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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장벽의 아이 (2) (4/38)


4화. 장벽의 아이 (2)
2022.12.1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괜찮아?”

제일 먼저 달려간 건 세나였다. 세나의 손에 붙들린 어린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온통 흙먼지로 가득한 작은 얼굴. 그 얼굴을 가로지르는 눈물자국. 커다란 눈망울이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으으, 이이익!”

갑자기 자신을 붙잡은 세나 때문에 놀란 걸까. 혹은 느닷없이 다가온 우리 모두 때문에 겁먹은 걸까. 아이가 격하게 몸부림을 치며 세나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세나가 다급히 말했다.

“괜찮아. 우린 널 해치지 않아. 응?”

나직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나 보다. 아이의 표정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눈망울이 더 두려움에 질린 채 젖어 갔다.

세나의 표정에 난감함이 서렸다.

다비와 요재가 당황하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뭔가를 느꼈다.

“다들 앉자.”

나도 모르게 말하며 무릎을 굽혔다. 몸을 낮추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제야 아이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 어색하게 보이지 않길 바라며 살며시 웃었다. 안심하라고. 괜찮다고. 이 마음이 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제야 아이가 주춤했다. 뒤이어 다비가, 세나가, 요재가 날 따라 몸을 낮추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아이와 같은 눈높이가 되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아직 불안감이 덜 가신 눈길로, 그러나 전과 달리 의아함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 모두를 차례차례 돌아보았다.

그래, 그렇겠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자기를 붙잡고, 둘러싸고서, 어둑한 숲을 배경으로 저만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아마 우리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겠지. 온통 그림자에 휩싸여 시커멓게만 보였겠지.

“괜찮아? 응? 어디 안 다쳤어?”
“…….”
“아픈 데는 없고?”
“…….”

여전히 말이 없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작달막한 손가락을 매만졌다. 순간 아이가 움찔. 하지만 제 손을 빼지는 않았다. 그 손등에 새겨진 수많은 생채기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궁금했다. 대체 어디서 온 아이일까.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금지구역을 헤매고 있었을까.

“언니 이름은 조안이야. 넌 이름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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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눈길에서 경계심이 조금씩 흐려져 갔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세나와 다비도, 요재도 아이의 작은 등과 어깨를 쓸어주며 가만히 기다렸다.
마침내 진정이 된 걸까.

“저는…….”

아이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차분한 푸른빛이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아이와 우리 모두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푸른빛을 머금은 반딧불이가 있었다. 조금 전, 아이를 처음 발견했던 때부터 주위에 맴돌던 반딧불이였다.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이렇게 머리 위까지 다가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

이름을 말하려던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뜻밖의 예쁜 걸 보면서 더욱 안심이 되었나 보다. 나도 안심했다. 마침 이런 때에 신기한 빛깔의 반딧불이가 나타나 줘서 다행이라고. 마치 아이를 보듬어 주기 위해 때맞추어 나타나 준 것만 같다고. 신기하고 고맙다는 기분이 들었다.

흐뭇했다.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음을 풀어 주길. 두려움을 잊어 주길. 바라고 기원하며 아이가 손을 뻗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반딧불이도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걸까. 도망을 치지도 않고 나풀거리며 내려왔다. 아래로. 더 아래로. 마침내 아이가 뻗은 손끝을 향해. 작달막하고 보드라운 손가락에 내려서서. 잠시 서성이는가 싶더니.

파르르…….

몸을 떨었다.

파랗게 빛나는 가루가 날개 사이에서 떨어져 나왔다. 하늘하늘. 비현실적일 정도로 여유롭게, 아이의 손끝을 향해 떨어졌다. 내려앉았다. 아이의 입가에 놀람과 신기함이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가지 못했다.

파스스스스!

“……어?”

가루가 아이의 손끝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퍼졌다. 아이의 손등을 타고, 손목을 넘어, 팔뚝을 지나, 어깨와 상체, 얼굴까지 모조리 덮어 버렸다. 놀란 아이가 무어라 소리를 지를 틈도 주지 않았다.

나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손 쓸 틈도 없었다.

콰드득-!

가루에 온통 휩싸인 아이의 몸에서 섬뜩한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

아이가 없어졌다. 아니, 흩어지는 가루 사이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있던 곳에서 ‘아이였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밀어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거칠게, 난폭하게.

“엇!”

넘어졌다. 팔뚝이 쓸렸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어, 어어……!”

비로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흩어지는 푸른 가루 사이로 아이의 뒤틀려가는 상체가 보였다. 콰드드득, 콰득, 살갗 갈라지는 소리.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자그마하던 아이의 몸에서 나는 소리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며 변하고 있었다.

“구륵……! 구륵!”

말갛던 눈동자가 탁해졌다. 아담하던 어깨가 거대해졌다. 한쪽 팔뚝은 길어졌고, 다른 팔뚝은 터무니없이 굵어졌다. 작디작던 목구멍에서는 쇠 긁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르륵!”

아이의 탁해진 눈빛 사이로 떠오른 공포심이 엿보였다. 이해가 안 됐다. 왜 저렇게 된 걸까. 이건 무슨 상황인 걸까. 아이는 그저 신기하게 생긴 반딧불이를 만졌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듯 갑자기 저런 모습으로 변해 버린 걸까.

놀랍고 무서웠다. 두려웠다. 떨리는 눈길을 던졌다. 그 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덜컥, 독사를 만난 개구리처럼. 혹은 그 무언가 압도적인 존재와 마주쳐 버린 것처럼, 아득해지려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무서웠다.

그 순간이었다.

“구륵!”

기괴한 형태로 변한 아이가 달려들어 왔다.

도와달라는 손짓?

구해 달라는 몸짓?

모두 아니었다.

후우웅-!

거대해진 주먹이 맹렬히 떨어져 내려왔다. 그 아래에 내가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한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치닫는 위기감에 반사적으로 움직인 듯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온몸에 낙엽을 묻히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직후 콰앙, 굉음이 터졌다. 방금까지 내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였다.

“구륵!”

거친 숨소리. 바닥에 10센티미터나 틀어박힌 주먹. 소름이 돋았다. 그걸 깨달은 것과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안!”

요재의 목소리일까. 외침을 귀에 담으며 허겁지겁 일어났다. 재빨리 물려나려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헛주먹질을 한 아이가 다시 달려들어 왔다. 내가 물러나려고 애썼던 몸짓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 순간, 아이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

설마, 울고 있는 걸까.

그런 것 같았다.

아이의 탁해진 눈동자 사이에 서린 공포심이 이전보다 뚜렷하게 느껴졌다. 도와달라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애원에 화답하고 싶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다. 안아 주고 싶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만 있다면 온종일이라도 달래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의 손길이 그걸 거부했다.

“구르륵!”
“……!”

아이가 휘두른 기다란 팔에 어깨를 스치듯 맞았다. 방망이로 얻어맞는 것 같았다. 다시 넘어졌다.

“구륵…… 엄……마, 배……고파!”

쩌걱!

아이의 입이 거대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빨. 비죽비죽했다. 날카로웠다. 그 커다란 입을 벌리고서 아이가 달려들어 왔다. 무엇을 위해?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어깨를 물어뜯으려는 것이라고.

오싹, 소름이 돋았다.

두 팔을 내밀었다.

턱, 덮쳐 오는 아이의 이마를 잡았다. 다른 한 손은 가슴을 짚었다. 밀어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힘이 모자랐다. 아이의 입이 턱! 턱! 섬뜩한 소리를 내는 경첩처럼 열렸다가 닫히며 허공을 깨물었다. 그 동작이 서서히 가까워져 왔다.

‘더, 더는…….’

못 버티겠어.

절망감이 가슴을 옥죄는 순간이었다.

투컥!

돌연 알 수 없을 소리가 아이의 어깨에서 울렸다. 동시에 달려들던 아이의 전신이 크게 경련했다. 뜨끈한 무언가가 내 얼굴에 투둑 흩뿌려졌다. 액체? 끈적했다. 아이의 피였다.
비로소 나는 보아야 했다.

“구르륵! 구륵!”

괴로운 듯이 버둥거리는 아이의 어깨에서 뾰족한 쇳덩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작살이었다. 등쪽에서부터 앞으로. 어깨를 완전히 꿰뚫은 채였다.

“명중! 당겨!”

누군가의 거친 외침. 작살이 팽팽해졌다.

“구르워어억!”

아이가 작살에 꿰인 채 뒤로 넘어졌다. 버둥거리며 질질 끌려갔다. 그제야 그 너머의 광경이 보였다.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작살과 연결된 쇠사슬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들의 제복 어깨에 달린 마크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레퓨지아…… 외곽 순찰대?’

문득, 아까 학교에서 출발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iPS를 이용해서 신고를 했더랬다. 외곽 금지구역 장벽 지대에 길을 잃은 듯한 어린아이가 있다고. 빨리 가서 구해 달라고. 그렇게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비웃음과 훈계뿐이었는데.

그랬는데…….

‘진짜 출동한 거야? 그런데…… 작살은 어째서? 왜?’

저런 무시무시한 물건을 가지고 온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외곽 순찰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또 무언가 물건을 꺼냈다. 넘어진 채로 작살을 뽑으려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향해 겨누었다.

“발사!”

말릴 틈도 없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커먼 덩어리가 쏘아졌다. 허공에서 넓게 펼쳐졌다. 쇠그물이었다. 그런데 그물 안쪽에 뾰족한 가시가 잔뜩 튀어나와 있었다.

“……구륵!”

그물에 뒤덮인 아이가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그럴수록 그물에 달린 가시가 아이의 살갗을 더욱 깊이 파고들며 헤집었다. 금세 피투성이. 아이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순찰대원 하나가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외곽순찰대 레인저 알파팀. 17-B 구역에서 노동 교화시설 탈주자 체포 완료. 현재 탈주자는 반딧불이와 접촉하여 변이된 상태이며, 이에 특수 처리시설의 사용 허가를 요청함. 아울러, 변이자와 밀접 접촉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4명 또한 발견하였음. 밀접 접촉 민간인에 대한 처리 방안을 요구한다, 이상.”

영문 모를 서슬 퍼런 말들이 이어졌다. 순찰대원이 이쪽을 마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이었다. 순찰대원의 무전기 속에서 지직거리는 응답이 흘러나왔다.

- 지직……. 밀접 접촉자에 대한 보고를 입감하였음. 전원 체포하여 교화 시설에 구금하라. 저항하거나 도주를 시도한다면 현장에서 사살하여도 무방함, 이상.

믿기지 않는 대답.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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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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