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언노운의 루이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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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언노운의 루이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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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언노운의 루이샤 (1)
2023.01.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다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대로 움직여봐!”
나는 외쳤다.
더 크게.
모두에게 잘 들리도록.
“저거, 안개 촉수! 이유는 모르겠는데 식물처럼 한 곳에서 올라오고 있어!”
나는 한쪽을 가리켰다. 내 말대로, 그곳에서 안개 촉수가 끝없이 치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 외쳤다.
“그러니까 저기를 강한 바람으로 흩어내면 어떨까!”
외침의 마지막 무렵에 나는 요재를 돌아보았다. 우리 중에 가장 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요재니까.
내 눈길을 받은 요재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나 혼자서는 무리일 거 같아! 촉수가 너무 많아!”
사실이다. 내가 봐도 그렇다. 아무리 요재가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촉수를 전부 피하며 뿌리 부분에 접근하는 건 어려울 듯했다.
그러니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나도, 다비도 힘을 내야 한다.
“우선! 다비부터 풀어줘! 내가 시선을 끌게!”
나는 항공점퍼를 벗었다.
안개 촉수의 신경이 내게 쏠리기를 바라며 점퍼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뛰었다. 다비와 멀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시도가 제대로 먹혔다.
……키이익!
안개 촉수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소리. 섬뜩하게 내뱉는 소리가 뒤를 바짝 따라오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럴 수록 더욱 애쓰며 뛰었다.
그사이, 저 뒤편에서 반가운 소리도 들려왔다.
꽈앙!
“앗!”
“으윽!”
요재의 몸통박치기가 다비를 풀어준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뒤이어 다비의 목청 터질 것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야아아! 여기 나도 있다!”
다비가 두 팔을 휘두르며 나와 반대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내 뒤를 추격해 오던 안개 촉수가 고개를 돌리더니 다비를 향해 미끄러져 갔다.
나도 질새라 더욱 크게 외쳤다.
“여기! 날 잡으라고!”
“아냐! 날 잡아!”
나도, 다비도 경쟁적으로 외쳐대며 뛰었다. 목적은 단 하나, 안개 촉수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덕분에 안개 촉수가 우리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다비 쪽으로 미끄러지려다가, 내 외침이 고개를 돌렸다. 나를 향해 돌진해 오다가, 다비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방향을 틀었다.
나는 더욱 용기를 얻었다.
다비도 그런 듯했다.
우리는 번갈아 되지도 않는 소리를 마음껏 외쳐댔다.
“쟤보단 날 잡아먹어야 더 배부를 걸!”
“조안보단 내가 영양가가 훨씬 많을 걸!”
“질보단 양이지!”
“무슨 소리! 양보다 질이지!”
이제 안개 촉수는 완전한 대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바람처럼 슬그머니 움직이는 요재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알려준대로 안개 촉수의 뿌리 부분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몇 발짝만 더. 요재가 땅을 박찼다.
그때였다.
……키이익?
안개 촉수가 뭔가를 깨달은 걸까. 나와 다비 사이에서 혼란에 빠져 있던 안개 촉수 다발 전체가 흠칫했다. 일제히 자신의 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이익!
요재가 들켰다.
무어라 할 틈도 없이, 안개 촉수 다발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요재를 향해 쇄도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항공점퍼를 휘두르며 훌쩍 뛰었다. 내 앞을 지나치려는 안개 촉수에게 점퍼를 던졌다. 점퍼가 안개 촉수 다발 앞을 일순간 가로막았다.
키익?
순간 시야가 가려진 걸까. 안개 촉수가 흠칫했다. 아주 잠깐의 멈칫거림이었다. 요재에게는, 그렇게 생겨난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후우욱!
요재의 전력질주. 이제 그 걸음에 산들바람은 없다. 작정한 요재가 지면을 박찰 때마다 돌풍이 불었다. 요재가 안개 촉수의 뿌리를 중심으로 놓고 둥글게, 맹렬하게 내달렸다. 안개 촉수의 뿌리가 바람이 뜯겨지듯 흔들렸다. 한 줄기씩 차례차례 잘려나갔다. 뽑혔다.
그리고 마침내.
……퍼어엉!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안개 촉수 뿌리의 마지막 줄기가 잘렸다. 그 순간이었다. 뿌리가 솟아나와 있던 지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주위의 끈적이던 안개가 모조리 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헉, 후우, 헉?”
나는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골랐다. 자욱하던 안개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옅은 구름이 낀 회색 하늘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쪽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다비의 모습도, 비로소 질주를 멈추고 있는 요재도, 그리고 여전히 잠든 듯이 누워 있는 세나도.
“……세나야!”
나도, 다비도, 요재도.
누구 하나 먼저랄 것 없이 세나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세나를 휘감고 있던 안개 촉수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세나야? 눈 좀 떠 봐. 응? 세나야.”
다비가 세나를 흔들었다. 나는 세나가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며 세나의 팔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마침내 세나가 실눈을 떴다. 다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세나야? 괜찮아?”
“…….”
잠든 사이에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 멍한 가운데 우리를 차례차례 바라보는 세나의 눈동자에서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어떤 감정인지 선뜻 읽기가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자기는 괜찮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세나는 눈빛으로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걱정도 문득 들었다.
“저기, 세나도 깨어났으니까, 일단 움직이자. 여긴 좀…… 위험할 거 같아.”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전까지 자욱하던 안개가 말끔하게 사라진 터였다. 아까까지는 안개 때문에 막막했다면, 지금은 너무나 환해진 까닭에 불안감이 치솟았다. 마치, 몸을 숨길 곳조차 없이 짐승들이 가득한 평원에 내던져진 기분이랄까.
다비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맞아. 순찰대원들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디 숨을 곳을 찾아보자.”
나는 다비와 함께 세나를 부축했다. 요재가 앞장을 서며 경쾌한 걸음으로 길을 탐색했다. 그동안 어깨에 기대어 오는 세나의 무게가, 함께 세나를 부축하느라 맞닿은 다비의 손등이, 저만치 앞장서서 걸어가는 요재의 뒷모습이, 나를 지켜 주는 것 같은 기분이 얼핏 들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어쩐지 낯설면서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
안개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좀처럼 숨을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고약하도록 탁 트인 평지였다. 우리 넷이 웅크릴 만한 바위틈도, 자그마한 덤불도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었다.
“장벽이…… 보이지가 않아.”
아까까지만 해도 iPS의 탐지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히면 화면 끄트머리에 간신히 포착이 되던 장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iPS 화면을 살펴보는 다비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당혹감을 숨기려 애쓰는 기색이 내게도 느껴졌다.
“그럼 우리, 아까 그 이상했던 안개 속에서 말이야. 그 안에서 헤매다가 레퓨지아와 더 멀어진 거야?”
요재의 물음에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게다가…… 세나야?”
“응?”
“혹시 치솟아 있는 장벽이 보여?”
“아니.”
그게 제일 문제였다. 정작 안개는 사라졌는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장벽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토록 높이 치솟은 장벽이라면, 이런 탁 트인 평지에서라면 어지간한 거리에서도 보일 법한데도 그랬다.
주변을 둘러보는 세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안 보여. 미안.”
“…….”
아까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순찰대원을 찾아냈던 세나의 시력이었다. 그런 세나가 안 보인다고 말하는 거면, 진짜로 안 보이는 거다. 최소한 시야가 닿는 범위 안에는 레퓨지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우린 어떡하지?”
새어 나오는 요재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비는 iPS를 들고 있는 손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세나는 티를 내진 않으려 하지만 새어나오는 한숨을 어쩌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실은 나도 무서웠다.
괴상한 안개를 겨우 벗어났나 싶었는데, 이제는 레퓨지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처지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어디에 던져졌는지 알 방법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저 평범하게 아침이면 학교에 가고, 떠들썩한 교실에서 지내던 일상이 갑자기 너무나 머나먼 시절의 옛 이야기처럼 낯설게 느껴져 버렸다.
아마 다들 그런 거겠지.
두려운 거겠지.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다른 아이들을 향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있잖아, 우리. 그럼 잠깐만 여기서 웅크리고 있자.”
“……응?”
내 말이 뚱딴지처럼 들린 걸까. 다들 날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내심 자책했다. 괜히 무의식중에 쓸데없는 말을 꺼내 버렸다고. 그러지 말아야 했다고.
하지만 이미 내디딘 걸음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땅바닥을 쳐다보곤 말했다.
“그냥. 다들 지친 거 같고. 아까 일들도 있었고. 마침 주위엔 순찰대원도 안 보이는 거 같고. 그러니까 좀 쉬는 건 어떨까 해서.”
학교에서 혼자라는 사실에 지칠 때.
이런 저런 일들에 마음이 가라앉을 때.
마침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한 그런 때에.
나는 언제나 가만히 웅크렸더랬다. 아무도 없는 낡은 도서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보냈더랬다. 그곳의 오래된 책 냄새가, 제법 두껍게 쌓인 먼지가, 구석에 가끔 버려져 있는 외로운 책갈피 몇 조각이, 그럴 때는 뜻밖의 위안이 되곤 했더랬다.
지금도 그런 기분이 문득 들었다.
힘드니까. 지치니까. 막막하니까. 잠깐 정도는 웅크리고 있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런다고 혼낼 사람이 있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되진 않을까.
나는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을 입속으로만 머금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이럴 때는 시선을 둘 곳이 참 필요한데. 땅바닥의 돌멩이는 하필이면 어찌나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건지. 결국, 딱히 눈길 둘 곳을 찾지 못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그래. 그거 좋을 거 같아. 안 그래도 좀 힘들었어.”
제일 먼저 대답한 아이는 다비였다. 다비가 희미하게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세나는 대답 대신 그 자리에 스르르 앉았다. 이어서 요재가 몸을 낮추더니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조안? 여기.”
요재가 자신의 뒷자리 바닥을 가리켰다. 뭐,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눅눅한 흙바닥이었다. 그러니까, 힘드니까 앉은 채로 서로 등을 기대며 쉬자는 거? 그런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나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며 요재 뒤에 앉았다. 이내 등을 통해 자그마한 등과 가벼운 무게가 느껴졌다. 요재의 등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포근하며, 따뜻했다.
“…….”
마주앉질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러니까 코를 훌쩍이지는 말자. 바보 같이 티를 내며 손으로 눈가를 매만지지도 말고.
나는 안개가 사라져 낯설게 느껴지는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사이, 세나와 다비도 옆에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등과 등을 맞대며 잠깐 앉아서 쉬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조금은 서늘한 공기 속으로 퍼지는 우리의 입김과, 그럴 때마다 전해져 오는 쌔근쌔근 숨소리만이 서로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 고요함이 좋았다.
다비의 가방 안에서 웬 투덜거리는 소리가 난데없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아잇, 더는 못 참겠네. 너희들, 설마 날 찌그러뜨릴 셈이야? 응?”
나는 깜짝 놀랐다. 세나도, 요재도 그랬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다비의 가방을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어휴. 숨 막혀 죽겠네, 진짜!”
낯선 투덜거림과 함께 다비의 가방이 열렸다. 안쪽에서 자그마하고 복슬복슬한 뭔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우리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하는, 고양이?”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