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언노운의 루이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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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언노운의 루이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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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언노운의 루이샤 (2)
2023.01.2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말하는 고양이?”
나는 깜짝 놀랐다. 다비의 가방을 열어젖히며 불쑥 고개를 내민 갈색 털 뭉치. 보송보송하고, 약간은 통통한 그 모습은 분명 기억에 있는 동물이었다.
‘고양이…… 맞는 거 같은데.’
사실 실제론 처음 봤다. 레퓨지아엔 고양이도, 강아지도 없으니까. 그런 자그마한 동물들은 책에서만 봤으니까.
신기했다. 저 작은 머리로, 호박빛과 초록빛 오드아이 눈망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를, 놀란 세나와 요재를, 마지막으로 다비를 차례차례 바라보는 모습이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고양이가 가방에서 빠져나오는 모습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하는 모습이 제일 그랬다.
“뭐야. 다들 고양이 처음 봐?”
“…….”
우리 중에 아무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일 먼저 반응한 아이는 요재였다.
“설마 고양이?”
요재가 흥분해서 삿대질을 했다. 세나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세나에게서 저런 표정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의외로 다비는 조용히, 미간만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사이에 요재의 혼잣말이 이어졌다.
“나 이거 봤어. 전자동물원에 있는 그거 맞지? 그런데 고양이는 멸종된 거 아니었어?”
“게다가…… 고양이라는 게 원래 말을 할 수 있는 거였나?”
나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떤 책 속에서도 말을 하는 고양이를 본 적은 없었다.
그때였다.
오드아이의 고양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넌 왜 내가 말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해?”
“…….”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
평소엔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온갖 괴상하고 위험한 일들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치의 놀라움은 거기까지가 끝일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고양이가 따박따박 따지며 건네는 질문을 받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으니까.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말하는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역사상 최초의 사람일 수도 있는 건데. 혹시 대답 내용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잠시 우물쭈물한 끝에 망설이며 대꾸했다.
“어, 미안.”
“응?”
귀를 쫑긋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 내 난데없는 사과가 뜻밖이었던 걸까. 나는 어깨를 작게 으쓱이며 말했다.
“으음, 그게,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고양이라고 해서 꼭 말을 못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편견이 심했던 거 같아. 미안해.”
“뭐? 아하핫.”
고양이가 웃었다.
“너 참 웃기는 아이로구나?”
“…….”
“아, 미안미안. 비웃거나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단지 예상해 보지 못한 대답이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거든. 어쨌건, 내 이름은 ‘루이샤’야.”
“루이샤?”
“응.”
자신의 이름을 밝힌 고양이, 루이샤가 우아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비를 돌아보았다.
“아까 안개 속에서 쟤랑 만났거든.”
“…….”
나도, 세나와 요재도 대답을 잃었다. 우리 모두는 눈을 깜빡거리며 다비를 쳐다보았고, 다비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어, 음, 사실이야.”
다비가 마지못해 털어놓듯이 말했다.
“아까 말이야. 우리 다들 안갯속에서 흩어져 버렸잖아? 그때 우연히 만났어. 안개 촉수에 묶여 있던 루이샤랑.”
“안개 촉수에? 우리처럼?”
요재의 물음에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처음엔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귀를 기울이면서 혼자 헤매고 있었거든. 그런데 낯선 목소리가 들리더라? 혹시나 해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 봤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그러다가…….”
“그러다가?”
“바닥에 누워 있던 루이샤한테 발이 걸려서 넘어졌어.”
다비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다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엔 나도 황당했거든. 말하는 고양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잖아. 그런데 뭐, 루이샤가 아까 그 안개에 대해서 나름 좀 알고 있는 눈치더라고.”
“좀 아는 정도가 아니지.”
루이샤가 냉큼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 몸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여기 다비는 너흴 찾아내지도 못했을걸?”
“얘들 소릴 듣고 찾아낸 건 난데?”
“하지만 내 조언이 큰 힘이 됐잖아?”
루이샤가 새초롬한 눈길로 다비를 흘겨보았다. 다비가 못 이기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맞아. 사실이야. 루이샤가 아까 그 ‘점액 안개’에 대해 알려줬어.”
“점액…… 안개?”
“응.”
세나의 물음에 다비가 설명했다.
“아까 그 안개 말이야. 사실은 ‘점액질 안개’라는 괴물이래. 사람을 가두고, 홀리고, 잠재운 채로 잡아먹는 괴물.”
“…….”
나는 얼결에 닭살이 돋은 팔뚝을 매만졌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는데도, 막상 그 안개가 정말로 괴물이었다는 걸 들으니 무의식중에 소름이 돋았다.
그사이, 루이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 울타리 안쪽에서 온 거야?”
“응?”
“울타리. 몰라? 엄청나게 높은 벽을 쌓아 두고 그 안쪽에 와글와글 모여서 살아가는 곳.”
“……레퓨지아?”
혹시나 해서 되물었다. 루이샤가 각기 다른 빛깔의 두 눈동자를 반짝였다.
“응, 맞아. 너희는 거기를 레퓨지아라고 부르는구나?”
“어. 응.”
“그럼 여긴 뭐라고 불러?”
“여기? 장벽 바깥? 언노운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나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루이샤에게 물었다.
“그런데 언노운에는 생명체가 없다고 들었는데, 넌 어떻게 여기에 있었던 거야?”
“뭐? 하핫.”
내 물음이 황당했던 걸까.
루이샤가 웃음을 터뜨렸다.
“언노운에 생명체가 없다고? 누가 그래?”
“아니, 그냥……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었는데.”
“그 교과서, 틀려도 한참 틀렸네?”
“…….”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루이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루이샤의 전신이 은은한 빛에 휩싸였다. 무어라 감탄사를 꺼낼 틈도 없었다. 루이샤를 휘감은 빛이 확장되었다. 작은 고양이 크기에서 나와 비슷한 정도로. 길쭉하게. 같은 눈높이로. 두 발로 서더니.
“짜잔. 이런 건 처음 봤지?”
빛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있던 갈색 털의 고양이가 사라졌다. 대신 갈색 머리칼의, 어쩐지 고양이를 많이 닮은 나와 또래의 여자애가 묘한 미소를 짓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샤?”
“딩동댕?”
얼결에 꺼낸 물음에 루이샤가 빙긋 웃으며 점박이무늬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도 오랜만에 변신하는 거라서 조금 어색하긴 한데. 이상하진 않지?”
“…….”
“어쨌건, 너희가 배운 교과서는 틀렸어. 언노운에 생명체가 없다고? 헛소리. 날 봐. 위대한 애니말라 종족의 루이샤가 너희 앞에 나타나 주셨잖아?”
“종족? 그럼, 너 말고도 다른 고양이……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야?”
“물론이지.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종족이 있는데.”
“…….”
“어쨌건, 너희 말이야. 높다란 울타리 안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 주제에 어쩌다가 여기까지 나오게 된 거야? 그것도 넷이나?”
루이샤가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를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 문득, 오늘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덕분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들이 모조리 하루에 다 터져 버렸으니, 그걸 정리해서 설명하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니게 느껴졌다.
그런 우리의 곤란한 기색을 읽은 걸까.
루이샤가 피식 웃었다.
“하긴. 뭔가 사연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겠지. 어쨌건 우리 자리부터 좀 옮기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여긴 푸른 반딧불이가 돌아다닐 수도 있는 곳이니까.”
“푸른 반딧불이?”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런데 루이샤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어? 너 혹시, 푸른 반딧불이를 알아?”
“으, 응.”
“어떻게?”
집요하게 물음을 던지는 루이샤.
그 모습에 나는 문득, 아까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의 손으로 날아들던 푸른 반딧불이. 반딧불이에게서 흘러나온 신비롭고도 스산한 빛이 아이의 전신을 휘감던 모습. 그 뒤로 벌어졌던 끔찍한 일들.
나는 몸서리가 쳐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우리도 아까 봤거든. 그거, 혹시 많이 위험한 거야?”
“응. 여기서 제일 위험한 거야.”
“…….”
“너희가 푸른 반딧불이에 대해 뭘 들었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함부로 푸른 반딧불이 가루를 마시거나 접촉하면 안 돼. 그 가루는 아주 위험해.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반딧불이가 다니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
루이샤는 우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우리는 행여나 루이샤를 놓칠까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뜻밖에도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무 아래 뿌리 틈새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동굴이 있었다.
“이쪽으로.”
제법 익숙한 곳일까. 루이샤는 서슴없이 앞장서서 들어갔다.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들였다.
동굴 안쪽은 입구와 달리 생각보다 적당히 널찍하고, 아늑했다. 벽면에 붙은 신기한 모양의 버섯이 은은한 빛을 밝혀주고 있어서 주위를 살펴보는 데에도 무리가 없었다.
“푸른 반딧불이는 말이야.”
우리가 동굴 안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루이샤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느새 우리 모두를 둘러보는 루이샤의 눈빛이 의미심장한 빛을 엿보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아들지. 사람을 홀려. 고혹적인 몸짓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손을 뻗게 만들어. 그렇게 닿으면……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 버려.”
“변하게 만든다고?”
“응.”
루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품은 가장 커다란 욕망을 끄집어내지. 욕망을 뒤틀고, 부풀려서, 온몸에 씌워 버려. 그리고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끔찍한 모습으로 바꾸어 버리는 거야, 사람을.”
“…….”
새삼 아까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괴하게 부풀어서 달려들던 그 모습이 이제는 끔찍하다기보다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우리도, 푸른 반딧불이의 가루에 닿으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런데 말이야. 네가 말한 푸른 반딧불이는 대체 정체가 뭐야?”
다비가 물었다.
루이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기까진 나도 몰라.”
“왜?”
“모르니까 모르지.”
당연하다는 듯이 루이샤가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어. 그래서 그게 어디서 왔고, 뭘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몰라. 다만 확실한 건…… 울타리 밖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푸른 반딧불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원한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문득, 아까 순찰대원들이 무전으로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 무전기를 든 대원이 우리를 보며 뭐라고 했더라. 밀접 접촉자, 라고 했던 거 같은데. 당시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 이제 레퓨지아로는 못 돌아가는 거구나.”
“…….”
내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다들 깨달았을 것이다.
“그 위험하다는 푸른 반딧불이와 접촉할 뻔하고, 푸른 반딧불이가 돌아다닌다는 장벽 바깥까지 나와 버렸어. 그런데 우리가 레퓨지아로 돌아가면…… 순순히 반겨줄까?”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다른 아이들도 이제는 답을 알게 됐다. 정답의 무게가 우리 모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있잖아.”
요재가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며 나섰다.
“사실은 내가 너희한테 보여 줄 게 있어.”
무슨 뜻일까.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사이, 요재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작고 오래된 포켓북이었다.
“이거,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찾은 건데 말야.”
도서관?
내가 매일 찾던 낡은 도서관?
나는 포켓북으로 눈길을 던졌다. 오래 되어 색이 바랜 표지에 ‘푸른 반딧불이 섬의 저주를 풀어라’라는 괴상한 제목이 쓰여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웃어넘겼을 법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웃을 수가 없다. 이제는 ‘푸른 반딧불이’라는 말이 절대 농담처럼 들리지도, 예쁘게 들리지도 않으니까.
“이 책은 뭐야? 혹시 지금 우리 상황과 연관이 있는 거야?”
다비가 물었다.
하지만 요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뜻밖에도 세나가 먼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이거…… 아무래도 우리 할머니 글씨체 같아.”
어느샌가, 세나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낡은 책자 표지의 제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