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4화 (494/517)

00494  4대 종족  =========================================================================

나와 알케마를 바람으로 띄운 채 묘향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던 미호는 기지개를 켜면서 같은 루크랑 계통의 종족들을 만나 재밌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 후와~ 재밌었어!

=나도 헤뷜트를 떠난 사비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직접 만날 줄 몰랐어.=

- 카낫도 라수비탄을 떠난 거래! 나도 라수비탄에 가보고 싶어!

=루크랑의 도시 말이지?=

두 녀석이 순례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알거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할 무렵 호우반에게서 받은 패牌를 꺼내보았다.

호우반은 이게 우리를 메리아놀로 안내해준댔는데.

은색 패는 지름 10cm짜리 동그란 모양이었다. 어느 부분이 앞면이고 뒷면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쪽 면에는 머리숱이 굉장히 풍성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고 다른 쪽은 거대한 거북이 그림이 그려진 은색 패다.

패의 외곽 부분에 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이 쓰여 있는 데다 패 자체에서 묘하게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이 여자아이 그림이 호우반이 말한 보석 공주라는 존재일거 같단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은패는 전체적으로 마패 같은 모양새였다. 패의 끝에 달린 진갈색 술도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피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라 무척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패를 꺼내서 살펴보고 있으니 옆에서 날고 있던 히아리드가 흥미를 보여왔다.

=호우반에게 받은 겁니까?=

“응. 이게 메리아놀로 안내해줄거랬… 헉! 사용법 안 물어봤다!”

으아! 내가 이런 멍청한 실수를! 히아리드의 알몸을 끌어안고 노느라 깜빡 잊고 있었어!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다. 안타까움에 인상을 쓰며 은패를 위아래로 붕붕 흔들자 내 고함에 깜짝 놀란 미호와 알케마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날 돌아본다.

- 주인님 왜 그래? 뭐 깜빡했어?

“깜빡… 하긴 했는데.”

미호는 - 깜빡한 거 있으면 되돌아갈까? 하고 물어보는데…. 크으~! 사용법을 깜빡해서 되돌아가서 물어보면 쪽팔리잖아! 인사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떠나온 건데!

돌아가서 어떻게 핑계를 대야 안 쪽팔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쿡쿡 웃으며 지켜보던 히아리드가 갑자기 살짝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하 님. 패에서 빛이 납니다.=

“응? 어?”

히아리드의 이야기에 패를 흔들다 말고 들어봤다. 빛 안 나는데?

“무슨 빛?”

- 아까 주인님이 팔을 붕붕 흔들 때 났었어!

=저도 봤습니다. 희미했지만 시린 달빛 같은 빛이 동그란 판에서 났었어요.=

뭐야. 나 빼고 다 본 거야? 그럼 확실히 빛이 났었나 본데?

손을 들어서 미호에게 잠시 멈추라고 신호를 보낸 뒤에 은패를 이리저리 움직여봤….

“어!”

- 또 빛나!

미호 말대로 순간적으로 흐린 빛이 깜빡였었다. 그러니까 이 방향이었지?

패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패가 특정 방향을 정확히 가리킬 때만 빛이 난다는 걸 알았다. 그 말인즉.

“이쪽 방향으로 쭉 가면 메리아놀의 도시가 나온단 건가?”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미호가 옆에서 - 나도~ 나도 해볼래~. 하면서 손을 뻗어오길래 녀석의 손에 은패를 들려주고 작은 지도를 꺼내 들었다.

지금 위치는 대동강을 떠나서 묘향산으로 가고 있으니까, 북동쪽 빛이 나는 방향으로 쭉 나가면….

=묘향산을 지나쳐서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이군요.=

=묘향산이든 백두산이든 서하 님이 예측하신 산이니 결국 서하 님의 예상이 맞는 거군요!=

히아리드는 빛이 어딜 향하는지 빠르게 확인했고 알케마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역시 서하님!=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백두산도 단순한 통과 점일 가능성이 있다. 섣불리 기쁨을 표시하기보단 일단 지켜봐야지. 자괴감은 한 번으로 충분해.

좋아. 호우반한테 되돌아가서 묻지 않아도 되겠군.

주먹을 불끈 쥐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내 모습을 히아리드가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모른척하자, 모른 척!

명확하게 가야 할 길이 정해졌기에 은패는 미호가 들게 하고 은패가 발하는 빛을 따라 날아가게 시켰다.

편하게 미호의 바람을 타고 날아가며 드러누운 자세로 오늘이 입장한 지 며칠째인지 세어봤다.

어디 보자… 첫날은 제주도에서 보냈고 둘째 셋째 넷째 날은 남쪽 영산을 살펴본 뒤에 대동강에서 크라켄을 잡았지. 그러니까 오늘은 5일째군.

5일 만에 가야 할 곳의 단서를 확보했지만 가는 길에 있는 고위 이형종을 잡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미호도 진화해야 하고 위상석도 챙겨서 팔아야 하니까.

거기에… 최고위 이형종이 이렇게 안 보이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

5일간 잡은 최고위가 고작 1마리라니, 벨티칼 산에서 백청(초위급)과 알케마의 부모 및 사제들(최고위급), 해비 마을에서 오르토스(최고위)를 제외하면 벨티칼 산에서 이곳까지 1만km를 이동하는 동안 만난 최고위 이형종은 어제 잡은 거대 크라켄 한 마리 뿐이다.

길을 가다 발에 걸릴 만큼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나 적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한 마리만 잡으면 A 클래스인데 하나도 보이질 않으니 조급증이 나는 기분이다.

“어떻게 이렇게 최고위 이형종이 없을 수가 있지?”

보이지 않는 최고위 이형종의 모습에 작게 투덜거리니 알케마가 뒤에서 어이없어하는 게 공간 지각으로 느껴졌다.

“왜 그렇게 보냐? 맞을래?”

고개를 들어 알케마를 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미호도 얼마 안 있으면 스스로 최고위급으로 진화할 텐데 나만 제자리걸음이잖아! 좀 투덜거릴 수 있지!

알케마는 내 모습에 흠칫하고는 머리와 손을 도리도리 저으면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그래도 서하 님이 잘못 생각하고 계시니까….=

“뭐. 왜. 뭐.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내 반응에 찔끔한 알케마는 주눅이 든 귀여운 표정으로 조그맣게 항변한다.

=최, 최고위 이형종의 존재는 매우 희귀합니다. 야생에서는 나타날 확률이 극히 희박해요. 저는 어제 만난 크라켄이 최고위급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요….=

“어째서? 저번에 봤던 너희 종족은 최고위가 아홉이나 됐었잖아.”

벨티칼 산이 무너지면서 지금은 넷 밖에 안남았지만.

그리고 인증기 커뮤니티에 등록된 최고위의 종류만 해도 스물이 넘어가고 예전 11.11테러 사건 때 하철수 그놈이 데리고 나온 최고위 이형종도 그랜드 터틀이랑 암흑이까지 둘이나 됐는데?

알케마는 내가 보고 만났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내가 겪은 일들이 비범한 것이었을 뿐, 보통의 존재는 야생의 최고위 이형종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저희 종족의 사제님들은 오랜 시간 수련과 체계적인 협동 사냥을 통해 최고위급이 되신 분들이에요. 제가 알기로 고위급에서 최고위급으로 진화하는 데 40년이 걸렸고요. 무엇보다 야생에서는 최고위 등급의 등장은 일대의 무력 판도가 통째로 변하는 일이라 서로가 극렬하게 견제를 하는 게 통념입니다.=

알케마의 이야기는 굉장히 뜻밖이다.

“딴 놈이 진화하면 자기가 죽으니까 진화할 거 같은 놈이 나오면 여럿이 합심해서 진화하려는 놈을 공격하기라도 한 다는 거야?”

=옙.=

“뭐야. 그럼 최고위 이형종은 거의 없는 게 당연하단 거네?”

=옙!=

바로 그거라는 듯이 나한테 검지를 척 내밀고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알케마가 얄미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물론 내 얼굴을 본 녀석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려고 두 팔을 파닥거렸지만, 나와 알케마의 몸은 미호가 불러낸 바람으로 떠 있는 중이라 내 손짓을 본 미호가 알케마를 내게 붙여주었다.

알케마는 기겁한 얼굴로 미호를 배신자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호는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킥킥 웃으면서 알케마에게 손을 흔든다.

“알케마. 요즘 살기 편해졌지? 응?”

=아, 아닙니다!=

“지금 여긴 밖인데 안으로 보이냐? 아주 제정신이 아니지 그냥?”

=네, 네?=

“어쭈. 이제 내 말도 못 알아들은 척 하는 거야? 우와 이거 안 되겠네!”

=히익?! 아, 아우우….=

알케마의 길다란 용 꼬리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신경질을 부리자 녀석은 당황하고 부끄러워죽으려고 한다.

이 녀석은 또 이상 한데서 부끄러워하네.

처음에는 심술 때문에 꼬리를 잡고 흔들어댔지만 어째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알케마의 반응이 재밌어서 녀석의 꼬리를 비틀거나 꼬집거나 팔에 감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녀석을 괴롭히면서 묘향산 인근을 지나쳐가는 중이었다.

- 주인님. 저~기! 날개 달린 검은 고양이야!

“엉?”

날개 달린 고양이란 말에 미호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하얀 모자를 쓴 듯한 묘향산의 산봉우리에서 덩치가 20m가 넘어가는 거대한 흑호를 발견했다.

……뭐, 호랑이도 고양잇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녀석은 낮잠 중이었는지 묘향산 아래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자리에서 몸을 말고 있었는데, 몸집에 걸맞는 크기의 까마귀 날개가 달린 거대한 흑호黑虎는 30만짜리 고위급 위상 석을 지닌 놈이다.

그런데 몸의 이곳저곳에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심한 상처가 보인다. 뭐지?

=아무래도 인근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한 녀석인듯합니다. 저대로 두면 얼마 안 가 최고위급이 되겠군요.=

“흐음.”

알케마는 나한테 꼬리가 잡힌 채 붉어진 얼굴로 흑호를 내려다보며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알케마는 신전에 처박혀있던 히아리드보다 배운 게 많은지 여러 가지를 알고 있군.

“좋아. 알케마, 가라.”

=예!=

꼭 쥐고 있던 꼬리를 놓아주며 말하니 알케마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꼬리를 한차례 크게 휘두르더니 미호에게 흑호가 있는 곳으로 던져달라고 요청했다.

“위상력이 얼마 남지 않으니 오히려 더 조바심이 나는데.”

미호의 바람을 받아 화살처럼 쏘아져 가는 알케마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뱉으니 히아리드가 옆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럼 메리아놀에 진입하기 전 최고위 이형종을 찾아볼까요?=

“10,000km를 이동하는 동안 고작 2마리를 봤는데 남은 4일동안 찾는다고 보일까?”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그건 그런데…. 차라리 예전에 아숨프레 수몰 폐허에서 시도해볼랬다가 프랑의 저지로 못한 실험이나 해볼까?

=무슨 실험 말씀입니까?=

“내가 TP를 먹여 진화시킨 놈을 잡아 죽이는 거.”

내 말에 미호와 히아리드의 눈이 놀람으로 커진다. 어쨌든 흑호가 있는 산봉우리에 알케마가 착지하며 흑호에게 달려드는걸 보고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서 그 위에 앉아 관전을 시작했다.

쿠어어어엉!!

=아윽!=

……알케마의 전투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고위 이형종을 발견할 때마다 싸우게 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녀석은 선천적으로 전투 감각이 꽝인 거 같다.

최고위 아종인 히아리드는 물론이고 고위 아종인 미호마저 간단히 찜 쪄버릴 위상석 30만짜리 고위 이형종인데, 거기다 상처까지 입은 놈인데 최고위인 알케마는 저렇게 허덕이니 원.

흑호의 페인트 모션에 속아 등을 보인 알케마가 호되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곤 나무를 부수며 숲에 처박히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내 이야기에 놀랐던 미호는 아래쪽에서 들린 알케마의 비명을 듣고 밑을 보더니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고 히아리드도 답이 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젓는다.

흑호는 눈앞에 보이는 알케마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다 높게 뛰어 덮칠듯한 자세를 취하자 알케마도 수십 개의 물의 드릴을 만들어내며 반사적으로 시선을 위로 올리지만, 그것도 페인트다.

콰우우우웅!!

=꺄윽!=

똑같은 훼이크에 또 넘어가서 산비탈을 굴러떨어지는 알케마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미호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저 녀석은 실전보다 연습이 더 필요해 보여. 미호, 가서 흑호를 잡아.”

- 응!

내 명령에 미호는 쏜살같이 흑호를 향해 날아가더니, 흑호가 알케마를 뒤쫒으려고 뒷다리에 힘을 주고 내뻗으려는 그 순간 땅을 움직여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크헝?!

짧은 시간에 좁은 면적만 움직여서 그런지 전혀 눈치 못챈 흑호는 요동치는 대지의 움직임에 뛰어오르지 못하고 헛발만 디딘다.

그렇게 흑호의 균형이 무너져 허우적거리는 틈을 타 미호는 미리 준비해둔 고위력 바람의 칼날을 날려 흑호의 뒷다리 부분의 힘줄을 잘라버렸다. 기동력부터 봉인하려는 건가?

콰우우우우!!!

양 허벅지를 깊게 베인 흑호는 산이 떠나갈듯한 포효를 지르며 자신을 공격한 미호를 노려보더니 칠흑처럼 새까만 날개를 촥 펼쳐 날아오르려 한다.

- 얍!

그걸 두고보겠냐는듯이 미호는 수 미터의 시퍼런 여우 불 여섯 개를 날려 녀석이 날아오를 방향을 미리 선점해버렸다.

콰륵?!

눈앞을 메운 시퍼런 여우 불에 흑호가 당황해서 멈칫한 그 찰나의 순간, 놈의 사각지대에 있던 여우 불이 터지며 흑호의 거대한 까마귀 날개를 태워버린다.

지옥 불이라고 불릴법한 겁화의 불길에 새카만 깃털은 순식간에 오그라들 날개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캬오오오오오!!

시커먼 까마귀 날개에 붙은 불을 끄느라 흑호가 땅을 뒹구는 사이 머리와 옷에 나뭇가지와 풀떼기를 덕지덕지 달고 기어 올라온 알케마가 미호에게 뭐하냐는 듯이 소리친다.

=크윽, 미호! 그놈은 내 사냥감이야!=

- 알케마 바보! 주인님이 나보구 잡으랬어!

=으윽.=

미호의 외침에 알케마는 울상을 지으며 하늘에 떠 있는 날 올려다보는 사이 땅을 뒹굴던 흑호는 날개에 붙은 불을 꺼트리고 격하게 분노한 모습으로 미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검고 매끈한 깃털을 자랑하던 날개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버려 비행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데다 뒷다리에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어 기동력이 완전히 봉쇄됐다.

재생 능력도 없는듯하니 금방 결판이….

티틱. 티디딕. 파직!

…날거라는 생각도 잠시, 샛노란 눈동자 주변에 번갯불 같은 게 탁탁 튀는 걸 보는 순간 미호에게 소리쳤다.

“미호! 번개다!!”

어흐으으어엉!!

내 외침을 들었는지 아니면 흑호의 번개 공격을 예상했는지 미호는 머리 위로 흐르는 물의 길을 순식간에 만들더니 자신은 그 반대쪽으로 몸을 잽싸게 날렸다.

그 순간 푸른 하늘을 가르고 떨어지는 백색의 낙뢰.

꽈자자자작!

=으갸악!=

꽈과광!!

순간적으로 세상이 하얗게 물들며 폭음이 터져 나왔지만 공간 지각 덕분에 상황 파악은 문제가 없었다.

폭 3m, 두께 1m의 물길로는 낙뢰를 물의 흐름에 따라 흘려보내기에는 무리였는지 어른 몸통 둘레만 한 낙뢰 줄기가 물의 길을 꿰뚫고 떨어졌지만 미호는 이미 자리를 피한 뒤였다.

그럼 아까 비명은 누구 거였어?

물과 낙뢰가 만나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터져 나와서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때마침 돌풍이 불어와 산봉우리를 가리던 수증기를 몽땅 치워버리니 곧 알케마가 지면을 따라 흐른 전류에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온몸을 비트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아.”

=……후우.=

어흐으응!!

낙뢰를 피한 미호에게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분노한 흑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걸 보니 또다시 낙뢰를 떨어트리려 하는 거 같다.

알케마를 저대로 뒀다간 큰일 날 분위기라 마나 오러를 끌어올리고 공간 도약으로 부들거리는 알케마의 옆에 나타나 녀석의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꼬리를 잡는 순간 알케마의 몸 안을 돌던 전류가 내 손을 타고 흐르려 했지만 마나 오러가 가뿐히 씹어버린다.

녀석을 잡고 히아리드가 있는 곳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푸른색 공간의 벽 위에 던져놓으니 알케마는 온몸에서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입가에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벌벌 떨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꽤 큰 충격을 받은 거 같다.

=흐, 허, 서, 서하으아니므으으드드드.=

“야. 너 최고위 맞냐? 어째 고위급 이형종도 못 잡아?”

=히흐어, 제, 제서어으흐흐.=

…에휴. 눈물 콧물에 입가에 침도 질질 흘리면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야단칠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래도 내껀데 이 상태로 냅두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힐링 웨이브로 단번에 회복시켜주기에는 못마땅해서 손에 힐링 터치를 일으켜 잘 익은 몸을 고루 어루만져주니 =히익!=, =끄에엑!=, =사, 사람 살려…!= 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사람 살리라니. 너 사비잖아.”

그나저나 흑호가 번개를 쓸 줄은 몰랐다. 그만큼 희귀한 능력이 있는 데다 호랑이라는 포식자의 형태이기도 하니까 저렇게 고위급까지 클 수 있었던 거구만.

여섯 가지 속성 중 위력 면에서는 가장 강하다는 번개, 그걸 단순히 낙뢰형태로만 구현한듯했지만 단 한방에 알케마가 무력화되는 걸 보니 역시 번개 속성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생각났다.

============================ 작품 후기 ============================

가라! 알케마! 미호!

야생 흑호의 낙뢰!

효과는 굉장했다!

알케마는 마비되어 기술이 나오기 어려워졌다!

미호는 낙뢰를 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