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82화 (482/517)

00482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

가즈오카 총리는 한 나라의 총리라는 자존심과 체면까지 버리고 무릎을 꿇었지만 얻은 것 하나 없이 잃은 것만 잔뜩인 표정으로 그랑 블루 빌딩을 떠나갔다.

일본 총리 일행이 차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말없이 조용히 서 있던 누나가 입을 열었다.

“미호야. 조금 전에 나간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었니?”

- 젊은 인간은 주인님을 무지 무지무지 무서워했어. 늙은 인간은…… 복잡해!

“복잡해? 음, 그럼 언니가 불러주는 단어에서 골라볼래?”

그렇게 말한 누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감정과 관련된 단어를 40개나 말해준다. 사람의 감정 표현 단어가 저리 많다는 건 처음 알았다….

누나가 말하는 걸 쭉 듣고 있던 미호는 그중 몇 가지를 골라준다.

“분노. 굴욕. 초조. 동요. 불안. 사색. 회한. 절망. 고통?”

- 응. 너무 복잡해서 어지러웠어!

누나는 미호에게 가즈오카 총리의 내심을 듣고 만족 듯 미소를 띠더니 포켓에서 딸기 맛 사탕을 꺼내주며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프랑도 미호의 옆에서 꼬리를 쓸어내려 주며 누날 향해 물었다.

“미호가 표현해준 감정의 흐름은 그의 의식의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응. 프랑 말대로야. 암만 비공식 회견에 우리 넷밖에 없었다지만 겨우 20살짜리 풋내기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기까지 했으니 굴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마지막에 고통은… 이해가 안 가요.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울 성격에 어째서 절망과 고통을?”

“그야 별 소득 없이 되돌아가게 됐으니까. 이걸로 내각 의원들한테 공격받을 빌미를 주게 됐으니 그런 게 아닐까?”

그건 누나의 말대로였다.

총리가 다녀간 뒤에 영은이가 전화를 걸어오며 어떻게 됬냐고 물어보길래 방금 있었던 일을 그대로 들려주자 일본은 먼저 정부에 선을 대서 사법 거래가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를 영은이한테 물어보았다고 했다.

영은이는 대외로는 내 장모에 한 집에서 같이 살 만큼 사이가 좋으니 나에 대한 징검다리와 방파제 역할을 부탁한 거다.

[그 역할을 대가로 향후 10년간 자국 위상 에너지 생산량의 10%를 커미션으로 제공하겠다더구나. 말이 되니? 대마도의 공하 출현으로 인한 피해배상 때문에 수십 년은 긴축재정을 시행해야 할 판국인데 거기서 10년간 매년 10%?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일본 한해 에너지 생산량의 10%라니, 거의 8천만 TP에 가까운 수치잖아요?”

8,000만이면… 80조 원인가? 그럼 10년 동안 800조? 일본 한 해 예산이 얼마였지?

혼자 속으로 셈을 해보다가 일본 예산이 어느 정돈지 궁금해서 컴퓨터로 찾아보니 130조 엔 정도라고 나와 있었다. 그중 8조 엔 규모라면 상당히 크다.

[응. 그 양에 혹한 참모단과 국토에너지부 장관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냐고 긍정의 뜻을 비치더구나. 내가 서하랑 사이가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여긴거야.]

“그래서 거절했죠?”

[당연한 거 아니니? 내가 왜 서하한테 밉보일 짓을 해야 하니? 그걸 받아들였다가 서하가 알게 되면 펄펄 뛸게 뻔한데. 그래서 서하의 분노가 정부를 향하면 참모진들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더구나.]

어쨌든 가즈오카 총리는 정말로 다급했는지 귀국하자마자 반쯤 썩은 얼굴로 전 세계를 향한 사죄의 뜻을 발표했다.

80년 전에 있었던 감지계통 특수 능력자들의 납치에 가까운 협박과 회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무가 뿌리를 뻗어 나가듯이 퍼져있던 대일본제국광명회의 치부를 낱낱이 공개하고 751 연구소의 실체 및 공하의 출현까지 모두 인정하는 것으로 향후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미국과 러시아 등의 사찰을 감내하겠다고 했다.

또한, 그 연구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하며 해당 기관과 일말이라도 연계된 부처는 모두 폐쇄 조치를 취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구소에서 희생된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해 1인당 10억 엔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였다.

가즈오카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일본 비밀 첩보 기관인 대일본제국광명회의 존재를 공표하고 그에 동조한 우국 신민회라는 고위 정·재계 인물들의 당을 밝혀 그간 해왔던 악행을 모두 시인한 거다.

그 발표를 들은 일본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그렇지않아도 경제 침체의 여파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거리의 노숙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 정부 재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에 국민들이 결국 폭발한 거다.

“잘못은 네놈들 정치꾼들과 재벌 기업들이 저질러놓고 책임을 우리 국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거냐!!”

끝까지 화가 난 국민들이 선택한 것은 시위가 아닌 폭동이었다.

정부 청사 앞에는 연일 쇠파이프나 못을 박은 각목에 화염병을 동원한 폭도들이 날뛰니 일본 정부는 그들을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했지만, 분노에 눈이 멀어 폭도로 변한 시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경찰도 폭도들에게 호응하며 도리어 폭동에 가담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사태가 겉잡을수 없이 악화되자 일본 내각은 최악의 수를 선택해버렸다.

군대. 자위대를 투입한 거다.

자위대의 투입으로 거친 폭동 진압 도중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도쿄는 광기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광기 전염되기라도 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도쿄 주변의 도시에도 전염되며 폭동은 일본 전체로 번져나갔다.

연일 시커먼 연기를 피워올리며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일본의 대도시에 빠짐없이 펼쳐지고 그 장면이 외신 기자들을 통해 전세계에 방송되니 그렇지않아도 위태위태한 일본에 마무리 일격을 넣는 집단이 나타났다.

세계 3대 국제신용 평과 기관, 영국의 피치 IBCA. 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서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의 A+에서 BB-까지 무려 8등급이나 내려버린 거다.

S&P는 일본의 급격한 국가 신용등급 하락 이유로 외환 위기를 불러일으킨 일본 내각의 대처능력, 이형종 발생 위험 국가, 국가 부패지수 고등급, 유일한 WAO 3등급임을 꼽았다.

덩달아 국가 부패지수가 급상승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이자 여행자가 들러서는 안 될 나라 7위에 올랐는데 이 수치는 치안이 열악한 남아프리카 빈민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렇게 국가 신용등급이 아프리카 극빈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진 데에 일본의 국민들은 더욱 분노해 나라 전체가 폭동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이 일을 두고 세계의 유수한 경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1인당 GDP는 고작 2달 만에 34,000달러에서 12,00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겁니다. 판단 한번 잘못해 제대로 쪽박을 찬 거죠.”

“그 쪽박도 부서질 판국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려도 이보단 못할 거에요.”

“이 일은 모두 한 명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냐고요? 당신은 절 죽일 생각입니까?”

미국의 유명 국제 정치 전문가는 취재를 나온 기자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든 그를 건드리든 죽는다는 결과는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럽게 죽느냐의 문제지요. 정답 말입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궁금하다면 대통령 전용 병원(National navy medical center)을 방문해보세요. 산채로 말라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니 일본에서 재산 좀 있다 하는 부자들, 능력자들은 빠르게 일본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급격하게 유출되는 외환과 능력자의 이탈을 어떻게든 막아보려했지만 기득권층에 속하는 그들을 잡을 수단같은건 남지 않았다.

침몰하는 배에서 사이좋게 죽느냐 아니면 혼자라도 살기위해 배에서 뛰어내리느냐. 그들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거다.

펀치 몇 대를 먹였다고 다리가 풀리면서 제풀에 고꾸라져서 겔겔거리는 일본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내 생일도 한참 지나 봄기운이 완연한 5월이 다가온다.

매일매일 뉴스에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섬나라의 난리 통을 방송하는 와중에 나는 그동안 미뤄뒀던 위상 세계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이 폭망 급행열차를 타고 질주하는걸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해야 할 일이 밀렸거든.

위상 세계에 입장하기 전에 쉘터의 정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정원에 쉘터를 꺼내놓고 저택 시설 관리인들에게 쉘터의 정비를 부탁한 뒤에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니 무테안경을 쓴 누나와 프랑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나의 뒤로 조리된 음식과 생활용품이 가득 담긴 카트를 메이드 누나들이 밀고 오는 걸 보고 그쪽으로 걸어가니 누나가 조리된 음식이 가득 든 카트 10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 4명이 20일간 먹을 식사와 옷가지, 생필품들이야. 아공간에 집어넣어.”

“어. 고마워.”

요리를 못 하는 날 위해 누나와 프랑이 어마어마한 양의 식사를 만들어준 거에 고마워하며 아공간에 줄줄이 쓸어담고 있으니 누나와 프랑은 한쪽에서 대기 중인 히아리드와 알케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특히 알케마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는데 뭔가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듯한 표정이었다.

“저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하죠? 드라고뉴트? 드래고니언?”

“그냥 리저드맨 아니야? 다만 도마뱀과 인간의 비율이 90 : 10에서 30 : 70으로 바뀐 게 다르지만….”

“으~ 저 몸매 좀 보세요! 사기에요!”

“……내가 보기엔 프랑 몸매가 더 사기 같거든? 이게 뭐니. 가슴으로 미사일이라도 쏠 셈?”

“꺄아! 하, 하지 마세요~!”

…옆에서 들리는 수다를 애써 외면하며 묵묵히 준비물을 챙기고 있으니 프랑의 먹음직스럽게 부푼 호빵 같은 가슴을 쿡쿡 찌르던 누나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폭 쉬고 인증기로 스케줄 표를 띄웠다.

“니가 없는 동안 계획대로 WAO가 해야 할 일은 이번에 모집한 자문단분들과 상의해서 준비하고 있을게.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본의 등급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 되지?”

“응. 누나 판단을 믿을 테니까 소신껏 밀어 붙여봐.”

누나는 내가 믿는다는 말에 방긋하고 웃음을 띄웠다.

생일 파티를 치른 다음 날, 연인들은 인어의 눈물을 그렇게 공개해버린 건 좀 성급한 행동이었다고 작게 타박을 했었다. 사람의 욕심을 너무 무시한 행동이었다나?

그 말을 증명하듯 다음 날부터 은밀하게 누나와 화연이와 프랑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보고를 수한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일은 자꾸자꾸 많아지는데 뒤쪽으로 접근하는 인간들이 늘어나니 누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일을 만들면 주변을 세심하게 살필 수 없어 완벽하게 관리하기 힘들어진다고 잔뜩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을 만들면 나한테도 영향이 오게 될 거라며 으름장을 놓는데, 화연이는 지금도 일하느라 회사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고 프랑도 일주일에 4일을 회사에 불려가며 화연이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나도 회사에 붙잡혀서 일을 해야 할 상황이 오게 될 거라나.

그래서 이 이상 연인들한테 일감을 늘리면 안될 거 같아 국내의 저명한 교수와 박사, 석사, 학사, 경제 전문가 등 각 분야의 대가들을 모아 자문단을 만들었다.

온전히 나와 그랑 블루를 위해 일하는 싱크탱크다.

예전 그랑 블루 초기에 누나가 싱크탱크를 만들려고 시도했었는데, 그땐 내 악명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사람들이 겁먹고 모이질 않았었다. 당시의 내 이미지는 나이가 어려 사리분간을 못 하는,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와 동급으로 여기는 독재자였다나?

결국, 그때는 싱크탱크를 만드는 데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다시 한 번 자문단을 구성할 인원을 모집했다.

그 결과 그동안 내가 한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무작정 내치고 공격하는 게 아닌, 전부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이라고 사람들이 믿게끔 정보 공작을 펼친 누나와 영은이의 노력에 어마어마한 자문료와 연구비 지원 혜택까지 겹쳐지니 예전과는 다르게 국내외의 저명한 석학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저명한 석학들이 모여든 이유에는 내 행동으로 한국이 적지 않은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면서 국격도 예전과는 다르게 껑충 뛰어올랐고 무디스, S&P, 피치 그룹 같은 신용등급기관들이 한국을 총점 97.44로 국가 위험도가 가장 낮은 나라.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았는데, 그 사실이 누나랑 영은이가 해온 정보 공작과 상승작용을 일으킨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말이야 걸어 다니는 인간 폭탄이라지만 그건 날 모르는 해외의 평범한 사람들의 평가고, 지식이 쌓여서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돈을 크게 벌었다고 갑자기 큰돈이 생긴 졸부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줬다고 했다.

아무튼, 자문단 모집 요건에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50세 이상은 받지 않았고… 뭐 똑똑한 사람들만 뽑았다고 하더라.

모인 사람 중에는 의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도 있고 대학술원의 학부 회장도 있다고 들었는데 10명 뽑는데 100,000명이 모여서 가려내느라 힘들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처음 한 자문회의는, 바로 내가 대사들에게 보여주었던 인어의 눈물 공개 여파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젊음에 대한 갈망과 욕구는 비례해서 늘어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가진 자일수록 남이 가진 것에 대해 탐욕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편이지요.”

세계 정치과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인 한재진 박사(소장이라고 불리기보단 박사라고 불리길 원했다.)가 신중함이 담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안 판다고 버티면 정말 꼭지가 돌아서 저한테 덤벼드는 일이 생길까요? 능력자 연합 본부의 본부장은 그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던데.”

“하하. 회장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도 범접하실 수 없는 무력과 재력을 지니고 계시지만 눈이 돌아간 사람에게 어디 그런 게 보이겠습니까? 특히나 부호와 재벌이라면 대다수가 평생을 떠받들어지며 살아 자존심과 콧대가 하늘을 찌를 텐데 말입니다.”

“그럼 박사님들은 어떻게 해야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한재진 박사를 대신해 의한 대학교 국제 범죄 심리 연구가이자 프로파일러인 윤보헌 교수는 아란 셰이커 본부장이 했던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말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어뜯는 법입니다. 사방이 막혀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적과 마주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려 들지만, 살길이 하나라도 있다면 싸우기보단 그쪽으로 정신이 쏠리는 게 사람의 평범한 심리지요. 즉 인어의 눈물을 조련을 위한 당근으로 제시한다는 걸 은근히 알린다면 그들은 회장님의 뜻을 결코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물은 격에 맞지 않는 자가 가지고 있으면 복이 아닌 화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라며 인어의 눈물은 지금까지처럼 내가 직접 들고 다니며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과격분자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요. 막 나가려는 자들을 대비해 회장님의 요인들 주변에 엄정한 감시 체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윤보헌 교수는 수 대를 걸쳐 내려오는 재벌, 부호들을 일반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선악 체계를 가진 성격장애자로 진단했다.

“그들은 필요로 한다면 법을 무시하는 초월적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법을 어긴 대가는 사법 거래를 통해 풀어나가려 하는 경향을 보이지요. 그러하니 열 포졸이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다고, 감시 체계의 빈틈을 노린 공작이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다. 재물이 너무 많아도 성격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말인가?

“여기서 경호원이 해야 할 일은 그 첫 번째 시도를 완벽히 방어해내는 것입니다.”

“차단하는 게 아니라 막아낸다고요?”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되물으니 윤보헌 교수는 두꺼운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첫 번째 공작의 대상자를 회장님께서 피도 눈물도 없는 방식으로 철저히 단죄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 다시 인질이나 테러 같은 방식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말입니다. 과격분자들을 향한 경고는 단순한 방식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오, 그런 건 내가 잘하지. 생각보다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느껴지는 대책에 반색했더니 윤보헌 교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첫 번째 시도를 얼마나 완벽하고 피해 없이 막느냡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란 셰이커 본부장님이 나이가 일정 이상 되는 굴지의 부호들의 움직임을 감시해주겠다고 하셨으니까요. 또 사비를 투자해서 경호의 질과 양을 향상시켜놓은 상태에요.”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없는 이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말입니다. 회장님의 재력으로는 이런 말을 염두에 둘 필요 없이 바라신다면 돈을 팍팍 써서라도 경호인력을 보충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쪽이 경제 순환 효과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요.”

한재진 박사의 말대로 과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자문단의 조언을 바탕으로 연간 1조에 달하는 돈을 풀어서 능력자 파티(1탱커 3딜러 1힐러) 다수를 고용해 부모님과 할머니, 외조부 외조모님을 확실히 지킬 수 있게 경호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중요한 사람은 부모님이랑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뿐이니까

…이건 연인들한테도 비밀이지만, 그런 능력자 경호원들은 1:1 면담을 통해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가벼운 신뢰의 싹을 마음에 심어놨다.

이 싹이 자라고 자라서 활짝 피어나면 외부의 협박과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굳건한 나무가 되어 내 소중한 가족들을 지켜줄 거다.

============================ 작품 후기 ============================

물 들이칠 때 노를 못 저으면 쭈우욱 밀려나거나 혹은 침몰할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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