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8화 (498/517)

00498  4대 종족  =========================================================================

얼마 뒤 미호는 하위급 두더지 이형종을 양손에 한 마리씩 두 마리를 잡아 왔고 히아리드는 나에게 결코 잊지 못할 애증…은 아니고 짜증 나는 존재, 긴 주둥이 마른 늑대를 잡아 왔다.

저놈을 보니 작년에 있었던 필사의 도주와 폭포 번지 점프가 다시 떠올라서 눈썹이 찡그려진다.

애초에 모든 일의 발단이 저놈이라… 그때 쫓겨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많은 게 바뀌지 않았을까?

“미호는 왜 두 마리나 잡아 왔어?”

- 둘이 사이좋게 있길래 둘 다 데려왔어. 헤헤.

…그 말은 내가 사이좋게 죽이라는 건가…?

내 물음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미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손바닥만 한 두더지를 건네받아 푸른색 공간의 벽을 밧줄 형태로 만들어서 꽁꽁 묶어놨다.

매혹이 걸린 것인지 버둥거리지도 않아서 묶기는 쉬웠는데 문제는 히아리드가 내미는 긴 주둥이 마른 늑대다.

카르르릉! 크르릉! 캬아아아!

히아리드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서 늘어져 있던 놈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몸부림친다.

살려달라고 낑낑거려도 살려줄까 말까 하는 판국에 이빨을 드러내며 짖다니!!

=아.=

망설이지 않고 호박색 공간의 벽을 쳐서 단숨에 죽여버리자 히아리드는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그 얼굴을 부루퉁한 얼굴로 보면서 물었다.

“일부러 이걸 잡아 온 건 아니지?”

내 말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히아리드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미호가 잡아 온 두 마리의 하위 이형종 두더지를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TP를 그냥 주입하는 거랑, 몸 밖에서 응축 시킨 다음에 먹이는 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그냥 주입하는 건 평범하게 진화를 이끌어내는데 TP를 몸 밖에서 결정체처럼 만들어서 먹이면 그냥 녹아내려 죽어버리고.

잠깐 고민해봤지만 이건 과학의 영역에 다다른 문제인 거 같아 그럴싸한 가설이 생각 안난다. 아무튼 두 마리 중 손에 잡히는 한 마리를 잡아들고 버둥거리는 놈의 주둥이를 잡고 TP를 다이렉트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두더지는 미국에서 진화시켰던 사막거북이나 반달곰처럼 극적인 크기 변화는 없었다. 미호처럼 짐승 형에서 인간형으로 변신도 하지 않았고 덩치도 10m를 넘지 못했으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지능은 확실히 성장한듯하지만, 그것도 하위급에서 단시간에 최고위로 진화해서인지 그 어떤 반응도 못 하다가 나에게 정신 조작을 당해버렸다.

- 앗, 주인님이 정신 조작 거니까 내 매혹이 깨졌어.

“그래? 매혹보다 정신 조작이 상위 속성인가보다.”

최고위 아종, 말 그대로 가진 스펙만은 초위급에 맞먹지만, 경험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은 극복하지 못한 두더지 이형종은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단단히 포박당한 상태에서도 내게 친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두더지 이형종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호박색 공간의 벽을 100번 가까이 중첩해 놈의 뇌와 심장을 단숨에 분해해버렸다.

고통을 느낀다는 중추 신경을 가장 신경 써서 빠르게 지워버렸으니 고통 없이 죽었을 거라 생각한다.

머릿속에 거대 두더지의 호감 어린 눈빛이 아른거렸지만 애써 무시하고 최고위 아종으로 진화한 거대 두더지의 몸에서 위상력이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이게 뭐야.”

- 아. 주인님 TP 느낌이야.

미호는 위상력을 못 볼 텐데도 느낌만으로 죽은 거대 두더지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것의 정체를 눈치챈 거 같다.

미호의 말대로 죽은 두더지는 위상력이 아닌 기화한 내 TP를 사방으로 뿌렸다. 흡수를 해봤자 내 TP와 똑같으니 그냥 소비된 TP만 회복될 뿐이고 위상력 자체는 전혀 상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TP를 흡수하면 위상력의 성장 효과를 받는 미호, 히아리드와 알케마의 위상력이 늘어났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 와아~.

내 TP의 안개가 주는 느낌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거대 두더지의 사체 주변을 돌아다니는 미호와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약한 미소를 띤 히아리드나 알케마는 TP를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편법은 안 되는 건가?

중간부터 흡수는 못할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내 TP로 진화한 녀석의 몸속의 위상력 상태가 확 변해버리는 걸 확인한 탓이다.

고위급에서 고위 이형종을 죽이고 위상력을 흡수해 진화한 미호 같은 경우라면 확률은 반반 정도 될 거 같지만….

여기서 더는 실험하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포기해버렸다.

먹기 위해서 키운다니, 미호가 고위에서 최고위로 진화하는데 매일같이 고위 이형종과 싸우면서 위상력을 흡수했는데도 5일이나 걸렸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한 마리를 먹기 위해서 5일간 같이 행동하면서 최고위로 진화시켜준 뒤에 죽인다고?

지금도 죽은 두더지의 눈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는데 이런 짓을 반복하면 내 얼마 남지 않은 인성이 빠르게 마모될 거 같아서 싫다.

내 인간성이 바닥났다간 뭔가 큰일이 날 거 같은 기분은 예전부터 들고 있어서 이렇게 경계심이 드는 건 자제해야지.

TP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 마나 시브로 몸 안의 위상력을 강하게 회전시키니 안개처럼 퍼져서 사라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던 TP 안개가 급격하게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쩐지 TP의 안개는 평범한 위상력처럼 공기 중에 흩어져서 사라질 거 같지도 않다.

- 기분 좋았는데….

거대 두더지가 뿌린 TP 안개를 모두 흡수해버리니 미호는 아쉬운 기색으로 날 보며 중얼거렸다.

=서하 님. 위상력이 오르셨습니까?=

“아니. 그냥 내 TP랑 똑같아. 이렇게… 강제로 진화시켜서 죽이는 방식은 안될 거 같아.”

=그렇습니까. 아쉬운 일이군요.=

“어쩔 수 없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히아리드는 말로는 아쉽다고 하는데 표정은 느긋하기 짝이 없어서 정말 아쉬운 것인지 말로만 그러는 건지 아리송하다.

이제 더이상 늑장 부리면 안될 거 같아 메리아놀의 도시를 향해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여태까지는 미호와 히아리드 그리고 알케마의 실전 경험과 성장 때문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셋 다 최고위 이형종이고 실전도 어느 정도 겪었기 때문에 은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위상석을 가진 이형종은 공간 지각에 걸리는 족족 공간의 벽으로 모두 죽였다.

처음에 고위 이형종을 죽이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 걸 본 알케마는 놀라워하면서도 당연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이 무너지는 건 금방이었다.

이형종을 발견하면 공간의 벽을 쳐서 위상석만 남기고 모두 지운다. 그렇게 위상석만 땅에 떨어지면 미호가 바람을 절묘하게 컨트롤해서 가져오는 식으로 1마리를 처리하고 위상석을 회수하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 기계적인 모습을 보여줬더니 알케마는 날 보면서 정말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워하는 거 같았다.

“사람이 아니면?”

=네? 어, 음…. 이, 인간 아종이시라던가?=

자신 없다는 얼굴로 한 대답에 내심 찔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일부러 화난 척 눈썹을 꺾으며 알케마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자꾸 헛소리하면 널 너희 종족들이 타고 다니던 도마뱀처럼 타고 다녀버린다. 마침 머리에 손잡이도 달려있으니 딱 맞네.”

=윽. 죄송합니다!=

이런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점심과 저녁 식사도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우면서 나아간 결과, 위상 세계에 입장하고 5일째 되는 날 밤에 백두산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 커! 넓어!

미호의 감탄처럼 밤하늘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반달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산인 백두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선 대신 맨땅이 곳곳에 드러나 있던 벨티칼 산에 비해 15km에 걸쳐 지평선에 늘어선 백두산은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를 몸에 두르고 하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채 녹지 않은 백두산의 만년설을 제외하면 백두산의 등허리부터 드넓은 평야까지 설익은 감귤처럼 노란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수해樹海가 펼쳐져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고, 산자락에는 흉터 자국처럼 울퉁불퉁한 지형 사이로 만년설이 녹아 강이 되어 흘렀던 흔적인지 폭이 넓은 거대한 계곡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계곡의 밑바닥을 비롯해 좌우의 절벽과 그 위 언덕에서 이어진 산까지 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높고 좁게 자란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있어 푸른 달빛에 물드는 그 풍경은 실체가 없는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산입니다.=

히아리드의 중얼거림에 넋을 잃고 백두산을 바라보던 알케마도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벨티칼 산이 죽은 산으로 느껴질 만큼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무지막지한 양의 진원과 전신으로 느껴지는 생명력은… 정말 영산靈山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네요.=

둘의 이야기를 듣고 미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미호야. 은패의 빛은 어때?”

- …….

“…미호야?”

불러도 대답 없는 미호를 돌아보니 앙증맞은 입이 헤 벌어지고 달빛도 이기지 못할 선명한 은빛 눈동자가 백두산을 정신없이 바라보는 게 눈에 들어온다.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걸 보고 있으니 감수성이 폭발한 건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든다. 슬쩍 미호의 옆으로 다가가서 뺨을 콕 찌르니 움찔하면서 놀란 얼굴로 날 돌아보길래 다시 물었다.

“미호야. 은패는?”

- 아, 응. 백두산이 가까워질수록 빛이 강해지고 있었는데, 여기 도착한 뒤로는 더이상 광량이 늘어나지 않아.

은패를 들어 보이며 말을 하는 미호는 나 때문에 많이 놀랐는지 여덟 개로 늘어난 꼬리가 정신없이 너울거린다. 일곱 개의 꼬리도 조금 많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지금은 꼬리에 가려져서 등이나 엉덩이가 잘 안 보일 지경이다.

히아리드는 미호의 말을 듣고 본래의 목적을 상기하고 눈을 지긋히 뜬 채 백두산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럼…. 여기에 메리아놀의 도시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하지만 이 높이에서 살펴보는데도 20만이나 되는 숫자가 살 법한 도시는 안보입니다.=

=땅속에 있는 건 아닐까요?=

=플뢰같은 경우 숲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할 만큼 숲을 사랑하는 종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땅속에서 살아간다고는 믿기 힘들지 않나요.=

=하지만 프라우드 족은 땅속을 사랑하니까…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히아리드와 알케마의 대화에 미호는 꼬리 하나를 잡고 손으로 털을 고르며 두 녀석에게 말했다.

- 프라우드 족의 호우반이 말했잖아.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그 말은 비술로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 아냐?

한층 똑똑해진 미호의 발언에 히아리드와 알케마가 놀란 눈으로 미호를 바라본다.

“내 생각도 미호의 의견과 마찬가지야. 그게 아니라면 호우반이 은패를 줬을 리가 없어.”

비술이라면 이해가 가는 게, 메리아놀에는 보석 공주라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를 순례 행렬의 대장인 호우반이 극도로 공경하는 모습을 봤을 때 메리아놀의 지도자격이라고 봐야 할 거다.

그 말은 보석 공주 또한 능력이 뛰어난 이형종일 텐데 그런 존재가 자신만 알고 있는 비술로 일종의 환영? 착시 같은 보호막을 펼쳐놨다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설명이 될 거다.

뮈르딘의 오두막과 옆에 있던 스톤헨지를 가리고 있던 막 같은걸 떠올리면서 계속 말했다.

“고위급 하나와 상위급 아홉으로 이루어진 순례자들이 보호막을 펼쳐서 최고위급인 크라켄의 주둥이 속에서 버텼다고 했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는 모르지만, 낮은 등급이 높은 등급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배가 반파될 때까지 버텼던 걸 생각해보면 보호막과 관련된 수준이 굉장히 뛰어난 걸 추측할 수 있지.”

- 그럼 도시가 숨겨져 있고 은패가 도시가 있는 곳을 안내해준다면 교차법으로 은패의 빛이 가리키는 정확한 지점을 찾으면 되겠네?

“오, 미호 교차법도 알아?”

- 나도 프랑한테서 많이 배웠단 말이야. 이 정도는 알아. 흐흥.

내 칭찬에 아는 게 당연하단 듯이 콧대를 세우면서 흥흥거리는 모습이 진짜 사춘기가 끝날 무렵의 새침떼기 소녀 같아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렇게 미호가 제안한 교차법 방식으로 백두산을 중심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며 은패의 빛이 점점 강해지고 약해지는 지점을 찾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지점과 반대되는 곳의 꼭짓점을 연결해 은패가 가리키는 가장 중심부를 찾았다.

한밤중이지만 오히려 어두워서 은패가 뿜어내는 빛의 밝기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낮이었으면 오히려 더 찾기 힘들었겠지.

그렇게 30분가량을 투자해 빛이 가장 강해지는 지점인 백두산 천지를 기준으로 북동쪽 20km 거리에 있는 숲의 위에 섰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봐도, 숲을 내려봐도,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봐도 그 어떤 이상도 느껴지지 않고 산 위에서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숲만 펼쳐져 있었다.

세 녀석도 주위를 살펴보지만 정말 아무런 조짐도 없는 게, 호우반한테 속은 건 아닐까 하고 살짝 의심이 들 무렵 미호가 환히 빛나는 은패를 두 손으로 꼭 쥐면서 중얼거렸다.

- 바로 여기인데….

하지만 발밑은 흔한 숲속 공터도 아니고 나뭇잎이 땅에 쌓이고 쌓여서 부엽토가 되어가는 도중의 숲속 한복판이다. 이런 곳에 뭐가 있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어. 마을이나 도시가 있었으면 공간 지각으로 알아챘을 텐데 아무런 이상도 없는 평범한 숲속 한복판이야.”

- 그럼 우리가 속은 거야?

미호는 호우반을 의심하는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은패를 내려다보자 알케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갈둠도 그렇고 순례자 일행은 모두 거짓이 없는 진실한 모습이었어. 호우반의 이야기에도 거짓은 단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구.=

- 하지만 은패는 여길 가리키는데 메리아놀의 도시는 보이지도 않잖아.

미호는 그 정도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지 알케마를 돌아보며 물으니 알케마도 당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나도 이상해.=

둘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말없이 하늘에 떠 있던 히아리드가 천천히 아래로 하강해간다.

“히아리드?”

=의심 가는 게 있어서… 잠시 내려가 보겠습니다.=

의심 가는 거? 뭐가 의심스러운가 싶어 공간 지각으로 지상을 한 번 더 훑어봤지만, 의심이 갈 만큼 이상한 건 안 보이는데?

일단 우리도 히아리드의 뒤를 따라 지상에 내려섰다. 먼저 땅에 내려선 히아리드는 빽빽한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위에서 숲을 내려다봤을 땐 그저 몽환적이고 아름답기만 했는데, 숲속 한복판에 내려서니 밤안개가 나무 사이에 끼어있는 데다 무성한 나뭇잎이 달빛을 가려서 음침한 느낌까지 들기 시작한다.

거기다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도 들려오니까 팔뚝에 소름이 돋는듯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뭐가 의심 간다는 거야?”

조금 찜찜한 기분에 황급히 녀석의 뒤를 쫓아가서 물으니 히아리드는 날개에 걸린 나뭇가지를 손으로 걷어내며 대답했다.

=이건 제 예상일 뿐이지만… 메리아놀은 대지의 주인을 따르는 종족입니다. 또한, 호우반도 서하 님의 발이 닿는 대지에 그분의 가호가 있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발길… 대지?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샛노란 나뭇잎이 히아리드의 금발에 얽혀있는 걸 보고 떼어내 주며 방금 든 생각을 말했다.

“혹시 땅을 걸어서 움직였어야 했다고 말하는 거야?”

=네.=

어쩐지 히아리드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뒤따라온 미호와 알케마가 은패를 보고 놀란 목소리를 낸다.

- 어! 빛이 아까보다 좀 더 강해진 거 같아!

=정말 땅을 걸어서 이동해야 한 거였나?=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확실히 미호의 손에 들린 은패가 아까보다 더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뭔가 단서를 찾은 거 같아서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히아리드의 금빛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미호에게서 은패를 받아들었을 때였다.

“어엇?”

- 앗, 눈부셔!

은패가 내 손으로 넘어오는 순간 미호가 쥐고 있을 때보다 족히 스무 배는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위상 세계에서 현실로 나갈 때보다 더한 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이 멀 정도다!

나는 물론이고 내 바로 앞에 있던 미호와 알케마와 히아리드도 팔을 들어서 눈을 가리는데, 그 순간 공간 지각으로 느껴지는 주변 풍경이 일렁이며 변해간다.

이건…. 공간 이동?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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