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iPS 체험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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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iPS 체험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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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iPS 체험단 (1)
2022.11.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0. Prologue
목걸이가 물었다.
벗어나고픈 현실이 있느냐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째서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달콤한 목소리의 유혹에 이끌려.
손을 뻗고, 목걸이를 집어, 목에 걸었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현실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음이 현실이듯.
내가 목걸이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주와 축복을 동시에 지닌 존재.
레퓨지아의 오랜 유산이자 족쇄.
크림슨 하트와의 첫 만남이었다.
1화. iPS 체험단 (1)
시시하다.
추도사라는 것들은 언제나 저런 걸까.
- 우리가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날로부터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킴. 변화하는 자. 우리에게 보석 같은 존재였던 그녀를, 저는 기억합니다.
광장을 향해 외치는 확성기.
그 소리를 듣자니 나는 귀를 막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점퍼 주머니 속으로 손을 꼬물거렸다. 문득 단순한 충동이 들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고.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하지만 그럴 방법은 없다.
전교생이 모인 광장이었다. 다들 비슷한 복장과 똑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저토록 지루한 추도사를 얌전히 듣는 모습들이라니.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갑갑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추도식이 지겹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광장을 떠나 버린다든가 하는 행동은 용납되지 않겠지. 그날, 레퓨지아 바깥은 어떤 곳이냐는 당돌한 질문을 선생님에게 했던 1년 전의 그때처럼.
“…….”
웃겨, 정말.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눈치 없는 확성기는 더욱 쓰라린 소리만 쿡, 쿡, 뱉어냈다.
- 킴, 그녀는 현명했습니다. 위험과 불확실성, 야만이 판을 치던 이 황야에 희망의 방주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곳, 레퓨지아입니다. 우리 모두의 터전이자 안전한 울타리이며, 다함께 지켜야 할 도시입니다.
……이곳이?
이 답답한 새장 같은 곳이?
그렇겠지.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겠지. 더없이 포근한 집이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한텐 아닌 듯한걸.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내가 자라나는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며 그 사소하고도 작은 역사를 기억에 새겨 준 존재도 없는. 그래서 따스하게 손 내밀어 줄 사람도 하나 없는 나 같은 건…….
“조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 왔다. 이건 좀처럼 드문 일인데. 놀라서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 얼굴이었다. 마치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곱슬머리 주근깨 여자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같은 학년, 같은 반 아이였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누구?”
물었더니 자그마한 주근깨 얼굴에 당혹감이 잠깐 피어났다.
“응? 어? 나, 요재.”
아, 그랬지. 말수가 별로 없고 소심한 아이. 그런데 신기하게도 호기심은 많아서 여러 아이들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기도 하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래서겠지. 내가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린 건. 무의식중에 대답이 뾰족해져 버린 건.
“여기 보는 눈 많아. 이래도 괜찮아?”
“응? 너한테 말 거는 거?”
“어. 이러다간 괜히 너까지 나처럼 투명인간 취급 받을걸.”
“그렇지만, 세나가 오늘은 너 꼭 데리고 오라고 그랬는데.”
“……세나가?”
그 잘난 학생회장이? 나를 왜?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 의문은 금방 돌아온 요재의 대답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게, 오늘이 iPS 체험단 모이기로 한 날이거든. 저번 예비모임 때는 너 안 왔어서.”
“…….”
아, 그랬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오늘이 오길 바랐다. 한편으로는 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필요해서 신청해 둔 체험단이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왁자지껄 한자리에 모여야 할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솔직히 조금 불안해졌다.
나, 잘해 낼 수 있을까. 어색하지 않게 있을 수 있을까.
꾸욱, 주머니 속에 숨겨 둔 두 손을 힘주어 쥐었다. 조금 전 외투 지퍼를 끝까지 올려 두길 잘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목걸이가 낯선 목소리로 말을 걸어 오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
문득 떠올랐다.
며칠 전이었다. 낡은 도서관 구석에서 웬 목걸이를 찾았더랬다. 낯선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하던 소리도 들었더랬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분명 목걸이가 들려주는 속삭임이었다.
“…….”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마치 속삭임에 홀린 듯 손을 뻗고 말았다. 이걸 목에 걸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엔 후회만 잔뜩 떠안게 됐다.
목걸이가 벗겨지지 않았다. 도저히 벗을 수가 없었다. 기이하고도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심지어 막대기를 목걸이 줄에 걸고 당겨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한 것처럼, 목걸이가 요지부동이었다.
이유 같은 건 짐작할 수도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목걸이가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거 들키면 안 되겠지…….’
이미 학교 공식 은따인 신세였다. 그런데 벗을 수 없는 목걸이까지 들키면 얼마나 난처해질까. 얼마나 구경거리가 될까. 어쩌면 전보다 더 이상한 애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다. 목걸이를 벗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사흘 내내 고민한 끝에 iPS 체험단에 가입했다.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본, 홍보 포스터의 문구 때문이었다.
‘이 도시, 레퓨지아의 모든 공간 좌표를 데이터로 구축하는 기기가 iPS라고 했어.’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부 검색할 수 있다고도 했더랬다.
그거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을 가져 보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과 대면할 용기도 미리 마련했다. 그러는 사이에 추도식이 끝났다. 힘껏 마련한 용기를 써먹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다들 늦지 않고 잘 왔네. 지금 모인 우리 네 명이 체험단 1기 맞지?”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제일 먼저 반긴 아이는 세나였다. 아니, 반겼다기보단 그냥 일상적인 인사라고 해야 할까. 혹은 출석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렇겠지. 학생회장 세나는 그런 아이니까. 한 올의 예외조차 없이 포니테일로 야무지게 묶은 머리칼처럼 차분한 성격도. 안경 너머로 엿보이는 눈빛처럼 단정한 말투도 모두.
“왔으면 다들 앉을까. 다들 iPS가 어떤 취지의 시스템인지는 알고 있지?”
“물론. 우리 엄마가 기초를 만든 프로그램인데.”
세나의 반대편 의자에 작은 키의 단발머리 아이가 털썩 앉았다.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는 아이, 다비였다.
나는 문득 신기함을 느끼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의 구성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도시 설립자 킴의 손녀이자, 가장 존경받는 집안의 학생회장 세나. 전설적 프로그래머의 딸인 전교 1등 천재 다비. 소심하지만 누구나와 잘 어울리고 아낌을 받는 친절한 요재.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나다.
학교 공식 은따.
이런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어쩐지 잘못된 장소에 덜컥 와 버린 기분이었다. 혹은 나, 사실은 초대받지 못한 채 막무가내로 모임에 참여한 건 아닐지. 눈치가 보였다.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어쩌나 싶었다.
그때였다.
“조안?”
세나가 날 불렀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내심 각오했다. 네가 왜 여길 왔느냐고, 조금 곤란할 것 같다고 말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지. 원래 집에 일이 있어서 안 오려고 했는데 체험단에 신청해 둔 예의상 잠깐 들른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바로 집에 가 볼 거라고. 신경 안 써도 괜찮다고.
에둘러 말하며 교실을 나가면 되겠지. 그 과정이 제발 자연스럽게 보이길. 내 얼굴이 새빨개지지 않길.
진심으로 빌었다.
스스로를 격려했다.
세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뭐 해?”
“……응?”
“여기.”
“…….”
세나가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빈 의자가 보였다. 설마 저기 앉으란 걸까.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모였으면 빨리 시작하자.”
“아, 응.”
머뭇거리며 앉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다행히 눈치를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사이, 세나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다들 여길 봐. 이건 아까 교장 선생님께 받아 온 거야.”
“iPS?”
요재가 물었다.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iPS’를 바라보았다. 주먹 정도 크기의 정육면체 큐브였다. 겨우 저만한 기기가 레퓨지아의 모든 공간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해서 보여 줄 거라니. 신기했다.
세나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이건 체험판이야. 프로그램적으로 제한이 걸려 있어서 여기, 학교 안쪽의 공간만 검색될 거라고 그러셨어.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할 거야. 어디까지나 우리는 iPS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는지, 혹여나 모를 오류가 있을지를 체험하면서 테스트하기 위해 모인 거니까.”
어쩌면 저런 말을 더듬지도 않고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iPS의 기능보다 더 신기한 건 세나의 저런 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도 있는 것 같았다.
“뭐어? 체험판?”
다비가 팔짱을 끼며 인상을 썼다.
“혹시나 모를 오류가 있을 거라고? iPS에? 우리 엄마가 만든 프로그램에?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래도 다비는 엄마가 남긴 유산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것 같다. 다비의 불평이 이어졌다.
“우리 엄마는 iPS에 평생을 거셨어. 그리고 항상 말씀하셨어. 이미 완성 버전이 만들어졌다고. 가동만 하면 된다고 그랬단 말야. 그게 내가 어릴 때 들은 얘기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겨우 꺼내 놓는 게 테스트용 체험판이라고?”
“다비야.”
“난 인정 못 해.”
“하지만 다비야.”
세나의 목소리가 굳었다. 나직하지만 거스르기 까다로운 묘한 분위기가 서린 음성이었다.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비야. 네 기분은 알겠는데. 그래도 너희 어머님의 뒤를 이어서 이걸 개발한 분들의 입장도 있잖아? 선생님도 아직은 테스트가 우선이라고 당부하셨고.”
“나도 알아. 그래도 답답하잖아.”
“답답하다고?”
“응.”
차분한 세나도 대단했지만, 다비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미 완성된 iPS야. 그런데 고작 체험판이나 테스트하는 건 시간 낭비 아냐?”
“그럼, 뭘 하고 싶은 거야?”
“제한 해제.”
다비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거 프로그램으로 제한이 걸려 있다며. 방법은 간단해. 프로그램 락을 풀면 돼. 그럼 제한 없이 완성 버전의 기능을 모두 사용하고 테스트할 수 있어.”
“그렇지만 선생님은 체험판을 시험하라고 하셨잖아.”
“완성 버전을 시험하면 그 속에 체험판의 기능도 모두 들어 있을 거니까 상관없지 않겠어?”
“…….”
“게다가 나중에 추가로 테스트하면서 낭비할 시간과 수고도 우리가 덜어주는 셈이야. 오히려 칭찬받을걸?”
“글쎄.”
세나가 곤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내가 듣기에도 다비의 의견은 조금 과격하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서 선을 넘는 것 같달까.
하지만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목걸이를 벗을 방법을 찾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체험판보다는 완성 버전을 사용하는 쪽이 더 확률이 높을 테니까.
“나도 다비 의견에 찬성.”
“…….”
내 말에 모두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순간 실수했나 싶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였다.
“어, 으음, 나도…….”
뜻밖에도 요재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이내 모두를 돌아보며 배시시.
“다비 의견대로 하면 재밌을 거 같아. 궁금하기도 하고.”
“…….”
세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고민하는 걸까. 하지만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후우, 알겠어. 다수의 의견이 그렇다면.”
세나가 반쯤 체념한 듯한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한 건가 보다. 하지만 세나는 끝까지 꼼꼼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다비야. 체험판 프로그램의 제한을 푸는 것 말이야. 가능한 거야?”
“물론.”
이제는 완전히 의기양양해진 다비가 자연스럽게 iPS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서 조작했다. 위잉, 소리와 함께 정육면체 큐브가 대각선으로 열렸다. 그러자 드러난 화면과 조작 패널을 다비가 토독토독, 능숙한 손길로 터치했다.
“우리 엄마가 만든 버전 그대로네.”
다비가 방긋 웃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주 잠깐은 저 미소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 보인 걸까. 혹시 다비는 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린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다비의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거침없이 화면 곳곳을 누볐다. 톡, 토독, 처음 다루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됐다.”
다비의 검지가 ‘실행’ 아이콘을 터치하는 순간, 화면 가득 <제한 해제>라는 표식이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
나와 세나.
다비와 요재.
서로가 한 자리에 모일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리 넷 앞에, 상상해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것은, 아무도 꿈꾸어 보지 못했던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