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결정의 날 (2) (16/38)


15화. 결정의 날 (2)
2023.03.0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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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액 안개 괴물의 효과(?)는 굉장했다.

구슬을 터뜨리자마자 끈적한 안개가 사방을 휘감고, 휩쓸었다. 우리를 추격하던 남자가 엄청나게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 그흣! 이게 무슨……!”

당혹감에 휩싸인 남자가 허우적거리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반면, 우리는 남자만큼 당황하진 않았다. 바로 어제 온종일 점액안개에 시달렸으니까. 덕분에 점액 안개에 싫어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져 버렸으니까.

‘숨 참고, 최대한 빠르게.’

마침 우리에게는 삼륜차가 있었다. 나는 삼륜차 핸들을 돌리며 스로틀을 당겼다.

부르르르릉!

삼륜차가 다시금 우렁차게 포효하며 땅을 밀어냈다. 우리는 되도록 숨을 참으려고 애를 쓰며, 숨이 막힐 때만 간신히 실낱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신경을 쓰며 몸을 낮추었다. 스로틀을 당기는 나도, 짐칸의 친구들도 그랬다.

“거헉! 콜록, 쿨룩! 거, 거기…… 서!”

이쪽의 도주를 알아차린 걸까. 남자가 연신 콜록대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도 차츰 잦아들었다. 아마도 무방비하게 점액 안개를 들이마시고, 서서히 환각을 동반한 잠에 빠져드는 거겠지. 어제의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반면, 우리는 달랐다.

‘더! 빠르게!’

부와아아앙-!

스로틀을 더욱 힘껏 당겼다. 아까 드러났던 함정을 지나쳤다. 오솔길을 따라 질주했다. 덕분에 점액 안개의 영향권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우리, 아무래도 북서쪽으로 가서 동굴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점액 안개와 숲을 완전히 벗어난 직후, 나는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는 뒤쪽 짐칸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세나가 반문해왔다.

“북서쪽? 동굴? 어째서?”
“그런데 방금 점액안개는 뭐였어?”
“완전 놀랐잖아. 어떻게 부른 거야?”

다비와 요재도 앞다투어 물어왔다. 나는 아는 대로만 대답해 주었다.

“조조바. 아까 그 아이가 쪽지를 남겨줬어. 누가 추격해 오면 열어보라고. 점액 안개를 가둔 구슬은…… 그 쪽지 뒤에 붙어 있었고.”
“그럼 혹시, 북서쪽으로 오라는 말도 그 애가 남긴 거야?”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가 알려준 방법 덕분에 남자를 따돌릴 수 있었으니까. 아마도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대로 우리끼리 도망치다간 무슨 함정을 또 만날지 모르고.”
“…….”

내 입에서 ‘함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정말 아찔했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다면 삼륜차와 함께 함정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겠지. 물론 그 아래에 뾰족하게 도사리고 있던 가시가 우리를 반겼을 테고.

“동굴을 찾는 건 쉬울까?”

루이샤가 콧등을 찡그리며 의문을 표했다. 솔직히 나도 별로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 남자가 우리 근처까지 추격해 왔어. 지금은 점액 안개 덕분에 따돌렸지만, 언제 또 쫓아올지 모르고. 아마 조조바도 그런 상황을 예측했던 게 아닐까.”

그러니 안개 구슬을 터뜨릴 일이 생기면, 그 직후에 최대한 빨리 북서쪽 동굴로 오라는 당부를 써둔 것일 터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당부를 무시하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길잡이 없이 도망만 치다간 그땐 더 무방비한 상태에서 더 큰 위협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아까 조조바, 자신 때문에 남자가 많이 화가 났을 거라고도 했지 않던가.

“우릴 죽일 기세로 쫓아오는 남자야. 그런데 만약 이대로 우리를 놓치면…… 조조바에게 화풀이를 할지도 모르잖아.”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랬다. 남겨진 조조바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나름의 생각을 말했고,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삼륜차 핸들을 북서쪽으로 돌렸다.

부르릉-!

힘차게 바닥을 밀어내는 바퀴 뒤편으로 흙먼지가 퍼졌다.

***

북서쪽 동굴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가문비나무 숲을 벗어나자 길은 평탄해졌고, 삼륜차는 덜컹거리면서도 잘만 달렸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자 커다란 높다란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동굴은 절벽 아래에 있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뭐야, 이거? 왜 입구가 막혔어?”

삼륜차에서 가장 먼저 훌쩍 뛰어내린 아이는 루이샤였다. 루이샤가 특유의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절벽에 다가갔다. 그리고 연신 불만스러운 듯 콧잔등을 찡그리며 팔짱을 끼었다.

루이샤가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걸음을 멈춘 곳. 그곳에 ‘한때 동굴 입구였던’ 돌더미가 놓여 있었다.

“혹시 무너진 건가?”
“……아마도.”

나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사람 덩치보다도 훨씬 큰 바윗덩이가 성의 없이 쌓아둔 짐 더미처럼 동굴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언제 이렇게 된 걸까. 답을 찾아낸 아이는 다비였다.

“여기, 돌끼리 부딪치며 긁힌 자국들이 있어. 바윗덩이 사이로 이끼도 끼지 않았고. 이거 최근에 무너진 거야.”
“최근에?”
“어. 아마 며칠 되지 않은 거 같아. 어쩌면 몇 시간쯤?”
“…….”

다비의 똑부러지는 대답을 들으며 나는 문득, 조조바의 창백하고 서글프던 미소를 떠올렸다. 그 아이,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여기 안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참지 못한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내 말을 들은 요재가 흠칫했다.

“맞아. ‘오라’고 했으니까. 분명 여기 먼저 와 있었을 거 같은데…….”
“그 아이, 괜찮을까?”

세나도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동굴 입구를 틀어막은 끔찍하게 커다란 바위 더미를 착잡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동굴 안쪽은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안쪽까지 모조리 무너진 걸까. 다행히 그게 아니라 해도 큰일인 것은 마찬가지일 터였다. 입구가 막히며 안에 갇혔을 테니까.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우리를 도와줬던 아이다. 최소한 그 아이가 무사한지는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는 세나를 돌아보았다.

“세나야. 혹시 말이야. 동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응?”

세나의 눈빛에 떠오르는 당혹감. 저렇게 놀라고 당황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괘념치 않고서 내 생각을 밝혔다.

“어제 말이야. 그렇게나 자욱하던 안개 속에서도 넌 먼 곳까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잖아?”
“응…… 그랬지. 하지만.”
“알아. 안쪽을 보려면 바위를 투시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게, 될까?”
“어쩌면?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나는 확신을 담고서 말했다. 아니, 제발 내 생각이 맞기만을 바랐다. 사실 어제 우리가 겪었던 안개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점액 안개 괴물’이라는, 끔찍하도록 끈적이던 자욱한 안개였으니까.

“세나 너는 잘 못 느꼈겠지만, 우린 어제 안개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제일 심할 때는 앞으로 뻗은 내 손도 안 보일 정도였어. 그런데 넌 달랐지. 그런 와중에도 먼 곳에 있던 순찰대원을 어렵지도 않게 발견했잖아. 그게 투시랑 다를 게 뭐가 있겠어.”
“투시…….”
“응, 투시. 한번 해보자. 실패해도 잘못이 아니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세나.

그 모습에 나는 남몰래 심호흡을 내뱉었다. 솔직히, 학교에서 은따였던 내가 학생회장인 세나를 설득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사이, 세나가 복잡한 표정으로 절벽 앞에 섰다. 입구를 틀어막은 바위를 노려보았다. 효과가 있을까. 과연 안쪽이 들여다보일까. 초조함에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순간, 세나의 미간에 깊은 세로 주름이 생겨났다.

“……있어.”

세나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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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뒤에, 뭔가가 있어.”
“정말?”

우리는 반색했다. 그러면서도 세나의 집중력이 깨지지 않도록 숨소리마저 죽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세나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신기하긴 한데…… 조금씩 보여. 바위 뒤에 공간이 있어. 안쪽이 다 무너지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나는 탁 풀리려는 긴장감을 애써 부여잡으며 물었다.

“그럼 사람은? 있어?”
“어, 잠시만…….”

세나가 미간을 더욱 찡그렸다. 한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러던 것도 잠시.

“……아아!”

돌연, 세나가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마저 돌려 버렸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창백해진 낯빛이었다.

그 모습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세나야?”
“왜 그래?”

세나는 대체 뭘 본 걸까. 얼마나 끔찍한 것을 보았길래 이토록 등이며 어깨를 떠는 걸까. 우리는 세나의 등을 쓰다듬고 한참을 토닥였다.

세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래프터……. 그래프터들이…… 많아.”
“그래프터? 조조바가 말한 자기네 종족?”
“……응. 엄청나게 많아. 그런데 그들 전부가…… 부패하고 있어.”
“뭐?”

무슨 소리일까.

세나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이유는 몰라. 동굴 안쪽에 그래프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그들의 몸이 모조리 썩어가고 있었어.”
“설마, 시체들이야?”
“아니.”

세나가 즉각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 채로 썩어가고 있었어. 그러다가…… 그중의 하나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친 거구나.

그래서 기겁하며 놀란 거구나.

나는 세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전해진 온기 덕분일까. 세나의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잦아들었다.

“나, 더 볼게.”

세나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아까 그 아이, 조조바가 여기 동굴로 오라고 했잖아. 우릴 도운 아이니까, 아무 이유 없이 부르진 않았을 거야. 온몸이 썩어가고 있는 그래프터 사람들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고.”
“다시 들여다봐도 괜찮겠어?”

요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세나는 우리가 말릴 틈도 없이 한 걸음 나섰다. 아까처럼 동굴 안쪽을 투시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세나가 들여다보는 광경은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끔찍한 모습이겠지. 그걸 기꺼이 감수하는 세나에게 다가갔다. 한쪽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때였다.

“……찾았어.”

세나가 중얼거렸다.

“그 아이, 조조바가…… 저기에 있어.”
“정말?”
“응. 동굴 제일 깊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그 주위로 부패한 그래프터들이…… 마치 보호하듯이…… 둘러싸고 있고. 그리고…… 저 아이, 무척 많이…… 떨고 있어.”

대체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번에는 다비가 나섰다.

“그럼 나도 잠깐.”

열심히 애쓰는 세나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걸까. 혹은,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걸까. 다비가 동굴 입구의 바위 더미로 선뜻 다가섰다. 바위에 한쪽 귀를 갖다 대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문득 떠올랐다.

그래, 어제 다비는 안개 속에서 잠들어 있던 다른 친구들의 사소한 숨소리, 작은 중얼거림까지 어느 무엇도 놓치지 않고 들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미 틀렸지만…… 아직 어린 너에게는…… 기회가 있단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있어…… 아직까지 한 번도 수술을…… 하지 않은…… 너한테는…… 욕망에 무릎 꿇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네게는……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어…….”

눈을 감은 다비가 차근차근, 안쪽의 말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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