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장벽의 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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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장벽의 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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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장벽의 아이 (3)
2022.12.2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저건 무슨 소리일까.
노동 교화시설 탈주자? 반딧불이와 접촉해서 변이? 밀접 접촉자? 설마, 그중에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 있는 걸까.
그럴 거란 예감이 든 순간이었다. 무전기를 든 순찰대원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눈빛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깨달았다. 저건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래, 물건을 치울 때나 저런 눈빛을 하는 거지. 그것도 꽤나 귀찮은 물건, 잡동사니, 그런 걸 치워야 할 때 보낼 법한 심드렁한 눈빛. 아무런 감정도, 감상도, 후회도 없는 무관심한 눈초리.
‘어째서?’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이가 저렇게 변한 상황도. 순찰대원들의 잔혹한 도구에 끌려가는 모습도. 이쪽을 향해 신중하게 내딛는 나머지 순찰대원들의 발걸음도. 모두. 알 수 없기에 다만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물러났다. 한 걸음을 물러났더니 순찰대원들이 두 걸음 다가왔다. 서슴없이 좁혀진 거리만큼 가슴이 쿵, 쿵.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침착하게 어깨를 짚어왔다.
“안녕하세요, 순찰대원 여러분. 저는 RHS, 레퓨지아 하이스쿨의 학생회장 세나입니다.”
세나였다.
어느새 차분한 얼굴로 곁에 다가와 있었다. 그 표정처럼 침착한 손길로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손바닥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는, 내 어깨를 짚은 세나의 손길이 남몰래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아까 저희가 센터에 신고를 했습니다. 여기 길을 잃은 아이가 있다고 말이지요. 때마침 출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나가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순찰대원들은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내 어깨를 짚은 세나의 손끝 떨림이 저릿저릿, 커졌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모두 RHS의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모집한 iPS 체험단 활동 중에 아이를 발견하고 구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고요.”
그럼에도 저벅저벅, 순찰대원들은 멈추지 않았다. 세나의 목소리에마저 떨림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레퓨지아의 시민은…… 적법한 거주민으로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성큼, 성큼, 순찰대원들의 보폭이 커졌다. 그들의 손길이 허리춤으로 움직였다. 쇠몽둥이, 수갑, 차가운 도구들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이쪽으로 작살을 겨누었다. 쇠그물이 장전된 석궁도 들어올렸다.
그 모든 순찰대원의 눈길이 똑같았다.
심드렁한 눈빛.
귀찮은 물건을 치우려는 듯한 눈동자.
덜컥, 다시금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조안!”
다비의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었다. 보고야 말았다. 쇠로 만든 몽둥이가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내 이마를 향해서였다.
저기에 맞으면 난 어떻게 될까. 무사할 수 있을까.
“……!”
또다시 덜컥, 누군가가 어깨를 세차게 끌어당겼다. 몸이 뒤로 확 쏠렸다. 몽둥이가 얼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다.
“뛰어!”
나를 끌어당기며 세나가 외쳤다.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뛰었다. 요재와 다비는 이미 저만치 뛰고 있었다. 뒤에서도 짐승 같은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달려왔다.
“헉! 허억!”
금방 숨이 찼다. 장벽을 따라 달렸다. 수풀을 건너뛰고, 그루터기를 넘었다. 가시풀에 긁혔다. 터엉! 날아온 작살이 바로 옆 나무줄기에 박혔다. 소름이 돋았다. 만약 여기서 멈추면, 저들에게 잡히면, 겪게 될 일이 무서웠다. 조금 전 피투성이가 되었던 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계속 뛰었다.
숨이 막히도록.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순찰대원들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끈질기고, 집요했다.
“밀접 접촉자 4인, 17-C 구역으로 도주 중!”
대원들의 거친 군홧발 소리가 계속해서 따라왔다. 거리를 좁혀 왔다. 그럴수록 더욱 기를 쓰며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빠른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길에도 나보다 빠삭할 테지. 어쩌면 처음부터 뿌리치기란 불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듯 현실은 언제나 냉혹한 법일까.
“잡았다!”
“……!”
덜컥, 숨이 막혔다. 아니, 옷깃이 뒤로 확 당겨졌다. 누군가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점퍼 뒷덜미를 움켜쥐고 당겼다. 뛰던 기세 그대로 다리가 허공에 부웅 떴다. 중력이 장난을 치듯이. 나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어?
멍해진 기분도 잠깐이었다. 이윽고 땅바닥이 나를 맞이했다.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 전신을 감쌌다. 비로소 내가 당한 꼴을 깨달았다.
“조안!”
앞서 가던 세나가 뒤돌아보며 다급히 외쳤다. 동시에 날 붙잡은 순찰대원이 소리쳤다.
“밀접 접촉자 1인 포획 완료!”
“……!”
철컥, 어찌할 틈도 없이 금속성 차가운 감촉이 손목을 휘감았다. 수갑? 뒤로 돌려진 손목이 꼼짝없이 묶여 버렸다. 일어날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순찰대원의 무릎이 등을 짓누르는 까닭이었다.
“으읏! 윽!”
그럴수록 몸부림을 쳤다. 버둥거렸다. 표본용 핀에 박힌 딱정벌레가 된 듯이.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새 눈가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거친 숨결도 터져 나왔다. 비키라고. 날 놓아 달라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제발!’
어디라도 좋으니 도망칠 수 있기를. 턱까지 차오르는 숨결 속에서 애타게 염원했다. 그 순간이었다.
- 정말이니?
“……!”
누군가가 머릿속에 말을 걸어왔다. 난데없는 목소리였다. 한데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한편으로는 은근하면서도 감미롭고 자상한 목소리였다. 익숙했다. 어디에서? 그래…….
‘도서관에서.’
낡은 도서관 한구석에 버려진 듯 놓여 있던 붉은 목걸이. 그걸 발견했을 때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 왔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때 나는 저 목소리의 은근한 이끌림에 현혹되듯 손을 뻗었고, 목걸이를 벗지 못하게 되었던가.
하지만 더는 궁금해할 겨를이 없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무릎으로 짓뭉개고 있는 남자 외에도 다른 대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더 늦으면 끝장이야. 절망적 확신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 오고 있는 목소리를 향해 대답하듯 외쳤다.
‘그래!’
속으로 외쳐 놓고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순찰대원들에게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갈 판국에, 머릿속 정체모를 목소리를 향해 애타게 애원하는 꼴이라니. 이런 내 모습이 우습기가 짝이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에 불과했다.
……!
소리도 없었다.
기색도 없었다.
내 항공점퍼 깊숙이 감춰 두었던, 정체불명의 목걸이에서 불길한 섬광이 피어났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소름 돋도록 찬란하게.
동시에 더욱 은근해진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 이러면 어떨까?
내 기색을 살피듯 물어오는 뉘앙스. 소리 없이 짓는 눈웃음. 매혹적인 속삭임이 귓가를 스친 것과,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진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후욱!
주위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아니, 일그러졌다. 늘어났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순찰대원들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쪽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런데도 멀어졌다. 마치 땅이 물러나듯이. 공간 자체가 확장되고, 멀어지고, 아득하게 벌어지듯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목걸이 때문에?’
그런 듯했다.
어느새 붉은 섬광이 점퍼를 태울 듯이 뚫고서 사방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에 물들수록 주위 공간의 왜곡이 심해졌다. 내 등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던 대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무슨! 으으아엇?”
대원이 위쪽으로 훅, 멀어졌다. 나도 아래쪽으로 꺼지듯이 훅, 떨어졌다. 나를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확장되고, 멀어졌다. 아득하게. 세상에 홀로 남겨지듯이. 어둠속에 내던져지듯이. 마치, 낡은 골방에 홀로 쪼그려 앉아 보내야 했던 매일 밤의 풍경처럼. 나날처럼. 속절없이.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걸까.
이내 목걸이의 섬광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같은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 숨기만 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리는 나가야 해요. 모두가 포기한 그곳,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진짜 터전, 언노운으로.
“…….”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여전히 감미로운 속삭임.
그 틈새로 꿈결 같은 환각이 떠올랐다. 이를 테면 그것은, 가슴에 불현듯 덥석 안겨 오는 과거의 기록이었다. 혹은 누군가가 유산처럼 남겼을 기억이었다.
‘저건…….’
온통 섬광에 휩싸인 찬란한 어둠의 틈바구니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할머니였다. 우아한 인상을 굳힌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두 남자를 향해 단호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 레퓨지아는 그저 숨을 고르기 위해 건설한 도피처일 뿐. 도피처는 결코 낙원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는 벌써 그 사실을 망각하고 계셨던가요? 정녕코, 이대로 이곳에 주저앉을 생각인가요?
‘…….’
저 할머니. 어디서 봤더라. 어쩐지 낯이 익었다. 많이 봤는데. 그래. 맞아. 책에서. 사진으로. 킴. 레퓨지아를 건설했다는 3인의 현자. 그들 중의 유일한 여성. 세나의 할머니.
그런데 왜…….
‘지금 저분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나는 이 환각이 그 언젠가의 한때를 새긴 기록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짐작할 방법도 없었다.
환각 같은 킴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녀의 열변을 듣던 두 남자의 모습도 함께 멀어졌다. 환각이 사라진 빈자리를 눈부신 어둠이 채웠다. 비명 같은 고요함이 몰아닥쳤다. 아스라이 번지는 킴의 탄식.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새하얗게 스러졌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콰당!
“……아읏!”
갑작스러운 흙바닥으로 나는 내던져졌다. 아니, 떨어져 호되게 나뒹굴고 말았다. 숨이 턱 막히게 아팠다. 하지만 그런 엄살을 피울 여유는 없었다.
“흡!”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순찰대원들!’
그들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온통 자욱한 안개만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혼자다.
아무도 없다.
게다가 손목에 채워졌던 수갑마저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여긴…… 어디야?’
숲이 아니었다. 장벽을 따라 무성하던 숲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눅눅하고 시커먼 흙바닥, 그리 위로 끝없이 펼쳐진 안개의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그럼 세나는? 다비랑 요재는?’
평소에 딱히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데면데면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이들마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설마 나, 정말로 혼자가 되어 어딘지도 모를 곳에 조난된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다들 어디 있어? 이거, 뭐야?”
누군가의 떨림 섞인 목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들려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