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6화 (496/517)

00496  4대 종족  =========================================================================

미호의 여덟 번째 꼬리가 자라나는 것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해서 꼬리가 완전히 자라난 건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서였다.

절반까지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이 3분이었던걸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길었다. 덕분에 미호는 두 가지 감각이 주는 피로감에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꼬리가 온전하게 만들어지고 더이상의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녀석의 허리를 고정하고 있던 푸른색 공간의 벽을 풀어주니 미호는 그대로 풀썩 널브러져서는 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할딱이기만 한다.

거대한 여우가 한여름에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학학거리는 모습이 좀 귀엽긴 하다. 그러고 보니 여우가 개 과에 속하기도 하고 미호도 아직 어리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꼬리를 만들고 남은 위상력도 모두 신체에 흡수돼서 깔끔하게 최고위 아종으로 진화한 미호는, 겉만 봐서는 약간 더 고급스러워진 모피와 8개가 된 꼬리를 제외하면 진화 전과 차이점이 없었다.

- 끄으응. 아우우….

한동안 기절한 것처럼 늘어져 있던 미호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잘근잘근 씹혀서 상처가 나 있는 앞발을 할짝할짝 핥으며 울상을 지었다.

- 주인님. 다리 아파.

응? 목소리도 조금 변했네. 어린아이 같던 목소리가 훨씬 성숙해져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변했다. 예를 들면 중3에서 고3으로 변한 수준?

아무튼, 울상을 짓고 상처를 핥는 미호에게 다가가 앞발을 살펴봤다.

“어디 보자.”

가까이서 보니 상처가 꽤 심각하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물었는지 하얀 모피는 피에 흠뻑 젖어 뭉쳐있는 데다 살점이 너덜너덜해져 있고 그 사이로 새하얀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에휴.”

자해를 막은 게 정답이었군. 그대로 놔뒀으면 앞발이 떨어져 나갔을 거야.

한숨을 쉬면서 손에 힐링 터치를 일으켜 상처가 난 부분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니 상처가 아물며 그 자리를 보기 좋은 하얀 털이 자리 잡아간다.

- 에헤헤.

그게 기분 좋은지 미호는 힐링 터치를 쓰고 있는 내 팔에 콧등을 비비며 애교를 피운다.

“이제 안 아프지?”

- 응. 주인님 힐이 최고야.

…으음. 목소리가 변했더니 애교가 어린아이의 재롱 같은 수준에서 성숙한 소녀의 설렘이 가득한 애교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기운차게 소리치던 목소리도 성숙해져서인지 부드럽고 상냥하게 느껴지는데… 착각일까?

완벽하게 아문 앞발을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미호는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여덟 개로 늘어난 꼬리를 살랑거리며 안절부절못한다.

이제 팔미호八尾狐인가? 꼬리가 하나만 더 늘어나면 진짜 구미호가 되겠네. 여우 형태의 미호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니 히아리드가 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건다.

=서하 님. 잠시 이쪽으로.=

“어? 왜?”

뭐야? 왜 이래? 히아리드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갑자기 팔을 잡더니 아직 멀쩡한 흙 탑 근처로 끌고 간다.

=미호가 입을 옷을 꺼내 주십시오. 그리고 잠시 뒤돌아서서 계시지요.=

“……어?”

히아리드의 행동에 느껴지는 게 있어서 미호를 돌아보니 날 훔쳐보던 미호가 잽싸게 고개를 샥 돌린다. 그러면서도 꼬리는 쉬지 않고 살랑거리는데, 설마 부끄럼타는 거야?

이제 와서?

아니, 아니다. 미성숙 아동이 부끄럼이나 창피함을 어떻게 알겠어. 최고위로 진화한 덕분에 정신도 성숙해져서 기존에는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던 게 실제 감정으로….

=서하 님.=

“어? 어. 여기.”

조용히 재촉하는 히아리드한테 아공간에서 미호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꺼내주니 =꼭 뒤돌아서 계십시오.= 하고 다시 한 번 당부한 뒤 미호에게 걸어갔다.

……뭔가 머쓱한 기분에 머릴 긁적이면서 뒤돌아서니 미호는 히아리드가 옷을 가져온 걸 보고 한층 거세게 꼬리를 흔든다. 그리고 내가 뒤돌아서 있는걸 보더니.

번쩍.

섬광 같은 빛을 내뿜으며 인간 형태로 변신했다. 물론 뒤돌아서 있다고 내 공간 지각이 어딜 가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인간으로 변신한 미호는 150cm의 키에서 155cm 정도로 자랐고 언제나 복잡한 머리 스타일로 묶고 다니던 치렁치렁한 긴 머리는 오히려 줄어서 엉덩이 부근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허리와 골반도 1차 성징이 끝난 꼬맹이의 그것에서 2차 성징이 끝난 소녀처럼 여인임을 주장하듯 굴곡이 확실히 생겨났고 가랑이 사이의 그것도 성인처럼 골짜기가 성숙해진 가운데 치골을 살짝 뒤덮는 하얀색 음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AAA 사이즈의 초평면 가슴에 변화가 생겨 무려! A 컵 사이즈로 업그레이드가 되어있었다!

아… 이제 미호도 더이상 꼬마가 아니구나.

호박 팬티를 입고 프랑의 빗질을 피해 거실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던 꼬맹이 미호가 떠올라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부끄럼 모르고 철없던 꼬맹이가 저렇게 창피함을 느낄 정도로 자라다니, 왠지 가슴이 감동으로 벅차오른다.

히아리드가 가져다준 옷을 히아리드의 커다란 날개 뒤에 숨어서 재빨리 입은 미호는 약간 작아진 옷 때문에 어색한지 몸을 더듬었지만 이내 꼬리를 살랑거리며 히아리드한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 어때? 이상하지 않아?

=옷이 조금 작아졌군요. 그래도 원래 넉넉하던 옷이라 잘 어울립니다.=

하늘색 물방울무늬 끈 나시에 하얀색 반바지를 입은 미호는… 뭐랄까, 하늘색 끈나시 덕분에 하얀색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가 더욱 강조되며 이제 막 피어오르는 풋풋한 소녀적인 느낌이 가득 묻어난다.

거기에 살짝 부푼 듯 만듯한 가슴까지, 이제 더이상 꼬마라고 못하겠구만.

뒤돌아선 채로 흐뭇하게 웃고 있으니 미호가 배시시 웃으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쑥쓰러운듯이 뒷짐을 지고 날 살짝 부른다.

- 주인님~. 이제 돌아봐도 돼.

미호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직접 두 눈으로 본 미호는 역시 어른이 되기 직전의 풋풋한 소녀다운 싱그러움이 가득 느껴진다.

“이야. 키가 좀 더 커졌는데? 이제 꼬맹이라고 못하겠는걸.”

- 에헤헤. 진짜? 나 조금 더 커졌어?

내 이야기에 활짝 웃으면서 수줍게 기뻐하던 미호는 이어진 말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래. 키도 5cm 정도 더 자랐고 미호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가슴도 나왔잖아. 비록 A컵이지만 가능성이라는 미래가 열린 거야.”

- …우우.

미호는 갑자기 두 손으로 가슴을 샥 거리더니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후다닥 뛰어서 히아리드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어? 내가 뭐 잘못 말했나?

히아리드는 날 보며 쓴웃음을 짓고 알케마는 갑자기 달라진 미호의 행동에 멀뚱히 바라보기만 한다.

이제는 출발할 때가 돼서 본격적으로 부끄러워하는 미호를 두고 죽어 널브러진 흑호의 위상석을 꺼내고 내장을 긁어낸 뒤 통째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렇지않아도 4층 거실에 호피 한 장을 깔고 싶었는데 잘됐군.

흑호의 등에 달린 까마귀 날개가 불타고 오그라들어서 볼품없긴 하지만 그냥 잘라버리면 되니까 상관없다.

내가 흑호를 처리할 동안 미호와 히아리드, 알케마는 서로 모여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로 히아리드와 알케마가 말을 하고 미호는 조용히 듣기만 해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독순술로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두 녀석은 새끼 때 글을 깨우치고 한글로 대화할 수 있는 미호와는 다르니까.

어쩄든 알케마와 미호의 반응으로 봐서는 미호가 변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자, 그럼 출발하기 전에 잠깐 미호의 능력을 확인해볼까?”

- 으응? 내 능력?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입을 여니 미호는 히아리드의 등 뒤로 숨었다가도 자신이 왜 숨는지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앞으로 나왔는데, 그래도 날 보더니 양 뺨이 발그레해지면서 머뭇거린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조금 젖살이 빠졌네. 그래도 아직 앳돼 보이지만 오히려 이쪽이 좋다.

“그래. 꼬리 하나가 늘었으니 능력도 하나 더 늘어났지?”

- 아, 응. 늘어났어.

“무슨 능력이야? 빛? 어둠? 번개?”

- 우웅. 공격용은 아닌 거 같아.

“그럼?”

공격계통이 아니라니, 그럼 서포트 계열? 궁금해하면서 미호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녀석은 내 시선에 우물쭈물하더니 부끄러워하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자, 잘 모르겠어. 써봐야 알 거 같아아.

아, 언제나 신나게 날뛰고 스스럼없이 품에 안겨들던 녀석이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부끄부끄하니까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무진장 사이좋게 지내던 여동생이 사정상 몇 년간 떨어져 살다가 다시 만났을 때 반가우면서도 쑥스럽고 또 기뻐하는 듯한 느낌이라 나까지 설렌다.

……괴롭혀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인다!

“그래?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는 모르겠고?”

평범하게 말하는 척하면서 긴장한 듯 뻣뻣하게 굳어있는 미호의 꼬리를 잡았다. 폭신폭신한 꼬리털이 손바닥에 착 감기는 순간 나머지 일곱 개의 꼬리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처럼 사정없이 나부낀다.

- 으. 그, 그게. 그게에….

나한테 꼬리가 잡힌 녀석은 흠칫 놀라면서 빨개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게 진짜 살인적으로 귀엽다!

머리 위에 나 있는 여우 귀도 진정을 못 하고 파닥파닥거리는게 총체적으로 "나 부끄러워하고 있어요."하고 강하게 주장하는 거 같아 웃음이 날 거 같다.

“흠. 그럼 이형종 한 마리를 잡아 와서 실험해보는 게 낫겠다. 알케마하고 히아리드는 가서 이형종 한 마리 잡아 와. 저쪽으로 300m 정도 가면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 나, 나도 갈래.

두 녀석이 내가 가리킨 곳으로 움직이니 미호도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가려고 몸을 돌리지만, 그렇게는 못 두지. 내가 왜 둘만 보내는데?

잡고 있던 미호의 꼬리를 조금 힘을 줘서 잡아당기니 - 히잉?! 하면서 뒤로 끌려온다.

“중위급 한 마리 잡아 오는데 셋이나 갈 필요는 없잖아?”

- 그, 그치만….

히아리드와 알케마가 쓰게 웃으며 이형종을 잡으러 가버리자 미호는 늑대를 앞에 둔 양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날 경계하기 시작한다.

육체가 성숙해지면서 정신도 자란 거 같지만 이렇게나 경계하다니, 미움이나 싫어하는 감정 같은 건 없는데 왜 이렇게 날 경계하는 거지?

내 손에 잡힌 꼬리도 살살 잡아당기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꼬리를 좀 더 잡아당기니 힘으로 버티면서 끌려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모습에서 살짝 상처를 받아서 슬프다는 표정을 꾸미면서 입을 열었다.

“미호야.”

- 으, 응.

“이제 내가 싫어졌어?”

- 어?

“진화하더니 날 좀 피하는 거 같아.”

-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짐짓 슬프다는 투로 말하니 미호는 화들짝 놀라면서 두 팔을 파닥거린다. 내 말을 힘껏 부정한 미호는 정말 부끄러워죽겠다는 듯이 꼬리로 얼굴을 가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부, 부끄럽단 말이야….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부끄러워하는 걸 보긴 했지만, 그 이유가 짐작 가지 않아서 물었더니, 미호는 아예 풍성한 꼬리털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들을 정도로 작게 입을 열었다.

- 그치만… 지금까지 주인님한테 한 행동이 부끄러운걸….

“…막 덤비듯이 안겨 오고 떼쓰고 매달리고 그랬던 거? 내 앞에서 알몸으로 날뛰거나….”

- 꺄아~! 꺅꺅! 꺄아아!

……정답인가보다. 내 이야기에 미호는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아버렸다. 아니, 그런다고 내가 말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냐?

아무튼, 초딩에서 고딩으로 좀 더 성숙해진 정신으로는 지금까지 자기가 했던 행동 때문에 부끄럽다는 게 그 이유인가보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녀석을 안아 올렸다. 그랬더니 흠칫 놀란 녀석은 꼬리로 얼굴을 가리면서 얼굴만은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는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대체 얼마나 부끄러우면 이렇게 부들거리면서 얼굴도 마주치지 못할까.

대충 바위 위에 걸터앉아 녀석을 내 허벅지 위에 똑바로 앉혔다.

“뭐, 그게 부끄러워서 그런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난 오히려 좋았는데? 귀여운 미호가 애교를 부릴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훈훈해졌는데.”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조용조용 말하니 미호의 떨림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괜찮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난 오히려 미호가 지금처럼 제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고 피해 다니니까 거기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거 같다고?”

- …진짜?

“진짜로. 저번에 펜트하우스에서 살 때라거나 프랑하고 화연이랑 같이 눈 천지인 위상 세계에 들어갔을 때도 말했었지? 우리는 가족이고 미호는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라고.”

물론 직접적으로 소중하다고 한 적은 없지만 비슷한 말이나 행동은 많이 했었으니까. 미호도 '그랬었나? 그랬었구나!' 하고 착각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처럼 완전 기억 능력에 버금갈만한 능력이 없는 이상 과거의 기억이라는 건 애매해서 이렇게 사실에 약간의 거짓만 섞는 걸로 사람은 기억에 혼동하기 마련이지. 후후후.

“그러니까 부끄러워하는 건 괜찮지만, 너무 날 피하면 난 슬퍼질 거야.”

- ……아, 알았어어. 안 피할게….

탐스러운 꼬리 끝으로 눈만 빼꼼 내밀어서 속삭이듯이 하는 말에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 미호 착하다.”

- 아우.

그래도 아직은 부끄러운지 내 무릎 위에 걸터앉아 있던 미호는 내가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자 작게 비명을 지르며 내 목을 꼬옥 끌어안아 왔다.

미호는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조금 말라보였는데 진화한 뒤로 은근히 엉덩이에 살집이 많고 탱탱해졌다.

여우의 대명사인 구미호가 되면 과연 어떻게 변하려나.

============================ 작품 후기 ============================

"으으."

"응? 왜 그러니, 시하야."

"모, 모르겠어요, 언니. 어째서인지 제 순번이 자꾸 밀려나는 기분이...."

시하의 센서는 세계를 뛰어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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