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75화 (475/517)

00475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

불현듯 어느 하렘 만화가 생각났다.

능력자가 되기 전에 봤던 일본 만화였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남자라면 누구나가 돌아볼 만큼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여자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애정 공세를 펼치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하렘 소재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을 불문하고 인기 있는 소재이고, 인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비슷한 내용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는 이야기인 만큼 식상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만화는 그런 하렘이라는 소재를 최대한 현실적인 시선으로 짧게 풀었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나온 주인공은 자신이 사회적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까고 말해서 자기 분수를 잘 아는 남자다. 또 자신이 좋다며 쫓아다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잘 알고 있다.

절대 자신에게 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인기남의 시간.

본의 아니게 하렘이 만들어지고 그런 하렘의 중심에서 꿈결 같은 나날을 보내며 자신에게 사랑을 보내오는 여자들과 므흣한 일을 하는 상상을 하는 와중에 주인공은 불현듯이 깨닫게 된다.

이런 하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매력적인 여자라도 선택해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만약 선택한다면? 볼품없는 내가 그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녀들의 감정이 정말로 사랑이 맞긴 한걸까?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분수를 받아들이고 모든 여자를 차버린 뒤 솔로 인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여자를 만나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그 이야기에 나온 주인공과는 다르다. 아니, 외모에서는 비슷할지도….

하, 하여튼! 나는 능력만 두고 본다면 여자 한둘쯤 데리고 사는 게 대수냐고 싶을 만큼 대단하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기꺼이 몸을 바쳐올 미녀들이 내 주변에 우글거린다.

내게 몸을 바칠 마음이 없는 여자라도 내가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취할 특별한 능력도 있다.

이미 내게 몸도 마음도 빼앗긴 여자가 셋이나 된다. 마음을 빼앗은 여자도 넷이 넘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내가 손을 뻗지 않아도 저쪽에서 내 손을 잡아당기게 되는 상황인데, 예감마저 그러라고 하는데도 손을 뻗기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요즘 들어 내 머릿속을 맴도는 가장 큰 근심을 오늘도 떠올리며, 왼손에 느껴지는 사람 피부 같지 않은 손의 감촉을 느끼며 알케마의 집으로 걸어갔다.

알케마는 드라이 에이징 기능이 달린 숙성고의 투명한 부분을 통해 숙성고의 내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나와 히아리드가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눈치를 못 챈다.

히아리드가 그런 알케마를 보고 고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열려 하길래 손을 잡아당겨 하지 못하게 했다.

알케마에게 하루걸러 하루, 격일로 블루 스톤을 먹인지도 어느새 20일째다. 그 사이 녀석은 키도 좀 줄어서 2.8m의 키가 2.3m까지 줄었고 골격 자체만 봐서는 인간과 다를 게 없이 변했다.

온몸을 뒤덮고 있던 비늘도 굉장히 흐릿해지거나 사라져서 얼굴과 몸에는 옅은 비늘만 듬성듬성 붙어있는 수준이고 머리에서 나던 솜털 같은 흰색 머리카락은 그사이 귀를 덮을 정도로 자랐다.

피부는 북방 혹한의 나라에 사는 미녀처럼 눈부시게 하얗기 그지없고 로브 속에 가려진 몸매 또한 일품이라 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울 만큼 미녀의 태가 난다.

다만 완전히 인간으로는 볼 수 없는 게, 얼굴의 다른 부분은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눈은 여전히 파충류의 그것처럼 부리부리하다. 귀도 인간과는 다르게 삐죽삐죽 솟은 비늘에 뒤덮인 용의 귀처럼 생겼다.

하지만 얼굴이 징그럽다거나 흉측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보다 훨씬 숱이 짙은 연하늘빛 속눈썹에 검은색 토르말린처럼 보석같이 반짝여서 그럴 거다.

손에는 하얀 비늘이 두터운 갑옷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다리도 사람의 발이 아니라 용의 다리처럼 생겼지만 혐오스럽다기보단 굉장히 멋지게 생겼다.

팔과 다리에만 갑주를 입고 용의 꼬리를 단 용감한 여전사 같다고 할까?

골격은 갈비뼈나 척추의 형태가 조금 다르긴 한데 인간에게 없는 꼬리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까. 골밀도 또한 강철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무겁고 단단해 보인다. 알케마의 몸무게를 잰다면 200kg은 족히 나갈 거다.

상체와 하체를 뒤덮고 있던 비늘도 거의 사라지고 피부의 일부분에만 붙어있었다. 음부를 가리고 있던 비늘도 사라져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분홍색 골짜기와 작은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아담한 가슴의 끝에도 깨물고 싶을 만큼 앙증맞은 유두가 옅어진 비늘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그때 로브 아래 축 늘어져 있던 파충류의 꼬리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좌우로 살랑살랑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빛을 반사하는듯한 반짝이는 눈동자가 순간 깜빡하더니 숙성고를 열어 사람 머리만 한 한 덩이의 소고기를 꺼낸다. 그리고 흡사 보석을 감정하는 감정사마냥 진지한 모습으로 겉면이 육포처럼 변한 소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냄새를 맡고는 침을 꼴깍 삼킨다.

=후… 후훙♪=

냄새를 맡은 알케마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더니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잠시 입을 오물거리던 녀석은 드라이에이징이 끝난 쇠고기가 무척이나 맛있는지 꼬리를 신난 강아지처럼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보통 드라이 에이징한 고기는 겉 부분을 잘라내고 속살만 먹는데… 뭐 본인이 맛있으면 그만이지.

맛나게 쇠고기를 뜯어 먹는 녀석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맛있냐?”

=후힉?! 아, 서하 님!=

“얼마나 고기에 정신이 팔렸으면 우리가 온 줄도 몰라?”

화들짝 놀라면서 되돌아서서 고기를 등 뒤로 숨긴 알케마는 당황이라는 두 글자를 얼굴에 새긴 것 같은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 숙성고가 너무 대단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안 뺏어 먹으니 뒤로 숨기지 않아도 돼.”

놀리는듯한 내 말에 알케마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슬그머니 숙성고 옆의 대형 식탁 위에 고기를 올리고 로브 자락에 손을 쓱쓱 닦았다.

그 움직임에 몸이 작아지는 바람에 팔목 위로 여러 겹으로 접어둔 소맷자락이 풀어지며 손을 뒤덮자 알케마는 허둥거리며 다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 로브는 너무 큰 거 같아서 내가 새로 하나 사 왔어. 이거 입어.”

키가 작아진 덕분에 원래 입고 있던 푸른 로브가 너무 헐렁하고 펑퍼짐해진 거 같아서 산진순도에 의뢰해 적당히 튼튼하고 입기 좋은 로브 한 벌을 만들어왔다.

똑같은 푸른색의 로브를 아공간에서 꺼내 알케마에게 던져주자… 옆에 있던 히아리드가 순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가 던진 로브를 보다가 눈에 준 힘을 풀었다.

……나중에 히아리드거도 사줘야겠네.

내가 던져준 로브와 자기가 입은 로브를 번갈아 바라보던 녀석은 곧 푸른색 로브를 훌렁 벗어버렸다.

으음!

보기 좋은데.

내가 새 로브를 줬지만, 어미인 칼카쿰이 물려준 로브는 소중한지 벗은 로브를 조심스레 곱게 접는데, 옷이라곤 그 로브 하나 뿐이다 보니 성인 주먹만 한 가슴과 꽉 조여진 복근 아래로 갈라진 계곡이 훤히 보인다.

거기에 피부에 약간씩 남은 비늘의 흔적이 햇빛을 반사하는데 진짜 멋지다. 저기서 머리에 뿔이랑 날개가 있었으면 더 멋졌을 텐데 말이야.

칼카쿰의 로브를 가지런히 정리한 알케마는 내가 준 로브를 뒤집어쓰는데 로브가 조금 작아 몸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으음.=

알케마는 로브가 몸을 조이는 감각이 익숙하지 않은지 당혹스런 표정으로 목이며 가슴 부분을 슬쩍슬쩍 잡아당겼다.

로브 위로 드러나는 알케마의 늘씬한 몸매의 감상하다 보니 문득 녀석이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속옷을… 사 줄 필요가 있으려나?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로브가 좀 작지? 몸이 조금 더 줄어들 걸 예상하고 만든 거니까 당분간 그렇게 입고 다녀. 고위 이형종의 부산물로 만들어서 튼튼하니까 좀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로브가 찢어지거나 하진 않을 거야.”

허리 아래로는 치마처럼 통이 넓기도 하고 말이지.

=알겠습니다. 새 로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며 깍지를 끼고 고개를 푹 숙이는 알케마는 이제 블루 스톤이 주는 감각에 완전히 적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알케마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인식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함을 보였다. 날 섬기기로 결심한 몸인데 내가 원해서 육체가 변화하는 것 정도야 별일 아니라나?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았으니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래서 형태가 어느 정도 바뀌어야 충격을 받겠냐고 물었더니 =사지와 꼬리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라고 쿨하게 말하더라. …쿨한것도 정도가 있지.

“알케마 넌 메리아놀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알고 있어?”

히아리드와 알케마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서 맑고 투명한 연못가에 앉아 알케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벨티칼 산을 떠날 때 알케마한테서 메리아놀의 종족적 특징을 듣긴 했지만, 그 외에는 들은 적이 없어 물었더니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히아리드를 힐끔 보고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것은… 그들은 대지의 주인을 섬기는 종족이며 거짓과 기만을 싫어하고 예지와 손재주가 뛰어난 종족이라 들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세상을 떠돌며 대지의 주인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다닌다 들었습니다만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지가 뛰어나다고?”

=예.=

예지… 그러고 보니 랑그 드란하고 처음 만났을 때도 날 보고 다짜고짜 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었지. 혹시 랑그 드란도 예지 능력이 있는 거 아닐까?

그날 나랑 만난 뒤에 내가 미래에 볼굴을 모조리 때려죽인다는 걸 예지한 거야. 그래서 그놈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한 거고.

그걸 히아리드와 알케마에게 말했더니 당연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야?”

=대지의 종족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쓸 수 있는 능력은 그분께 내려받은 거지요.=

=대지의 주인께서는 대지를 딛고 사는 존재에게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틀림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알케마와 히아리드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해봤다. 미호는 소울 링커가 종족 특성이잖아. 메리아놀이 예지를 가지고 있다면 사비하고 플라비우스도 당연히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럼 너희들 종특은 뭔데?”

=종특…이 무엇입니까?=

고유 명사는 번역이 되지 않는지 알케마는 종특이란 단어에 의아해하며 되묻길래 다시 말해주었다.

“종족 특성 말이야. 메리아놀이 대지의 주인한테 받았다는 예지 같은 거. 너흰 하늘의 주인이랑 대해의 주인한테 받은 거 없어?”

=저희 플라비우스는 하늘의 주인께 그저 쓰기 편한 도구일 뿐입니다.=

=저희도 대해의 주인께서 관심을 보이지 않으신지 오래여서 전승되어오던 특성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감정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히아리드와 조금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끝을 흐리는 알케마를 보면서 저 동네도 새삼 멀쩡하진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길 섬기는 종족이라면 자기 백성이나 마찬가 질 텐데 도구마냥 사용하질 않나 무관심하질 않나….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들려는 걸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리고 알케마에게 물었다.

“알케마. 너흰 메리아놀하고 사이가 어때? 안 나빠?”

=메리아놀들이 벨티칼 산에 머물렀을 때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들도 기껍게 머무르다 떠났다고 기록실에 적혀있었습니다. 그걸 생각해보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알케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언가가 내 예감을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어느 부분이 내 예감을 간지럽히는 거지?

마치 깜빡 잊고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날 듯 말듯 애간장을 살살 태우는 게….

- 주인니~~~임!! 이히힣힣!

저 멀리서 미호가 꼬리를 풍차처럼 돌리며 쏜살같이 날아와 내 품에 안겨드는 순간 형광등이 켜지듯 머릿속이 환해졌다.

“그래. 너희들 모두 같이 가자.”

- 우웅?

=네.=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미호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히아리드, 미호와 마찬가지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알케마. 이번에는 이 셋과 함께 위상 세계로 들어가서 메리아놀을 찾아봐야겠다.

플라비우스의 히아리드, 사비의 알케마, 미호는… 루크랑이라고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데려가는 게 좋겠다.

미호와 히아리드, 알케마에게 다음 위상 세계 입장은 너희들과 함께 할 거라고 알려주자 셋은 서로를 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제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알케마는 미호와 히아리드가 어색한 느낌이고 미호는 나와 또 놀러 간다는 생각에 좋아하고 히아리드는 어쨌든 나와 함께라서 좋다는 반응이다.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알케마에게 그때까지 쉬도록 하라고 한 뒤에 블루 스톤을 하나 더 먹이고 저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메리아놀을 찾으면 어떻게든 볼굴의 단서를 얻을 거 같다.

“미호는 오늘치 수련 끝났어?”

- 응! 오늘은 많이 안 맞았어!

매일매일 프랑과 함께 수련하는 미호는 수련이 끝나면 언제나 떡실신하더니, 오늘은 많이 맞지 않아 기분 좋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수련은 잘 돼 가냐?”

- 처음에는 프랑이 10번 때리면 10번 다 맞고 1대 더 맞구 그랬는데 이제 4번은 피할 수 있게 됐어!

…10대를 때렸는데 맞는 건 어째서 11대가 되는 거냐? 이해가 안 가는 산수 방식이지만 귀엽기도 하고 열심히 훈련하는 게 기특하기도 해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자 이히힝하고 웃으며 팔짱을 껴온다.

미호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들어주며 저택으로 돌아오니 프랑이 수한과 소피아와 함께 바삐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저택의 메이드들도 평소보다 2배나 많은 숫자가 돌아다니는 게 무척이나 바빠 보인다.

수한에게 무슨 사람들 이름이 가득 적힌 명단을 건네주는 프랑에게 다가가자 날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아! 서하. 오셨어요?”

“응. 무슨 일 있어? 바빠 보이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물으니 프랑은 내 질문에 뭔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한과 소피아도 비슷한 표정이라 내가 뭐 이상한 질문이라도 한 건가 싶었다.

별로 이상한 말은 안 했는데?

“…내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세요?”

“내일? 내일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나?”

“아이참. 내일이 서하의 생일이잖아요!”

어? 아, 그렇구나. 어떻게 자기 생일도 기억 못 할 수가 있냐며 안타까운 얼굴로 발을 동동 굴리는 프랑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생일은 매번 엄마가 챙겨주다 보니까 신경 안 쓰고 있었어. 그래서 왜?”

“왜? 가 아니에요! 내일이 서하의 생일이라고 서하의 일정이 어찌 되는지,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전화 때문에 전화기에서 불이 날 지경인 거 모르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서하의 생일을 주목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어휴!”

“지금까지 생일이라고 해봤자 아침에 미역국 먹고 저녁에 케이크랑 좀 더 내 입맛에 맞는 요리가 몇 개 더 나오고 끝이었는데.”

프랑의 핀잔에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변명하듯 말을 꺼냈지만, 프랑은 그런 식은 절대 안 된다는 듯이 두 주먹을 꼭 쥐고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런 생일은 절대 보낼 수 없어요! 서하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의 생일은 이미 평범한 생일 파티가 아닌 유명한 사교회와 마찬가지로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구요! 자신의 생일도 챙기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이 비웃을 거에요!”

프랑의 태도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내가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다. 프랑이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기사로 활동해서 그런 걸까?

“그럼 어쩌게? 생일파티라도 할 생각이야?”

“당연하죠! 영국이랑 미국에서부터 러시아, 중국, 일본에 유럽 연합에서도 대사를 보내고 능력자 연합에서도 축하 사절단을 보냈다구요. 다들 한국에 입국해서 내일만 기다리는 상황인데 어떻게 아무 일 없이 보내요?  시하 님도 내일 파티를 단단히 벼르고 계세요.”

“우와~ 그 사람들 참 할 일 없….”

“서하!”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

별거 아니라는 내 반응에 결국 빽 소리치는 프랑을 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니 뒤에서 프랑이 "위상 세계로 도망가면 안 돼요! 꼭이에요!" 하고 다짐을 약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입장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뒤따라온 미호와 히아리드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니 두 녀석도 웃기만 한다. 아니, 생일이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부산을 떠는 거야? 다른 나라에서 사절까지 보냈다고?

내 생일을 무슨 사교회의 장으로 만들 셈인가?

============================ 작품 후기 ============================

중세 영국에서는 파티를 열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기도 했다더군요. 애마의 1살 기념, 정원 리모델링 기념, 날이 더우니까 피서 기념, 주방장이 바뀐 기념 등등...

그게 전부 사교를 위해, 인맥을 만들고 자신의 세를 자랑하기 위해서였고 그 파티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음식의 질과 맛, 그리고 초대 손님들의 숫자였다고 합니다.

갖은 핑계를 대며 파티를 여는 건 지금의 영국도 똑같다네요ㅋㅋㅋ

그리고 넥슬라이스님... 입대하기 전에 바라시는 건 못 볼 거 같아요(눈물).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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