으로 신체 이식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는 거겠죠?”

조조바의 물음이었다.

그래프터족의 대답도 곧바로 이어졌다.

“물론이란다…… 전에 설명했지? 이걸 맞으면 이식한 신체에 거부반응이 일어날 거라고…… 대신…… 체질이 바뀌는 과정이 주는 끔찍한 아픔을 견뎌내야겠지만.”

아픔이라.

얼마나 아프길래?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다비가 입을 닫았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서 미간을 콱 찡그렸다. 다비는 대체 무슨 내용을 들은 걸까.

“다비야?”

나는 다비를 쳐다보았다.

잠깐 망설이던 다비가 안쪽의 말을 전했다.

“알아요. 견뎌내면 체질이 바뀔 거고, 못 견디면 죽을 거고. 그 확률은 반반. 전에 일러주셨죠?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 망설인 거였고.”
“…….”

아마 조조바가 꺼낸 대답이겠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체질을 바꾸는 백신. 맞으면 끔찍하게 아파서 살아날 확률이 절반밖에 안 된다니. 망설였을 법도 하다. 그런데 어째서 조조바는 저토록 무서운 백신을 맞을 결심을 품게 된 걸까.

안쪽의 그래프터족들도 비슷한 궁금증을 느낀 것 같다.

“그래. 맞단다, 일족의 아이야……. 하니 하나 묻자꾸나. 넌 어떻게……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을 품었다니?”
“그 아이들을 만나 버렸거든요.”
“그 아이들……?”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속아서 붙잡히고, 신체를 빼앗길 상황에 처한 사람이 어떤 눈빛을 품게 되는지. 얼마나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전부 봐 버렸으니까.”

우리 이야기다.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다비가 전하는 조조바의 말이 이어졌다.

“나랑 똑같다고 느꼈어요. 아프면 아파하고, 두려우면 두려워하고. 당연한 건데 새삼스러운 기분이었달까요. 특히 날 보던 눈빛 때문에요. 만약 내가 누군가의 신체를 약탈해서 그걸 내 몸에 붙이고 살게 되면…… 그 눈빛이 평생 기억날 거 같아서. 도저히 떨쳐낼 수 없을 거 같아서. 도저히 그러고 살 자신이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하였구나?”
“아마도 그렇겠죠. 여기까지 온 것도, 아주머니가 내미는 주삿바늘 앞에 팔을 내밀고 있는 것도. 금방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니다. 장한 결심이란다.”
“많이, 아플까요?”
“아마도. 상상 이상으로.”

거기까지 전해주던 다비가 말을 멈추었다. 아니, 숨도 멈추었다. 나는 눈가에 힘을 주며 다비를 쳐다보았다.

“다비야?”
“……쉿.”

다비가 손가락을 입술 앞에 들어 보였다.

“주사를 맞고 있는 거 같아.”
“…….”

결국 맞았구나. 괜찮을까. 엄청나게 아프다고 그랬는데. 죽을지도 모를 만큼 아프댔는데. 나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다비를 쳐다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심정인 걸까. 다비에게 모인 모두의 눈길에 초조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1분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다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못 듣겠어.”
“왜? 많이 안 좋아?”
“그냥…….”

다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다비의 안색은 어느새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조조바가, 아까 그 아이,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어.”
“…….”
“주사를 맞은 직후엔 그랬어. 너무나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던 거겠지. 그런데 이젠 비명도 들리지 않아. 그저…… 가쁜 숨만 간신히 몰아쉬고 있어.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는 다비의 눈빛.

차마 전해야 할까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나는 주먹을 꼭 쥐며 다비의 눈길을 마주보았다. 그런 내 간절한 기분 덕분일까. 잠시 멈칫하던 다비의 말문이 열렸다.

“백신을 주사한 그래프터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그런데 내용이 좀 안 좋아.”
“어떤데?”
“자기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통증이 더 극심한가 봐.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대. 그러니까, 후우. 조조바가 통증을 이겨낼 확률을 낮게 보고 있는 거 같아.”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반발하듯 반문한 아이는 요재였다.

“말도 안 돼. 아무리 확률이 반반이라지만, 엄청나게 아프다지만, 그걸 준비했으면 조조바가 안전해질 다른 준비도 해둬야지. 이제 와서 예상보다 부작용이 심한 것 같다면서 당황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너무하잖아, 그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흥분한 요재가 쏘아붙였다. 나도 동감이다. 지금도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조조바가 걱정이 되었다. 그만큼 그래프터족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화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또?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더 전해줘.”

나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다비에게 부탁했다. 다비가 더욱 집중하며 안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내 떠듬떠듬 전해주는 동굴 안쪽의 이야기들.

“으음…… 우리는 이제…… 어떡하죠? 이 아이, 이대로 두면…… 죽을 텐데요. 중화제를 가져올까요……?”
“안 됩니다. 중화제를 맞으면…… 우리의 유일한 백신이 약효를 잃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아이가 죽게 둘 수는 없잖아요?”
“아직 실패한 건 아닙니다. 조금 더 지켜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지 않습니까? 실패할 각오도…… 다들 품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아이를…… 믿습니다. 해낼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들 이 아이에게 힘을 줍시다.”
“힘을 준다니…… 어떻게요?”
“이 아이가 스스로 희망을 갖도록 말입니다. 삶에 대한 의지를 품도록 말입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갈 의지를 지닐 말들을 해줘야지요.”
“그걸로…… 될까요?”
“중화제를 투여하는 것 외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 무슨 말을 해줘야 하죠?”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가득할 거라고는 이야기를 해줘야지요. 예를 들자면…….”
“들자면요?”
“으음, 그게…… 아름다운 풍경이라든가…….”
“그런 걸로 될까요? 게다가 우린 이 숲을 벗어난 적도, 바깥 세상의 풍경이 어떤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으음…….”

듣다 보니 알겠다. 안쪽의 그래프터들도 당황하고 있다. 이유는 뻔했다.

안쪽의 그래프터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한 사람들. 다들 본인들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반성에만 사로잡혀, 과거에 매몰된 이들인 거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미래의 희망을 입에 담을 줄을 모르는 거다.

‘그럼 우리는?’

나는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안쪽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비. 발을 동동 구르는 요재. 심각한 표정인 세나. 난감한 듯 얼굴을 찌푸린 루이샤까지.

“혹시 말이야.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미 꺼낸 말이었다. 나는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내가 보기엔 안쪽의 그래프터족은 조조바에게 도움이 별로 안 될 거 같아. 저들이 무언가 희망찬 이야기를 건네줄 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예를 들자면 어떤?”

요재가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무작정 즐겁거나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나도 잘 모르겠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런데 안쪽에서 그래프터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문득, 어제부터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래서.”
“어제부터 우리가 겪은…… 일들?”
“응. 무섭고, 아프고, 힘들었던 거 전부 다. 그런데 난 말야. 그 순간들마다 이런 기분을 문득 느꼈거든. 지금 무섭고, 아프고, 힘든 거 전부…… 다 지나갈 거라고. 그 뒤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난 사실 낡은 도서관 창가에서 멍하니 햇볕을 쬐는 게 참 좋았거든.”
“어? 나도 비슷해.”

요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사과파이 먹고 싶어. 지금 이런 것들 다 끝나면.”
“으음…… 난 퍼즐 풀기.”
“생각없이 낮잠 자고 싶어.”

세나가 슬며시 말했다.

루이샤의 입도 열렸다.

우리 모두는 다비를 돌아보았다.

“어…… 음, 나는…… 수학 공부. 공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스스로 풀어내는 거 재밌거든. 집에 돌아가면, 혹은 이 모든 게 끝나면…… 다시 수학 공부할래.”

얼결에 다비도 떠듬떠듬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듣고 보니 나도 그렇고, 다들 참으로 사소하고 평범한 소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저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건지.

‘이 여행이 끝나면…….’

그럴 수 있을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지금, 조조바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으면 좋겠다. 사소하고 평범해도 상관없다. 원하는 순간을 누리려면 지금을 이겨내야 하니까. 평범한 일상이라는 건 사실은 전부 그렇게 이루어지는 거니까.

……라고 내가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어?”

별안간 다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까닭일까. 설마 안쪽의 조조바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슬며시 걱정이 고개를 치켜들려던 순간.

“어째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방금 내가 한 이야기가 텔레파시처럼…… 조조바한테 전해진 거 같아.”

다비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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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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