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500화 (500/517)

00500  외전 - 그 남자가 휴일을 보내는 방법   =========================================================================

* * * *

외출하기 위해 5층의 드레스 룸에서 부스럭거리며 적당히 평범해 보이는 옷을 줏어입으려 하니 프랑이 드레스 룸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서하? 어디 가세요?”

내가 드레스 룸을 뒤지는 걸 보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가 꺼내놓은 옷을 살펴보며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응. AT 센터라는 곳에서 코믹월드라는 걸 한대. 거기 가보려고.”

“코믹 월드가 뭔가요?”

음…. 어떻게 설명하지.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화 캐릭터처럼 꾸미고 모여서 노는 거?”

뭔가 코믹 월드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들으면 화를 낼법한 무심한 설명이지만 프랑 같은 일반인이 알아듣기에는 이만한 설명은 없을 거다.

“흐응~.”

그리고 예상대로 프랑은 가벼운 콧소리를 내며 약간 특이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몇 안 되는 소규모 인원이 모여서 가볍게 노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방금 얼마 안 되는 사람이 모여서 노는 친목 행위 같은 걸 생각했지?”

“틀린 건가요?”

“틀려. 주말 이틀 동안 20만 명이 넘게 몰리는 대규모 축제라고.”

“네엣?”

역시나 모이는 인구수에 깜짝 놀란다. 나도 기껏 해봤자 1만 명 정도나 모일까 했는데 알아본 결과 하루에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었지.

좀 더 찾아보니까 코믹 월드를 사랑하는 능력자 몇 명이 모여 자비로 행사장을 구입, 확장하고 편의성과 이벤트성을 늘리면서 옆 나라에 버금가는 규모의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더라.

덕분에 1년에 수차례 열리던 게 여름과 겨울 두 번으로 줄었지만, 질은 오히려 더 향상되서 다들 좋아한다던가. 그전까지는 하루에 많이 모여봤자 수천 명 수준이랬으니 엄청 늘어난 거지.

어쨌든 대충 고른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갑자기 프랑이 달려들더니 내가 입으려는 옷을 빼앗아가 버렸다.

“어?”

“어휴 참. 코디가 이게 뭐예요.”

“…이상해?”

청재킷에 갈색 체크무늬 남방에 검은색 청바지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프랑이 보기에는 절대 아닌지 뺏은 옷가지를 멀찍이 던져버리더니 빠르게 옷을 골라준다.

“청청 패션은 여자들의 혐오 대상이에요!”

“그, 그래?”

프랑이 골라준 옷을 보니 죄다 니트 아니면 모직이다. 짙은 회색 모직 재킷에 검은색 모직 바지와 하얀 스웨터와 빨간 니트 목도리.

“뭐야. 프랑도 모직 니트 일색이네.”

풉 웃으면서 프랑의 센스를 지적하니 프랑의 예쁜 이마에 옅은 핏줄이 드러난다. 그리고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더니 묘하게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서하의 키와! 체형과! 신체 균형에! 올해의 트렌드를 섞은 패션이라구요! 청청 패션과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서하는 올해 트렌디가 어떤지 알긴 하세요?”

“…아니.”

“입으실 거죠?”

“…응.”

말 잘 못 했다가 혼날뻔했네.

프랑이 마지막으로 꺼내준 갈색 천연 가죽 구두를 신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하는 고용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저택을 나와 연인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보관해두는 주차 빌딩으로 향했다.

40대가 넘어가는 고급 차량이 쉬고 있는 주차 빌딩의 관리 요원에게 놀러 갈 때 탈 만한 차를 꺼내달라고 하니 검은색 무광 람보르기니 LP 640을 꺼내주었다.

쩝. 프랑도 따라왔으면 불쌍한 모쏠들 염장 좀 지를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 할 일이 있다며 거절해서 조금 아쉽다. 하다못해 깜찍한 미호라도 데려가면 좋겠지만, 녀석은 스케일러들하고 치고받고 논다고 바쁘고.

어쨌든 람보르기니를 몰아 양재 대로를 달려 AT 센터를 향하니 괜히 잘 가던 차들이 차선을 바꿔서 떨어진다던가 조금 속도를 늦추거나 엑셀을 밟아서 멀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옆에서 슬금슬금 곁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아서 차를 피해 주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살짝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AT 센터가 가까워질수록 도로가 급격하게 막히기 시작했다.

“……코믹 월드에 참가하려면 가급적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더니, 이거 때문이었나?”

될 수 있으면 능력을 안 쓸려고 했는데 1km 앞 염곡 사거리까지 차가 거북이걸음을 하는걸 공간 지각으로 보니까 차를 몰고 갈 엄두가 안 난다. AT 센터 근방에는 주차장도 없고.

20분째 신호등 하나를 통과하지 못하는 지옥 같은 막힘에 결국 인내심이 바닥나서 차에서 내려 람보르기니를 아공간에 집어 넣어버렸다.

옆에서 람보르기니를 구경하며 폰으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내가 차에서 내리니 뭐 하는 거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눈앞에서 잘빠진 차 한 대가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지자 눈을 부릅뜬다.

“어, 어? 서, 설마?”

그중 한 운전자는 날 알아봤는지 떨리는 손으로 날 가리키길래 슬쩍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고 AT 센터 전시장 옥상을 향해 공간 도약을 펼쳤다.

“우와~. 콩나물시루도 아니고 사람이….”

옥상에서 내려다본 드넓은 공원의 포토 존zone과 커다란 회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아래쪽 꽃시장과 공판장까지 매입해서 6배 이상 확장했다고 하는데도 인파에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니, 이정도 인원이 주말 이틀 동안 유지된다면 20만 명이 아니라 30만 명이 몰리겠는데?

공간 지각으로 빠르게 사람 숫자를 세보니 스태프, 코스어, 방문객 가리지 않고 총 122,853명이 AT 센터에 몰려있었다.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으니 오후가 되면 더 모이겠군.

처음 구경하는 코믹월드의 규모에 놀라면서 본격적으로 회장 내부의 동인지 판매 부스를 구경하며 내 취향인 그림채의 야한 19금 동인지를 쓸어담다 보니 살짝 신이 난다.

나도 올해부터 성인이니까 19금 책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그렇게 킥킥 웃으며 다른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끔 아공간에 야망가를 차곡차곡 쌓다 보니 한쪽에서 코스프레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저거 아이언맨 모델74잖아? 덕중 지덕은 양덕이라더니 다 구라네.”

인피니티 스톤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신도 간단히 죽일 수 있게 만들어진(토르도 일단은 신이니까) 하늘색 아이언맨 슈트의 완성도에 감탄하며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구경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

뭔가하고 돌아보니 날 잡은 남자는 왼쪽 팔뚝에 STAFF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목에도 staff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는데, 그는 날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약간 화가 난 얼굴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코스프레는 허가를 받고 해야 하는 거 모릅니까?”

“네? 저요?”

“제가 잡고 있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있어요? 허가 없이 코스프레하고 돌아다니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입금지 당할수도 있어요. 대체 입구에서 어떻게 통과한 겁니까?”

“코, 코스프레라뇨? 저 코스프레 안 했는데요? 입장권도 예약 구매로 제대로 샀어요.”

이 소란에 사진을 찍거나(방문객) 찍히는(코스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하! 이 사람이 정말. 입장권 문제가 아니라 그 모습이 문제 된다고요! 그 모습, 그랑블루 회장 코스프레 한거 아닙니까?!”

……넹?

아니, 그러고 보니 나랑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목에 플레이어라는 명찰을 달고 있…….

그게 그거였냐!!

“아니 저는…!”

“잔말 말고 따라오세요! 당신같이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회장의 분위기도 나빠지고 치안도 어지러워지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내 변명하려는 행동에 화를 내다시피 한 스태프는 문답 무용으로 내 팔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내가 일으킨 소란에 주변에 몰려있던 방문객과 코스어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서 어쩔 수 없이 스태프를 뒤따라 걸음을 옮기니 등 뒤로 날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저게 코스어 망신 다 시키네 그냥.”

“그러게. 저렇게 그랑 블루 회장님 코스프레를 하는 분들은 다들 매너 좋으시던데… 저 남잔 진짜 꽝이야.”

아니, 나 코스프레 한거 아니라니까…!!

스태프한테 끌려서 도착한 곳은 위원회장이었는데 그곳에는 나 말고도 많은 코스어들이 스태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듣자 하니 하나씩 규정을 어긴듯했다.

……물론 나도 꾸중을 면치 못했다.

날 코스프레 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거기다 꽤나 인기 있는 코스프레 모델이라는 걸 듣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벌금 10만 원을 내고 플레이어 명찰을 강매당한 뒤에 쫓겨났더니 기분이 허하다.

난생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다른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혼나버렸지만, 화가 난다기보단 신기했다.

“허….”

어이가 없기도 하고 뭔가 기쁘기도 하고 희한한 기분으로 플레이어player라는 글이 박힌 명찰을 목에 걸고 코스프레 존zone을 터덜터덜 돌아다니는데 또 누군가가 내 팔을 답싹 붙잡아왔다.

“……뭡니까?”

뒤를 돌아보니 요즘 덕후 연예인이자 아이돌 그룹 멤버로 이름을 날리는 여자 연예인이 간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코스어님? 트라이스의 지현이라고 해요! 그 모습, 그랑 블루의 정서하 회장을 코스프레한거 맞으시죠?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시간을 내주실수 있으세요?!”

“어, 네? 아니 이건….”

지현이라는 화사한 외모의 아이돌은 발을 동동 굴리며 급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아이돌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해서 어버버하고 있었더니 지현은 갑자기 내 손을 낚아채 한곳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네라고 하셨죠!? 이쪽이에요! 얼른요!”

…아몰랑.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지현의 뒤를 따라갔더니, 그녀가 향한 곳은 동인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북쪽 회장이 아닌 코스어와 방문객들이 촬영 활동을 하는 남쪽 회장이었다.

그런 남쪽 회장의 한쪽에는 구름 같은 인파와 함께 여러 대의 방송용 카메라가 한창 촬영 중인 커다랗고 세련된 무대가… 있었는데….

“하악, 학! 저도 정서하 회장님 코스어분 모셔왔어요!”

…무대에는 나처럼 머리를 내린, 그러니까 날 코스프레 한 다섯 명의 남자가 트라이스의 멤버들과 함께 짝을 지어 서 있었고 TV에서 많이 본 유명 예능 프로그램 간판 MC가 사회를 맡고 있었다.

“네! 트라이스의 지현 양도 제한시간 내에 그랑 블루 회장님의 코스플레이어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와아아아~!!

이게 뭐야. 무서워….

지현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에 오르자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류재석 MC가 마이크를 들고 오픈된 무대 위를 뛰어다닌다.

“드디어 한자리에 모인 여섯 트라이스 멤버! 그리고 말로 꺼내기도 무서운 그분의 코스플레이어들! 트라이스 멤버가 모셔온 여섯 코스플레이어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코스프레를 했는지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자, 가장 처음으로 오신 분!”

“네. 사실 정서하 회장님은 다른 나라에서는 악명이 높으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 그렇잖아요! 국격이 높아지는 데 일조하신 분이시라 꼭 한번 코스프레를 해보고 싶어서 4달 동안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는 내가 검증 시험을 볼 때 입었던 검은색 포스레더 아머를 모조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인터뷰와 동시에 그가 취하는 중2병 돋는 포즈에 관객석에서 환호가 쏟아진다.

내가… 저랬다고?! 난 저렇게 삐딱하게 서서 손을 이마에 대고 고뇌하는 표정 같은 건 짓지 않았어!!

“저는 세계 최강이라는 레이더인 그랑 블루 회장님을 동경해서 잠시나마 그분의 심정을 맛보고 싶어 코스프레를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발을 쩍 벌리고 한 손은 허리에 올린 채 검을 높게 들어 올린 적 없다니까!!

“전 그냥 멋있어서….”

…내가 알루미늄판이 덧대진 시커먼 가죽 재킷을 입고 왼팔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던 적 있었나…?

……그렇게 내 정신에 치명타를 주는 코스어들의 인터뷰와 포즈에 괴로워하고 있으니 어느새 내 차례가 돌아왔다.

안돼!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아~ 이분은 뭔가요~? 설마 평복 차림의 그랑 블루 회장을 코스프레 한건 아니겠죠~? 지현 양이 어지간히 급했나 봅니다~!”

류재석 MC의 묘한 어조에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쏠리며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와하하하!! 우~~ 우우~!

각자 나름대로 코스프레용 의상을 만들어 입은 다른 5명도 날 보며 피식피식 웃는다. 트라이스 멤버들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 짓고 있으니 날 데려온 지현은 얼굴이 빨개져서 어떡해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굴리지만, MC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자! 코스플레이어님! 코스프레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소감…. 갑자기 끌려와서 딱히 할 말은 없는데요? 전 코스프레 한게 아니라서요.”

이 말이 또 MC의 감정선을 건드렸는지 폭발적인 한탄과 함께 적당한 어그로가 튀어나온다.

“아하~! 코스프레 한게 아니다! 이 말은 정서하 회장님이 자신을 흉내 낸 거라 주장하시는 건가요?! 이 인터뷰를 그랑 블루 회장님이 직접 보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겁 안 나시나요~?!”

…보긴 뭘 봐. 직접 당하고 있구만.

“하지만 이 대담함! 그야말로 정서하 회장님의 독불장군 스똬~일 아닙니까! 나름 그분으로 꾸미긴 했지만, 회장님보다 작은 키가 옥에 티 같습니다!!”

와하하하하하!!

또다시 터져 나오는 폭소. 역시 유명 MC답게 글로만 보면 기분 나쁠법한 이야기를 적당한 억양과 뉘앙스를 이용해 듣는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럼 여기서! 여섯 분의 코스플레이어분을 모시고 어느 분이 그랑블루 회장님의 코스프레가 완벽한지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관객 여러분께서즌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의 코스프레가 완벽했다!! 하는 분께 소중한 한 표를 던져주세요!”

그렇게 날 포함한 여섯 명과 인터뷰가 끝나자 원래 계획이었는지 관객들이 투표용지를 들고 여섯 곳으로 나누어진 투표함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죄, 죄송해요…! 제가 억지로 끌고 오는 바람에 야유를…!”

그 잠깐의 틈을 타 지현이 날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얼굴이 귀염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런 경험도 신선하고 재밌네요.”

“네에….”

그 뒤에 이어진 집계에는 초유명 코스플레이어와 AT 센터 중앙위원회, 연예인들이 모여있는 심사단이 매긴 점수와 관객의 표 점수의 합산으로 순위를 뽑았는데.

“예!! 금일 그랑 블루 회장님 코스프레, 그 영예의 1위는!!”

두두두두두두….

쓸데없는 드럼 소리가 수초간 지나간 뒤 폭발적인 빵빠레 소리와 함께 무대 효과가 가장 처음 인터뷰한 남자 주변에서 터져 나오며 조명이 집중된다.

“정서하 회장, 검증단 version의 조한우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에 답하듯 이미테이션 포스레더 아머를 입은 남자와 미영이라는 이름의 아이돌이 서로 손을 맞잡고 번쩍 들며 기뻐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발표되는 순위, 나는… 36점으로 6명 중 6위였다.

이게 말이 되냐? 난 본인이라고! 당사자란 말이야!

“아~ 여섯 번째 플레이어님은 복장에 조금 신경 쓰시는 게 좋아 보여요~.”

“코스프레라는 것은 트레이드마크라 불리는 헤어 스타일만 해결하면 되는 간단한 게 아니에요. 총체적으로 어색함이 느껴졌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워요.”

“그래도 저는 여섯 번째 분의 머리가 가장 자연스럽고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요. 복장도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고요. 저는 좋아요!”

“그 말은 역시 저가 코스프레라는 이야기지요?!”

“아, 그렇게 되나요?”

그사이 딴죽을 걸듯이 끼어든 MC의 말에 관객석에서 또다시 폭소가 튀어나온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내 모습에 대해서 느낀 점을 말해주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억울할 지경이다. 그래도 2등이나 3등은 하지 않을까 했는데 6위라니! 내가 6위라니!!

“하지만 코스프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억에 강렬히 남은 캐릭터의 모습을 꾸미는 것이 참된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여섯 번째 참가자분은 저 모습이 당신의 인상에 가장 많이 남은 거겠죠! 참가자분은 그 모습이 바로 정서하 회장님의 평소 모습이라 생각…!”

그렇게 MC의 농담과 재치있는 발언에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나는 억울해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 주인님 찾았다~!

하늘에서 미호가 일곱 꼬리를 팔랑 이며 무대에 내려섰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정적.

“…….”

“…….”

“…….”

새하얗게 빛나는 일곱 개의 여우꼬리와 명주실처럼 찰랑거리는 긴 백발, 그리고 머리 위에 쫑긋 솟은 귀여운 여우 귀.

이형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미호의 등장에 무대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 헤헤. 주인님 여기서 뭐 해?

미호는 머뭇거림 없이 내 목을 끌어안으며 묻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깜찍한 여우 소녀의 모습과 행동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몰린다.

여기있는 그 누구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타난 미호의 모습에 관객들은 물론이고 심사단, 참가자들까지 어느 누구 가릴 것 없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지만, 사회자는 투철한 진행 정신인지 뭔지 하늘에서 내려선 미호를 보며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랑블루의 마, 마스, 코…트? 헉! 그럼 진짜… 회장님?!”

MC가 마이크를 쥐고 소리친 덕분에 무대를 넘어 저 멀리 회장까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헛숨을 삼킬 때 미호가 내 목에 매달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날 흉내 낸 코스플레이어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우와~ 저 사람들은 뭐야? 주인님 흉내?

“…그래. 여긴 어쩐 일이냐? 스케일러들하고 놀고 있었던 거 아냐?”

- 다 놀아서 주인님 찾아온 거야! 간식 먹을 시간이래!

“그러냐?”

내가 미호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정신을 되찾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지, 진짜? 진짜 그랑 블루 회장님?”

“미호, 미호잖아! 하얀 꼬리 일곱 달린 여우 소녀! 회장님의 애완동물!”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우와아아아아!!!

미호의 등장에 회장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뜨거워지며 저 멀리서 평범하게 코스프레를 즐기던 코스어와 방문객들도 무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다들 들뜨고 놀란 가운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농담삼아 날 보고 저렴한 코스플레이어라던가 키가 작다던가 흠을 잡았던 MC나, 내 모습이 코스어로써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둥 신랄한 비판을 했던 심사단은 겁먹은 얼굴로 달달 떨고 있었고 날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한지현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잡아끈 사람이 당사자라니! 나, 나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얼굴에 다 보인다.

그거야 어쨌든 수천 명의 이목이 미운 오리 새끼를 보는 듯한 시선에서 백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뀐 걸 느끼니 기분이 짜릿하다.

하지만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이 좁은 무대에 몰리기 시작하는 걸 보자 이 이상 여기 있으면 곤란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일까 속으로 궁리하며 덜덜 떠는 사회자를 향해 말했다.

“훗. 호기심에 놀러 왔는데 참 재미있는 경험을 했네요. 절 코스프레 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무척이나 신기한 기분이에요.”

“아, 저… 저기. 그게… 옙!! 감사합니드앗!!!”

MC는 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우렁차게 소리 지르며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그걸 보고 웃으면서 시선을 돌려날 코스프레한 참가자들의 흥분한 모습을 눈에 담았다.

특히 코스 부분에서 1위를 한 사람은 정말 저러다 날 덮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흥분한 기색이다. 그들의 들뜬 모습에 웃으면서 아공간에서 상위급, 중상위급, 중위급, 중하위급, 하위급 위상석 다섯 개를 꺼내 날 코스프레 한 사람들에게 순위대로 하나씩 건네주었다.

“특히 조한우 씨는 제가 봐도 저보다 더 저 같아서 감탄이 다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 드리는 1위 축하 선물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그렇게 오글거리는 포즈를 한 적은 없는데요.”

“크헉. 죄, 죄송합니다앗!!!”

코스플레이어들은 설마 내게서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는지 내가 건네준 위상석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꼭 쥐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몽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리고 한쪽에서 사색이 된 채 벌벌 떠는 자그마한 소녀를 돌아봤다.

“지현 양?”

“네, 넷!”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 했네요. 저도 트라이스 노래 좋아해요.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주세요.”

“아, 네! 가, 감사합니다! 저도 회장님 팬이에요!”

그제야 안색이 펴지는 그녀에게는 그냥 내 목에 걸린 플레이어 명찰을 벗어 그녀의 목에 걸어주자 여자들의 비명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명찰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지 반응이 사뭇 격렬하다.

이제 진짜 떠나야 할 시간인 거 같다. 무릇 정체가 밝혀진 히어로는 말없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법이지.

…사실 AT 센터의 모든 사람이 무대 쪽에 몰리는 거 같아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호와 함께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가니 그렇지않아도 소란스러운 관객석에서 AT 센터가 떠나갈듯한 환호성과 함께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어휴, 이 몸의 인기란. 날 보고 이렇게 열광하는 사람들도 기특하니 가벼운 선물을 안겨줘야지. 가뿐히 마나 시브를 돌려 힐링 웨이브 1단계를 쏘아냈더니 관객들과 방문객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른다.

와아아아아아~!!!!

“꺄악!! 힐링 웨이브다! 힐링 웨이브야!”

“꺄아아~!! 회장님! 절 가져요 엉엉!”

정서하!! 정서하!! 정서하!!!

우아아아아아!!!

열광하며 내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놀라운지 눈을 동그랗게 뜬 미호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니 바람을 일으켜 내 몸을 띄운다.

와아아아아~~!!!

수만 명이 한마음으로 지르는 함성은 그야말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내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찍기 위해 수많은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우왓! 상위급 위상석이야!!”

“주, 중상위급!” “난 중위급이야!”

그리고 땡잡은 남자들의 환호성.

며칠 뒤, 인터넷에 몇 장의 사진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랑_블루_회장님의_통큰_자비.jpg]

[그랑_블루_회장님의_굴욕1.jpg]

[그랑_블루_회장님의_굴욕2.jpg]

[그랑_블루_회장님의_굴욕3.jpg]

[그랑_블루_회장님의…….]

바로 스태프한테 끌려가는 내 모습과 위원회실에서 혼나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물론 내가 힐링 웨이브를 쏘아내는 그 순간을 멋지게 잡은 사진이나 나한테서 받았다는 위상석의 인증샷도 있었지만, 현장 스태프에게 혼나는 사진이 더 크게 퍼진 건 왜일까.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연인들이 내 굴욕 사진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으며 놀려대길래 그자리에서 웃을 기운도 나지 않을 만큼 괴롭혀버렸다.

어째 이번 일을 두고 오랫동안 놀림을 받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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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500회 기념 용량 폭탄 외전!

다음편부터는 제대로 스토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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