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516화 (516/517)

00516  껄끄러운 느낌  =========================================================================

그렇게 차를 한 잔 더 마실 동안 밀당 아닌 밀당을 하며 발뺌하다 보니 미리엔은 날 얄밉다는 듯이 흘겨보고는 다기와 찻잔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려고요?”

=자꾸 알면서 모르는 척, 맞으면서 아닌 척하는 어느 분 때문에 빈정 상했어요. 갈래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자 이번에는 정말로 얄미웠는지 미간을 모으고 지긋이 날 바라보다가 흥하고 콧방귀를 남기고는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출입구로 걸어간다.

나가는 길, 입구까지 배웅해주니 결국은 풀썩 웃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쪽 팔에 도시락 바구니를 걸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돌아가는 미리엔의 뒷모습을 지켜보니 입맛이 씁쓸하다.

온화한 얼굴에서 나오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애교, 내가 능력으로 자신의 나신을 만진다고 확신하는데도 화내지 않고 타이르려 하는 관용에 자신의 직책에 책임감을 가지는 모습까지.

저 성격과 행동은 틀림없이 원래 기억을 바탕으로 나오는 그녀의 예전 모습이겠지.

현혹당해 볼굴의 명령대로 움직이는데도,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겉모습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감탄이 나올 만큼 격이 느껴지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런 만큼 저런 여성이 볼굴의 손에서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미리엔의 얼굴에 어머니의 어렸을 적 모습이 겹쳐지며 머리가 뜨거워진다.

“후우.”

덩달아 가슴도 울렁거리는 이유는 뭐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 거짓말은 하지 말자. 나는 미리엔이 볼굴 그 개새끼들에게 잡혀서 망가진 게 마음에 안드는거다. 기왕 망가질 거면 내 손에….

“큭. 이런 걸 보면 나나 그 새끼들이나 똑같은 쓰레긴데.”

멀어지는 미리엔의 뒷모습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와 상념에 잠겼다.

보통 사람이 꼭지가 돌아버릴 만큼 화났다고 해서 이종족이라지만 여자를 강간하는 것처럼 덮치지는 않을 거다. 정말 상대를 이성적으로 사랑한다면 나처럼은 행동하지 않을 테지.

옛날에 영은이에게 하렘을 차리기 위해 여자들을 수집하는 거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영은이도 살짝 삐져서 날 놀리려는 듯이 꺼낸 말이었고 나도 우스갯소리로 여기고 넘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정답인 거 같다.

첫 만남부터 평범하지 않은 프랑과 태생부터가 비범한 화연이에 그런 화연이의 베이스라고 볼 수 있는 영은이. 생물학적으로는 사촌 누나로 볼 수 있는 누나.

최수한은 미리엔의 서하 버전version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한 번의 실수로 강우혁과 함께 내 담당관이었던 최수한은 능력자 연합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이해가 안 가는 행정 절차로 내게 소속된 노예에 가까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 세상 다 산 표정과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에게 세뇌에 가까운 조교를 걸었고, 평범하지 않은 성벽에 눈 뜬 최수한은 세뇌 효과로 인해 인격마저 뒤바뀌어 자발적으로 나에게 몸도 마음도 전부 바치게 되어버렸다.

소피아도 최수한과 마찬가지로 기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삶을 살다가 내 곁에서 스파이짓을 하던 게 들통나 짐승같이 얻어터지면서 세뇌를 당해 나만 보며 살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소피아의 가족들도 내 손아귀에 들어와 연구소에서 날 위해 일하고 있다.

특이하기로는 에너지 이터 출신의 미호와 하늘 섬에서 포획해온 플라비우스인 히아리드, 날 죽이려다 되려 나에게 죽은 하철수가 끌고 온 다크매터 슬라임인 암흑이에 백청의 목을 따는 와중에 동족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가 노예 선언을 해버린 사비 종족의 알케마.

스케일러라고 부르는 파충류 타입 고위 아종도 열여덟 마리는 나에게 정신조작을 당해 내 펫이나 다름없고 볼굴의 전쟁 병기인 골렘도 두 기를 획득했다. 또 알케마가 낳은 알이 부화하게 되면 여기서 한 마리가 더 추가되지.

말 그대로 수집이나 다름없다.

볼굴을 보면 이렇게나 화가 나는 이유는 어머니의 원수이기도 하지만… 놈들에게서 동족 혐오를 느껴서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때 자아 성찰이나 자기반성을 통해 행동의 변화를 결심하겠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아,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너무했군. 앞으로 조금 더 잘해줘야겠네.' 이 정도의 감정만 느낄 뿐이다.

이런 속내를 파악하다 보니 마음 한편에 심란함이 드는 걸 봐서는 아직 내 인간성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거 같지만… 볼굴과 계속 마주치다 보면 나머지도 사라질 거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19세기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가 쓴 글에는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볼굴을 인식하면 할수록 나도 볼굴처럼 변해가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놈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인간성을 보존하고 싶지는 않다. 그놈들은 내게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 죽여버려야 할 대상이니까.

자괴감과 분노, 허탈함과 무기력에 심란함이 머리와 가슴을 어지럽히니 성욕이 급격하게 치밀어오른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1층 거실을 서성이며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 하지만… 떠오르는 거라곤 최근에 안은 히아리드의 알몸뿐이다.

“아오 씨발. 이러다 자기혐오에 걸리겠네.”

나처럼 자기애가 투철한 놈이 자기혐오라니, 웃기지도 않잖아. 어두컴컴한 집 안에 있으니 생각마저 어두워지는 걸까.

아공간에서 백청의 투박한 색깔의 가죽을 꺼내 몸에 두르고 집나무를 나섰다. 석장에 가면서 머리를 식힐 겸 미리엔의 행동이나 분석해봐야겠다.

“밝은 햇볕을 쬐니까 좀 낫네.”

숲속에 내려 쬐는 밝은 정오의 햇빛을 받으며 터덜터덜 서쪽으로 걷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풀리는 거 같다.

미리엔이 조금 전에 보여줬던 모습은 확실히 날 유혹하기 위한 밑밥 깔기로 느껴졌었지.

나는 볼굴의 명령을 유혹하면서 정보를 캐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미리엔은 일단 몸을 써서 날 확실히 치맛속에 끌어들인 뒤 정보를 빼낼 생각인듯했다.

아무리 둔감하다 해도 몸매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얇고 몸을 착 감싸는 옷을 입고 접촉을 해오는 거 같이 이 여자가 내게 호감 이상의 마음이 있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 법한 행동이 그걸 증명한다.

=너 진짜! 잡히면 떼찌 할 거야~!=

=내가 뭐~!=

소꿉친구로 보이는 플뢰 족 꼬맹이 둘이 서로 잡거니 잡히거니 하며 내 옆을 지나쳐가는 걸 잠깐 지켜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기혐오로 인해 냉정해진 이성으로 생각해보면, 눈치를 빼면 멍청한 내 머리로 첩보전이나 정보전이 웬 말인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단지 편해지기 위해 쓰는 꼼수가 그나마 뛰어날 뿐이지 이런 식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는 건 나랑 전혀 맞지 않는다.

차라리… 통할지 의문이지만 미리엔을 사로잡아서 정신 조작을 건 뒤에 멜빈지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당신네 하얀 나뭇잎 투사 중 하나인 미리 렌샤엔이 볼굴의 스파이였다, 라고.

스파이… 스파이라기보다는 인공 지능 컴퓨터라고 부르는 쪽이 더 어울리는 거 같군. 키워드를 입력하면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는 컴퓨터.

공간 지각으로 주시하는 중인 미리엔은 다시 자경단 건물로 돌아가 자기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미호가 어떤 정보를 들고 오느냐에 따라 생각을 좀 달리해봐야겠다.

힘도 능력도 있는데 어려운 길을 일부러 찾아서 갈 필요는 없잖아?

석장에 도착해 피아브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작업속도가 평소의 1/2로 줄어(투르발이 아직도 성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며 분노의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플뢰 자경단에 납품할 무기를 만드느라 이야기를 나눌 짬이 없다는 고함 소리만 들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집게로 하얗게 달아오른 철괴를 대장장이 망치로 쾅쾅 두드리는 피아브의 모습은 더이상 말하기를 거부하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나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맞은편의 제작실이었다. 투르발과 피아브의 제작실 맞은편에는 아지아라는 여자 프라우드가 홀로 세공작업 중이었는데, 미리엔과 아는 사이였던 거 같아 찾아가서 물어볼까 싶었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버렸다.

세계 보디빌딩 대회 남자 부분에 나가도 우승할 거 같이 튼튼하게 생긴 얼굴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석장이 돌아가는 시스템도 그렇고 아무 인연도 없이 찾아가면 오히려 의심만 받을까 봐 그랬던 거지.

진짜로!

……그렇게 석장을 나와서 이리저리 서성이다 보니 머리도 맑아져서 아름드리 집나무로 돌아왔는데, 막상 돌아와도 할 일이 없다. 짧은 시간 지나치게 감정이 혹사당해서 그런지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에도 지쳐버렸다.

그렇게 나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하얀 나뭇잎 투사의 감정을 투영해보러 간 세 녀석은 해가 질 무렵에야 조금 지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 다녀왔어~!

=다녀왔습니다.=

=…….=

이상한 점은 알케마가 기운이 쭉 빠진 모습으로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며 들어온 거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이상해서 물었더니 알케마가 억울하고 감정이 북받치는 얼굴로 서럽다는 듯이 날 올려다본다. 하지만 뭐라고 말도 못하고 갑갑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버린다.

미호도 나름대로 지치고 짜증 나 있는 모습이고 히아리드는 말없이 조용히 어두워지는 거실에 빛의 구체를 띄워 올리고 있어 분위기가 안 좋은 게 피부로 느껴진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래?”

싸움이라도 난 건가 싶어서 녀석들을 보며 다시 물으니 미호가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 별거 아니야.

=뭐가 별것 아닌데! 서하 님이 조심하랬잖아! 그게 조심한 행동이야?!=

- 뭐! 뭐! 내가 공격이라도 했어?! 싸움이라도 걸었어?!

=그게 싸움 건 게 아니면 뭐가 싸움 거는 거야!=

- 그치만 걔들은 아무 말도 안 했는걸!

=못한 거지! 우리가 서하 님의 일행인 걸 아니까 못한 거지!=

평소의 투닥거림과는 다르게 이대로 냅두면 주먹을 주고받을 만큼 감정이 상한 게 보여 두 녀석을 말리고 무슨 일인지 알케마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서러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하얀 나뭇잎 투사들은 전원이 플뢰에서뿐만 아니라 메리아놀 전체에서도 인망이 높은 고위 인사였어요. 처음에는 서하 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찾았는데….=

=그대의 앞날에 무궁한 대해의 축복이 있기를, 저는 헤뷜트에서 온 칼카쿰과 아훔렉 사제장의 딸, 알케마입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밤늦게 히아리드 씨와 함께 나가셔서 새벽 늦게 돌아오신 서하 님은 무척이나 음울하고 흉흉한 분위기를 뿌리고 계셨다.

일상적인 이들이었다면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도 타락에 물들어버릴 것 같은 지독한 음陰의 감정.

나였다면 버티지 못하고 여느 타락에 빠진 동족들처럼 눈을 희게 물들인 채 살육과 광기에 몸을 맡겼겠지.

그러한 상황에서도 서하 님은 흉흉한 기세를 흘리실지언정 이성만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계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볼굴의 주구들을 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시는 모습에서 대해의 주인께서도 인정하시고 백청님의 삶에 종착지를 보여준 영웅의 기도가 엿보여 이런 분이 나의 주인이시라는데 자부심이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헤뷜트에서 온 알케마. 이곳에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하얀 나뭇잎 투사 중 한 분이신 모겔 알피란 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안에 기별을 전해주시겠습니까?=

모겔 알피란이 이곳, 거대한 트리 하우스에 있다는 것은 서하 님의 능력으로 확인한 사항이기에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플뢰 족 전사에게 정중히 접견 요청을 전했다.

전사는 서하 님을 만나기 전의 나와 비슷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자가 경비를 서는 것만 봐도 이곳에 모겔 알피란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 …….

경비가 안쪽에 기별을 전하러 들어간 사이 뒤통수에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팅팅 불은 뺨과 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불만에 가득차보이는 얼굴의 미호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서하 님 바라기인 미호는 최대한 빠르게 서하 님의 명령을 해결하고 싶어했지, 이렇게 면담신청을 해서 시간을 들여 투사 계급들을 만나야 한다는 걸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냥 몰래 훔쳐보면서, 건물 안에 있다면 몰래 잠입해서 빠르게 대상의 감정만 투영하고 나오면 된다는 이유였다.

잠입이라니, 그게 그렇게 간단할리가 없잖아?!

이곳에 오기 전에도 그 이유로 한바탕 난리를 피울 뻔 했지만, 날뛰었다간 서하 님이 원하시는 조용한 일 처리는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미리 렌샤엔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갈 거다. 그렇게 되면 서하 님이 의도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거라는걸 이유 삼아 설득한 덕분에 지금처럼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얌전히 있는 거지.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건 미호가 아니라 그러는동안 말 없이 가만히 있던 히아리드 씨의 반응이다.

미호는 서하 님을 들먹이면 그나마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데 서하 님의 총애를 받는 이 플라비우스 여자는….

=이곳에 오는 동안 생각해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모겔 알피란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거 같군요. 위험 요소가 너무 큽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투사 계급들은 해야 할 업무가 많기에 트리 하우스에서 나오길 무작정 기다리는 쪽은 시간 낭비에요. 위험 요소라고 할 만한 부분은 그들이 우리의 목적을 간파하는 것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서하 님은 조용히 일을 보시길 바라셨지 이런 식으로 다른 자의 귀에 들어갈 수 있을 이야기거리를 만들라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라고 내 말허리를 싹둑 자르면서 진땀을 빼게 한다.

내가 서하 님의 의도를 추측하기에, 조용히 행동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말썽을 피우지 말라는 뜻이었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조용하게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날개 여자는 서하 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거다.

곤란하기 짝이 없다!

=…인 겁니다. 서하 님의 말씀은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서하 님 본인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알케마는 서하님의 말씀을 제 뜻에 맞게끔 의도적으로 곡해하시는군요.=

=그,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서하 님이 지시를 내리시기 전의 행간을 읽어 본다면….=

=그것 역시 알케마가 좋을 대로 해석한 것 아닙니까. 그것을 서하 님의 의지인 것처럼 말하지는 마시지요.=

뭐야! 무례한 여자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녀는 서하 님이 총애하는 여자이고 나보다 윗 서열의 존재다. 화내면 안 돼.

=그, 그건 미안해요. 하지만 역시 서하 님이 말씀하신 기간 안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히아리드 씨의 의견대로 하기에는 시간이 대중없어요. 간…첩인 그녀가 언제 행동을 할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여긴다면 우선 밖에서 활동 중인 투사를 찾는 쪽으로 합시다. 더이상 없을 때 나무 속에 있는 플뢰를 찾는 겁니다.=

- 나도 그게 좋을 거 같아.

아무리 무뚝뚝하고 차가운 히아리드 씨라지만 서하 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우회하는 건을 꺼낸다.

큿. 얼른 이곳을 벗어나자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두 여자를 보니 알 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랫배가 답답해져 온다. 이러다 실패하면 내 눈썰미를 믿고 맡기신 서하 님이 날 "멍청한 녀석."하면서 또 한심하게 보실 텐데!

…….나는 결국 숫자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여자의 말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아아! 본의 아니게 놀려버린 셈이 된 경비분, 미안해요.

그렇게 미호와 히아리드 씨의 주장대로 밖에서 활동 중이리라 판단되는 하얀 나뭇잎 투사분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투사를 야외에서 찾아 미호가 멀찍이서 소울 링크로 투사분들의 표층 의식을 읽어 이른 시간에 두 건을 해결하니 미호는 의기양양해서 그것 보라는 식으로 날 놀려대었다.

결과적으로 내 발언권은 더더욱 축소되어 말없이 조용히 뒤따르게만 되었는데, 이 상태가 쭉 이어졌다면 만사가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부모님의 훈육 아래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그 증거로 네 번째 투사를 찾아간 시점에서 예상 외의 사달이 벌어졌다.

=그대들은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 겁니까.=

다부진 체격에 절도있는 몸가짐의 투사가 위압감을 풍기며 미호에게 다가와 사나운 얼굴로 노려본다. 어째 아까부터 주변을 달아다니던 우리를 의심스러운지 예의 주시하는 걸로 보였는데, 역시나 미호의 소울 링크를 눈치채버린 거 같았다.

거기에!

- 내가 뭘 했다고 그래?

=미, 미호! 그러면 안 돼!=

=지금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겁니까. 솔직히 말하십시오.=

- 그러니까 무슨 짓은 무슨 짓이야?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한 것인지 증거 있어? 있냐구!

미호의 두서없는 땡깡에 투사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이며 기세가 사나워져 가는걸 보고 이대로면 큰일나겠다 싶어 미호의 입을 틀어막은 뒤 오해라는 듯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오해입니다. 저는 헤뷜트에서 온 사제장, 칼카쿰과 아훔렉의 자식인 알케마입니다. 주군이신 서하 님을 모시고 그저께 패시지에 도착한 우리는 오늘 플뢰의 숲을 구경…!!=

버둥거리는 미호를 꼬리까지 동원해 움직임을 막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투사에게 필사적으로 변명 아닌 설명을 하니 그의 눈썹이 서서히 눈썹이 펴지면서 안색이 풀어진다.

=……그러다 보니 하얀 나뭇잎 투사분의 절도 있는 모습을 본 일행이 신기한 마음에 실수한듯합니다. 부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렇습니까. 패시지는 여느곳과 다르게 규율과 율법이 엄격합니다. 이번만은 보아 넘겨드리겠지만, 시민들에게 스펙스의 투사는 위법이자 엄중한 죄로 다스리는 곳이니 그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염두에 두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그렇게 식은땀을 흘릴 거 같은 기분으로 겨우 분란을 막았더니 이번에는 미호가 내 손을 앙 하고 물었다.

=아파! 왜 무는 거야?!=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은 고통에 미호를 놓고 이빨 자국이 선명한 손등을 쓰다듬고 있으니 미호가 성난 해파리처럼 여덟 개의 꼬리를 바짝 세우면서 아르릉거렸다.

- 왜 그렇게 굽실거리는 건데?! 들켰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구 미안하다면 될 걸 그렇게 굽실거릴 이유가 어디 있어?!

=구, 굽실?! 말이 너무 하잖아! 실수는 이쪽이 먼저 했으니 예의에 따라 사과를 한 거 뿐인데! 그리고 이 상황에 어떻게 솔직하게 말한다는 거야! 말했다간 서하 님의 의도가 다 드러날거 아니야!=

미호의 거친 언행에 나도 화가 나서 꼬리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그러니 미호는 머뭇거리며 얼굴을 붉히더니 다시 바락바락 대든다.

- 그치만 우리가 함부로 허리를 숙이면 주인님의 체면에 손상이 간단 말이야!

=그게 걱정이면 실수를 안 하면 되지!=

- 안 했어! 조심한다구 했는데 그 플뢰가 너무 예민했던 거라구!

=이쪽을 의심스럽게 주시하는 중에 쓰면 들키는 게 당연하잖아! 그게 실수가 아니면 뭐가 실수야!=

- …그, 그랬어?

……미호는 투사가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억울함과 걱정이 목까지 차올라 비늘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서하 님이 맡기신 임무,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혼혈이 순혈보다 강한 이유는 판타지적 요소를 제외할 경우, 유전자 풀의 다양성이 혼혈이라는 형태로 드러나 우수한 형질을 확대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성 인자와 열성 인자가 합쳐질 경우 열성인자가 우성인자를 누르고 표면으로 드러날 확률은 극히 낮죠.

즉 인공이는 인간 능력자와 이형종의 우성인자가 합쳐져 주인공 보정의 결과로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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