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8 메리아놀을 찾아서 =========================================================================
미호가 새끼 여우였을 때, 물론 지금도 나이가 많다는 건 아니지만 나랑 처음 만난 당시의 미호는 에너지 이터, 위상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버리는 특급 재해 이형종으로 지정된 종種이었다.
처음 만난 그 날 나와 화연이의 손에 사로잡힌 미호는 그 희귀함에 에너지 이터 연구에 관한 샘플로 제공되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호는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어 죽기 직전이 되었고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간 내가 미호를 데려오게 된 거다.
그 뒤에는 뭐… TP를 먹이고 밥도 먹이면서 키우던 게 지금 이렇게나 큰 거지.
그때 굶어 죽을 뻔 한 기억에 식탐을 부리는 건가 싶어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배가 뽈록 튀어나온 미호에게 물었다.
“미호야.”
- 웅?
“너 혹시 어렸을 때 굶어 죽을뻔해서 이렇게 식탐을 부리는 거냐?”
- 나 굶어 죽을 뻔했었어?
엥? 기억 못 해? 아직 1년밖에 안된 일인데… 설마?
“나랑 처음 만났을 때는 기억나?”
- 응! 주인님한테 무지무지 맛있는 냄새가 났었어! 그래서 주인님한테 매달렸는데 주인님 손에서 무지무지 맛있는 맛이 났었어!
내 손가락을 쪽쪽 빨던 그때를 말하는 건가 보다. 그걸 기억하는걸 보면 연구실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고 있을 텐데….
딱히 죽는다는 위기감은 없었나 보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너 그때 위험했었어."하고 상기시켜줄 필요는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호는 갑자기 배시시 웃으며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내 품에 쏙 안기더니 무언가를 바라는 얼굴로 날 보며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 주인님~.
얼씨구. 코맹맹이 소리까지? TP를 먹는 이야기가 나왔더니 먹고 싶어졌나보다.
“왜?”
- 나 TP 좀만 주면 안댕? TP 먹고 싶어졌어!
역시나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 미호는 저번에 막 떼쓰듯이 조르다가 프랑한테 버릇없다고 크게 데여서 그런지 조르는 게 무척이나 애교 넘치고 귀엽게 변했다.
일곱 개의 꼬리를 정신없이 살랑이는 걸 보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글쎄~ 줄까 말까~.”
- 아잉~ 주인니임~ 쪼끔만 주면 나 말 잘 들을게. 응? 주인님이 하는 말 꼬박꼬박 잘 들을 테니까~.
“안 줘도 미호는 말 잘 들었는데?”
- 어, 어? 우웅. 그럼 앞으로 주인님 말 잘 안들으면…… 이, 이게 아닌데.
귀엽기 짝이 없어서 조금 놀려보고 싶은 마음에 툭 던진 말이 미호에게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킨 거 같다.
이 녀석, 힘만 세고 머리만 좋아졌지 하는 행동은 진짜 어린애랑 똑같다.
“좋아. 줄게. 단, 조건이 있어.”
- 우와! 뭔데뭔데?! 나 무지무지 잘 할 수 있어!
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는 말에 얼마나 안달을 내는지 여기서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간 날 덮칠 기세다.
“별거 아니야. 앞으로 나하고 프랑, 화연이, 누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맛있는 거 줄 테니까 같이 가자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 것.”
- 안 갈게!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외치는 모습이 왠지 못 미더워서 설명을 더 붙였다.
“미호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무지무지 맛있는 거, TP보다 더 맛있는 걸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 어… 안돼?
헐, 이 녀석이? 녀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강한데, 나쁜 짓 하면 혼내주고 돌아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눈에 뻔히 보인다.
“세상에는 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많아. 그리고 찾아보면 미호보다 센 사람도 많고.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나랑 두 번 다시 못 만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
- 아, 안 괜찮아! 안 따라갈게요!
나랑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지 미호는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어째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면 위험하다는 걸 깨닫기보단 날 두 번 다시 못 볼 수 있다는 말에 더 겁을 먹은 거 같지만…. 뭐 의도했던 경각심 주기는 성공한 거 같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미호의 꼬리를 보고 녀석의 앞머리를 쓸어넘겨서 이마에 뽀뽀를 해주니 경직이 차츰 풀려간다. 그리고 손바닥에 TP를 조금 뽑아내서 녀석의 입 안에 흘려 넣어주자 두 손을 뺨에 대고 행복한 얼굴로 몸을 배배꼬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음 목적지는 강원도의 태백산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태백산도 꽝이었다.
대만에서 제주도까지 날아갈 땐 주변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속도를 내면 됐으니까 1,000km 정도 되는 거리를 1시간 정도 만에 주파할 수 있었지만, 주변을 살필 것도 많고 가는 길에 눈에 띈 고위급 이형종을 모두 잡다 보니 지리산에서 태백산까지 오는 데는 3시간이나 걸렸었다.
그리고 태백산에 도착한 뒤에는 쉬지 않고 하늘에 달이 떠오를 때까지 태백산과 태백산 근처의 높다 싶은 봉우리를 모두 뒤지며 고위급 이형종의 씨를 말렸지만, 문명의 흔적 같은 건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 주인님 배고파~.
두 번째도 허탕이란 생각에 약간 지쳐서 태백산 정상에서 어둠에 잠긴 산기슭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미호가 배고프다며 내 등에 매달리면서 칭얼거린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대형 홀 테이블을 만든 뒤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음식을 꺼내놓자 미호가 신난다는 얼굴로 음식을 먹기 좋게 배치한다.
=정말… 신기한 땅입니다.=
신경을 건드리는 야릿한 향기를 풍기는 알케마는 내가 꺼내놓는 음식을 나르다가 고산식물로 가득한 정상을 쓱 돌아보며 말했다.
“어떤 게?”
=크기는 벨티칼 산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이토록 좁은 땅에 위상력의 진원이 이렇게나 많은 게 신기합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알케마의 말로는 태백산의 정상에도 진원이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위상력의 자연 증가가 다른 곳에 비해 3배가량 빠른 거 같다.
대충 10시간에 1씩 증가하는 게 3시간에 1씩 증가하는 기분이다. 하루에 8, 한 달이면 240, 1년이면 2840?
고작 1년이면 2800이나 늘어나니 성장에 제한이 없는 이형종의 특성상 1년이면 최하위에서 중상위까지 진화가 가능하단 말이 된다.
“와. 이렇게 생각하니까 엄청나네.”
=종족의 미래는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좌우됩니다. 진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이 가시지요?=
“응.”
하지만 중상위부터는 필요한 위상력의 요구치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중상위에서 상위가 되기 위해서는 20년이 필요하고 상위에서 고위가 되기 위해서는 200년이 필요하다. 자연적인 위상력 흡수로 고위 이형종이 되기란 무리라는 말이다.
넷이서 먹을 음식을 잔뜩 꺼내놓고 저녁을 먹으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 섬에 있는 네 곳의 신전에는 네 분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중 11시 방향의 신전에는 대지의 주인을 묘사한 벽화가 있지요.=
히아리드가 말하니까 생각난다. 제일 처음 나한테 덤빈 히아리드의 자매가 지키던 신전. 거기에 랑그 드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하늘의 주인께서 이끄는 플라비우스는 대해의 주인과 짐승의 주인께서 거둔 종족들과 큰 트러블을 일으켰었습니다. 그 일로 많은 수의 루크랑과 사비, 플라비우스가 죽었지만 메리아놀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은 메리아놀의 영웅들이 이 땅의 곳곳에서 살아가다 삶을 마쳤다는 거야? 그래서 진원이 생겨난 거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위상 세계에 강제소환이 됐을 때 거인 프랑이 죽었던 장소가 생각난다.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위상력을 상당히 흡수했었지.
그땐 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이 거인 프랑의 위상력이 진원眞原화 된 게 아니었을까? 내가 거의 2일 가까이 머물 동안 위상력이 퍼지지 않고 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알케마는 '과연!'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상황이 진원이 생성되는 계기가 된다는 거다.
이거,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대단한데? 이곳에 전진기지를 만들면 낮은 클래스의 능력자들은 E 클래스까진 금방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잘만 이용하면 그랑 블루 레이드 팀에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돌아가면 연인들한테 여기서 알낸걸 알려줘야겠다.
* * * *
국정원의 최중심부에 있는 한 사무실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건 사고의 처리에 고심 중인 한 사내가 있었다.
최치우 국가안보실장.
서방의 여러 나라가 독재자라 칭하길 서슴치 않는 초超 장기 집권의 산증인인 유영은의 최측근이자 몇 안 되는 심복 중 한 명이다.
유영은이 자신의 오랜 집권은 그의 피나는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여길 정도로 유능한 인재다. 그런 그에게 있어 작년 한 해는 수많은 진흙탕과 아수라장을 겪어온 그에게도 버거운,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시작은 1년 전, 그의 기준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코흘리개 하나가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위상 세계에서 생환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생환하는 걸로 끝났다면 그에게는 그저 흔한 일 중 하나로만 기억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코흘리개가 나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마음속 깊이 모시고 있는 분께서 그 코흘리개에게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지.’
그저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자세하게 감지를 할 수 있는 어린 감지 능력자일 뿐인데.
하지만 최치우는 금방 자신의 판단을 수정했다. 그분께서 지시하면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분의 마음에 들만 한 결과물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그분께 입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대통령님의 은밀한 구두지시에 정예 요원을 붙여 그 꼬마의 일거투일수족을 비밀 경호를 이유로 감시하던 최치우는 몇 번의 보고서를 받으면서 제 생각이 틀려도 단단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꼬마는 자신이 눈을 잠시 뗄 때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위상력을 쌓아가더니 급기야는 중소 레이드 팀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위 이형종을 잡아버린 거다.
그것도 아무 도움도 없이 단신으로.
그때부터가 시작점이었다.
꼬마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더니 우리나라와 오랜 시간 앙숙으로 지내오던 일본을 깔아뭉개고 최고위 이형종을 혼자서! 치워버리더니 홀로 전 세계와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미국을 어린아이 손목 비트듯이 수월하게 무릎 꿇려버렸다.
그즈음 정계에서는 그를 지칭하는 하나의 은밀한 단어가 생겨났다.
'왕'이라고.
어느 정도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는 하나같이 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고약한 성질머리가 미친개 뺨치는 '왕', 그리고 그런 '왕'을 애지중지 감싸고 도는 대통령이다. 괜히 그의 눈앞에서 깔짝거리다가 밟히면 뼈도 추스르지 못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국내 재벌 1위인 수성 그룹이 국내 유수의 레이드 팀을 통해 '왕'에게 수작을 부리려던 게 들통나서 단두대에 목이 걸렸다가 겨우 풀려났던 건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의 암살 미수 건이 아니었다면 수성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말 그대로 사라졌을 거다.
그 일로 수성 그룹이 여타 그룹들과 담합해서 해처먹던 위상 에너지 플레이트 공급 사업에 그랑 블루가 뛰어들어 박리다매식의 사업전략으로 그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독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입은 대기업들의 피해액 총합이 300조 원에 달한다고 들었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때려 부수는(것처럼 보이는) 무식한 행보에 많은 정·재계의 인사들은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다.
그건 최치우도 마찬가지였다.
꼬마, '왕'이 일본을 깔아뭉갰을 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최고위 이형종을 홀로 잡아버렸을 때 더는 놀라지 않겠노라 다짐했거늘, 저 대단한 미국이 '왕'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최치우는 책상에 엎드린 채 한동안 머리를 들지 못했었다.
그는 부끄럽게도 그제야 자신의 주인이 어째서 '왕'에게 푹 빠져버렸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을 두고 갖은 호칭을 붙이지만, 최치우는 장담했다. 그 미친 꼬마를 칭하는 단어로는 인외천人外天,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쾅!
“국장님! 큰일입니다!”
“…뭔가.”
문을 박차고 뛰어든 수하를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못마땅하게 노려본 그가 물었다. 침착하기로는 자신에 버금가는 저놈이 저렇게나 예의를 잃을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쌀국에서 VTS를 입수했다는 첩보입니다!”
“뭣?!”
최치우는 머리를 망치로 후드려치는듯한 충격에 벌떡 일어섰다. 그 반동에 앉아있던 의자가 내동댕이쳐졌지만, 그의 머릿속은 뒷일에 대한 계산으로 무시무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놈들이 그것을 입수했다고? 어떻게? 무슨 수로?
그놈들은 자신보다 '왕'의 성격을 잘 알면 알았지 절대 모를 리 없다. 왕의 지랄 같은 성격을 다이렉트로 받았던 나라니까! 그런데도 '왕'의 장모의 약점을 잡았다고?
미쳤나?
얼마 전만 해도 임시 대통령이 극비리에 방문해 '왕'에게 고개를 숙였지 않았나.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건드렸다간 터져서 반경 수백 킬로미터를 날리는 폭탄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꼴이다.
쌀국은 저 먼 나라 미국을 은밀히 칭하는 코드명이다. 그리고 VTS는 VIP TOP SECRET의 약자.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은 이 세상에 단 다섯 명만 알고 있는, 유영은의 정치 생명을 목줄로 잡고 있는 유화연의 출생의 비밀이다.
아니, 다섯 명만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 증거로 자신이 신임하는 눈앞의 수하도 VTS의 숨은 뜻은 자세히 모르지 않는가.
“즉시 대통령님과 독대를 준비하게.”
“예!”
그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양복을 입으며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최치우는 유영은의 집무실에서 그녀와 독대하며 차를 타고 오면서 수하에게 들은 정보를 정리해 그녀에게 보고했다.
분명 간단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이라면 이미 일의 경중 정도는 보고를 듣는 순간 파악했을 터인데 어째서 저리 느긋하신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자신이 도착했을 땐 티타임이었는지 향이 그윽한 홍차를 즐기던 유영은에게 최치우는 긴장된 마음에 진심을 담은 충언을 드렸다.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면 옆 나라의 윤리 의식 사건과 겹쳐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
최치우는 요즘 들어 부쩍 아름다워지신 자신의 주인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답답하다. 1분 1초가 아쉬운 급박한 상황에 무엇을 고민하신단 말인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기신 모습마저 여신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일이 밝혀질 경우의 파장을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렸다.
“이 일이 밝혀질 경우 국내외의 우환에 경제가 무너지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 직전인 일본이 물귀신 작전으로 우리 정부에 들러붙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각하의 명성에 크나큰 누가 되며 국민의 지지가 한순간에 꺾일 가능성도 없잖아 있습니다. 야당의 반응이야 둘째치고 '왕'의 성격상 틀림없이 분노할 게 뻔한데 그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한시라도 빨리 '여왕'과 독대해 대처를….”
“최치우 국장.”
“…예.”
“국장과 함께 참 오래 정계에 몸을 담고 있었군요.”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이야기에 최치우는 순간적으로 유영은의 말을 되묻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종으로써 결코 해선 안 될 실수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 마음 이해해요.”
“그러시다면 한시라도 빨리….”
“아니요. 대국민 발표를 하겠습니다. 총리실에 연락해 준비토록 하세요.”
“각하!!”
이 시기에 대국민 발표라니! 그걸 뜻하는 바를 읽은 최치우는 아까와는 비교할 바 없는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이미 늦었어요. 그들이 그것을 입수한 이상 '왕'의 '도덕'적인 면과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만 쉬고 싶군요.”
최치우는 그제서야 눈치챘다. 자신의 오랜 주인의 눈빛이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크게 자책했다. 반 백 년 간 뛰어난 정치술로 이 나라를 누구도 얕보지 않는 강대국의 반열에 끌어올리신 분이다. 이렇게 덧없이 스러져갈 분이 아니신데…!
이건 '왕'의 움직임이 불러일으키는 난폭한 태풍에 대처하느라 주인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을 소홀히 한 자신에게 내려진 벌이다.
유영은은 눈앞의 심복이 엉뚱한 상상으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지친 건 맞지만 그런 의미로 지친 게 아닌데.
사랑하는 어린 신랑님과 살을 맞대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150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그 마약과는 비교도 못 할 쾌락을 주는 사랑을 나누지 못한 게 무려 150시간이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150시간이 넘게 남은 걸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져 정무가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다.
정신적으로 지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더군다나 신랑님이 얄미운 친구와 딸내미를 데리고 반나절 간 5층 침실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정시하의 가시가 돋친 질투 문자에 자신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아끼는 찻잔마저 깨버렸을 정도다.
이대로는 안 돼.
이렇게 일에 치여 살다간 언제까지나 뒷방 마님 꼴일 거야. 나도 이제 그만 쉬면서 사랑하는 어린 신랑의 품에서 애교를 피우면서 편히 지내고 싶어!
유영은은 강렬한 욕망이 담긴 위압감을 펼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흐름에 따라 흘러내려 가야 할 때가 왔다면 타의가 아닌 자의로 흐르고 싶어요. 실행하세요.”
“……예.”
최치우는 죽을상을 쓰며 억지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로서는 유영은의 진실된 목적은 꿈에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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