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장벽의 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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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장벽의 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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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장벽의 아이 (1)
2022.12.0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저거…… 뭐야?”
처음 침묵을 깬 아이는 요재였다.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요재가 물었다.
“저거, 진짜야?”
누구에게 물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똑같이 궁금했다. 레퓨지아의 외곽 장벽 지대를 비추는 iPS, 저 화면 속의 모습이 정말로 진짜일지.
“…….”
나는 한차례 눈을 질끈 힘주어 감았다가 떴다. 다시 iPS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화면 속의 모습은 조금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다급히 뛰고 있었다. 여덟 살? 아홉 살? 아무리 많이 보아도 열 살은 넘지 않을 듯한 여자아이였다. 한데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다. 걸친 옷은 끔찍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저 옷은 대체 몇 번이나 기워서 입은 걸까. 서른 번? 마흔 번? 찢어진 곳을 기운 자리가 거의 모든 부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저분했다. 온통 뭔지 모를 시커먼 기름과 때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의 얼굴과 목덜미, 손과 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신발조차 없었다. 어두운 숲을 헤치며 뛰는 아이의 드러난 팔뚝도, 발바닥도 온통 긁히고 찍힌 상처투성이였다.
“우리 혹시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거 아닐까?”
요재의 말이 우리 모두의 고막을 푹 찔렀다. 하지만 그걸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엉뚱한 곳이 아니다. 가짜도 아니다. 지금 모두가 보고 있는 이 화면은 장벽 부근의 광경이 맞다. 그게 엄연한 사실이라는 걸, 나는 불현듯 깨달아 버렸다.
그건 곁의 세나도, 바쁘게 놀리던 손을 멍하니 멈추고 있던 다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제발 아니길 바라듯 질문을 던진 요재는 두말할 것도 없겠지.
“어떡하지?”
사람이 너무나 뜻밖의 상황을 목격해 버리면 말을 잃어 버린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역시나 다비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 속의 아이가 왜 저런 모습인 건지. 어째서 출입금지 구역인 장벽 인근에서 저렇듯 두려움에 질린 채 뛰고 있는지. 대체 누가 저 아이를 저런 꼴로 만든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선뜻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일단…… 신고부터.”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누군가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우리끼리 놀라고 있어 보았자 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테니까.
“그러니까, 어른들을 부르자. 선생님이라든가. 순찰대라든가.”
그게 맞을 거다.
아마 우리가 제멋대로 iPS의 제한을 풀고 금지구역을 엿본 사실을 들키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신고를 하는 게 맞겠지. 우리야 조금 혼이 나면 끝이겠지만, 그만큼 저 어린아이는 안전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중요한 거니까.
그런 생각에 충동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말해 놓고 금방 후회했다. 내가 의견을 밝힌다 한들 다른 아이들이 순순히 들어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아까 도서관을 보자고 했던 것도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다행히 다른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그래, 좋아. 찬성. 책임은 내가 질게.”
다비가 선뜻 대답했다.
뒤이어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책임은 내가 져야 해. 체험단 조장이니까.”
“저기…… 그냥 다 같이 책임지고 혼나면 안 될까?”
요재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머지 우리 모두가 머쓱해졌다. 하긴, 지금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 혼나느냐 하는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당장 외곽 장벽지대 인근의 어둑한 숲속에서 상처투성이인 어린아이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상황이니까. 일단은 아이가 안전하게 구조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때부터였다.
다비가 iPS를 바쁘게 매만졌다. 이내 [신고/제보 접수] 아이콘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처럼 원활한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iPS 건너편에서 신고를 받는 접수원이 뜻밖의 반응을 보인 까닭이었다.
- 외곽 장벽지대 말인가요? 그곳에 8~9세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다고요?
“네, 맞아요. 저희가 봤어요.”
- 봤다니요? 장벽지대를요?
“네.”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화면 건너편의 접수원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 장난 전화나 신고는 곤란해요, 학생들.
“……네?”
- 지금 학생들이 있는 곳이 어디죠?
“저흰 지금 학교에…….”
- 그런데 학교에 있으면서, 출입금지 구역인 외곽 장벽지대에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는 거죠?
“…….”
이거, 아무래도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다비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세나가 나섰다.
“안녕하세요, RHS의 학생회장 세나입니다. 저희는 지금 학교장님의 허가를 받고서 iPS 기기를 시험 운영 중이에요.”
- 네에, 그리고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시험용 iPS의 제한을 임의로 해제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관측이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외곽 장벽지대까지 살펴보게 됐어요. 그 일에 대한 책임이나 추궁은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말을 믿어 주시고, 외곽지대에 순찰대를 파견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
과연 세나다. 누구보다도 차분하게 꺼내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그런데 웬걸. 건너편에서는 아무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어떤 의미의 침묵일까. 잠시 후에야 접수원의 응답이 돌아왔다.
한데 그 반응은 꽤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순찰대에 장벽지대 출동요청을 넣을게요. 그냥 장벽지대 전체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되겠지요?
“네? 아뇨. 저희가 어린아이를 발견한 지점은…….”
- 학생들. 자꾸 그러면 곤란해요.
“…….”
어느새 접수원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훈계조로 바뀌어 있었다.
- 학생들? 나도 iPS가 뭔지는 알아요. 그런데 그걸 받자마자 프로그램을 건드려서 시험용 버전의 제한을 풀었다고요? 덕분에 금지구역인 외곽 장벽지대를 관측했다니, 전문가도 아닌 학생들이? 그걸 나보고 믿어 달라는 말이지요?
“저기, 그건…….”
- 이봐요. 학생들. 한창 그런 장난을 치고 싶을 나이라는 건 알아요. 이해해. 하지만 재미있는 장난에도 선이 있어요. 지금 이렇게 내가 허위접수를 받는 사이에 진짜 응급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어떡할려고 그래요?
“…….”
전혀 믿어 주지 않고 있다. 우리의 신고를 단순한 장난전화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세나가 아무리 진지하게 대답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 그러니까 오늘은 혼을 내지는 않을게요. 대신에 학생들? 한 번 더 이렇게 몹쓸 장난을 치면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릴 거예요. 알겠지요?
……그걸로 끝이었다. 응급신고 센터와의 통신이 뚝, 하고 끊겼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통신이 끊긴 iPS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까 설정했던 관측지점으로 돌아온 화면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온통 낯설고, 이질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황량한 장벽 아래의 광경을 외롭게 울며 뛰는 아이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그럼 저 아이는 누가 구해 줘야 할까.
신고 접수도 안 되는데.
어떡하지.
“우리가 가 볼까.”
막막해지려는 찰나, 조금은 충동적으로 느껴지는 발언을 꺼낸 건 의외로 세나였다. 나는 놀라서 세나를 쳐다보았다. 세나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늦을 것 같아서.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알리려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지금 당장 어린아이가 위험한 곳에서 겁에 질려 뛰고 있다. 심지어 응급센터에서 신고를 받아 주지도 않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퇴근했을 선생님께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iPS 화면을 직접 보여 드리는 길밖에 없을 텐데. 그래야 우리를 믿어 줄 텐데.
만약, 그사이에 아이가 잘못되면?
“하지만 저긴 금지구역이잖아.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지?”
내 말에 다비가 잠깐 생각하는 눈빛이 되었다.
“조안 말도 일리가 있는데. 하지만 내가 샛길을 알아.”
“샛길을?”
“응.”
세나의 물음에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가 iPS를 설계한 분이잖아. 그리고 iPS는 레퓨지아의 모든 지형을 데이터로 변환하는 도구고. 그러니 우리 집엔 레퓨지아의 모든 지도가 다 있었거든, 나 어릴 때부터.”
“그럼…….”
“응. 거의 다 외우고 있어. 외곽 장벽지대로 들어가는 샛길도 포함해서.”
“위험하진 않을까?”
“전혀. 예전엔 순찰대가 이용했던 출입로였는데 몇 년 전부터 버려졌거든. 아마 지금 순찰대는 그런 길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몇 없을걸.”
“그럼 가 보자. 다들 의견은?”
세나가 우리 모두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단호하면서도 책임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아이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금지구역에 출입한 사실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는 각오. 그 모든 게 눈빛을 통해 엿보였다.
조금은, 믿음이 갔다.
“응. 찬성.”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다비와 요재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찬성의 뜻을 드러낸 것은.
“그럼 내가 앞장설게.”
다비가 iPS를 챙겼다. 실시간으로 iPS를 조작하며 어린아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모두가 뒤를 따랐다. 교실을 나와, 학교를 떠났다. 드론 보드에 올라탔다. 시가지를 벗어났다. 다비의 안내를 따라 외곽 숲 언저리에 다다랐다.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숲. 처음 와 보는 그곳에 철조망이 죽 세워져 있었다.
“이쪽으로.”
다비가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기억 속 지도와 실제 지형을 비교하며 맞춰 보는 걸까. 아마도 그런 듯했다. 다비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샛길을 찾아냈다.
“여기야.”
“…….”
나는 멈칫했다. 다비가 가리킨 길은 말이 샛길이지, 거의 수풀 속으로 간신히 나 있는 개구멍에 가까웠다. 원래는 평범했을 출입로가 무성해지는 수풀에 잡아먹혀 간신히 흔적만 남은 모양새랄까.
“내가 먼저 들어갈게.”
앞장을 선 아이는 세나였다. 세나가 기다시피 하며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내내 가슴이 쿵쿵 뛰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분명한 일탈이었다. 그 느낌이 계속해서 심장을 두드렸다. 무서운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네 발로 기듯이 움직였을까. 무릎과 손바닥이 슬슬 아파 올 무렵,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수풀 통로의 출구가 보였다.
출구 밖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어둑했다.
하늘에는 분명 인공 태양이 떠올라 있을 시간인데. 그런데도 어두웠다. 외곽 장벽을 따라 높다랗게 자라난 나무는 그 무성함으로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듯했다. 그렇게 밝은 빛을 모조리 가로막으며 군림하듯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벽도 마찬가지였다.
높이가 몇 미터쯤 될까. 너무 아득하게 치솟아 있어서 오히려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득, 소름이 돋았다.
“아이는?”
나는 치솟는 소름을 애써 외면하듯 다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비가 머리에 들러붙은 낙엽을 털어 내며 iPS를 들여다보았다.
“멀지 않아. 근처야.”
“근처?”
“응. 대략…… 이쪽?”
퍼석!
걸음을 떼려던 다비가 자신의 낙엽 밟는 소리에 흠칫했다. 숲의 지나친 고요함 때문인지, 혹은 묵은 낙엽이 너무 두텁게 쌓였던 까닭인지, 그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어느새 요재는 세나의 곁에 붙어서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움직이자.”
다비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되뇌었다. 얼른 아이를 찾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이 불길한 숲을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다고. 혼자이기에 외롭지만 그만큼 안전한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그 뒤엔 샤워를 하며 특별히 다사다난했던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되겠지. 비로소 안도하며 평소보다 조금은 더 푹 자게 될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고, 소망했다.
그렇기에 다비가 마침내 어딘가를 가리켰을 때, 그 손끝이 향하는 방향의 수풀 너머에 어린아이의 실루엣이 언뜻 엇비쳤을 때, 나는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찾았어……!”
나 대신 나직한 탄성을 뱉은 건 요재였다.
우리 모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아니, 거의 뛰었다. 생각보다 손쉽게 아이를 찾아낸 사실에 기뻐하며, 눅눅한 덩굴과 무성한 덤불을 헤치며 나아갔다.
어린아이도 그런 우리를 본 것일까.
이쪽을 향해 마주 뛰어왔다.
그때였다.
‘어?’
나는 무의식중에 눈길을 들었다. 이쪽을 향해 마주 뛰어오는 어린아이의 위쪽.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다. 온통 어둑하고 눅눅하기만 한 이곳 숲에 어울리지 않는, 신비롭도록 푸른 빛의 무리였다.
그 정체를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은 필요없었다.
‘반딧불이?’
낡은 도서관의 책에서 언젠가 본 기억이 났다. 신록의 밤이 내리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고요한 빛을 밝히는 아름다운 곤충이 있다고. 스스로의 빛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그런 생물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반딧불이의 빛이 저렇듯 창백한 푸른빛이었던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나는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와 아이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아이의 머리 위에서 맴도는 푸른 반딧불이의 움직임이 현란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조금 신기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나타난 저 반딧불이의 푸른빛이 낯설어서. 조금 특별한 종류인가 싶어서.
그래서였다.
나는 꿈에조차 몰랐다.
저 반딧불이 때문에 이제 곧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내가, 세나와 다비와 요재 모두가, 이 순간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두 번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리란 사실을. 지금까지의 평온했던 일상을 잃게 되리란 사실도. 샤워를 하며 특별히 다사다난했던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되지도, 비로소 안도하며 평소보다 조금은 더 푹 자게 되지도 못하리란 냉엄한 미래 또한.
결코,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걸음을 내딛고야 말았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