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91화 (491/517)

00491  4대 종족  =========================================================================

미호와 히아리드, 알케마의 합동 공격에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되며 구슬프게 울부짖는 거대 크라켄을 뒤로하고 아까 크라켄이 뱉어낸 무언가를 찾아봤다.

아까 전투를 벌이던 장소로 돌아가면서 공간 지각을 넓게 돌린 덕분에 찾기는 금방 찾았는데……. 저건 배ship 아냐?

뭔가 좀 내가 아는 나무로 만든 배하고는 다르게 넓적한 넙치처럼 생기긴 했지만 배 같다.

넙치 배는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고 메인 마스트는 부러져 나간 데다 용골이 뒤틀려있어 더이상 항해는 무리로 보이지만 확실히 배다.

선실에는 인간 형태의 생물도 있고 위상력도 감지되고 있어서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히아리드가 옆으로 날아와서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서하 님. 크라켄의 사냥을 끝냈습니다. 위상력을 흡수하시지요.=

“아? 응. 그래.”

그러고 보니 어느새 크라켄의 비명이 멈춰있었다. 히아리드와 함께 크라켄이 있던 자리로 돌아오니 위상력 951만의 최고위 이형종인 크라켄은 최고위 아종과 최고위 변종, 고위 아종 파티의 무식한 화력에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푸른색 공간의 벽 그물에 걸려 바닷속에 가라앉지도 못하고 있는 크라켄의 몸뚱이 위에 내려서니 미호가 헤헤 웃으면서 내 품에 안겨 왔다.

“다들 수고했어.”

나한테 안겨 온 미호의 머리를 긁어주고 뒤에서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알케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자 알케마의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예… 예!=

- 이히히.

=그럼 저희는 떨어져 있겠습니다. 위상력의 흡수가 끝난다면 불러주시길.=

히아리드가 미소를 보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니 미호와 알케마도 웃으면서 거대 크라켄의 사체에서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크라켄의 사체에서 자욱이 위상력이 퍼져나오는 걸 마나 시브를 돌려 몸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951만의 위상력을 몸속으로 받아들이니 위상력은 내 심장 속에 자리를 잡은 위상석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가슴이 조금씩 욱신거리는 이 느낌은, 위상석이 커지면서 심장을 자극해서 그러려나?

알케마가 말했던 위상석의 숙성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크게 숨을 들이쉬니 욱신거리는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이로써 오르토스 처치 후 위상석의 위상력 포함 6,892만이던 내 위상력은 7,843만이 되었다. A 클래스인 8천만까지 앞으로 고작 157만.

조금 아쉽다. 이놈의 위상력이 조금만 높았다면 A 클래스가 되는 데 필요한 위상력을 모두 확보했을 텐데 157만이 모자라다.

과연 위상력을 모두 모았을 때 인간 능력자들처럼 벽에 막힐지 이형종처럼 곧장 진화할지 궁금해진다.

가슴에 묵직한 돌이 들어찬 느낌에 심장 쪽을 어루만지고 있으니 멀리서 지켜보던 미호와 히아리드, 알케마가 내 옆으로 내려선다.

- 주인님 진화했어?

“아직. 조금 모자라네.”

- 에이~ 주인님이 진화한 거 빨리 보고 싶은데.

“그러게. 나도 빨리 보고 싶다.”

미호의 투정에 나도 남 일 말하듯이 말하니 녀석의 은색 눈동자가 동그래졌다가 까르르 웃으며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이놈은 위상석이 없나요?=

알케마는 밟고 서 있는 크라켄을 내려다보며 혹시나 하늘색 원피스가 더러워질까 봐 조심하며 물었다. 내가 "옷이 더러워지면 너도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게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코가 삐뚤어질 것 같은 냄새 폭탄은 한 번이면 족해.

“없어.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위급 이상의 이형종 들은 죄다 위상석이 없었는데 이놈도 없네.”

미호의 보들보들한 꼬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해주니 알케마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형종 들은 위상석을 얻으면 어디에 쓰지?

알케마에게 이형종은 위상석을 얻으면 어디다 쓰냐고 물어보니 주술적인 용도로 많이 쓴다고 했다.

=저희 종족의 경우, 비술과 주술을 사용할 때의 촉매로 쓰거나 식물의 생육 촉진에 사용하거나 위상력을 깨우치지 못하는 허약한 새끼들의 각성에 사용합니다. 사용 비율은 각각 3:3:4 정도지요.=

“위상석이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그 비싸고 구하기 힘든(녀석들의 기준에서) 위상석을 고작 식물 성장 촉진에 써? 조금 이해가 안 가서 물으니 알케마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어떻게 쓰는데?”

=간단합니다. 위상력을 잘게 부수고 갈아서 특별히 제작한 용액에 섞은 뒤 물로 희석한 뒤 토양에 뿌리는 거지요. 높은 등급의 위상석은 토양의 변질과 오염의 가능성이 있어 식물의 생육에 쓰는 위상석은 중위 이하의 것으로 씁니다.=

사비 종족한테 현실에서 사용하는 식물 성장 촉진제나 비료 같은걸 보여주면 컬쳐쇼크 받는 거 아냐?

그리고 각성이라는 것도 물었는데, 이건 설명을 들으니 절대 시도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체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이형종 들도 사망률이 60%를 넘어간다니, 절대 못 쓸 확률이다.

크라켄의 사체를 고정하고 있는 공간의 벽을 치우자 크라켄의 몸뚱아리는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아간다.

바람을 일으켜 나와 알케마를 공중에 띄운 미호는 내가 아공간에 크라켄의 사체를 안 챙기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우웅? 이거 그냥 버리는 거야?

“어. 챙겨가야 할 만큼 좋은 건 아니야.”

해비의 인어들은 오르투스를 식량으로 챙겼지만, 우리가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크라켄의 부산물 자체가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기에 많이 부족하다. 셋의 공격에 그냥 종잇장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니까 말이지.

어느새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린 크라켄의 사체에서 신경 끄고 미호에게 아까 본 넙치 배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날아가도록 시켰다.

얼마 안 가 바다 위에 위태위태하게 떠 있는 넙치 배가 눈에 들어온다. 미호는 배의 형태가 신기한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배를 가리키며 물었다.

- 주인님, 저거 배 맞아? 이상하게 생겼어.

“니 생각은 어떤데?”

- 배 아니야! 배는 삼각형으로 생겼는데 저건 넙적한 사각형이야!

평저선이라고 사각형인 배도 있는데 미호는 거기까진 모르나 보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배 맞다고하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조금 빠르게 넙치 배를 향해 날아간다.

그때 넙치 배를 빤히 바라보던 히아리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하 님. 생존자인듯한 자가 갑판에 나와 있습니다. 프라우드처럼 생긴 자입니다.=

“뭐? 프라우드라고?”

=예. 메리아놀의 배인듯합니다만…… 저 배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메리아놀의 배? 그럼 메리아놀들이 타고 있을거란 말이잖아? 이거 잘하면 메리아놀로 가는 길을 쉽게 알아낼수 있겠는걸?

잘됐다는 생각에 속으로 기뻐하면서 히아리드에게 내가 봤던 것을 설명해주니 살짝 놀라워한다.

=크라켄이 말입니까? 놀랍군요….=

미호가 속도를 높인 덕분에 금방 공간 지각 범위 안에 들어온 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정말로 키가 140cm가 넘지 않는 짜리몽땅하고 옆으로 퍼진, 수염이 잔뜩 난 술통 같은 몸매의 이 종족이 보인다.

생김새가 그야말로….

“정말 드워프랑 빼다 박았네.”

늘어지듯 부러져나간 메인 마스트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는 프라우드의 남자를 보다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선창을 주욱 살펴보니 가장 큰 선창에 이종족 남녀 아홉이 모여 기절해있었다.

종족도 다양한 게 순수한 사비로 보이는 도마뱀 인간과 갑판에 나와 있는 프라우드와 비슷해 보이는 자들이 넷, 호리호리한 몸매와 원색적인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과 비슷한 이종족도 보이고 온몸에 푸른 털이 난 인간도 있다.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곰 같은 체구를 지닌 자도 보인다.

이들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TP가 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갑판에 나와 있는 프라우드 족도 안색이 거무죽죽한 게 당장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거기다 뒤틀리고 부서진 틈으로 바닷물이 배 밑창에 흘러들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위태위태해 보인다.

“일단 구해주자. 저대로 두면 배가 금방 침몰하겠어.”

그나저나 어쩌다가 크라켄한테 잡힌거야? 크라켄의 주둥이 속에 있었던것치고 배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지?

속으로 궁금함을 참으며 넙치 배 위로 뛰어내렸다.

* * * *

“도대체 CIA는 제정신인가!!”

미합중국의 최고 권력 중심지이자 정치 괴물들의 소굴이라 불리우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

그곳의 회의실에서 조 셀든 임시 대통령은 정부 각료와 CIA 국장을 소집해놓고 시뻘건 얼굴로 노여워하고 있었다.

탕탕!

“도대체가 그 '무법자'와 관련된 일은 언터처블로 분류해서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고 지시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냔 말일세!!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셀든 대통령은 분에 못 이겨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최고급 원목 책상을 손바닥으로 탕탕 내려치며 소리쳤다. 평소 포커페이스에 흐트러진 모습을 일절 보이질 않는 그가 이토록이나 흥분한 모습에 참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 셀든 임시 대통령은 어젯밤, 몇 달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 수면에 겨우 들었을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CIA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공작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타겟은 '무법자'의 장모인 유영은 대통령이었습니다!’

'무법자'는 제 가족을 끔찍이 아낀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 수뇌부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을 미국이 몸소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

각국의 수반들은 미국이 얻어터지는 꼴을 보고 침을 삼키며 '무법자'는 물론 '무법자'와 가까운 이들에게는 절대 손을 뻗치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까지 맺은 상황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연인의 장모이자 사회적인 후원자라 할 수 있는 유영은을 건드렸다?

미쳤다. 이번에는 미국이 쪼개지는 게 아니라 사라질지도 모른다.

셀든 임시 대통령의 머릿속으로 수백 킬로미터 규모의 마포가 워싱턴을 비롯한 각 주에서 터지는 환영이 흘러지나 갔다. 설마 수백, 수천만 시민이 사는 도시에 대량 학살을 벌일까 싶지만, '무법자'의 성정과 행동 양식을 봤을 때 충분히 일리가 있는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정서하가 모종의 계약으로 마포를 봉인한 상태라는 게 알려졌다면 셀든 임시 대통령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건 CIA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이라면 VTS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금방 눈치채고 칭찬해줄 거라 여겼는데….

“하, 하지만 이번에 알아낸 VTS를 은밀히 퍼트려 공중파를 타게 한다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한국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동아시아 담당 전담 요원들이 확신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자넨 정보국의 국장이 맞기나 한가?! 저 '무법자'가 도덕적이라고?! 일본의 공하로 빚어진 일말의 사태는 '무법자'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닐세! 저번 일로 앙심을 품고 있다 기회가 되니 치워버리기 위해 유영은 대통령과 정시하 그랑 블루 통합관리부장에게 시킨 공작이란 말일세!! 유영은 대통령의 자녀인 유화연이 알고 보니 딸이 아닌 분신체였다?! 그래서 어쩌란 건가! 그 사실을 밝히면 '무법자'가 충격에 심장마비로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고작 그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공작을 벌이다 한국 정보국에 걸리다니!! 자네 CIA의 머저리들은 미국을 지구 상에서 지우고 싶어서 안달 난 건가!!!”

내가 어떤 심정으로 '무법자'에게 고개까지 숙이며 용서를 빌었는데!!!

쾅쾅!

책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불을 토하는 듯이 격렬하게 분노하는 조 셀든 임시대통령의 비난에 CIA 국장은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VTS를 이용해서 공작을 펼치면 '무법자'의 한쪽 날개라고 할 수 있는 유영은 대통령를 잘라낼 수 있다고 부국장이 호언장담했다. 그럼 '무법자'의 이미지에 대한 정보 공작이 한결 쉬워질 테고 몇 단계의 계획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으로 회유도 더 쉬워질….

CIA 국장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여러 계획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셀든 임시 대통령의 분노만 더 일으킬 거란 사실을 추측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지옥의 망령이 흘릴법한 신음을 흘린 셀든 대통령은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주름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팀킬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숫제 트롤 같은 놈들이 아닌가. CIA의 국장이란 놈이 저렇게나 머저리일 줄 알았다면 트럼펫 게이트 때 함께 치워버리는 거였는데…!

망자처럼 고뇌하는 셀든 임시 대통령을 본 미국 국가 정보국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ODNI의 클라우스 국장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프레지던트.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총리실에서 대국민 발표 준비가 한창이라 합니다. 분위기가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건 아닌듯하니 우선 유영은 대통령과 접촉해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해서 뭐라고 할 셈이오? 우리 CIA의 실수로 VTS를 입수했다고? 그러니 돌려주겠다고?”

CIA 국장은 실수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었다간 이마에 총알을 박아버릴 것 같은 기세로 노려보는 셀든 임시 대통령의 얼굴에 결국 입 밖으로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셀든 임시 대통령의 날 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클라우스 국장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미국은 한국의 영원한 우방국임을 재확인시켜주며 관련자들을 정보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단은 위급한 시기는 넘길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VTS의 입수는 백악관의 뜻이 아니라는 걸 먼저 보여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무법자'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미국의 WAO의 등급 하락을 막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적극적인 우호국 견해 표명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유영은 대통령도 일국을 수십 년간 이끌어온 정치에 인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아랫것들이 사고를 쳐서 수습한 경험도 적지 않으니 이번 일도 같은 맥락으로 먼저 사과의 뜻을 보여주면 이해해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적당한 먹이가 필요하겠지요.”

클라우스 국장의 말에 힘을 보태주듯 국가안보위원회의 참모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셀든 대통령은 얼마 전에 있었던 굴욕적인 사건이 떠올라 이마에 힘줄이 생겨났다.

그놈의 WAO! WAO만 아니었더라도 미국은 그저 '무법자'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그 뒤에 천천히 관계 계선을 위해 힘써나가며 동반자의 입장에서 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을 위상석의 판로와 WAO 등급제 때문에 비굴한 종놈마냥 '무법자'의 앞에서 허리를 숙여야만 했다!

셀든 임시 대통령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화를 다스리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써야만 했다.

최고위 이형종이 보여준 파괴력은 미국의 한 주, 작은 나라 하나쯤은 하루면 작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나타날지 모르는 최고위 이형종에게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는 '무법자'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등급도 도와준다고? 미쳤는가? 2등급 국가에는 최고위 이형종을 잡기 위해 최고위 이형종을 붙여준다지 않나. 하나만 날뛰어도 도시가 박살 나는 판국에 둘이서 손잡고 날뛴다고?

모르긴 몰라도 그 나라 대통령은 그날 이후 대통령직에서 사임해야 될 거다.

……잠깐, 대국민 발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가정에 셀든 임시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짜보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VTS에서는 유화연은 유영은의 딸이 아닌 분신체로 되어있었지.”

“그렇습니다.”

“……방금 떠오른 생각이오만. 만약, 정말로 만약에 말이오. 유영은 대통령이 대외에 알려진 것처럼 '무법자'와 장모 관계가 아닌 유화연과 마찬가지로 '무법자'의 연인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될 거 같소?”

“어…….”

“VTS를 만약… 유영은 대통령이 일부러 흘린 거라면?”

“…….”

“유영은 대통령은 작년 여름 즈음에 갑작스레 아름다워졌다는 보고가 있었지 않소? 혹시 그것이…….”

셀든 임시 대통령은 자신의 머리로 시뮬레이션해본 상황이 자기 목을 조이는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참모진들은 셀든 임시 대통령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눈치챈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사라져버렸다.

VTS의 주된 내용은 유영은과 유화연은 모녀 사이가 아닌 쌍둥이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모녀지간이라면 한국의 윤리 정서상 허락되지 않는 관계지만 그게 만약 자매라면?

그리고 VTS를 저 멍청한 CIA 요원들에게 일부러 슬쩍 흘린 거라면?

“헉! 그, 그렇다면 유영은 대통령의 목적이란게?!”

“유영은 대통령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말입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참모들의 이야기에 셀든 임시 대통령도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힘겹게 말했다.

“……방울이 아니라 목줄이겠지. 우리 미합중국의 목에 걸 개 목줄….”

대통령의 침중한 목소리에 회의실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와 비슷한 일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러시아 등 힘 좀 있다 하는 서구 열강의 심장부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각하.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아, 그렇게 보이나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곤란한 일이군요.”

얼마 전 정시하에게서 극비리에 설계했던 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분이 날아오를 듯이 좋아진 유영은이었다.

정시하와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 하더라도 서구 열강이랍시고 콧대를 세우는 코쟁이들이 향후 10년간은 한국을 절대 터치 못할 것이다.

10년 후? 위상석 공급과 WAO라는 천하쌍검을 쥐고 있는 우리 서방님이 계신 한국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심복에게도 비밀로 하고 추진한 강대국 개 목줄 채우기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재차 떠올린 유영은은 입꼬리를 슬쩍 당겼다.

그 모습에 총리와 보좌관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영은은 신경 쓰지 않고 표정을 관리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쳤다.

총리가 가져다준 발표문에서 이상한 점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해보았다.

이제 저 문 뒤에 서 있을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 * * *

============================ 작품 후기 ============================

크라켄은... 딱히 오징어나 문어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인류가 상대하지 못할 전설상의 두족류 해양 괴수를 총칭하는 단어로 보는 게 알맞을 겁니다 ㅇ_ㅇ

크라켄의 어원은 독일의 Krake라는 문어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고 여러 매체에서는 크라켄을 다리 많은 바다 괴물로 표시하지요.

여기서는 그냥 해안가 설정에 따라 문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해안가에 오징어라니... 이상하잖아요 ㅎㅎ

483편부터 489편까지의 소제목을 수정했ㅅ브니닷

그리고 쿠폰 감사감사 굽신굽신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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