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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결정의 날 (1) (15/38)


14화. 결정의 날 (1)
2023.02.2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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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약을 너부터 마셔봐.”

나는 한결 단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

조조바의 창백한 얼굴에서 핏기가 더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어설픈 타협을 할 때가 아니니까. 내 판단에 친구들의 목숨이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그랬잖아. 조금 전에. 그거, 잠든 사람은 깨우고 깬 사람은 재우는 물약이랬지? 그럼 그게 독약이나 다른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마셔서 증명해봐.”
“그게 무슨…….”
“네 말대로라면 지금 깨어 있는 네가 그 물약을 마시면 잠들겠지? 그럼 내가 잠든 너한테 다시 물약을 먹여볼 거야.”
“그래서, 잠든 상태인 내가 깨어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거야?”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조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눈앞의 아이가 적인지, 도움을 줄 사람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서 물약을 선뜻 받을 수는 없다. 그걸 친구들에게 먹이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나는 떨리려는 손끝을 말아서 억지로 주먹을 쥐었다. 이쪽을 마주 보는 조조바의 눈길을 담담하게 받아내려고 애를 썼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보이길 바랐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굳은 눈길을 나누는 것도 잠시, 조조바가 미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 네 뜻이 그렇다면.”

조조바가 물약 뚜껑을 열었다. 병 속에 남은 물약의 양을 가늠하더니, 날 힐끗 돌아보며 당부했다.

“이렇게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네 의견을 따를게. 대신 명심해. 이건 나도 한 병만 지니고 있는 물약이야. 지금 이게 전부라는 소리야. 그러니 날 다시 깨울 때엔 네 친구들에게 먹일 양을 충분히 남겨놓길 바라.”

그 말이 끝이었다.
조조바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물약을 입가로 가져갔다. 몇 방울을 입 안으로 떨어뜨려 머금고는 삼켰다.

그럼 약효는 어떨까.

과연 저 아이가 말한 그대로일까.

나는 조조바에게서 보일 변화를 기다렸다. 그사이, 조조바가 침착하게 병뚜껑을 닫았다. 테이블 옆의 의자에 앉았다. 이내 그 눈길이 스르르 감기는가 싶더니 잠에 빠져들었다.

“…….”

진짜인가? 저렇게 잠든 척을 하다가 확 덮쳐오는 건 아닐까. 나는 잠깐 루이샤와 눈길을 나누고는 조심스럽게 조조바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흔들어도, 일부러 눈꺼풀을 뒤집어도 마찬가지였다.

“잠들었어. 확실해.”

루이샤가 말했다.

나는 물었다.

“그걸 알아볼 수 있어? 속임수일 수도 있잖아.”
“아니. 숨소리가 말해주고 있어. 적어도 내 귀는 너보다 훨씬 밝으니까. 이걸 봐.”

콕.

루이샤가 검지를 세우더니 뾰족한 손톱을 살짝 꺼냈다. 그걸로 잠든 조조바의 팔뚝을 콕, 찔렀다. 바늘처럼 뾰족한 끄트머리가 조조바의 팔뚝을 파고들었고, 이내 붉은 피 한 방울이 맺혔다.

동시에 잠든 조조바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숨소리도 살짝 거칠어졌다. 루이샤가 송곳니를 살짝 내보이며 웃었다.

“보통 잠든 척을 하는 인간은 이렇게 했을 때도 표정이나 숨소리가 변하지 않거든. 일부러 잠든 척을 하려고 애를 쓰니까.”
“…….”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럼 이제는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나는 조조바가 쥐고 있는 약병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조조바의 입안에 물약을 몇 방울 떨어뜨려 주었다. 조조바가 다시 눈을 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음…….”

조금은 멍한 눈빛.

하지만 이내 날 올려다보며 내보이는 희미한 웃음. 마치, ‘어때? 내 말이 맞지?’라고 묻는 듯한 미소였다.

덕분에 나는 콧잔등을 조금 찡그렸다. 살짝 무안했다. 하지만 나도 의심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입속으로 대꾸를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약이 진짜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친구들을 깨울 때였다.

“야. 빨리 좀.”
“응.”

루이샤의 재촉을 받으며 세나와 다비, 요재에게 차례로 물약을 나누어 먹였다. 내심 조마조마했다. 지금 먹이는 약이 친구들에게도 효과가 있기를. 어서 눈을 떠 주기를.

그런 내 염원이 통한 걸까.

굳게 닫혀 있기만 했던 친구들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차례대로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조바가 말했다.

“서둘러. 내가 문을 잠가서 시간을 벌어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아마 그 남자, 곧 있으면 여기로 돌아올 거야. 나한테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았을 거고.”

동감이다.

저런 재촉이 아니라도 서두를 생각이었다. 그 남자와 다시 마주치고 싶진 않으니까. 나는 조조바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어디로 도망쳐야 안전할까?”

무작정 방향도 없이 도망치는 건 곤란하다. 우린 이곳의 지리를 모르니까. 자칫 오히려 막다른 길목에 내몰릴 수도 있고.

그런 내 물음을 예상했던 걸까.

“날 따라와.”

조조바가 대뜸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서로를 부축하며 뒤를 따랐다. 오두막 문턱을 넘고 보니, 아담한 앞마당에 세워진 바이크 비슷한 탈것이 보였다.

“내가 아끼는 삼륜차야. 이걸 타면 멀리까지 도망칠 수 있어. 북쪽으로 가. 저기, 저 별이 보이지? 저걸 따라가면 돼. 그러면 해가 뜨기 전에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어물쩍거리지 않았다. 나는 삼륜차의 앞자리에 앉아 핸들을 쥐었다. 뒤쪽, 짐칸에 아이들이 차례로 올라탔다.

부릉!

나지막한 시동음이 밤공기를 헤집었다. 혹시나 이 소리를 듣고 남자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나는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조조바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말야. 넌 왜 우리를 돕는 거야?”

사실은 내내 궁금했다.

어째서 저 아이가 자신의 일족이자 이웃인 남자를 속이고 우릴 도운 건지. 한편으로는 의아했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질문을 받은 조조바의 입술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끔찍해서.”

미소에 서글픔이 배어났다.

“우린 그래프터 족이라고 불려. 잘난 수술 능력으로 남의 신체를 약탈하지. 이 숲에 사는 내 일족은 전부 나이가 많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긴긴 시간 동안 남의 몸을 잘라내서 자신의 것으로 ‘이식’하며 살아왔어. 팔다리는 물론이고, 피부, 장기, 심지어 얼굴까지.”
“설마…… 너도?”
“아니. 난 아직.”

고개를 젓는 조조바의 서글픈 미소에 씁쓸한 감정이 뒤섞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실은 공교롭게도 오늘이 내겐 ‘결정의 날’이거든.”
“결정의 날?”
“열여덟 번째 생일이자, 첫 이식을 시도할 수 있을 마지막 날이라는 뜻이야.”
“…….”
“잡담은 여기까지. 어서 가. 시간이 없어. 그리고 만약에 도망치다가 숲을 벗어나기 전에 누군가가 추격해 오면…… 삼륜차 핸들 아래에 넣어둔 쪽지를 열어봐. 알겠지?”
“……어, 응.”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찮은 척 당부를 건네는 조조바. 저 아이가 애써 감추는 서글픈 미소를 보자니, 감히 어떤 위로나 격려의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삼륜차의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부르릉!

삼륜차가 덜컹이며 움직였다. 백미러에 비치는 오두막과 조조바의 모습이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어두운 숲 너머로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삼륜차 바퀴가 바닥의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처음엔 어렵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츰 나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어두운 숲을 가로질렀을까. 몇 번이나 조조바가 알려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을까.

“……봐! 저기!”

뒤쪽 짐칸에서 루이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숲의 끝이야!”

정말이었다.

끝없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숲의 출구가 저 앞에 보였다. 더욱 힘껏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한데 그때였다.

덜컹!

삼륜차가 숲의 끝자락을 향해 속도를 높이던 무렵이었다. 돌연 앞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뭘까.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내 경악으로 눈을 부릅떠야 했다.

그러니까…… 바닥이 불쑥 꺼지고 있었다!

“……!”

함정?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핸들을 틀었다. 질주하던 삼륜차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함정을 피했다. 그 순간 얼핏 볼 수 있었다. 함정 아래쪽에서부터 뾰족한 것들이 솟아나 있었다. 말뚝? 가시? 소름이 돋았다.

그사이, 균형을 잃은 삼륜차가 오솔길을 벗어나고 말았다.

콰드드드드!

비교적 평탄했던 길을 벗어나자, 삼륜차가 당장 넘어질 것처럼 요동쳤다. 앞쪽에선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핸들을 다시 틀까?

아니.

‘그랬다간 삼륜차도, 뒤의 짐칸도 뒤집힐 거야.’

이미 방향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힘껏 당겼다.

콰가가가각-!

흙과 돌이 마구잡이로 튀었다. 온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삼륜차는 나무와 불과 30센티도 남기지 않는 거리에서 가까스로 멈추었다.

뒤쪽 짐칸에서는 난리가 났다.

“으아앗!”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친구들이 넘어지며 내는 다급한 소리. 나도 삼륜차 앞으로 날려가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서 거의 매달리듯 버텨야 했다.

“허…… 헉, 허억……!”

쿵쿵거리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거, 함정이었어. 확실해.’

누군가가 고의로 파둔 함정이다. 그런데 저게 하필이면 지금 우리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다들, 혹시 제가 여러분을 서운하게 했나요? 어째서 이렇게 급하게 도망을 치는 거죠?”
“…….”

아니나 다를까.

어둠에 잠긴 숲속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저 목소리가 나긋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생각해 보니 제가 서운해지는군요?”
“…….”

망토를 입은 끔찍한 남자.

그가 다가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아까 조조바에게 들었던 당부를 떠올렸다. 뭐라고 했더라. 그래.

‘만약에 도망치다가 숲을 벗어나기 전에 누군가가 추격해 오면…… 삼륜차 핸들 아래에 넣어둔 쪽지를 열어봐. 알겠지?’

……알겠다. 나는 즉시 손을 움직였다. 역시 핸들 아래에 제법 깊은 공간이 있었다. 쪽지도 있었다. 꺼내서 펼쳤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쪽지에 묶인 구슬을 바닥으로 던져.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단숨에 터지도록 힘껏. 안개가 터져 나오면 숲의 북서쪽 동굴로 와. 최대한 빨리.]

“…….”

과연 쪽지 뒷면에 구슬 하나가 묶여 있는 게 보였다. 알사탕 크기의 구슬이었다. 뭘까. 궁금했지만, 호기심에 정신을 팔 시간은 없었다.

나는 바닥을 향해 구슬을 힘껏 내던졌다.

그 순간…….

퍼석, 푸스스슷……!

구슬이 깨졌다. 작은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양의 안개가 순식간에 퍼졌다. 그런데 어쩐지 이 안개,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무, 뭐야! 히이익? 점액…… 안개 괴물?”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는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당황한 목소리. 그걸 귓등으로 흘려내며 나는 짐칸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짐칸의 친구들도 내게 똑같은 뜻이 담긴 눈빛을 의미심장하게 던져오고 있었다.

우리, 점액 안개는 제법 익숙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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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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