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안개 속에서 (2) (8/38)


7화. 안개 속에서 (2)
2023.01.0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때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일까.

“저기, 저쪽에서 순찰대원들이 우릴 찾고 있어.”

속삭이듯 한껏 낮춘 세나의 목소리. 안갯속 한 곳을 짚어내듯이 가리키는 손길. 마치 자욱한 안개 너머가 환하게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의아해졌다.

어떻게?

나는 세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안개는 자욱했고, 두 걸음 너머로는 제대로 보이는 것이 도무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어째서 세나는 안개 너머가 보인다는 걸까.

“농담 아니야. 진짜야.”

세나가 우리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나는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가 아니니까.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긴 한데, 어쨌건 보여. 저기. 저쪽에서 순찰대원들이 우릴 찾고 있어. 아까 그 사람들이야. 확실해.”
“…….”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나의 말은 어쨌건 믿을 수 있었다. 다만, 섣불리 대답을 했다가 안개 너머의 순찰대원들이 말소리를 들을까 무서웠다.

그때였다.

- 지직…… 레인저 알파팀. 상황을 보고하라.

안개 너머, 세나가 가리킨 방향에서 지직거리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하는 목소리도 뒤이어 서걱거렸다.

“여기는 레인저 알파팀. 기현상이 발생한 듯하다. 팀 전체가 원인을 모를 섬광과 함께 추측 불가한 지점으로 내던져졌음, 이상.”
- 지직…… 관측되는 주변 지형은?
“없다. 짙은 안개로 인하여 관측 불가. 상황을 파악하며 이동 및 관측하겠다. 다만, 조금 전 근방에서 신원미상의 대화 소음을 감지하였음. 선 추적 후 변동상황 발생 시 보고하겠다, 이상.”
- 지직…… 입감 완료. 이상.

서걱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쿵쿵, 불길한 예감을 무자비하게 던져댔다. 이윽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쉿. 저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세나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이쯤이면 세나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등줄기로 돋으려는 소름을 억지로 억누르며,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다들 소리 내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자. 이쪽으로.”

세나가 앞장을 섰다. 우리 모두는 몸을 낮추었다. 조심스럽게 걸었다. 행여나 나뭇가지라도 밟을까. 잘못 넘어져서 소리가 날까. 태어나서 이렇게 긴장하며 움직여 본 적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내 숨소리는 왜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건지. 쿵쿵, 날뛰는 심장 소리가 저들에게 들키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돼. 겁먹으면 끝이야.’

문득 책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일이 생겨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희망을 엿볼 수 있으리라고 했던가. 그땐 그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 당연한 말이 내게 유일한 등불이 되어 주었다.

나는 바로 앞에서 움직이는 다비의 등만 보며 걸었다. 그 작은 뒷모습 외엔 세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욱한 안개만이 가득한 세상 속 유일한 마일스톤 같았다.

그 와중에 몇 번이고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특히, 어딘가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울릴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럴 때마다 안갯속 어딘가에 망령 같은 실루엣이 두리번거리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아니, 제발 착각이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그렇게 걸었다.

끝이 없는 길을 헤매듯이.

언젠가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며 방황하듯이.

얼마나 걷고, 얼마나 숨죽이며, 얼마나 막막함을 곱씹었을까.

알 수 없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사라졌다.

‘……어?’

나는 눈길을 들었다. 하지만 눈길이 닿을 곳이 없다.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비의 등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다비의 뒷모습이 있었는데.

‘요재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막막할 정도로 자욱한 안개뿐이었다. 요재가 없었다. 다비도 없었다. 제일 앞에서 모두를 이끌던 세나도, 찾을 길이 없었다.

“얘들아?”

들킬 것을 무릅쓰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조차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언젠가 낡은 도서관에서 보았던 그림을 떠올렸다. 그림 속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라는 풍경이 있었다.

고요하게 푸르른 바다. 홀로 떠 있는 돛단배.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밝은 그림이었지만,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였더랬다.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더랬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렇다.

안개라는 끝없는 바다 위에 홀로 버려진, 돛이 부러진 돛단배.

“…….”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어째서 난데없이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버린 건지, 홀로 안갯속에 남겨져 버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얘들아? 내 목소리 안 들려?”

막막한 바다에 유리병을 던지듯 떨리는 목소리를 건넸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따가워졌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는 눈물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었다.

안개가 이상했다. 점점 자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짙어지고, 자욱해지고, 무거워지며, 온몸을 휘감아 왔다. 눈과 목이, 숨을 쉬는 모든 곳이 따가워졌다. 반대로 머릿속은 점점 멍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지는 걸까. 다급해졌다. 그런데 반대로 몸은 말을 듣지 않고서 점점 느림보가 되어 갔다.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서 태평하게 눈을 감으면 안 되는데. 나, 어느샌가 주저앉아 버린 건가.

‘일어…… 나야 하는데.’

생각과 반대로 고개가 축 늘어졌다. 잠이 쏟아졌다. 흙바닥이 가까워졌다. 쿵. 다른 세상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둔탁한 충격. 그것이 내가 홀로 안갯속을 헤매다가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

“……조안?”
“…….”

어깨를 흔들며 건네어 오는 목소리. 누구? 처음엔 멍했다.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나, 아무래도 깜빡 잠이 들었던 건가보다. 아니, 쓰러져 있던 걸까.

‘어째서? 왜?’

여전히 멍한 기분이라 잘 기억이 나지가 않았다.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다른 아이들을 놓치고 혼자 남았던 상황. 걷잡을 수 없이 자욱해지던 안개. 그 속을 헤매다가 나도 모르게 주저앉고, 잠들 듯이 쓰러졌던가.

“괜찮아?”

다시금 물어오는 목소리. 비로소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다비가 그곳에 있었다.

“너 잠들어 있었어.”
“……어, 응. 너는?”
“나도 거의 잠들 뻔하긴 했는데.”

다비가 싱긋 웃었다.

“운이 좋아서 겨우 버텨냈다고 해야 하나. 어쨌건 일어나. 다른 아이들도 찾아보자.”

나는 다비가 내미는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주위의 안개는 자욱했다. 이 속에서 어떻게 세나와 요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조금 막막했다.

그런데 다비는 조금 다른 듯했다.

“저쪽. 저기서 요재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다비가 한쪽을 가리켰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방향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비의 귀가 나보다 훨씬 밝은 걸까.

“가보자.”

다비의 걸음은 확신에 찬 것처럼 보였다. 조금 전에 잠든 나를 찾아냈을 때도 저랬던 걸까. 나는 작은 의문을 품은 채로 다비를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덕분에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히히. 맛있는 솜사타앙.”
“…….”

확실하다. 이건 요재 목소리다. 나는 그쪽으로 뛰었다. 곧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는 요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재의 온몸에 안개가 스멀스멀 뒤덮여 있었다. 아니, 안개로 이루어진 촉수가 밧줄처럼 요재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저거 뭐야?”

나는 놀라서 물었다.

다비의 표정도 굳었다.

“모르겠어. 얼른 깨우자.”

나도, 다비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요재에게 달려갔다. 다비가 요재를 흔들어도 소용이 없자 뺨을 두드렸다. 나는 자꾸만 요재의 몸을 묶으려 드는 안개를 붙잡아 뜯어냈다.

그런데 잠깐.

안개가 손에 잡힌다고?

심지어 당겨진다고?

“이 안개 이상해.”

소름이 오싹 돋았다. 정상적인 안개가 아니다. 아무리 짙다고 해도 안개는 안개니까. 구름처럼, 절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손에 붙잡혔다. 물컹하면서도 차가운 감각이 기이했다. 게다가 힘도 제법 셌다. 요재의 몸에 얽히려는 안개를 잡아당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으읏! 읏!”

요재의 목을 자꾸만 노리는 안개를 가까스로 떼어냈다. 그때쯤 요재도 실눈을 떴다.

“……으음? 어?”

다비가 날 깨웠을 때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요재는 얼떨떨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마치 잠이 덜 깬 것처럼. 아직 꿈과 현실이 헷갈리는 듯했다.

나는 다비를 돌아보았다.

다비도 나를 마주보았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재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저기 그럼, 세나는 나보다 더 위험한 거 아냐?”

요재의 얼굴 가득 걱정이 서렸다.

사실은 나도 그게 걱정이다. 다비가 날 찾아냈을 때에는 난 그냥 잠만 자고 있었으니까. 기이하게 얽혀드는 안개는 없었다니까. 그런데 방금 요재는? 큰일이 날 뻔했다. 나와 다비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안개에 꽁꽁 묶여 버렸겠지.

다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얼른 찾아보자.”

다비의 표정도 심각해져 있었다.

우리는 셋이 하나가 되어 안갯속을 걸었다. 이따금씩 다비가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여기서 더 짙어질 수 있을까 싶은데, 항상 그 다음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무서워졌다.

그렇게 얼마나 안갯속을 헤매고, 귀를 기울였을까. 마침내 두 걸음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다비가 흠칫했다.

“저쪽. 소리가 들렸어.”

물론 다비가 가리킨 쪽은 너무나 짙어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쪽으로 걸었다.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움직인 끝에 마침내 세나를 찾아냈다.
그런데 세나의 상태는…….

“……아.”

요재가 새어나오려는 나지막한 비명을 가까스로 틀어 막았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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