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5화 (495/517)

00495  4대 종족  =========================================================================

=히약! 서, 서하 님! 잘못했어요오!=

“누가 죽인대? 치료해주는 거야, 치료!”

=주, 죽을거같아히이익!=

내 손이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몸을 지나갈 때마다 서늘함이 느껴진다. 역시 겉만 봐서는 포유류지만 실체는 파충류인지 피부가 서늘하다. 여름에 껴안고 자면 시원해서 좋을 거 같다.

어쨌든 치료를 빙자한 괴롭힘에 눈물을 글썽이며 계속 버둥거리니 상당히 귀찮아져서 그냥 녀석의 손발을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묶어버리고 큰 대大자로 사지를 벌려놓은 뒤 천천히 어루만지며 치료를 진행해나갔다.

그러면서 시선은 미호와 흑호의 싸움에 고정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우르릉하고 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쿠그그그그극, 꾸꽝!! 우르르르르르……!

뇌성을 기다린 거마냥 낙뢰 한 줄기가 떨어졌지만 미호는 뇌성이 칠 때 20m 높이의 뾰족한 흙의 탑을 솟아나게 해 피뢰침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낙뢰를 무효화시켰다.

굵은 번개 줄기가 흙의 탑을 박살 내는 모습에 살짝 감탄했다. 미호가 저런 자연 원리까지 이용할 줄 알다니, 아까 물의 길을 만든 것도 번개의 원리와 작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지.

“프랑이 어지간히 혹독하게 수련시켰나 본데?”

내 말에 히아리드가 잠깐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혹독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거라 생각합니다.=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걸 듣고 과연, 그래서 미호가 프랑하고 대련하는 걸 경기를 일으킬 만큼 싫어했구나 하고 납득해버렸다.

크허어엉!!

피뢰침 원리를 이해 못 한 흑호는 한 번 더 낙뢰를 떨어트렸지만 이번에도 새로 생긴 흙의 탑에 낙뢰가 떨어지자 송곳 같은 이빨을 내보이며 무척이나 분노한 모습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떨어진 낙뢰에 알케마는 몸에서 올라오는 고통도 잊고 미호의 활약을 진지하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꽈르릉! 꽈과광! 꽈과과광!!

자신이 원한 곳에 낙뢰가 떨어지지 않으니 흑호는 눈에서 새파란 전류를 줄기줄기 흘리더니 연이어 낙뢰를 떨구기 시작하는데, 미호는 흙 탑만 계속 만들어내면서 흑호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흑호는 자신이 낙뢰를 쏠 때마다 원하는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낙뢰가 꽃히니 점점 이성을 잃고 있었다.

크허엉!!

우르릉! 꽈광! 꽈자자자자작! 쿠구구궁!!

그다지 넓지 않은 산봉우리는 미호와 거대 흑호의 싸움에 초토화되기 시작한다. 어째서인지 미호는 공격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흙의 탑을 만들어내고 그 뒤로 숨으며 흑호가 낙뢰를 쏘아내도록 만들고 있었다.

캬오오오오오!!

그리고 결국 이성을 잃은 흑호가 시뻘개진 눈으로 살기 어린 포효를 지르며 오직 미호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TP를 모을 때.

- 지금!!

쯔좍!

흑호의 발밑에서 흙의 탑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뾰족하고 단단한 흙기둥 여러 개가 섬광처럼 솟아올랐다.

이성을 잃었어도 야생의 감은 잃지 않았는지 흙기둥이 솟아오르는 순간 흑호는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뛰어오르지만, 미호는 그것도 예상했는지 주변에 솟아오른 흙의 탑을 매개체로 삼아 커다란 흙의 망치를 만들어 흑호를 그대로 내려쳐버렸다.

아래에서는 흙의 창槍. 위에서는 흙의 망치槌.

피하기는 늦었다. 그 찰나의 순간 흑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인지 잃었던 이성을 되찾더니 미호를 우묵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쾅! 푸지직.

흙의 망치에 얻어맞아 척추가 부러지고 수십 자루의 흙창에 몸이 꿰뚫리며 심장과 내장이 찢어발겨 졌지만 흑호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호를 눈에 담다가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 …우웅?

미호는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 깔끔하게 흑호를 처리했지만, 흑호가 마지막에 보여준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귀엽게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과연. 저래뵈도 산의 주인이었다는 겁니까.=

엎드려서 나한테 힐링 터치 마사지(를 빙자한 욕심 채우기)를 받던 알케마는 흑호가 마지막에 보여준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알케마의 건방진 말을 듣고 녀석의 뿔을 잡아 짤짤 흔드니 =아갸갹.=하고 요상한 비명을 지른다.

“야. 너도 벨티칼 산의 지배자 후계잖아.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쌈박질을 못 해?”

=모, 목이…! 으극. 저는 단순히 사비 종족의 예비 사제였… 으아아~.=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잡고 있던 뿔에 힘을 줘서 위아래로 짤짤 흔드니 힘없는 비명이 알케마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사제라면 한 단계 낮은 이형종이랑 맞다이 까서 져도 돼? 그리고 저래뵈도라니, 흑호를 감당도 못 한 주제에.”

알케마의 눈이 어지러움에 빙글빙글 도는 걸 보고 정수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말하니 녀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정수리를 감싸 쥐고 작게 항의했다.

=처, 처음에만 당황한 겁니다! 시간만 있었으면 저도 충분히 흑호를 잡을 수 있었을…거에요!=

“중간에 말을 머뭇거리긴 왜 머뭇거려. 그리고 내가 널 데려오지 않았으면 넌 미호랑 흑호의 싸움에 휘말려서 전기구이 도마뱀이 됐을 거다.”

미호도 낙뢰를 우습게 못 보고 땅으로 안 내려왔을 정돈데.

=끄응….=

내 지적에 할 말이 없는지 알케마는 울상을 지으면서 꼬리를 좌우로 기분 나쁘게 꾸물거렸다.

뿔이 잡혀서 머리를 잘 못 움직이는 알케마는 날 돌아보려다가 포기하더니 동서양 혼혈 같은 예쁜 얼굴을 찡그리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길래 뺨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넌 돌아가면 프랑하고 화연이한테 지옥훈련을 받는 게 제일 시급하겠다.”

=예에….=

시무룩한 녀석의 등에서 일어나서 아직까지 기분 나쁘게 꾸물거리는 꼬리와 =히잇?!= 히아리드의 손을 잡고 죽은 흑호를 넋 놓고 보고 있는 미호의 옆으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 …주인님.

미호는 흙의 창 수십 개에 꿰뚫려 죽어있는 흑호의 사체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내가 옆에서 나타나니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며 내 품에 안겨 왔다.

- 흑호가 나쁜 거지? 내가 나쁜 거 아니지?

미호도 흑호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내 옷자락을 잡고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음… 이럴 때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미호가 나처럼 안 삐뚤어지고 똑바로 자라려나.

“흑호는 나쁘지 않아.”

- …그럼 내가 나빠?

“아니. 그렇다고 미호가 나쁜 것도 아니야. ”

- 우웅?

이해가 잘 안 가는지 날 빤히 올려다보는 미호에게 한가지 예시를 들어줬다.

“미호는 소고기 스테이크 좋아하지?”

- 응. 좋아해.

“그럼 그 소는 나쁜 소라서 죽어서 미호한테 스테이크가 된 걸까?”

- ……??

이건 좀 미호의 수준에 맞지 않는 설명일까 아니면 내 예시가 이상한 걸까.

이해를 못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귀엽게 인상을 쓰는 미호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난감해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히아리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금 흑호를 잡은 것은 흑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악惡일 겁니다.=

- 그럼 역시 내가 나쁜 거지?

울상을 지으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미호에게 히아리드는 손을 내밀어 미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말했다.

=계속 들으세요. 미호가 흑호를 잡은 것은 강해지기 위해 정당한 사투를 통해 쟁취한 승리입니다. 흑호도 역시 자신이 강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살아온 짐승, 약자는 죽고 강자는 살아남는 것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약육강식의 생태입니다. 재미를 위해 죽인 것도 아니며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 한 행동에 선과 악을 가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 ……어려워.

=아직 어린 미호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겠지요. 미호, 이것만 기억해두세요. 이 세상에는 무조건 어느 한쪽만 좋고 나쁨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시키시는 일은 절대 악惡이 아닙니다. 아시겠나요?=

- 응.

미호는 히아리드의 이야기를 절반 정도 이해한 듯 보이지만 우리가 나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신한 거 같아 얼굴이 조금 펴졌다.

고등 지능이 없는 이형종과의 싸움은 히아리드의 이야기대로 약육강식으로 보는 것이 정답이겠지.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결국 양비론兩非論으로 결과가 나올 뿐이다.

절대적인 선함은 없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악함도 없다. 선악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오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말이다.

히아리드가 나보다 능숙하게 미호의 선악 개념을 세워주는 걸 봤더니 죽은 흑호에게서 위상력이 뭉클거리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호. 흑호의 위상력을 흡수해.”

- 응!

그동안 미호가 쌓아왔던 위상력에 흑호가 죽으면서 퍼트린 위상력, 그중 흡수할 수 있는 20%를 미호가 모두 받아들인다면 미호도 최고위급으로 진화할 것이다.

나는 B 클래스, 등급으로 따지면 최고위급이고 그건 히아리드와 알케마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서있는다해도 흑호의 고위급 위상력은 흡수할 수 없기에 가만히 서서 미호가 위상력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여름 아스팔트의 아지랑이처럼 흑호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위상력이 미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 히약!

미호는 갑자기 짧게 비명을 지르며 일곱 개의 꼬리를 바짝 세우더니 순식간에 눈처럼 새하얀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

=어…?=

=……?=

미호가 입고 있던 군청색 데님 반바지와 하늘색 레이어드 탱크탑이 갈가리 찢어져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가운데 우아하기까지 한 일곱 꼬리의 하얀 여우는 다리가 꼬이더니 강아지처럼 철푸덕 주저앉아버린다.

웃긴 자세로 주저앉은 모습에 우리가 황당해하고 있으니 미호는 우리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앞발과 뒷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며 자기 몸을 살펴본다.

“왜? 뭔가 문제 있어?”

- 나, 나도 몰라! 위상력을 느끼구 있는데 갑자기 오줌 누는 곳에서 허리를 타구 뭔가 짜릿한 게 지나갔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이래!

……그거 설마 성적인 자극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 미호를 두고 히아리드를 돌아보니 히아리드는 뭔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띈 채 날 보고 있었다.

기분 이상하게 왜 저렇게 웃냐.

나도 히아리드의 미소에 당혹스러워하는데 여우로 변신한 상태에서도 계속 위상력을 흡수하던 미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간지럼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길게 울음을 터트린다.

- 으아아우웅~! 꺄오오오우웅~!

=미, 미호야?!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하는 미호를 보며 알케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허둥거린다. 자기보다 수 미터는 더 큰 여우 앞에서 허둥거리는 알케마의 모습이 묘하게 웃기지만, 미호의 이상한 행동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길게 울던 미호가 온몸이 간지럽다는 듯이 땅에 털썩 쓰러지더니 온몸을 비틀며 다리를 허우적거리기 시작하는 거다.

머리를 뒷발로 탁탁 터는 건 기본이고 목욕하듯이 앞발을 오므려 몸과 팔을 북북 밀거나 완전히 드러누워 s자로 움직이며 땅에 등을 북북 긁어댄다.

- 히야아아앙~! 아아아아앙~!

그러는 중에도 위상력을 계속 흡수하고 있어서 미호를 딴 곳으로 옮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으니 히아리드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성숙한 몸이 진화를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

버둥거리는 미호를 발을 동동굴리며 지켜보던 알케마가 히아리드의 말에 후다닥 달려오더니 히아리드의 어깨를 잡고 재차 확인하듯 물어본다.

알케마는 언제 미호하고 이렇게 친해진 거지?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데 히아리드는 알케마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비우스의 어린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관문을 지나던 행동과 흡사하니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케마.=

어디 걱정하는 마음이 제 마음대로 조절이 되던가. 알케마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안되는지 여우 형태로 돌아간 미호가 요상한 신음을 내면서 격하게 몸부림칠 때마다 신음을 흘리면서 마음을 졸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미호의 위상력과 위상석이 정확하게 350만이 되는 순간, 두 개의 심장 사이에 위치하던 위상석이 산산히 분해되며 미호의 몸 안을 가득 메워나간다.

위상석에서 터져 나온 위상력은 몸 안의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죄다 달라붙으며 빛을 내고 있었고 그건 몸 밖의 가죽과 털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도 무진장 많이 남은 위상력들은 엉덩이 쪽으로 몰려가더니 또 하나의 꼬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으아으우웅! 아아웅!

조금씩 자라나는 꼬리 때문에 엉덩이 쪽이 미치도록 가려운지 미호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머리로 불쑥불쑥 솟아있는 흙 탑을 들이받고 부수며 날뛰기 시작한다.

“…플라비우스가 성인이 되기 전에 저런다고?”

=날개가 돋아날 때의 느낌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지요. 어린아이들이 그 감각을 참지 못하고 손톱으로 등을 긁다가 살이 패이고 피가 나는 건 예사입니다.=

“우와. 미호도 자기 꼬리를 물어뜯으려고 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생각보다 심각한 이야기에 조금 걱정이 들어서 히아리드에게 되묻는데 알케마가 경악하며 소리치치는게 귀에 들어왔다.

=아앗! 미호! 그러면 안 돼!!=

고개를 돌려보니 미호가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벌려 자기 엉덩이를 물어뜯으려 하고 그걸 알케마가 기겁하면서 말리려 들고 있었다.

“……못하게 막는 게 좋을 거 같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알케마가 미호의 주둥이를 잡고 필사적으로 말리려 들고 미호는 그런 알케마를 털어버리려고 고개를 짤짤 흔드는 모습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서 미호가 허리를 굽히지 못하도록 통째로 감아버렸다.

- 캬릉! 캬우웅!

몸이 묶여서 엉덩이에서 새로 돋아나는 꼬리를 물어뜯질 못하자 미호는 자기 주둥이에 매달린 알케마를 물어버리려는 듯이 이빨을 딱딱거리기 시작한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걸 보니 꼬리가 새로 생기면서 느껴지는 감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거 같다.

“알케마. 미호한테서 떨어져.”

=윽, 옛!=

격렬하게 흔들리는 미호의 주둥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알케마는 황급히 뛰어내린다. 알케마가 떨어지는 순간 미호가 알케마를 물어버리지 않을까 살짝 긴장했는데, 미호는 떨어져 나간 알케마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꼬리를 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주둥이에 달린 방해물이 사라지자 이제는 앞발과 뒷다리를 격렬하게 버둥거리다가 자기 앞발을 콱콱 물면서 자해를 시작하는 미호에게 다가갔다.

“미호야.”

- 캬르르르!

지금의 미호는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나보다. 내 목소리에 내 쪽으로 주둥이를 뻗으며 이빨을 딱딱거리는 미호를 보고 목에 마나 시브를 돌려 큰 목소리로 미호를 불렀다.

“[미호!]”

움찔.

마나 보이스를 켜서 소리친 게 효과가 있는지 이성을 잃고 날뛰던 미호가 움찔하고 몸이 굳더니 부르르 몸을 떤다.

- 주…인니임. 끼이잉.

“그래. 나야. 몸은 괜찮아?”

- 가…려워. 간지러워! 엉덩이가 간지러워 죽을 거 같아! 꺄우우웅!!

말을 하다 보니 간지러움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다시 이성을 잃을 것처럼 보인다. 간지러움에 미쳐서 꼬리와는 상관없는 자기 앞발을 피가 나도록 잘근잘근 씹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공간 도약으로 미호의 머리 위에 내려서니 미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며 이빨을 딱딱거렸다가 이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붕붕 젓더니 혼란스럽다는 듯이 낑낑거린다.

히아리드도, 알케마도 별다른 이상 없이 최고위로 진화했는데 유독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미호가 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진화가 끝날 때까지 자해하는 건 막아야 했기에 손에서 TP를 뽑아 녀석의 커다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간지러움이 고통스럽다면 다른 감각으로 간지럼을 재워야지. 간지러움은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 아으. 아후우. 주인니임.

“그래. 나 여깄어.”

- 끼이잉. 끼응.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과 머리에서 느껴지는 TP가 주는 감각. 내가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사실에 이성과 간지러움이 격렬하게 싸우는지 미호는 자해를 멈추고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다.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엉덩이를 봐서는 조금씩 자라고 있는 여덟 번째 꼬리가 다 자랄 때까지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할 거 같다.

미호가 더이상 간지러움에 발작하지 못하게끔 계속해서 TP를 손바닥으로 뽑아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니 멀찍이서 지켜보던 알케마와 히아리드가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여우가 허리에 감긴 푸른색 공간의 벽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좀 우습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엉덩이에서 자라나는 꼬리는 이제야 다른 꼬리들에 비해 절반까지 커진 상태다. 온전히 자라려면 최소 지금까지 걸린 시간만큼 더 지나야 할 거 같다.

============================ 작품 후기 ============================

@흑호: TS를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소...!

????: 야야. 이 세계에는 TS 없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은 하지 마.

@흑호: 치사하게 회복 쿨 도는데 싸움 붙이는 인간과는 말도 나누기 싫다! 꺼졍!

[system]: 흑호(shutthefuckup)님이 ???? 님을 강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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