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안개 속에서 (1) (7/38)


6화. 안개 속에서 (1)
2022.12.3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다들 어디 있어? 이거, 뭐야?”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 사실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다비였다.
나는 황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으윽, 아야야…….”

다비가 찡그린 얼굴로 무릎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 너머로 굳은 표정의 세나가, 어리둥절한 모습의 요재가 보였다.

“다들 괜찮아?”

세나가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평소의 세나와 똑같은 침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게는 얼핏 보였다. 방금 분명, 세나의 물음 끝자락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끝도, 입술도 그랬다.

그건 요재도 마찬가지였다.

“어…… 난 괜찮아. 다비는?”
“나도. 조안은?”
“……응.”

깜짝이야.

설마 다비가 나한테까지 물음을 던져올 줄은 몰랐다. 나는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안 괜찮았다.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방금 우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금 그거…… 뭐였을까.’

조금 전까지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순찰대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아니, 붙잡혔더랬다. 흙바닥에 넘어지고, 엎드린 채로 깔려 수갑까지 채워졌더랬다. 힘껏 버둥거렸지만 도저히 뿌리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붉은 빛이 퍼졌던가.

내 목걸이에서 말이다.

 
“…….”

그건 뭐였을까.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 눈앞에 꿈결처럼 펼쳐지던 모습들. 완전히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었다. 레퓨지아의 건설자이자 세나의 할머니인 킴이 분명했다.

‘이건 뭘까.’

무의식중에 목걸이를 매만지려다가 손끝을 움츠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목걸이 때문이라고.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이 의문의 목걸이 때문에 방금 일을 겪은 것이리라고.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마저 모두 이곳에 내던져진 것이리라고.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도 모르게 긴장해 버린 것은.

“조안?”
“……어?”

세나가 날 보고 있었다. 방금 목걸이를 만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었다. 아니, 이미 늦은 걸까. 혹시 세나는 지금 이 상황이 내 목걸이 때문이라는 걸 벌써 눈치챈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아니었다.

“괜찮아?”
“어, 응?”
“괜찮냐고. 아까 넘어졌었잖아. 팔 좀 볼게.”
“…….”

얼결에 팔을 내밀었다. 어느새 세나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내 팔꿈치를 지그시 눌렀다. 그제야 까맣게 모르고 있던 쓰라림이 밀려왔다.

“아읏.”
“피가 많이 났어.”
“…….”

팔꿈치는 언제 까진 걸까. 너무 정신없는 일을 겪다 보니 다친 줄도 몰랐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 있었다. 그사이에 세나가 내 팔꿈치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손수건을 묶어 주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좀 나을 거야.”
“…….”

손수건 이거, 예쁜 건데. 아끼는 손수건 같은데. 막 이렇게 피가 묻어도 되는 걸까. 그것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 때문에.

“미안.”

나도 모르게 사과했다. 세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만 으쓱이곤 말했다.

“미안할 것까지야. 그것보단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세나의 말에 다른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다비의 다급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여기 좀 봐 봐.”

어느새 iPS를 꺼내서 열어본 다비였다.

“아무것도 안 잡혀.”
“…….”

우리 모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iPS에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다비의 목소리가 굳었다.

“우리, 어쩌면 레퓨지아 바깥으로 나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뭐어?”

요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게 가능해?”
“모르겠어. 하지만 여길 봐. iPS 화면에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아. 여기, 하얀색 점이 보이지? 이게 우리야. 원래라면 우리 주위로 지형과 좌표가 표시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그냥 검푸른색이잖아. 화면이 이렇게 출력되는 경우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는 거거든.”
“두 가지 가능성? 뭔데?”
“하나는 iPS 자체가 고장난 상황.”
“고장난 거 아니야?”
“아니야.”

다비가 고개를 저었다.

“고장이면 에러 코드가 떠야 해.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
“그럼…… 나머지 하나의 가능성은 뭔데?”

요재의 말끝이 조금은 떨리는 것처럼 들린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고개를 내젓는 다비의 표정에서 체념이 엿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남은 가능성은…… 우리가 레퓨지아 바깥에 있는 상황.”
“…….”
“iPS는 레퓨지아의 모든 공간을 데이터화 해서 보여주는 기기니까. 그런데 기기가 레퓨지아 바깥에 있는 상황이라면? 데이터가 없는 곳에 와 있는 거야. 그러니 검푸른 화면만 출력되는 거지. 지금 상황처럼 말야.”
“잠깐만. 그게 가능할까?”

이번에 질문을 던진 아이는 세나였다.

“다비야. 네 설명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돼. 우린 조금 전까지 장벽 안쪽에 있었잖아. 그런데 여기가 어떻게 레퓨지아 밖일 수가 있어?”
“그건 나도 모르지.”

다비가 미간을 찡그리며 푸념하듯 말했다.

“네 말대로 말이 안 돼, 지금 상황은. 나도 알아. 우리가 조금 전까지 장벽 안쪽에 있었다는 거. 그러다가 이상한 빛이 우릴 감싸고, 낯선 곳으로 내동댕이치고, 눈을 떠보니 장벽 바깥이라는 지금 상황 말이야. 나도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런데 여길 봐.”

탁.

iPS를 짚어 보이는 다비의 손길이 조금 거칠어졌다.

“이 화면이 말해 주고 있잖아. 우리가 레퓨지아 바깥에 나와 있다는 거.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고. 왜 이런 상황인 건지.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을 겪는 건지도.”
“…….”
“나도, 진짜로 모르겠다고…….”

다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샌가 iPS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다비의 눈길이 떨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알아볼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보였다. 우리 중에 누구보다도 iPS를 믿고 있을 텐데. 아마도 iPS가 보여 주는 결과를 제일 믿고 싶지 않은 아이도 다비겠지.

“……화내서 미안.”

다비는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요재가 초조한 기색으로 다비와 세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나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냐, 다비야. 나도 무서워서 그랬어. 그보단 우리,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보자. 너랑 iPS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있어. 우리한텐 네가 있으니까.”
“…….”

마침내 다비가 고개를 들었다. 세나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잠깐 세나가 부러워졌다.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저렇게 다른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은 세나도 무서울 텐데.’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해서라도 다른 아이들을 격려하려고 애써 두려움을 참아내는 거겠지. 생각할수록 그런 세나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는 걸 느꼈다.

“저기, 있잖아.”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세나와 다비, 요재. 나는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만약에 다비 말처럼, 우리가 정말로 레퓨지아 바깥에 나와 있더라도 말야. 그래도 장벽은 iPS에 표시되지 않을까? 다비가 그랬잖아. iPS에는 레퓨지아의 모든 공간 정보가 데이터로 담겨 있다고. 그러니까, 장벽도 엄연히 레퓨지아에 포함된 지형이니까, 영역이니까. 장벽이 iPS에 보이진 않을까 해서.”
“…….”

아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였을까. 다행히 다비가 반색했을 때, 나는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을 몰래 쓸어내려야 했다.

“……그거, 일리가 있어.”

다비의 눈빛이 변했다. 바빠진 손놀림으로 iPS를 조작했다. 탐지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힌 걸까. 이윽고 다비가 낮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찾았다……!”

우리 모두는 옹기종기 모여 iPS 화면으로 눈길을 던졌다. 화면 귀퉁이 끝 쪽, 그곳에 검푸른 바탕에 흰색으로 표시된 완만한 곡선 지형이 보였다.

다비가 그곳을 가리켰다.

“조안이 추측한 대로야. 여기 장벽이 있어. 우린 바깥에 있고.”
“거리가 얼마나 돼?”

세나의 물음에 다비가 화면 아래를 확인했다.

“10킬로미터.”
“…….”

아이들이 일제히 침묵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하면 단번에 10킬로미터 밖으로 날려 올 수 있는 걸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듯해서 나는 무의식중에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이 모든 일이 내 목걸이 때문이라는 거, 절대로 말 못 하겠다.

그사이,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 상황을 알았으니까 됐어. 위치도 파악했고. 돌아갈 곳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막막한 것보단 훨씬 나아.”

세나의 말에 요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빨리 움직이자.”
“장벽으로?”
“응.”

요재의 대답에 이어 세나도 말했다.

“찬성. 아무것도 안 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보단 낫겠지. 일단 장벽까지 가면서 생각을 해 보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장벽 안쪽으로 들어갈 구멍이나 통로가 있을지.”
“좋아. 조안은?”

다비가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세나가 돌연 모두를 다급히 돌아보며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쉿. 조용히.”
“……응?”

무슨 일인 걸까. 나도, 다른 아이들도 어리둥절해하며 세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세나는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세나는 마치 쏘아보듯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서 자욱한 안갯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나나 다른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저 멀리에 있을 무언가를 꿰뚫어 살펴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세나가 긴장한 채 낮게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저기, 저쪽에서 순찰대원들이 우릴 찾고 있어.”

세나가 한쪽을 딱 짚어서 가리켰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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