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517화 (517/517)

00517  껄끄러운 느낌  =========================================================================

그 뒤에도 비슷한 꼴을 두 번 더 당했더니 미호는 그때가 되서야 내 눈썰미를 완전히 신용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투사들의 모습을 살피고 정보를 캐내는 사이 주변 플뢰 시민들에게서 하얀 나뭇잎 투사들은 헤뷜트의 사제와 비슷한 계급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이후 더욱더 조심스레 확인을 거듭해나갔지만….

플뢰의 제례를 통괄하는 대신관인 이든을 만나러 나무뿌리는 물론이고 잎까지 새하얀 트리 하우스에 도착한 건 좋았는데 몇 번의 트러블 끝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미호가 여태까지 참았던 성질이 폭발했는지 꼬리를 곤두세우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 내 눈물을 쏟게 했다.

- 잠깐만 보자는 건데 왜 그렇게 뻐팅기는데!

=뻐, 뻐팅긴다니, 무례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에요!=

- 얼굴 한번 보여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부붑!

차라리 나한테 화내 줘! 제발!

오늘 미호의 까칠함이 도가 지나쳐서 신관 중 한 명인지 새하얀 로브를 걸친 플뢰 여자와 툭탁거리는 미호를 손에 이빨 자국을 내면서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으니 바깥의 소란을 들었는지 오색으로 수놓아진 화려한 로브를 입은 소녀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소녀가 이든?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에요?=

=대신관님! 이 무례한 자들이 다짜고짜 대신관님을 보게 해달라기에 막고 있었습니다!=

과연 서하 님이 칭찬하신 내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는지, 대신관이라 불리운 소녀는 나와 내 손에 입이 막힌 채 버둥거리는 미호, 뒤에서 표정 없이 가만히 서 있는 히아리드 씨를 한 번씩 살펴보고 언짢다는 표정으로 우리 행동을 지적했다.

=당신들은 서하 정 님의 동행분이 아니신가요? 그분의 아래에 있으면서 이런 소란을 일으키다니, 그분의 명예에 흠집이라도 내실 생각이에요?=

지당하신 말씀.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눈물이 날 거 같아! 미호의 가지런한 치열이 내 손에 여러 자국을 내고 있어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야!

=그분의 얼굴을 보아 이번 실례는 넘어가 드리겠어요. 찾아온 용건을 말하세요.=

- 됐어. 갈래.

=……!=

미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이든 씨의 눈썹이 급격하게 찡그려지는걸 보고 황급히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날거야!

=저, 저 때문이에요! 저도 헤뷜트의 예비 사제여서 대신관이신 이든 님을 뵙고 싶었…흑, 뵙고 싶었어요…!=

=어머. 칼카쿰 님과 아훔렉 님의 제자이신가요?=

=제 부모님이 되세요….=

=아, 그랬군요.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요.=

미처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이든 씨의 상냥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서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와서 방심하면 눈물이 왈칵 날 거 같아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런 내 모습이 그저 감격스러워 그런 것으로 본 건지 이든 씨는 개의치 않아 하며 로브의 소맷자락으로 내 눈물 자국을 찍어눌러 주며 날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그렇게 이든 씨를 만난 뒤 나머지 3명도 겨우겨우 확인하고 돌아온 거에요….=

알케마의 설명을 들으니 참…. 반나절이지만 녀석의 고생이 불쌍하고 안쓰러워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미호는 그렇다 쳐도 미호의 브레이크 역으로 보낸 히아리드는 오히려 알케마의 발을 걸고, 그냥 눈썰미로 미호를 가볍게 도와주라고 붙인 알케마가 크게 도움이 됐다니.

결론은 알케마는 어떻게든 미호를 다독이고 히아리드를 이끌면서 내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단 거다.

알케마의 넋두리에 가까운 보고를 듣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기가 죽은 미호와 히아리드에게 물었다.

“알케마의 말에 사실과 다른 점이 있냐.”

- ……어, 없어어.

=…없습니다.=

“자기변호를 할 기회를 줄 테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해봐.”

- 없어… 내가 잘못 했어.

=죄송합니다.=

두 녀석의 힘 없는 대답에 한숨을 푹 쉬고 눈물을 글썽이는 알케마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눈썰미로 도움되라고 보낸 알케마가 애를 굉장히 많이 썼네. 고생 많았어.”

=흐으으.=

“미호는 소울 링크를 많이 쓰면 감정이 격해지는데 그걸 미처 생각 못 한 내 잘못도 있으니까 미호하고 히아리드를 너무 미워하지마.”

=예엥….=

내가 자신의 고생을 알아주자 알케마는 오늘의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지 낑낑 거리 시작한다. 그런 알케마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미호의 머리에 꽁하고 꿀밤을 먹였다.

- 아야.

“임마. 소울 링크로 감정이 격해지면 쉬엄쉬엄해야지 어쩌려고 그렇게 막 나갔어?”

- 시, 시간이… 모자랄까 봐 그랬어.

“지금은 감정이 괜찮아?”

- 으응. 괜찮아졌어.

“이리와.”

미호도 나름 심적으로 힘들었는지 얼굴에 피곤이 쌓여있는 게 보여서 팔을 벌리니 냉큼 품에 안겨든다. 그리고 히아리드는….

“…그래~ 이게 전~~부 다 내 잘못이다. 히아리드도 지난 밤 일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고 미호도 이렇게 조급하게 굴만큼 지시를 잘못 내린 내 탓이야. 내 탓.”

눈 밑에 다크서클이 약간 지고 피부에 윤기도 사라진 모습이라 이게 다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면서 왼손으로 히아리드의 허리를 잡아당기니 조용히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오른손으로도 훌쩍거리는 알케마의 팔을 잡아당겨 셋을 동시에 안으니 품 안이 가득 차 낮에 있었던 우울함이나 쓸쓸함이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간단하다고 생각한 임무가 녀석들에게는 어려웠던 걸까.

싸우는 건 수준급으로 하지만 알케마를 빼면 태생이 사회성과는 연관이 멀다 보니 이 녀석들에게는 소셜미션만큼이나 어려웠던 거겠지?

내 품 안에서 꼬물거리는 셋에게 고생 많았다며 칭찬해준 뒤 결과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고생한 녀석들과 함께 저녁부터 해결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을 꺼내놨지만, 녀석들은 투쟁적으로 식사에 임하면서 셋이 족히 20인분에 가까운 양을 해치워버리는 모습에 조금 질려버렸다. 20인분이면 세 끼를 먹을 양인데…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일반인 식사의 300인분을 챙겨왔지만 넷이서 하루에 20인분씩 먹어치우다 보니 7일이 지난 지금은 가져온 식사의 1/3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저녁 한 끼로 20인분을 해치웠으니… 밥이 모자랄 수도 있겠는걸.

식재 조달이야 이형종을 잡으면 될 일이고, 식사를 끝내고 식자재 나무상자에 있는 과일을 꺼내 후식으로 먹고 있으니 배부르고 등 따시고 졸린 지 미호는 손에 과일을 든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히아리드도 드물게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가 까닥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쓰러져서 잠들어버릴 거 같아 졸고 있는 미호를 깨워 일이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 아, 응. 전부 투영하는 거에 성공했어.

과정이야 어쨌든 하얀 나뭇잎 투사 10명 모두 투영하는 데 성공했다며 미호는 '나 잘했지?'하는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우쭐거렸다.

- 투사들은 주인님만큼이나 정신 방어가 뛰어났지만 나도 열심히 했거든!

미호가 말하는 정신방어는 내가 마나 오러를 일으키고 마나 시브로 위상력을 머리에 모아 작심하고 저항할 때를 말하는 거다. 하지만 투사들은 평소 생활에도 그만큼 정신방어를 하고 있단 말이지? 뭔가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머릿속으로 정신방어가 뛰어나다는 점을 기억해두면서 미호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어주며 칭찬했다.

“잘해줬어. 미호도 이제 믿음직한걸.”

- 히히.

“그래서 어땠어? 말하는 걸 보면 다들 멀쩡한 거 같은데.”

- 응. 10명 전부 멀쩡했어.

“미리엔이랑 비슷한 수상한 느낌은 없었다는 거지?”

- 응.

“넌 어땠냐. 보기에 그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은 못 느꼈어?”

바나나처럼 생겼지만, 껍질은 빨갛고 속살은 녹색을 띠는 과일을 껍질도 벗기 않고 덥석덥석 베어먹는 알케마를 돌아보며 물었더니 입에 든걸 꿀떡 삼키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쿨럭, 케헥거리며 가슴을 두드리기 바쁘다.

“…에휴.”

어째 점수 좀 딴다 싶더니 또 이렇게 어리버리한 모습이나 보이고… 등을 두드려주니 눈물을 찔끔 흘린 알케마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면서 말했다.

=예. 모두 직무에 충실한 모습들이었어요. 미리 렌샤엔 같이 의심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히아리드도 그래?”

=…제 눈으로는 미리 렌샤엔과 10명의 투사의 차이점을 못 느꼈습니다. 미리 렌샤엔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알케마 쪽이 훨씬 정확하겠지요.=

“흠.”

10명의 하얀 나뭇잎 투사들에게서 수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미리엔 이외에 메리아놀에 잠입해있는 스파이들은 없다고 봐도 되려나.

프라우드나 루크랑, 사비 쪽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플뢰쪽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 주인님은 어땠어? 렌샤엔이 접근했어?

“어. 역시 컴퓨터처럼 주입된 키워드대로 움직이더라. 단지 날 완전히 유혹한 뒤에 정보를 빼돌릴 생각이었는지 오늘은 그냥 섹시 어필만 하고 갔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히아리드의 말을 듣고 공간 지각으로 중앙 성에서 아직도 회의 중인 각 종족의 의장들을 봤다. 미리엔의 말로는 하루면 결정된다 하더니 하루는 무슨, 40시간 가까이 줄창 회의만 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가디발이 추가된 점일까.

“내일이면 8일째야. 2일 뒤면 돌아가야 하니까 그전에 해결을 보자.”

=해결이라 하심은…?=

가디발까지 추가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보석 공주를 만나기 위한 접견마저도 미뤄진 모습이라 이대로 두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중앙 성의 회의장에서는 의장들이 아직도 회의를 거듭하고 있어. 회의가 끝날 기미가 없으니 이쯤에 난입해야지.”

=나, 난입이요?=

설마 내가 트롤짓을 하려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알케마의 이마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갈 거야. 미리엔을 사로잡아 정보를 캐낸 뒤 미리엔의 정체를 메리아놀에 알리고 넘겨버리는 거. 그다음에 보석 공주를 만나든 정보를 토대로 볼굴을 찾으러 가든 해야겠지.”

=미리 렌샤엔에게 응징은 가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히아리드가 미리엔에게 감정이 있어서 묻는 건가 했지만, 표정을 살피니 그런 건 아닌듯하다. 호피 무늬 사과를 다람쥐처럼 갉아먹고 있는 미호도 미리엔의 이야기에 적개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미리엔이 볼굴과 통신하는걸 봤을 때는 완전히 빡 돌아서 때려죽이려 했었지만… 진정하고 보니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

- 어떻게?

“미리엔이 볼굴도 아니고 인형한테 성질부려봤자 나만 허탈하지 않겠어? 그냥 메리아놀이 알아서 하게 넘겨줄 거야. 미리엔은 인간형이니까 수집해서 연인들의 호위로 사용해도 괜찮을 거 같지만, 그보다는 위상력이 깃든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수 있는 메리아놀과의 평판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돼. 괜히 미리엔을 빼돌리려다 걸리면 변명할 건덕지도 없이 평판은 대폭락하다 못해 매우 적대적이 될 게 뻔하잖아.”

낮에 떠올랐던 생각 일부를 정리해서 설명해주니 알케마의 표정이 이상야릇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수집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였나?

=서, 서하 님. 혹시 저도 수집하신 거에요…?=

“무슨 헛소리야. 넌 스스로 노예 선언을 했잖아. 뭐 거절하지 않았으니 수집의 부류에 들려나.”

수, 수집… 수집… 하면서 넋을 놓으려는 알케마의 이마에 딱밤을 먹여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실행은 내일 새벽에 할 거야. 그러니 오늘은 일찍 쉬어둬.”

3차원 지도로 미리엔의 동태를 감시하며 쉬다가 해가 뜨기 직전인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오늘도 다른 방을 놔두고 내가 자는 방에 몰려든 녀석들을 피해 피해 밖으로 나가…려다 이불을 걷어차고 아랫도리 맨살을 훤히 드러낸 채 골아떨어져있는 알케마를 쳐다봤다.

이 녀석은 변온동물에 더운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밤중에 종종 이불을 걷어차곤 했는데 이번에도 걷어차 버렸는지 이불이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만져달라는 듯이 엉덩이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채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녀석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잠버릇하고는….”

이불을 덮어주기 전에 훤히 드러난 녀석의 엉덩이를 만져보니 냉장실에서 갓 꺼낸 찹살떡처럼 차갑고 몰캉몰캉하다. 시체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무릎 위에서부터 시작된 우윳빛 비늘이 발끝까지 나 있는 다리는 적당히 체온이 유지되는 거 같은데 허벅지나 배, 가슴처럼 비늘이 없는 부분은 계속해서 열 손실이 일어나는 거 같다.

그러다 얼핏 보면 용의 꼬리 같고 다르게 보면 도마뱀 꼬리 같은 녀석의 채찍 같은 꼬리를 들어봤다.

꼬리뼈 관절이 생각보다 촘촘해서 채찍처럼 축 늘어지는 데다 무게감도 묵직하다. 이것도 꽤 흉악한 무기가 될법한데 이 녀석은 단순무식하게 손발만 휘두르고….

=으, 으헤. 이히히.=

꼬리를 만지니까 간지러운지 히죽거리면서 잠꼬대를 하는 녀석의 잠옷을 끌어내려 속살을 가려준 뒤에 이불을 덮어 주고 1층 거실로 내려왔다.

계획을 시작하기로 한 건 1시간 뒤인 4시부터인데 어째서 지금 눈이 떠진 것인지 모르겠다. 기왕 일어난 거 미리 준비할 생각으로 잠옷을 벗고 속성저항 슈츠로 갈아입었다.

사박거리며 순찰을 하는 자경단원이 문 앞을 지나간다. 달빛도 구름에 가려져 빛이라곤 한 점 없는데 등불 같은 것도 없이 멀쩡히 걸어 다니는걸 보니 이종족들은 역시 적외선 시야가 있는 게 틀림없다.

프로텍터 건틀릿을 끼고 부츠까지 신은 뒤 나무 의자에 앉으니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고요한 거실을 일깨운다.

끼익. 끼이익.

한 번, 두 번. 다리에 힘을 주며 의자에서 나는 이음새 소리가 귀를 찌르는 감각을 즐긴다. 눈을 뜨고 있지만 감은 것 같은 새카만 어둠 속을 주시하고 있으니 빛무리가 눈앞을 떠다니는 환상이 보이는듯하다.

지금 내 위상력은 7,843만. 앞으로 157만이면 A 클래스가 될 수 있다. 실수인 척 미리엔을 죽이면 바로 A 클래스가 될 텐데… 살짝 그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 버렸다.

인형이긴 하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지성체인데 간단히 죽이네 마네하고 생각하다니, 마음이 거북하다. 하지만… 확실히 지성체라고 하기 애매하긴 하지. 지성체였던 물건이라고 하는 쪽이 알맞으려나.

아무튼, 이렇게 간단히 죽이네 마네 생각을 하는 건 나 답지 않은 거 같은데…

아니 물론 지금까지 죽여온 생명체가 100단위는 가볍게 넘고 얼마 안 가 1000단위가 되긴 하지만 그건 전부 짐승으로 분류되는 이형종들이었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고등 지능을 가진 이형종을 죽인 건 엘리펀트로스 산에 살던 코끼리 인간 부족들이 처음이고 그다음이 하늘 섬의 두 플라비우스 여자, 하철수, 백청 뿐이라고.

그런데 나 스스로가 느낄 만큼 거북스런 생각을 떠올리다니, 아무래도 볼굴을 만난 후유증이 상상 이상인 거 같다.

“진짜 민폐쩌는 개놈들이구만. 아!”

히아리드를 품에 안은 거에 연인들한테 핑계 댈 좋은 게 생각났다. 이걸 이야기하면 연인들도 이해해줄 거라는 시뮬레이션이 떠올랐고 예감도 좋은 효과를 보일 거라 장담해준다.

볼굴, 그 개자식들도 이거 하나만은 도움이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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