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508화 (508/517)

00508  메리아놀의 도시.  =========================================================================

…그런데 막상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처럼 날 올려다보는 눈빛을 마주하니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아니, 너 여우잖아. 개과면서 그런 눈빛은 반칙이지!

“이,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미리엔? 전 무기랑 방어구 제작 의뢰를 하러 왔는데 저 가디발의 석장에 가면 실력 있는 장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즉각적인 부정이 나오지 않자 미호는 충격먹은 얼굴을 하더니 귀를 축 늘어트리며 시무룩해져 버렸다. 그 모습이 조금 불쌍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아.

=아. 의뢰하러 오신 거군요? 병장기 발주는 제 담당이라 그 부분은 다행히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구해오셨나요? 아니면 단순 주문 의뢰만 하실 생각이세요?=

“재료는 가져왔어요.”

=재료는 금속류인가요? 아니면 진수眞獸의 시체인가요?=

“진수는 뭐에요?”

이형종을 가리키는 거 같은데 확인을 위해 물으니 역시 이형종이라고 말해준다.

=스펙스를 몸 안에 받아들여 한층 진화한 짐승들을 말하는 거랍니다. 서하님께서는 진수가 아닌 다른 단어를 사용하시는가 보네요.=

“네. 우리는 그런 짐승들을 이형종이라고 불러요.”

진화인가. 우리 세계에서는 단순히 변이한 괴물로 보는 입장인데 이들은 진화라고 부르며 축복하는 느낌이다.

=이럴 게 아니라 석장으로 들어가요. 가면서 이야기하지요.=

“네.”

시무룩해져서는 여우 귀도, 꼬리도 축 늘어트린 미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면서 교차로를 건너 석장의 입구로 들어갔다.

아궁이를 거대하게 형상화한듯한 석장의 내부로 들어서니 밖에서 공간지각으로 훑어본 것처럼 1,000명이 넘는 이종족이 분주하게 자기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뜨거워서 목이 막힐 지경이야.=

=후우.=

눈썹을 찡그린 알케마의 말대로 가디발의 석장 안으로 들어서니 숨 쉴 때마다 고온의 사우나에 들어서 있는 것처럼 열기가 확확 기관지로 밀려든다.

이런 열기가 힘든지 히아리드가 약간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묵묵히 내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미호가 여전히 풀죽은 모습으로 제일 뒤에서 따라오는 모습이 신경쓰이지만 일단은 이곳을 방문한 일부터 해결해야지.

석장은 총 3층으로 나누어져 1층과 2층을 나누는 층간의 두께는 5m나 되고 고작 3층 건물인데도 건물의 높이는 40m에 달할 만큼 거대했다.

1층의 높이는 15m지만 2층은 9m. 3층은 6m로 점점 작아지는 것도 신기했고 1층에는 대량 양산을 목적으로 한듯한 분위기가, 2층은 그보다 조금 더 고급이자 실력이 있는 야장이 파트너와 함께 널찍한 방에 제작에 몰두하는 모습도 우리 세계에서는 볼 수 없어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무구 가공, 제작 업체인 크래프터즈 마에스트로 코퍼레이션과 비슷한 느낌이다.

실력 위주로 계급이 정해져서 낮은 실력자는 낮은 층에 여러 사람과 많은 일을 하고 실력이 좋은 자는 높은 층의 개인실에서 홀로 넉넉한 재료를 이용해 실력을 뽐내는 구조.

천장의 높이가 가장 작은 3층은 어마어마한 양의 각종 주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형종의 부산물이 끝도 없이 쌓여있었다.

그중 3층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금고 속에는 위상력이 한가득 느껴지는 광물이나 척 보기에 범상치 않은 가죽, 비늘, 뼈 등이 따로 모여있는 걸 봐서 저 금고 속에 있는 재료가 이곳에서 가장 질이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깡! 깡! 하는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드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1층을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니 미리엔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친다.

=진수의 재료라고 하셨지요?! 여러분이 가져오신 재료이니 하급품은 아닐 거라 믿을게요! 규칙대로라면 1층 접수실에서 주문의뢰 절차를 마친 뒤에! 원하는 수준의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야장과 상담할 수 있지만! 제 권한으로 우리 플뢰와 거래하는 상급 야장분들께 안내해드릴거에요!=

우리에게 안내자를 자처하는 미리엔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었다. 플뢰는 공과 사는 철저하게 분리한다던데 미리엔이 희귀한 타입인 걸까?

높이 15m의 1층을 벗어나 나선형으로 2층으로 이어진 거대하고 튼튼한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점점 1층의 소음이 줄어들더니 2층에 다다랐을 땐 희미한 망치질 소리만 들려왔다.

덕분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어서 미리엔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전 처음에 석장이라고 하길래 채굴장과 비슷한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보니 채굴장하고는 전혀 다른 대장간이네요. 거기다 무척이나 커서 놀랐어요.”

=가디발의 석장은 프라우드 족 의장 가디발 프레빌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메리아놀 최대이자 4대 종족 최고의 대장 시설이에요. 도시에서 사용하는 철제 도구의 70%를 이곳에서 생산하지요.=

“시장을 독점하는 건 문제가 될…소지는 없겠네요.”

이들이 욕망의 화신인 인간도 아니고.

이런 도시가 6000년이 넘도록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인간이었다면 제 욕심에 진작에 잿더미가 되어버렸거나 엄청나게 번성했겠지.

=후후. 처음에는 소수의 프라우드 족이 서로 가벼운 협력 체제로 소량의 무구만을 만들던 곳이었지만 가디발 프레빌 의장님은 메리아놀의 주민들의 생활 질적 향상을 위해 애를 쓰셨고 자연히 프라우드 족은 취급하지 않던 일상 생활용품도 만들기 시작하셨지요. 그것이 커지고 커져서 석장이라고 불리며 메리아놀 최대의 대장간으로 성장한 것은 불과 50년 사이의 일이었어요.=

미리엔의 설명을 듣고 2층의 전체를 쓱 둘러봤다. 벽돌 건물 내부라서 조명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하나 했는데 적지 않은 빛을 내는 주먹만 한 돌멩이가 벽에 촘촘히 박혀 은은하게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한 층을 통짜로 쓰고 있었지만 1층과 다른 점은 20개의 제작실이 바둑판처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촘촘히 지어져 있는 거였다.

건물 안에 건물을 지은 모양새라 이상하고 신기했지만 크리에이터의 예술 활동을 위한 자기 공간 확보일 거라고 대충 짐작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미호와 알케마를 뒤에 달고 미리엔과 함께 움직이니 13줄 바둑판의 화점 같은 위치로 안내해주었다.

=이곳이에요. 이 제작실에 플뢰와 주로 거래하는 프라우드 족 상급 야장이 계세요.=

스무 개의 제작실 중 한 곳에 안내해준 미리엔은 제작실 문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몸에 한 겹의 푸른 막을 쳤다.

위상력이 느껴지는 보호막이 미리엔의 늘씬한 몸을 휘감는 걸 보고 뭐하는건가 의아해하는데 갑자기 말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헉.=

=으음.=

문이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살을 지지는듯한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쳐왔다.

으음, 이거 때문에 보호막을 펼친 거였구만.

나도 마나오러를 약하게 끌어올려 열기에 몸을 지키며 제작실 안으로 들어가니 세 녀석도 얕게 신음을 흘리며 각자 열기에 몸을 지킬 수단을 끌어내며 뒤따라 들어왔다.

입구의 맞은편 벽에는 용광로와 화덕을 합친듯한 가열로가 자리를 차지한 채 보호막이 없으면 털이 오그라들 거 같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저게 지금 제작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열기의 원인이었다.

7평 남짓한 제작실 안쪽은 새하얗게 달아오른 소형 가열로가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작열 지옥처럼 들끓고 있었다. 열을 막아줄 보호막이 없다면 버티지 못할 정도였을거다.

마나 오러를 끌어올린것도 부족해서 신체 강화를 돌리고 마나 시브로 위상력을 움직여 열기가 코와 입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니 그제야 살 거 같다.

두 명의 프라우드 족은 낚시 의자 같은 곳에 앉아 곰방대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가열로를 지켜보고 있다가 우리가 제작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오자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스킨헤드에 가까운 짧은 머리를 검은 두건을 써서 가리고 수염도 대충 민듯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프라우드 족 남자는 검댕이가 묻은 손으로 턱 아래의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뭔가 잊어먹은 거라도 있나.=

=클클. 철두철미한 미리 렌샤엔이 잊어먹은 거라니, 말도 안 되는 농담이군.=

나이 들어 보이는 프라우드의 옆에 있던 프라우드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곰방대에 담긴 담뱃재를 털어버리더니 새로 쌈지를 열어 담배를 꺼내 채워 넣는다.

스킨헤드의 프라우드에 비해 굉장히 젊어 보이는 프라우드는 덥수룩한 갈색 머리를 마찬가지로 검은색 두건으로 묶고 열기에 이리저리 오그라든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벽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적동색 근육이 꿈틀거리는 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마나 오러를 일으켰다고 해도 숨 쉴 때마다 찌는듯한 열기가 폐부로 밀려드는 게 무척 견디기 힘든데도 그들은 보호막도 안치고 그냥 시원한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두 분께 소개시켜드릴 분이 계셔서 모셔왔습니다. 아직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신듯 하니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손님?=

미리엔과 두 프라우드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제작실 내부를 둘러봤다.

어미어마한 열기를 뿜어내는 가열로의 옆에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 세 개가 서로 맞물린 채 끼릭끼릭 쇠가 마찰하는 소릴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바닥에는 각종 대장용 도구와 주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함부로 발을 디디기가 힘들다.

벽에도 온갖 집게라거나 집쇠, 망치와 정, 장대 같은 것들이 걸려있고 구석의 책상에는 하얀 가죽이 돌돌 말린체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쪽에 펼쳐져 있는 가죽을 보니 이것들이 전부 설계도인 거 같다.

열기 때문에 그슬린 것인지 전체적으로 시커먼 작업장은 말 그대로 대장간이라는 느낌이 가득하다.

- 웁! 주, 주인님. 난 밖에서 기다릴게…!

=미호! 가, 같이 가자!=

그사이 가열로가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문 근처에서 다가오지 못하고 벽에 붙어있던 미호와 알케마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히아리드는 날개로 몸을 감싸고 열을 막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드러난 얼굴은 열에 익은 듯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도 나가지 않고 버티려 한다.

=서, 쿨럭! 서하 님. 저는 괜찮, 습니다.=

“그래그래. 알고 있어. 너도 나가서 미호하고 알케마가 사고 안 치게 잘 감시나 해줘.”

=…네. 콜록.=

열 때문에 기관지가 상하는지 콜록거리는 녀석을 어깨를 잡아 제작실 밖으로 내보냈다.

여기에 자주 왔을 미리엔도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판국에 이런 열기가 처음일 히아리드가 버틴다는 게 이상한 거지.

히아리드마저도 내보내는 모습을 킬킬거리면서 흥미롭게 구경하던 프라우드 족 남자들은 날 보며 이채 어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루크랑의 고위 전사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자라니, 그렇군. 자네가 그 예지의 인물인가.=

=컬컬. 거물 손님을 모셔왔구만, 플뢰 처녀.=

얼래. 날 알고 있어?

왠지 날 알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에 미리엔을 돌아보니 열에 달아오른 얼굴로 살짝 웃음 더니 두 프라우드에게 입을 열었다.

=예. 이 분의 성함은 서하 정 님으로 제작 의뢰를 위해 가디발의 석장을 찾아오셨습니다. 상급 야장이신 투르발 님과 피아브님의 실력이라면 서하 정 님이 감탄할만한 물건을 제작해주시리라 생각해서 모셔왔습니다.=

=허어. 규칙을 잘 아는 자네가 그런 편법을 쓰다니 신기한 일이군. 우리를 생각해 손님을 데려 와준 건 기쁘지만, 규칙은 규칙일세.=

=크크크. 깐깐한 플뢰 처녀가 규칙을 어기는 모습이라니, 꽤 신선한 기분이야.=

클클거리면서 웃는 젊은 프라우드 족 남자를 잠시 빤히 바라보던 미리엔은 싱긋 웃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이 맞은편 제작실의 아지아 님을 찾아가 보아야겠군요. 저는 나름 두 분과 오랜 시간 거래한 연을 생각해 일부러 서하 정 님을 모셔왔는데….=

여기까지 들은 두 프라우드는 으쓱하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이어진 미리엔의 이야기에 안색이 확 변한다.

=그 소문의 서하 정 님이 어떤 재료로 의뢰를 하실지 저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을 지경입니다만… 역시 두 분은 사심에 초탈한 프라우드의 모범적인 분답게 욕심이 없으십…니다. 갑자기 왜 나가는 길을 막으시는 겁니까?=

140cm가 채 안 되는 짧고 굵은 몸의 두 프라우드가 문 앞에 서니 마치 눈앞에 철벽이 세워진 느낌이다. 위상력으로 보면 상위급에 겨우 발을 걸쳤는데… 이게 바로 장인의 기운인가?

=크흠! 규칙은 규칙이지만 처녀가 가던 발걸음도 돌려 모셔온 고객이시지 않나.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자네 체면이 구겨질 테니 내 특별히 들어드리지.=

=그럼 그럼! 우릴 그렇게 생각해주는 기분이 굉장히 신선해! 클클!=

그러더니 나이 들어 보이는 프라우드 족은 굳은살이 가득 박힌 억센 손으로 내 팔을 잡아당기고 젊은 프라우드는 손님용인지 꽤 큰 의자를 가져와 날 앉힌다.

저기, 가열로에 가까이 붙으면 저도 힘든데요.

=자, 무엇을 재료로 가져오셨는가. 한 번 꺼내보시게.=

=음음!=

미리엔은 나가든가 말든가 신경도 안 쓰는지 두 프라우드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얼른 재료를 꺼내보라고 보채는 모습이 참… 쓴웃음이 날 거 같다.

미리엔도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 쓰게 웃지만 별다른 말은 없이 출입문 근처에 서서 팔짱을 끼고 얌전히 선다.

내가 물건을 안 꺼내니 나이든 프라우드가 선물 상자를 앞둔 어린아이처럼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모루를 탁탁 내려치며 말했다.

=우리 실력이 의심이 가나 본데, 자랑으로 들리겠지만 가디발 의장을 제외하면 이곳 석장의 일류는 바로 나! 투르발이 손꼽히는 게 사실일세. 자네가 어떤 재료를 가져왔든 간에 상상 그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보이지. 그러니 재료를 얼른 꺼내보시게.=

내 허벅지보다 더 굵어 보이는 두툼하고 단단해 보이는 팔로 근육을 자랑하듯 불끈 힘을 주는 모습을 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믿음이 가긴 한다.

거기다 창작에 순수한 열의와 희귀(할지도 모르는) 재료에 보이는 호기심도 지저분한 감정이 아닌 맑고 투명해 보여 이들이라면 재료를 맡기기에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거에요.”

가로세로가 9m * 14m 정도인 제작실의 크기와 대장장이 도구의 위치를 고려해 백청의 3m짜리 갈비뼈 일부와 비늘 아래 붙어있던 폭 3m에 길이 5m짜리 돌돌 말린 가죽을 꺼냈다.

=흡!=

=헉!=

“어?”

투르발과 피아브는 내가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는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나도 내 손에 잡혀있는 뼈와 가죽을 보고 조금 놀랐다.

아공간에 넣어두고 거의 반 년간 묵혀놨던 뼈와 가죽은….

원래대로라면 티 없이 새하얀 색을 가져야 할 백청의 갈비뼈는 은은한 푸른색 오라를 뿌려대며 가열로가 뿜고 있는 열기를 밀어내고 있었고 흑갈색을 띠던 가죽은 눈부시게 하얗게 변한 채 빛가루 같은 게 가죽의 겉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열기가 밀려나니까 좀 살거 같네.

=척 보기에 범상치 않은 소재로군! 스스로 냉기를 뿜어내는… 뼈? 뼈 맞나?=

=허, 이런 천은 40년 대장장이 생활을 하면서 처음 보는 재질인데…. 아니야! 이건 천이 아니라 가죽이여!=

두 프라우드가 뭔가에 홀린듯한 얼굴로 뼈와 가죽을 살피고 있을때 문 앞에 서있던 미리엔도 홀린 듯이 가까이 다가와 하얀 가죽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가루를 손으로 만져보며 입을 열었다.

=뼈와 가죽이라면 진수의 사체 일부란 말입니까? 저도 많은 수의 진수를 사냥했지만 이런 특징을 가진 건 본적이 없습니다.=

=자네의 경험을 무시할 생각은 아니네만 그게 당연할게야. 나조차도 어렸을 때 망치를 쥔 이후로 이런 소재를 본 적이 없다네. 이 뼈의 재질은 물론이고 단단함이나… 뿜어내는 스펙스의 특성은 적당히 서늘하지만, 가열로의 열기마저 막아내는 불가사의한 효능이라니!=

=투르발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메리아놀에 들어온 적도 없는 물건이란 말이요? =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한겐가. 아니, 진수를 잡고 구한 게 맞긴 한겐가?=

투르발은 피아브의 질문에 답을 못 해주고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들어 날 보며 얼른 말해보라며 재촉하는 눈빛을 보낸다.

“진수의 사체에서 채집한 게 맞아요. 갈비뼈 일부와 비늘이 붙어있던 가죽이죠.”

=무엇을 잡아서 얻은겐가? 얼마나 강한 녀석이었지?! 특징은?!=

“엄청 커다란 뱀이었어요. 단 한 번에 결판은 나지 않아서 두 번에 걸쳐 싸웠었는데… 물을 조종하는 능력이랑 번개를 쓰기도 하고 먹구름도 부르고… 저주도 걸고 그랬네요.”

백청과 싸우면서 보고 겪은 능력을 말해주니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투르발은 투박한 손으로 연인의 가슴을 주무르듯이 조심스럽게 뼈를 만지며 물었다.

=그런 능력을 가진 것들은 비교적 흔한 편인데, 그런 진수가 이렇게… 진귀한… 희귀한… 보석과도 같은 소재를 뱉었다고? 혹시 그 진수의 이름을 아는가?=

“네. 백청이라는 놈이었어요.”

=그래 백……. ……. ……뭐라고?=

“백청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가죽과 뼈를 어루만지던 셋의 움직임이 딱 하고 멈춘다.

=……호, 혹시 베, 베, 벨티칼 산의, 그 대해의 주인…을 섬기는, 무, 무, 무녀인… 그 백청? 을 말하는 건 아아아아니겠지?=

“맞는데요.”

=으허허흐흐헉!=

=푸흐퀡!!=

=…….=

투르발의 질문에 긍정했더니 투르발은 기겁하고 피아브는 화들짝 놀라며 뼈와 가죽에서 후다닥 떨어졌다. 미리엔도 멍한 얼굴로 슬쩍 뒤로 물러선다.

으흠…. 저 반응을 보니 살짝 불안해지는데. 설마 제작을 안 해준다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자, 자자, 자네! 대체 무, 무무무무슨짓을 하, 하하한 건가!!=

=그분의 무녀를 주, 죽이다 못해 그 사, 사…으으! 하여튼 무기로 가공하려 해?!! 그분의 격노가 두렵지 않는 거냐!!=

적동색 피부가 하얗게 변할 만큼 놀란 투르발과 피아브는 날 마귀를 본 성직자마냥 바라보며 소리쳤다.

백청이 죽어가며 목이 찢어져라 부르짖던 대해의 주인의 이름과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메리아놀하고는 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기도 해서 될 수 있으면 그들 앞에서 거짓말은 안 할 생각이라 솔직히 알려준 건데, 저 반응을 보니 괜히 말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미 벨티칼 산으로 순례자들이 떠난 이상 내가 백청울 죽였다는 사실은 언젠가 알려질 일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그들과의 관계를 고려해봤을 때 맞다.

거기다 명분은 나한테 있었잖아. 아민-라 라는 이름을 가진 대해의 주인도 인정한 부분이고. 하지만 날 나쁜 놈으로 보는듯한 투르발과 피아브의 모습에 살짝 울컥하는 건 사실이라 나도 모르게 띠껍게 대답해버렸다.

“뭐가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네가 문제라고 생각하네만!!=

띠꺼운 내 모습에 투르발이 얼굴을 시커멓게 물들이며(적갈색 피부에 피가 도니 검붉어지더라.) 버럭 소리치자 문이 열리며 미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본다.

그 위로 히아리드와 알케마의 얼굴도 쏙 들어오더니 검붉고 새하얀 얼굴의 두 프라우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미호는 이제 제작실이 덥지 않다는걸 느꼈는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며 눈썹을 찌푸렸다.

- 왜 주인님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

“아아. 별거 아니야. 이 아저씨들이 오해하고 있어서 그래.”

=으, 으음.=

내 덤덤한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발작적으로 소리 지르려던 걸 멈춘 투르발과 피아브는 자신들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인간이었다면 저렇게 감정이 과다 이입된 상태에서 진정하는데 오래 걸릴텐데 이종족이라 인간들과 정신구조가 다른지 순식간에 진정한 뒤 날 보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허어, 후우. 추태를 보였군. 소릴 질러서 미안하네.=

“괜찮아요. 그래도 제 이야기를 먼저 들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렇긴 하네만 벨티칼 산의 백청 님은 우리가 모시는 보희 님과 여러 의미에서 비슷한 분일세. 그러한데 자네가 그분을 해쳤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네. 이해해주게.=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보석 공주의 성향이 그 뱀 년이랑 비슷하다는 이야기인지 신神과 비슷한 존재로 여기는 주인들의 대리자로 여긴다는 부분이 비슷하다는 말인지 헷갈린다.

만약 성향이 뱀 년이랑 비슷하다면… 조금 신경 쓰이는데.

=그러니 우리가 더이상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을 부탁하고싶은데. 괜찮겠나?=

이성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이성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얼른 설명을 부탁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이종족에게 나와 백청 사이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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