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iPS 체험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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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iPS 체험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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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iPS 체험단 (2)
2022.12.0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바깥세상은 어떤 곳일까.
레퓨지아의 바깥엔 무엇이 있을까.
어릴 적부터 가장 궁금했던 점이었다. 하지만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어떤 책에도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어떠한 신비로운 옛 이야기 속에도, 혹은 날카로운 사실을 전하는 지리서에서도 그랬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가 후회하게 되었다. 섣부른 질문 때문에 호되게 혼이 났고, 은따가 되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바깥세상이 궁금하다.
그래서다.
지금 다비가 제한을 해제한 iPS, 저 화면에 펼쳐지는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는 것은.
“……됐다.”
다비가 환하게 웃었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작은 입매 가득 미소로 피어났다. 나는 다비가 가리키는 iPS 화면을 보았다. 어느새 곁에 나란히 선 요재도 마찬가지였다.
“자아, 무난하게 제한을 풀었습니다아. 다들 구경해 보시죠.”
타닥, 타닥!
다비가 자랑스레 말하며 iPS 화면 이곳저곳을 터치했다. 그러자 화면 가득 학교의 모습이 채워졌다. 드넓은 잔디 운동장과 본관, 그 옆의 기역자로 꺾인 별관 건물, 뒤편의 체육시설 창고까지 전부 다.
“우와아.”
요재의 눈이 반짝거리는 게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졌다. 그럼 세나는? 나는 슬며시 세나 쪽을 살펴보았다. 세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래도 신기하다고 생각은 하는 건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다비는 그런 상황이 무척 즐거운 듯했다.
“원래는 이렇게 학교 안쪽만 살펴볼 수 있게 제한이 걸려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이렇게 방향 지정을 하면…….”
토독, 톡!
iPS의 관측 범위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화면을 채우고 있던 학교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마치 화면에 영상을 보내는 카메라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커다란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그 주위의 익숙한 길과 건물들이 다 함께 화면에 잡혔다.
그제야 다비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구경하고 싶은 곳 없어?”
다비의 시선은 세나를 향해 있었다. 마치, ‘이거 봐. 내가 된댔지?’라는 듯한 의기양양한 눈빛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로 밉지는 않았다. 세나도 비슷하게 느낀 걸까. 아니면 제한이 풀린 iPS의 관찰 범위에 감탄한 걸까.
“뭐, 썩 나쁘진 않네.”
저 정도면 세나가 하는 칭찬으로는 극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세나는 쉽게 들뜨지 않는 아이니까. 하지만 다비에게는 그런 칭찬이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그런 거 말고. 구경하고 싶은 곳 없냐니깐?”
“구경?”
“응. 아무 곳이나 다 볼 수 있어.”
“이거, 테스트를 위해 하는 건 맞는 거지? 그걸 잊으면 안 돼.”
“물론이지. 그럼 어디부터 살펴볼까?”
다비가 눈을 반짝거리며 우리 모두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어디든 말만 하면 다 보여 주겠다는 기세(?)여서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기, 도서관을 볼 수 있을까?”
“도서관?”
내 말에 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제일 처음 의견을 말할 줄은 몰랐던 걸까. 혹은 뜻밖의 장소를 들어서일까.
상관없다.
나는 꿋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을 살펴보고 싶어.”
레퓨지아의 유일한 도서관. 그러나 아무도 찾지 않는 먼지투성이 도서관. 사서는 항상 졸기 일쑤이며, 찾아오지 않는 방문자보다 묵은내 퀴퀴한 낡은 책이 훨씬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이 좋았다.
그곳에서는 혼자인 게 어색하지 않아서였다. 학교에서는 북적이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혼자였지만, 그곳에선 고요한 책들 사이에서 혼자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고독은 상대적인 거니까. 그러니까 적막한 도서관에선 혼자여도 괜찮다고 애써 생각하곤 했다.
동시에 낡은 도서관은 내가 목걸이를 찾아낸 장소였다. 머릿속으로 속삭이듯 말을 걸어 오던 붉은 목걸이. 엉겁결에 목에 걸었더니 다시는 벗을 수 없게 된 목걸이. 그래서 나를 이토록 고민에 휩싸이게 만든 그 목걸이와 만난 장소였다.
어쩌면 그곳에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목걸이를 찾아낸 후로 몇 번이나 직접 가서 살폈지만 찾아내지 못한, 목걸이를 벗을 단서가 iPS에는 보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비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도서관? 거길 왜? 뽀글머리 할머니 사서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곳인데?”
“그냥, 좀 보고 싶어서.”
“혹시 빌려 볼 책이라도 미리 검색해 보고 싶은 거야?”
“대강은?”
어색하게 웃었다. 도서관을 살펴보자고 말한 것까진 좋았는데, 막상 그 뒤에 주장할 뾰족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비의 볼이 뾰로통해졌다. 모처럼 iPS의 제한을 풀었으니, 조금 더 흥미로운 곳을 탐색해 보고 싶은가 보다. 난감해졌다.
그때였다.
“저기, 그래도 테스트를 위해서 보는 거니까 도서관을 본 후에 다른 곳도 보면 되지 않을까?”
뜻밖의 의견으로 날 도와준 아이는 요재였다. 그제야 다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네. 자, 그럼 갑니다?”
타닥, 탁!
다비가 iPS의 검색창을 두들겼다. 경쾌하게 춤추는 손끝을 따라 수많은 지명과 건물이 검색창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윽고 익숙한 건물이 화면에 잡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낡은 도서관이었다.
“안쪽도 볼 거지?”
다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비가 싱긋 웃었다.
“사서 할머니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살금살금 들어가자.”
물론 사서 할머니는 iPS가 도서관을 검색하고 있다는 것도, 지금 도서관의 내부를 탐색하고 있다는 것도 꿈에도 모를 거다. 그러니까 저렇듯 언제나처럼 안내데스크에서 뜨개질을 하던 모습 그대로 꾸벅꾸벅 졸고 계신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한가로운 광경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새삼 목표를 되새기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평소 직접 찾아가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니까. 단서가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화면에 비치는 도서관 내부 곳곳을 살펴보았다. 평소와 똑같이 먼지가 포근하게 쌓인 책장 틈새도. 그 언젠가, 누군가가 책장 사이에 남겨 두고는 잊어 버렸을 반쯤 삐져나온 책갈피도.
제법 갖가지 모습들이 화면에 들어왔다. 이렇다 할 단서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쯤이면 충분히 봤지? 그럼 다른 곳 볼 사람?”
다비의 물음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사실은 조금 더 살펴보고 싶었는데. 더는 고집을 부릴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나, 레퓨지아 바깥을 보고 싶어.”
또다시 뜻밖의 의견을 꺼낸 아이는 요재였다. 한데 이번엔 단순한 뜻밖의 의견 정도가 아니었다. 요재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짓궂은 고요의 정령이 우리 모두의 입을 장난스레 틀어막은 것만 같았다.
“그건, 안 돼.”
이내 처음 입을 열어 반대 의견을 꺼낸 아이는 세나? 아니, 예상 밖으로 다비였다. 다비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 그건 불가능해.”
“왜? 금기라서?”
확실히 금기이긴 하다. 레퓨지아의 바깥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건 법으로도 금지된 일이니까. 자칫 그 법을 어겼다간 레퓨지아 바깥의 위험한 세계, 언노운(Unknown)의 불길한 기운이 레퓨지아로 들어올 수 있다고도 했으니까.
그래서 모든 어른들이, 선생님들도 다들 레퓨지아 바깥의 세상에는 관심도 가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말을 아주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야 했다.
다비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것도 그래서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하고 싶어도 가능하지가 않아. 프로그램적으로 레퓨지아 바깥에 대한 데이터 자체가 없어.”
“으음, 그래?”
“응. iPS는 애초부터 레퓨지아 내부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라서. 언노운에 대한 설정이라거나 자료는 전혀 준비되지가 않았거든. 처음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사항도 아니었고.”
“그럼 못 보는 거야?”
“응. 대신에…….”
“대신에?”
요재가 특유의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다비가 조금은 곤혹스러운 듯해 하면서도 말했다.
“레퓨지아 외곽 지대 정도는 볼 수 있어. 어쩌면 거길 통해서 장벽 너머에 펼쳐져 있을 언노운을 아주 조금은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다가 세나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래, 눈치가 보이겠지. 레퓨지아 바깥이 아니라곤 하지만 외곽 지대도 보통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까. 매사에 원칙을 주장하는 세나가 그런 곳을 구경하자는 의견에 찬성할 리가…….
“나쁘진 않을 거 같네.”
……있었다.
뜻밖에도 세나가 찬성의 의사를 드러냈다!
덕분에 우리 모두는 또다시 짓궂은 고요의 정령을 맞이해야 했다. 세나가 왜 저러지? 혹시 우리 때문에 화난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며 다들 눈동자를 데굴데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세나는 우리가 그러건 말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원칙상 외곽 지대의 장벽 근처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이건 우리가 직접 그곳에 가는 건 아니니까. iPS를 통해서 관찰하는 건 다르잖아.”
어, 그건 그렇긴 하지.
세나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iPS의 궁극적인 취지가 레퓨지아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니까, 이참에 외곽 지대를 관찰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어쩌면 아무도 모르고 있을 장벽의 빈틈이나 허물어진 곳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음, 그렇겠지?”
“확실히.”
……참 묘하다.
이런 일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것 같은 다비가 주저하고, 말릴 것 같은 세나가 똑부러지게 찬성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나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유독 평소보다 반짝거리는 것 같은데. 혹시 세나도 표현은 안 했지만 장벽 너머의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건 아닐까.
‘어쨌건, 도서관을 더 보기는 틀렸네.’
나는 아쉬움을 삼켰다.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다음에 또 단서를 찾아보자 싶었다. 한편으로는 장벽 너머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후우, 좋아. 그럼 본다?”
다비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세나도, 요재도, 나도, 긍정의 침묵으로 다비의 물음에 답했다. 다비가 심호흡을 하며 손가락을 풀었다.
“알았어. 후우. 해보자.”
타닥, 타닥.
아까보다 조금은 신중해진 다비의 손동작. 검색창이 휙휙 넘어갔다. 수많은 이름과 지명, 건물이 떠오르다가 마침내 단 하나의 검색 대상이 남았다. 외곽 장벽이었다. 다비가 실행 아이콘을 눌렀다.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지금까지 펼쳐지던 익숙한 풍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화면을 점령한 것은 온통 낯설고, 이질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황량한 광경이었다.
“어두워…….”
요재가 중얼거렸다.
저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 속 장벽은 온통 어두웠다. 지나치게 높은 곳까지 치솟아 있는 장벽이 모든 광경을 뒤덮을 듯 웅장하게 뻗어 있었다. 그 아래 숲은 영원히 그림자에 갇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든 광경이 어둑했다. 흡사, 당장 저곳 수풀 속 그늘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올 것처럼.
퍼석!
“……악!”
정말로 난데없이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온 것과, 놀란 다비가 소리를 지른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세나도, 요재도 흠칫하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놀람도 잠시.
더욱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
영원히 그림자에 갇혀 있을 것만 같은, 온통 낯설고, 이질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황량한 장벽 아래의 풍경. 그 어둠이 서린 숲 속을 헐벗은 차림의 어린 여자아이가 울면서 뛰어가고 있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불안감과 두려움에 온통 질린 얼굴로, 손발 가득 새빨간 생채기를 품고서.
“…….”
우리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지금 보는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엄연한 진짜였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