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9화 (499/517)

00499  4대 종족  =========================================================================

잠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어마어마한 빛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은 산속 한적한 공터에 서 있었다.

- 어, 어떻게 된 거야?

눈이 멀 것 같던 빛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도 그렇고,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뀐 것에 놀란 미호와 히아리드, 알케마는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리 긴장 안 해도 될 거 같아.”

=아, 그럼 혹시 여기가….=

“그래. 여기가 메리아놀의 도시가 있는 근처 숲속이야. 아마 특정 위치에서 은패에 TP를 주입하면 메리아놀의 도시가 있는 근처로 공간 이동이 되는 방식인 거 같아.”

공간 지각 끄트머리에 보이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느끼며 말해주니 내 이야기에 놀란 미호와 알케마는 숲속 공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풍경이 바뀌자 공간 지각이 주변의 변화를 알려주기 시작한다. 원리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TP가 느껴지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게 지상에서부터 2km 정도 높이까지 반구형으로 지상을 뒤덮고 있었다.

나무들도 높고 얇게 자란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낮고 넓게 퍼진 활엽수림이 가득한 지역이다.

- 주위 온도도 좀 더 오른 거 같아.

기온도 확실히 높아졌다. 대체 어디로 이동한 걸까?

지금 서 있는 대충 지름 30m 정도 되는 공터도 무언가가 많이 오가면서 땅이 밟히고 다져져 풀이 자라지 못하게 변한 인위적인 공터다.

그걸 증명하듯이 공터의 한 곳에는 폭 4m 정도의 길이 나 있었는데, 그 길은 숲속으로 이어져 내 공간 지각에 느껴지는 성벽까지 연결되어있었다.

성벽城壁은 높이 30m의 석재로 이루어진 방벽防壁이었는데, 성벽은 동쪽으로 3km 정도 거리에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 거대한 도시가 감지된다.

“그리고 성벽에는 출입구가 있고, 거기에 프라우드 족하고 루크랑 족이 경비를 서고 있어.”

내 설명을 들은 미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내 소매를 살짝 잡으면서 말했다.

- 주인님. 가기 전에 나랑 히아리드가 하늘에서 정찰하고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가면…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이야. 미호가 진화하면서 생각이 되게 깊어졌는걸?”

- 에헤헤… 아, 아무튼! 먼저 살펴보는 게 좋겠지?

“그건 아니야.”

내 칭찬에 미호는 헤죽 웃으면서 좋아하다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치면서 막 하늘로 날아오르려다 내 말에 멈칫하고 돌아본다.

조금 당황한 미호의 눈앞에 호우반에게서 받은 은패를 들어 보이니 잠시 은패를 빤히 바라보던 미호는 무안한 듯이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 그, 그렇구나. 우린 손님인 거지?

“그래.”

우리가 메리아놀을 정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괜히 정찰하다가 들키면 곤란하기도 하고 능력 있는 메리아놀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순례 행렬, 그중에서도 최고만 뽑는다는 순례 행렬의 대장한테 받은 은패를 가지고 있으니 신분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

나와 미호의 대화를 옆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히아리드와 알케마에게 당부하듯이 입을 열었다.

“메리아놀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할게. 내가 메리아놀을 찾아온 이유는 볼굴, 푸른 피부의 악마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야. 그러니 너희들도 될 수 있으면 그 사항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도록 해. 그리고 메리아놀의 도시 안에서는 절대 혼자서 다니지 말고 꼭 둘씩 셋씩 붙어 다니고. 특히 히아리드는 더욱 조심하도록 해.”

- 주인님 말대로 할게.

=알겠습니다!=

=네.=

그리고 전투를 하느라 잠시 받아놨던 비상용 가방을 꺼내서 셋에게 나누어주고 숲속 한복판에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기대됩니다. 그 '메리아놀'의 도시라니.=

작은 배낭을 등에 맨 알케마는 뒤따라오며 사뭇 기대된다는 얼굴로 얌전히 걷질 못한다. 그에 비하면 히아리드는 특출난 감정의 변화 없이 조용히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공간 지각으로 주변 상황을 자세히 살피며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숲속 오솔길을 걷고 있으니 찌륵찌륵거리는 벌레 울음 사이로 미호와 알케마가 속닥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온다.

- 알케마. 사고 치면 안 돼.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 알케마는 사비 동족이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꼬여내면 아무 경계심 없이 따라갈 거 같단 말이야.

그러자 알케마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얼굴로 미호를 보며 말했다.

=동족이잖아. 그들이 할 이야기가 있다면 당연히 들어주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줘야지!=

- …그러니까 그러면 안된다는 거야.

=어째서?!=

어제까지만 해도 둘이서 대화를 나누면 꺅꺅거리면서 떠들곤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변해서 미호는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알케마 혼자 꺅꺅거리니까 뭔가 좀 어색하다.

- 자기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살면 가장 사기 치기 쉬운 상대가 동족이래. 동족한테 사기당하는 건수가 굉장히 많단 말이야.

=그, 그런….=

…..저거, 얼마 전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가 같은 한국 사람한테 사기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걸 주제로 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내용인 거 같은데.

- 그리고 알케마는 주인님한테 몸이랑 마음을 바쳤잖아. 모든 일에는 주인님을 우선해야지. 내 말이 틀려?

=맞…아. 응.=

내용이야 어쨌든 미호와 알케마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조금 놀랐다.

미호의 지능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오른 거 같은데? 알케마도 미호가 이렇게 조리 있게 지적을 해올 줄 몰랐는지 눈이 동그래져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히아리드가 조금 빠르게 걸어 나와 보폭을 맞추는 걸 보고 말했다.

“미호가 정말 많이 변했네.”

=이제 점점 루크랑의 호족다운 면모가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흠… 호족들은 성격이 어떤데?”

=제가 알기로는 자신의 강함을 믿어서인지 느긋하면서도 동료를 이끄는 리더적인 면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 같은 치기 어린 면도 없지 않다고 하지요.=

“리더라… 잘 가르치면 그랑 블루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겠네.”

아까부터 빛이 점점 강해지는 거 같은 은패를 눈앞에 들어보며 말했다.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역시 은패의 빛이 메리아놀의 도시를 가리키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가 하는 행동을 빤히 지켜보던 히아리드가 질문을 꺼낸다.

=서하 님. 만약 이곳에서 볼굴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루크랑을 찾아가 봐야지.”

루크랑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뒤에서 - 와! 라수비탄에 가는 거구나! 하고 미호가 좋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리아놀로 이동하는 수단을 겪어보기 전에는 공간 도약을 써서 며칠이 걸리든 전 지구를 샅샅이 훑으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찾는 건 싫었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해결하다 보니 내릴 역이 없는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상황이 끊임없이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메리아놀로 들어오는 경험을 한 뒤로는 공간 도약으로 수색하는 방식에 조금 불안감이 들었다. 볼굴의 검은 성도 이런 방식으로 숨겨져 있으면 절대 못 찾을 테니까.

=루크랑 종족에게서도 정보를 얻지 못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뭔데. 왜 그런 걸 물어 봐?”

히아리드의 질문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걷다 말고 히아리드를 보면서 물었다.

=이곳에서도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하늘 섬을 다시 찾아가는 것을 권하고 싶어서입니다.=

같이 걸음을 멈춘 히아리드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그 모습에서 나쁜 의도는 안보였기에 의아한 기분에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고 물었다.

“어째서? 너희 종족의 족장에게 물어보라고?”

=저희 종족의 특성상 그런 평화로운 방법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때문에 하늘 섬에 도착한다면 제가 직접 종족의 장이 거주하는 곳을 찾아가 위치를 알아볼 생각입니다. 메리아놀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시 루크랑의 도시를 향해 떠나는 것보다 이쪽이 정보를 입수하기에 확률이 높은 방법일 테니까요.=

음…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어디 있는지 모를 하늘 섬을 찾아가는 게 문제가 되겠지만 그건 은색 소라고둥을 써서 알붐 케투스를 부르면 해결 될 테고.

뒤에서 - 잉. 그럼 라수비탄에는 안 가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리는 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히아리드에게 말했다.

“알았어. 메리아놀 다음 목적지는 하늘 섬으로 하자.”

=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살짝 미소 짓는 히아리드와 함께 걸음을 옮기니 미호가 내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칭얼거렸다. 루크랑의 도시에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가 사라지니 실망해서인 거 같았다.

진화 직후에는 예전의 어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역시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미호는 미호구나하고 생각했다.

찡찡거리는 녀석을 달래주면서 천천히 메리아놀의 위병소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숲은 성벽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끝나있었다. 성벽이 있다는 말은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나?

성벽의 형태는 현실에 흔히 만리장성으로 알려진 거대한 성곽처럼 생겼는데, 특이한 건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이 아니라 돌을 통짜로 깎아서 만들어낸 모양이다.

대지 속성 능력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건가? 성벽은 일정 간격으로 벽탑이 세워져 있고 벽탑의 옥상에는 거대한 화로가 설치되어있어서 샛노란 불길을 피워올려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성벽의 존재는 인간에게는 위압감이 들게 하는 과시 효과를 노리면서 방어에 이점을 두기 위해 짓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인데, 이형종을 상대로 저런 30m의 성벽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한밤중이라 그런지 숲속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우리가 숲의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니 우리가 가는 방향에 위치한 성문 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난다.

“……?”

그 소란이 조금 이상한 게, 외적이 나타났을 때의 긴장감이 맴도는 소란이라거나 예상 밖의 상황에 일어나는 당혹감이 묻어나는 소란이 아니라 뭔가… 올게 왔다는 느낌의 소란이랄까?

성문 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세 녀석은 거대한 성벽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나와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그야 현실에는 저런 성벽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을 만큼 고층 건물이 즐비하니까 저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나는 본격적인 성벽은 카멜롯에서 본 이후로 두 번째니까 신기한거고.

아무튼 공간 지각으로 성벽 내부를 급하게 뛰어다니는 여러 종족을 보며 성문에 다다랐다.

성문은 깨끗한 물이 가득 차있는 깊이 20m 폭 8m의 거대한 해자 너머에 굳건히 닫혀있었는데, 저길 어떻게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성벽 위 망루에 삐죽하니 긴 귀를 가진 미남 미녀의 머리가 솟아난다.

“저기 성벽 위에 있는 종족, 플뢰 족 맞지?”

알케마를 돌아보며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알케마의 말을 들으면서 성벽에 서 있는 두 남녀, 플뢰 족은 역시나 엘프로 보인다. 일본 엘프가 아니라 서양 엘프.

그렇다고 막 광대뼈가 솟아 나와 있고 눈이 쭉 찢어진 날카로운 그런 얼굴이 아니라 뭐랄까, 굉장히 균형 잡힌 외모와 몸매라서 딱 보는 순간 "우와 예쁘다."라는 생각이 떠오를법한 얼굴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진 수백 장을 겹쳤을 때 드러나는 얼굴이 굉장히 호감 가는 외모의 미남 미녀들과 같은 이유일까.

귀도 길어지다가 만 어중간한 게 아니라 확실히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올라와 있어 하늘거리는 가볍고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보다 키가 작아 안 보이는 다수의 프라우드 족과 각종 종족도 있었지만 내 신경은 나와 눈이 마주친 검푸른 머리카락의 여자 엘프… 여자 플뢰 족에게 향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온화한 얼굴의 여자 엘프는, 아니 아니! 여자 플뢰는 내 인사를 받고서 조금 곤혹스러운 얼굴로 옆에 선 남자 플뢰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자 플뢰가 뭐라 뭐라 여자 플뢰에게 지시를 내리자 여자 플뢰는 성벽을 내려가서 도시 쪽으로 바람처럼 뛰어간다.

조금 무거워 보이는 하얀 가죽 갑옷 풀세트를 입었는데도 그 빠르기가 어지간한 고성능 스포츠카 못지않다.

여자 플뢰를 보내버린 남자 플뢰는 성벽 난간에 다가서며 소리쳤다.

=거기 여행자는 자신을 증명할 표식을 가지고 있는가!=

다행스럽게 목소리에 적의나 경계심은 안 느껴진다. 나는 숲을 나오며 호주머니에 넣어둔 호우반의 은패를 꺼내 보이며 소리쳤다.

“서쪽 벨티칼을 향하는 순례자인 호우반 일행을 구해주면서 받은 은패에요! 이게 증명될까요?!”

=호우반 웨이드의 은패?! 잠시 뒷면을 보여주겠나!=

“뒷면?”

은패를 보니 여자아이의 얼굴이 남자 플뢰를 향하고 있는걸 확인하고 글이 적힌 부분을 들어 보였다.

=……확인했다! 잠시 기다려라!=

남자 플뢰도 성벽에 난 통로를 통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은패를 내려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니 히아리드가 못마땅한 얼굴로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그래? 그렇게 찡그리다가 고운 이마에 주름 생긴다.”

내 말에 슬쩍 인상을 풀고 이마를 살짝 어루만진 히아리드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남자 플뢰를 향하는 적의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서하 님이 존대를 해드리는데 저런 건방진 말투라니, 마음에 안 듭니다.=

- 맞아. 상호 초면에는 존칭이 예의랬는데.

이제 보니 미호도 조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저 플뢰가 높은 신분일 수도 있잖아.”

그러지 말라고 두 녀석을 달래주고 있으니 육중한 성벽이 쿵! 하는 소리를 내더니 끼리리릭하는 쇠사슬이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겨우 은패만 보고 문을 열어주는 건가? 그것도 한밤중에 찾아온 4명을 위해서? 뭔가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대응이지만 나쁜 의도는 없어 보이니 가만히 지켜보았다.

쿠우우웅.

잠시 후 두께만 5m가 넘고 길이는 10m가 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질로 이루어진 거무튀튀한 성문이 해자를 가로지르며 놓였고 그 위를 아까 보았던 남자 플뢰가 다수의 이종족들과 함께 은색 장발을 휘날리며 걸어온다.

남자 플뢰는 뭔가 되게 멋있어 보이는 녹황색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허리춤에는 고풍스러운 힐트가 달린 롱소드를 차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높은 직책을 가진 존재로 보인다. 위상력은 417만의 최고위급 신체 강화 타입.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 플뢰는 은색 눈동자를 살짝 빛내며 우리를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다. 여행자여. 기己의 이름은 와이스 휜델. 페시지의 방위 책임….=

=건방집니다. 와이스 휜델. 그대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슴없이 평대할 지위가 낮은 분이 아니니 예의를 갖추시지요.=

…어! 뭐,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히아리드가 와이스라고 자기소개를 한 플뢰 남자의 말을 끊으며 가볍지 않은 기세를 풍겼다.

덩달아 내 옆에 서 있던 미호도 숨기지 않고 기세를 뿌리며 와이스를 압박해나간다.

아니,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했잖아!

내가 조금 당황스러워서 히아리드를 돌아보니 와이스 휜델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플뢰 족 남자는 잠시 히아리드와 미호의 기세를 받다가 조용히 말했다.

=……플라비우스의 여섯 날개와 호족의 여덟 꼬리이신가. 기의 언행에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와이스는 미호와 히아리드의 말 없는 기세에 마치 중세 기사처럼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캉 소리 나게 때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하지만 기己도 곧 여余가 될 몸. 누구에게도 함부로 존대를 취할 수 없음을 이해해다오.=

“이해할게요. 제 이름은 서하에요.”

히아리드나 미호가 또 나설까 봐 재빨리 대답했다. 내가 기분 나빠하기도 전에 히아리드가 나서서 쏘아준 덕에 뭐라 하기도 그렇다. 그러니 어쩌겠어,  이해해준다고 해야지.

와이스는 머리를 살짝 숙이느라 흘러내린 긴 은발을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여섯 날개와 여덟 꼬리, 거기에… 특이한 사비의 여성이 모시는 처음 보는 종족.=

혼자 말하고 혼자 뭔가를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와이스는 호감 가는 얼굴로 눈빛을 강하게 빛내며 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희珤姫께서 그대를 기다리시니 날 따라오도록.=

============================ 작품 후기 ============================

499화... 완결까지 메모라이즈만큼 길지는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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