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83화 (483/517)

00483  메리아놀을 찾아서  =========================================================================

자문단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처방이 부족한 부분은 없었나 되새기고 있으니 누나가 안경을 벗어서 가슴 포켓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있다 올 거야?”

프랑이나 화연이만큼 풍만하진 않지만 꽉 찬 C컵에 정장 조끼를 입고 있어 그렇지않아도 빵빵한 가슴이 안경 덕에 더욱 강조되며 내 시선을 잡아끈다.

“……이번에는 10일 정도 조사해볼 생각이야. 저 녀석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저번처럼 공간 도약으로 빠르게 수색하면서 돌아다니진 못할 테니까.”

“알았어. 그럼 이쪽은 우리한테 맡겨두고 저쪽에서 힘내.”

내가 누나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으니 땅바닥을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며 날 훔쳐보던 암흑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이잉. 나도 쥔님 따라가고 싶어여.=

암흑이는 히아리드와 미호. 거기에 알케마마저도 따라가는데 자기만 못 간다는 사실에 발을 동동굴리며 안타까워하더니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안돼. 이번에는 넌 저택을 지키면서 문제가 생기면 프랑을 도와줘.”

=저번에도 안 데려가 줬으면서 "이번에는"이라니 너무하잖아여!=

“무슨 말이야? 저번엔 너랑 나랑 둘이서만 들어갔었잖아.”

=……아 맞다. 그랬지 참.=

녀석은 내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더니 아방한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때린다.

“…이번에는 진짜 필요해서 저 셋만 데려가는 거야. 암흑이는 저택에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렇게 체면치레 안 세워줘도 돼야! 제가 안 도와줘도 마님들은 알아서 잘한다구여! 저도 따라갈래여어! 저도 데려가 줘여어어~!=

이 녀석이… 미호가 떼쓰는 걸 보고 배운 건가. 누나도 내 신발 위에 올라타서 땡깡을 피우는 암흑이를 보며 기막혀한다.

이대로 두고 떠났다간 삐진 암흑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녀석을 집어올려 달래기 시작했다.

“스케일러를 감독하려면 현실에 너희들 중 하나는 남아줘야지. 나하고 히아리드도 미호도 알케마도 전부 없어지는데 너마저 없으면 스케일러들은 누가 감독하냐.”

=그럼 히아리드가 남는 게 좋잖아여! 날아다니는 하얀 폭격기라고 불리는뎅! 프랑 마님도 있고!=

=크흠.=

하얀… 폭격기? 언제 그런 별명을 얻은 거야? 황당해서 히아리드를 돌아보니 녀석은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내 시선을 외면한다.

아무리 달래고 달래도 따라가고 싶다고 끊임없이 징징거리는 암흑이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프랑한테 넘겨주자 프랑은 두 손을 이용해 암흑이를 손바닥 속에 가둬버린다.

“암흑? 나는 화연을 도와서 회사에서 일해야 해. 암흑이 스케일러를 지켜봐 줘. 응? 그럼 맛있는 거 해줄게.”

=제가 미호처럼 먹탱이인줄 아세여?!=

- 내가 뭐!

에휴.

프랑의 손에 갇힌 암흑이는 얌전히 있던 미호를 걸고넘어지며 울상을 짓고 날 빤히 바라보는데, 그 애타는 시선을 피하면서 지상 1m 높이 정도에서 둥둥 떠 있는 에리식과 카라식에게 말했다.

“에리, 카라. 너희들은 평소에 저택 주변을 순찰 다니다가 만약 누나가 도와달라고 하면 전력으로 도와줘.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은 죽이지 말고 어쩔 수 없이 공격해야 할 상황이 다가온다면 팔다리만 날려서 무력화시켜. 목숨만 붙어있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치료해줄 수 있으니까. 알아들었어?”

[분부대로.]

[예.]

뭘 물으면 기계처럼 똑같이 대답하던 두 녀석은 미호의 사회성 교육이 효과가 있는 건지 서로 다른 대답을 한다. 은근히 느껴지는 감정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서 좋다는 기색이다.

그나저나 겉만 봐서는 4m짜리 거인처럼 보이는 두 녀석이지만, 검은 포댓자루 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데다 몸이 퍼렇고 반투명하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니 꼭… 유령 같긴 하다. 회색 구름이 하늘 가득 껴서 우중충하니까 더 그런 거 같다.

에리와 카라가 현실로 넘어와 저택 주변을 날아다니니 대낮에 귀신이 나타났다며 메이드 누나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고 소피아가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보니 이해가 간달까.

“…로브를 다른 색으로 구해줄 걸 그랬나? 시커먼 색이 좀 이미지에 안 좋은 거 같네.”

“그렇죠? 에리한테는 하늘색 로브를 주고 카라는 은회색이 어울릴 거 같은데 어떠세요?”

예전부터 칙칙한 검은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프랑이 반색하며 내게 몸을 가까이 붙여온다. 프랑이 가까이 붙자 암흑이가 프랑의 손가락 틈새로 손을 뻗어 내 소매를 잡으려 애쓰는 게 애처롭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두 녀석의 로브 색은 프랑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고 뒷짐을 지고 날 바라보고 있는 누날 향해 마지막으로 당부를 남겼다.

“누가 인어의 눈물가지고 시비 걸어오면 그거 다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말해줘.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하나하나 일러 바쳐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상처없이 다녀오기나 해.”

“응. 그럼 가볼게.”

“그래~.”

시설 관리인 아저씨한테 쉘터의 시설 정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고 수고했다고 말해준 뒤에 쉘터를 거두어들인 뒤 분수대 근처에서 서성이는 알케마를 손짓해서 불렀다.

“다들 준비 끝났지?”

- 응!

=예.=

“가방도… 다 챙겼군.”

이번에는 내 예감에 따라 세 녀석과 함께 들어가는 거기 때문에 녀석들도 나와 헤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하게 했다.

녀석들의 등에 짊어진 백팩이 그 안전장치인데, 가방에는 에너지바 형태의 휴대용 간이 식량 6달 치와 약간의 식수, 상처를 입었을 때 치료하기 위한 구급 세트와 지도 등이 들어있다.

또한, 헤어졌을 때를 대비해 별을 보고 위치를 가늠하는 방법과 만날 장소를 20곳이 넘게 지정해놓고 헤어졌을 때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서 기다리기로 약속했으니 이만하면 안심해도 될 거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내가 말했던 곳으로 이동하도록 해. 미호, 헤어졌을 때 어디로 이동하라고?”

- 현재 위치에서 지도에서 표시된 가장 가까운 지점!

“그래. 미호와 히아리드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알케마가 제일 문제야. 그러니 내가 없을 때 문제가 생기면 둘이 알케마를 잘 챙겨.”

- 응!

=예.=

자신이 짐 덩어리라고 생각이 드는지 알케마가 살짝 울상을 지었지만, 일부러 외면했다. 녀석은 '내가 이러려고 서하님을 따라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어쩌구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지금 알케마의 포지션은 스케일러 관리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화연이와 영은이한테 지금 위상 세계로 출발한다고 문자를 보내주고 배웅 나온 누나와 프랑, 수한과 소피아한테 손을 흔들어주었다.

거의 한 달 만의 진입이군. 이번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살짝 기대된다.

시커먼 빛과 함께 일그러지며 한데 모이는 세계는 언제봐도 눈이 아프다.

우주에서 아광속으로 날아가면 별 무지개 현상이란게 일어난다는데 위상 세계로 넘어가는 것도 비슷한 거 같다. 이름 붙이자면 웜홀 현상일까나.

눈을 감고 있어도 망막을 자극하는 환한 빛을 인내하고 있으니 집 근처의 포근한 공기와 햇살이 사라지고 약간 따가운 햇볕과 비릿한 바닷내음, 그리고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 오? 우왕. 이게 바다야? 매우 넓어!

=이게 바다….=

나보다 먼저 시력을 회복했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미호와 살짝 놀란 어조의 알케마, 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바위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미호를 공간 지각으로 느끼며 주변을 훑어봤다.

저번 회차 때 고위급 이상의 이형종을 싹 쓸어버렸는데 그 때문에 파워 밸런스가 무너져서 그런지 공간 지각의 끄트머리에 핏자국이 무더기로 보인다.

- 우웅? 위상력이 막 도망간다.

=우리의 기세를 눈치챈 거지요. 미호, 조심하세요. 넘어집니다.=

히아리드의 말대로 갑자기 나타난 우리의 기세에 놀란 중하위급 이하의 이형종 들이 허둥거리며 반대쪽으로 도망간다.

어느 정도 시력이 돌아온 걸 느끼고 눈을 뜨자 새파란 하늘을 띄엄띄엄 떠도는 하얀 구름과 푸른 바다와 암석이 가득한 해안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 거무룩한 구름에서 폭포 같은 게 쏟아지는 게 보인다. 저거 스콜squall 현상인가? 신기하네.

“미호야. 저거 봐라.”

- 웅? 어… 저거 뭐야? 구름에서 안개가 흘러내려!

“안개가 아니라 비야. 저게 스콜 현상이지.”

미호가 스콜을 보며 무척 신기해할 무렵 알케마는 갑자기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기 시작한다. 뭘 먹는 건가 녀석을 돌아보니… 녀석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바닷게를 입에 넣고 우둑거리며 씹어먹고 있었다.

“……알케마. 배고프냐?”

=예? 아닙니다. 바다 게는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맛보고 있었습니다.=

- 바다게? 바닷가재보다 맛있어?

키 2.3m의 미소녀가 쪼그려 앉아 살아있는 바닷게를 생으로 씹어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굶긴 적도 없는데 왜 저렇게 궁상을 떠냐.

바다게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여덟 개의 다리를 재게 놀리며 바위틈으로 숨어들지만 알케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줘서 바위를 부수며 그곳에 숨어든 바다게를 주워 먹는다.

……뭐, 자연 오염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세계니까 먹게 내버려 둬도 괜찮겠지. 그리고 미호는 누가 먹보 아니랄까 봐 알케마가 씹어먹는 바닷게에 진한 호기심을 보이더니 한 마리를 잡아 낼름 입 안에 집어넣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히아리드는 뭐하나 싶어 돌아보니 녀석은 하늘 높이 떠 있는 넓적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이다.

“뭘 보는 거야?”

=동족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음… 동족을 구하고 싶어?”

동족이라는 말에 접시 같은 구름을 올려다보며 물으니 히아리드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하늘의 주인을 숭배하는 것이 삶의 이유인 자들. 족쇄를 족쇄라 느끼지 못하며 그런 삶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고 억압받지 않는 상황에 구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히아리드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동족애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느끼지 못한다고, 특정 존재들에게 구속과 억압을 받지 않는다고 부자유스런 삶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닌데.

냉정하다 싶은 히아리드의 반응에 조금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네 입장에서는 그런 삶을 사는 동족들한테 연민 같은 건 안 들어?”

=듭니다. 이런 삶을 느끼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동족들은 틀림없이 해방감을 느끼겠지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하 님이 저에게 하신 것과 동일한 조치를 플라비우스 종족 개개인에게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윽. 그건… 좀 무리네.”

세뇌를 위해서는 마나 비전과 마나 보이스로 지속해서 자극을 주고 뇌를 녹여버릴 듯한 쾌락을 맛보게 해야 하는데, 하늘 섬에서 날 향해 빛의 화살을 날리던 플라비우스는 눈대중으로도 대충 수백은 넘어가는 숫자였다.

하나하나 세뇌하는 것도 그렇고 정신 조작으로 그 많은 숫자를 지배하는 것도 용량 문제가 있어 안된다. 뭣보다 그중에는 남성 체도 있는데 그것들을 세뇌하는 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지나가는 ang스러운 끔찍한 이미지에 진저리를 치자 히아리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 내가 나도 모르는 양성애자의 성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죄다 세뇌해도 문제인 게, 세뇌를 받게 되면 그 영향으로 전부 내가 좋다고 미친 듯이 달라 붙어올 텐데 수백이 넘는 남성체 여성체 플라비우스가 달라붙으면… 어우. 생각만으로도 곤란하다.

그쯤 되면 아무리 이해심 높은 연인들이라지만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고 말이야.

물론 그런 위험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다. 그 많은 숫자의 플라비우스를 거느리게 되면 오로지 내게만 충성… 애정을 바치는 내 직속 사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최소 상위급 빛 속성 비행형 이형종이 수백이라니, 그야말로 하나의 국가에 버금가는 강대한 무력의 완성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자.”

=예.=

좀 난감한 기분에 머릴 긁적이면서 결정을 뒤로 미루니 히아리드는 그냥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 에퉤퉷. 맛없어!

=이 정도면 간식 삼아 먹을만한 겁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도 있고요. 미호는 입맛이 너무 고급진거 아닌가요?=

- 아니야! 알케마 입맛이 너무 싸구려인 거야! 퉤퉤!

=싸, 싸구려…!=

미호는 퉷퉷하고 계속 침을 뱉으면서 알케마에게 싸구려 입맛이라고 쏘아주니 알케마는 하얀 얼굴에 노여움이 깃들며 붉어지기 시작한다.

“다투지마라. 미호 넌 입맛이 고급인 거 맞아. 알케마도 싸구려인 게 맞고.”

저대로 놔뒀다간 다툴 거 같아 보여 적당히 중재를 해주며 히아리드의 웃음을 피해 몸을 돌렸다.

- 내가 고급이야?

=제, 제가 싸구려인 겁니까…?=

“당연하지. 미호 넌 맨날 주방장 아저씨하고 아줌마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달라고 졸라대잖아. 그전에는 엄마랑 누나랑 프랑이 해주는 맛있는 밥만 먹었고.”

사람들이 선물해주는 간식들도 죄다 고급에 식재료도 고급이니 당연히 그걸 먹고 큰 미호의 입맛은 고급이지.

“알케마 넌 얼마 전까지 반쯤 썩어가던 고기를 먹던 거 생각 안 나?”

둘 다 인정 못 하겠단 얼굴을 하길래 두 녀석의 식생활을 들먹여주었더니 할 말이 없는지 두 녀석은 서로를 조금 불만스런 표정으로 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우잉.

=으….=

“자. 그만 놀고 출발하자.”

10일간 머무를 생각이긴 하지만 무슨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이런 데서 시간 낭비는 안된다.

가야 할 방향으로 북쪽을 가리키니 셋은 내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의 수평선에는 뿌연 안개 같은 게 맺혀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미호는 지도를 외웠는지 나 안다는 모습으로 손을 반짝 들며 소리쳤다.

- 저쪽으로 가면 한국땅이 나오는 거지?! 저기로 가면 메리아놀을 볼 수 있는 거야?

“그래. 미호는 알케마 데리고 잘 따라와.”

- 응!

신체 강화를 돌린 뒤 공간의 벽 발판을 밟으며 하늘로 뛰어 올라가니 히아리드도 날개를 펴서 뒤따라 날아오고 미호도 바람을 일으켜 알케마를 낚아채서 따라온다.

=싸구려… 제 입맛은 싸구려인 겁니까…. 고향에서는 나름 고급이었는데….=

- 시끄러. 주인님이 싸구라면 싸구려인 거야!

=큿.=

내 이야기에 충격이라도 먹은 것인지 알케마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중얼거리다가 미호에게 한소리를 듣고 울컥하는 얼굴이 되었다.

녀석도 나름 종족 지도자의 딸래미라서 좋은 것만 먹고 살았을 테지만, 화식도 안 하고 조미료를 이용한 요리 같은 것도 모르는 식생활을 해오던 녀석이다. 우리 입맛에 비하면 싸구려가 맞지.

싸구려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케마는 귀엽게 눈썹을 찌푸리며 옆에서 날아가는 미호에게 물었다.

=그러는 미호는 얼마나 맛있는 걸 먹었길래 입맛이 고급이 된 겁니까?=

- 알케마는 프랑스 정통 밀푀유 먹어본 적 있어?

=밀…… 그게 뭡니까?=

생소한 단어에 알케마가 당황하면서 되물으니 미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콧김을 폭 내뿜더니 으스대며 설명을 늘어놓는다.

- 얇은 페이스트리 수십 겹 사이사이에 생크림이랑 딸기나 체리가 든 무지무지 달고 바삭하고 고소하고 맛있는 파이야! 또 터키의 바클라바는 먹어봤어? 인도의 굴랍자문은? 이탈리아의 카놀리랑 자허토르테는? 진짜 영국 푸딩 먹어본 적 있어?

폭포처럼 쏟아지는 미호의 간식 이름 퍼레이드에 알케마는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기만 한다. 아니, 바클라바나 굴랍자문은 뭐야? 그건 나도 못 먹어봤는데?

=그, 그게 다 뭡니까…?=

- 이것 중에 먹어본 게 하나도 없지? 그러니까 주인님이 입맛이 싸구려라고 한 거야!

=크….=

기분 나쁘지만 할 말이 없는지 알케마의 두툼한 도마뱀 꼬리가 기분 나쁘게 꾸물거린다.

- 돌아가면 효연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 달래. 알케마도 먹어보면 너무 맛있어서 무지무지 놀랄 거다? 아까 먹은 바다게 같은 건 비리고 딱딱하고 쓴맛이 나서 사람이 먹을 게 아니야!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꼭 먹어보도록 하죠.=

뜬금없는 입맛 타령 뒤에 미호의 입에서 음식에 대한 갖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미호는 지금까지 자기가 먹은 요리나 간식을 모두 기억하는지 알케마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음식에 대한 맛과 묘사가 얼마나 디테일한지 듣기만 하는 내가 다 침이 넘어간다. 하지만 알케마는 단순한 단맛, 짠맛, 쓴맛 정도밖에 모르는 거 같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미호 저 녀석은 나보다 더 잘 먹고 다니는 거 같네. 난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 이름이 너무 많은데.”

발판을 빠르게 만들며 하늘을 달려나가는 중에 두 녀석의 대화를 듣다가 기가 차서 중얼거렸더니 옆에서 같이 날아가던 히아리드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쿡쿡. 주방의 곽지남과 문효연 요리사는 미호가 매일매일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골치를 썩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두 요리사의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마님들도 즐거워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연습 같은 거 많이 하면 음식이 많이 남을 텐데 그건 누가 다 먹어?”

=실패작과 시험작들은 저택 가정부들에게 나눠주며 의견을 듣더군요. 모양은 조금 이상하더라도 무척 맛있기에 서로 테스트 역을 맡고 싶어 합니다.=

“그건 잘했네.”

음식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보다 그렇게 처리하는 게 좋지. 메이드 누나들의 사기도 올려주고.

“나도 돌아가면 한번 먹어봐야겠는걸.”

=서하 님께는 아펠수트루델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과자같이 바삭하면서도 여러 과일들의 새콤달콤함이 미각을 자극하는 게 마님들 사이에서도 호평입니다.=

“헤에. 꼭 먹어봐야겠네.”

미지의 맛을 상상하며 아직까지 끊기지 않는 미호의 음식 자랑을 BGM 삼아 북쪽에 있을 우리나라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 작품 후기 ============================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의 당선 축하 연설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을 했죠. 하지만 제 귀에는 내일은 핵의 태양이 뜬다."라고 들리더군요.

그걸 증명할 트럼프의 일례 하나.

사우디 왕자 - 알왈리드 탈알

네놈은 공화당(Grand Old Party)에게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도 마찬가지야

미국 대선에서 이기도 못할 거 그냥 사퇴나 해라.

도널드 트럼프

사우디 왕자나으리가 미국을 지배하고 싶으신가 보네. 아빠 돈으로 된 정치꾼 된 놈아

내가 대통령 당선되면 가만 안 둔다.

당선 후

사우디 왕자 - 알왈리드 탈알

트럼프 각하, 과거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이견 차이가 어찌됬건, 미국의 대통령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둘 다 대단하지 않나요? 그 와중에 트럼프 셀프디스 수준ㅋㅋㅋ

....CIA에서 저 잡으러 오는건 아니겠죠? 제가 갑자기 연중하면 경찰한테 CIA가 절 잡아갔다고 신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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