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안개 속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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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안개 속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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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안개 속에서 (3)
2023.01.1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요재가 새어나오려는 나지막한 비명을 가까스로 틀어 막았다. 나는 떨리는 눈길을 움직였다. 내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 세나가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었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밧줄 같은 안개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는 점만 빼자면, 영락없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나에게 달려들었다.
“우선 이것부터.”
다비가 재빨리 세나의 목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세나의 목에도 밧줄 같은 안개 촉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니, 그냥 감긴 정도가 아니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운가 봐.”
세나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목을 졸리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너무 늦어 버린 게 아닐까.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들으며 손을 뻗어 세나의 목을 죄고 있는 안개를 붙잡았다.
“으으윽!”
힘껏 당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 단단하게 얽혀 있었다. 아무리 당겨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쓰는 나를 농락이라도 하듯 세나의 목을 더욱 단단하게 죄어 갔다.
‘안 돼.’
어떡하면 좋지.
막막해졌다.
그때였다.
“저기, 아무래도 말이야. 주위의 안개가 짙어질수록 이게 심해지는 거 같아.”
다비가 ‘이게’라고 말하며 세나의 온몸을 묶은 안개 촉수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중이었다. 세나의 몸을 칭칭 감은 안개 촉수도 그럴 때마다 더욱 완고해지고, 질겨졌다.
“그럼 어떡하지?”
요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어떻게 하느냐니. 나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몰려드는 안개. 그럴수록 더욱 집요해지는 안개 촉수. 정상적인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생각을 해.’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 기분이었다. 호흡은 가빠지고, 가슴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생각과 생각이 부딪치며 섬광이 일었다. 머릿속이 밝아졌다. 연거푸, 더 밝게, 더욱 빠르게, 더욱 맹렬하게.
“……안개를 흩어내야 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나의 목에서 안개 촉수를 떼어내려고 애쓰던 다비와 요재가 멈칫하며 날 돌아보았다.
“뭐?”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다비를 쳐다보았다.
“방금 그랬잖아. 다비 네가. 안개가 짙어질수록 촉수가 더 강력해지는 거 같다고. 그럼 안개를 흩어내면? 반대가 되지 않을까?”
“…….”
다비는 잠깐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결심이 떠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해 보자.”
어차피 우리 힘으로는 세나의 목에 감긴 안개 촉수를 떼어 내지 못할 것 같다. 희망이 없는 방법에 매달리다가 기회를 놓치기보다는, 가능성이 보이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다비도 그런 내 생각에 공감한 듯했다.
펄럭!
나는 항공점퍼를 벗었다. 세나 주위로 몰려드는 안개를 향해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안개가 흩어지도록. 애를 썼다. 요재도 함께였다. 요재가 두 팔을 열심히 휘두르며 주위를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다비가 세나의 목에 감긴 안개 촉수를 붙잡고 버텼다. 촉수가 세나의 목을 더 조이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
“……으으윽. 안 돼. 이거, 계속 강해져.”
다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럴수록 나는 점퍼를 휘두르는 몸짓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안개를 더 흩어 내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안개는 어느새 짙어지다 못해 아예 끈끈한 점액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묽은 젤리 속에서 발버둥치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휘두르는 팔이 점점 무거워졌다. 내 항공점퍼가 이렇게 묵직했나 싶었다. 그만큼 마음에 걸린 암담함의 무게도 더해 갔다.
‘안 돼.’
다급해졌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나는 급속도로 지쳐 갔다. 심지어 내 팔다리에도 안개 촉수가 들러붙기 시작했다. 서슴없이 휘감겼다. 절망의 손길처럼. 심장에 저미는 암담함처럼. 착실하게 희망을 앗아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점점 숨을 쉬기도 어려워졌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도 힘겨워졌다. 아니, 걸음을 내딛는 것도 버거워졌다. 시시각각 온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졌다. 발목을 잡아채는 아득함 속에서, 내쉬기도 벅찬 숨결 속에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다비는? 요재는?’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나와 똑같이 안개 촉수에 휘감기고 있는 다비의 모습이었다. 마침 다비도 날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내 눈빛도 저렇겠지. 왈칵 끼치는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전부 끝나는 걸까. 무력감에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런 거, 싫어.’
무섭다.
하지만 암담함에 짓눌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움직이려 버둥거렸다. 숨이 차도록. 손발이 저리도록. 끝까지 멈추지 말자고. 여기서 꺾이지 말자고. 두 눈 질끈 감고서. 애써 외치듯.
그때였다.
요재의 얼떨떨한 외침이 들려온 것은.
“……어? 어어?”
무슨 일일까.
나는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대신해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이윽고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나, 왜 이래?”
요재가 뛰고 있었다.
너무나 가볍게. 몰려드는 안개 촉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빨리 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날쎄게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 몸짓이 점점 더 경쾌해졌다!
‘무슨…….’
믿기지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그렇듯 현실이라서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요재가 뛰었다.
“우, 우와앗? 우와!”
그때부터였다.
요재가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몸짓으로 주위를 내달렸다. 빠르게. 한결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내 바람 그 자체가 되듯. 보통 사람은 꿈도 꿀 수 없을 속도로. 경쾌하게 내달리는 요재의 걸음을 따라 상쾌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안개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영원히 불어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바람이 요재의 걸음을 따라 일어났다. 뜻밖의 경쾌함으로. 의외의 시원함으로. 굳었던 안개를 몰아내듯 산들바람이 불어와 귓불을 간질였다.
‘무슨…….’
믿기지가 않았다.
나도, 다비도, 세나도 모두 끈적한 안개에 휘감겨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요재만 혼자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다니. 심지어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니. 너무나 놀라워서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비현실적이야.’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흠칫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부분이 있던가. 아니. 없는 것 같다. 목걸이가 빛을 발하며 우리 모두를 레퓨지아 바깥으로 내던져 버린 것도, 이토록 끈적이는 위협적인 안개도, 전부 비현실적이다.
그러니 다른 비현실 하나쯤 더 얹어도 문제는 없겠지. 제발, 그러면 좋겠다.
“저거, 보여?”
옆에서 다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서 다비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또 다른 생각도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다비는 어떻게 안갯속에 흩어진 다른 아이들의 소리를 들은 걸까. 같이 있던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그리고 그 전에 세나는? 어떻게 자욱한 안개 너머를 혼자 꿰뚫어보며 순찰대원을 감지한 걸까.
“…….”
어쩌면 나만 빼고 모두가 달라지고 있는 것만 같다. 무거운 안개 속을 혼자서 경쾌하게 내달리고 있는 요재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요재의 뛰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요재야!”
나도 모르게 외쳤다. 경쾌하게 달리던 요재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뒤쪽!”
“어?”
요재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곳, 요재가 돌아본 곳에서 안개 촉수가 치솟았다. 거대한 짐승의 발톱처럼 다섯 줄기의 안개가 요재를 덮쳐갔다.
“요재!”
내가 외치는 순간, 요재가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날카로운 안개가 사나운 기세로 공간을 훑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요재를 놓친 안개 촉수가 그대로 달려왔다. 내가 있는 이곳을 향해서!
“……!”
나는 눈을 부릅떴다. 온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뿌리치기엔 온몸을 휘감은 안개가 너무나 끈질겼다.
그때였다.
“미안!”
콰앙!
“……!”
요재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충격이 온몸을 때려 왔다. 안개 촉수에 맞은 걸까. 아니었다. 나는 욱씬거리는 팔뚝을 감싸쥐며, 옆으로 넘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가고 있는 요재가 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갈라지듯 넘어지는 나와 요재 사이로, 예의 안개 촉수 가닥들이 맹렬하게 스치듯 지나갔다.
비로소 깨달았다.
요재가 달려와서 날 밀친 거구나.
……키이익!
목표물을 놓친 안개 촉수가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 나는 넘어지는 충격을 느낄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요재가 감행한 구원의 몸통박치기(?) 덕분에 내 몸을 휘감고 있던 안개가 풀려나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
멈칫거리면 안 된다. 어설프게 머뭇거리다간 다시금 스멀스멀 감겨오는 안개에 사로잡혀 버리겠지. 나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토해내며 뛰었다.
내 목표는 다비였다.
“다비야! 미안!”
꽈앙!
아까 요재가 그랬던 것처럼, 다비에게 달려가 힘껏 부딪쳤다. 하지만 다비는 넘어지지 않았다. 다비를 휘감은 결박을 풀기에는 내가 달려온 기세가 약했던 걸까.
그런 듯했다.
“뒤! 뒤쪽!”
다비가 급하게 외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키아악!
안개 촉수가 끝도 없이 생성되고 있었다. 지면에서 가장 끔찍한 싹이 자라나는 것처럼,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저것과 비슷한 모습을 도서관의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데. 그래. 독사라는 동물이 사냥감을 집어삼키기 전에 저런다고 했지, 아마.
“…….”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위압감. 하지만 나는 애써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겁에 질리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 덕분일까. 문득, 나는 치솟는 안개 촉수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
그러고 보니 모든 안개 촉수가 지면의 ‘한 지점’에서 치솟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섬광 같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다들!”
나도 모르게 외쳤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대로 움직여 봐!”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