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71화 (471/517)

00471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

현 시대는 위상석에서 추출한 위상 에너지가 사회 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을 밝혀내고 그 혜택을 누리는 시대지만, 정작 위상석과 위상력의 정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의 그로키스 연구소에서 위상석의 등급에 따라 에너지의 순도가 달라지며 고위급 위상석의 경우 중하위급 위상석보다 효율성에서 족히 3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고위급 위상석의 인기가 더욱 높아진 건 당연지사, 그 덕에 내가 공급 중인 고위급 위상석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며 많은 나라가 내게서 고위급 위상석을 더욱 많이 공급받길 원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레이드 팀이 하루에 현실로 공급하는 고위급 위상석의 개수는 평균 1개다. 0개일 때도 있다.

이건 포브스가 전 세계 레이드 팀 상위 100위를 모두 합쳐서 제공되는 위상석의 양을 집계한 결과다. 전 세계를 합쳐 한 달에 고작 30개 정도밖에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쓸 곳은 많은데 공급은 적다. 아니 거의 없다.

필연적으로 고위급 위상석의 가치는 점점 올라갔고 여러 국가에서는 자국에서 생산된, 아니 공급된 고위급 위상석을 전략 물자로 지정해 국외 유출을 차단했다.

이러는 와중에 그랑 블루가 고위급 위상석의 판매에 나섰다. 내가 구해온 고위급 위상석을 조금씩이나마 풀기 시작한 거다.

그랑 블루가 매일 공급하는 위상석의 개수는 2개다. 전 세계 레이드 팀이 공급하는 고위급 위상석의 숫자보다 내가 혼자 공급하는 위상석이 2배나 많은 셈이다.

처음 고위급 위상석의 판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을 땐 엄청난 관심이 우리나라에 쏠렸다. 그 관심이란 대체로,

“전 세계에 전략 물자로 지정된 고위급 위상석을 판매한다고? 진짜로? 구라지?”

…이런 거였다.

나는 블루 스톤의 공개 시기를 생각하면서 무진장 쌓인 위상석을 처분할 의도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여러 나라는 전략 물자를 반출한다며 한국 정부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정을 했을 거다.

[세계 최강이자 최악의 폭탄이 있는 그랑 블루를 어떻게 건드려? 정부에 다 팔라고 했다가 그 폭탄이 "어쩌고 저째?!" 하면서 터지면 어쩌려고?]

…나도 이제 인정한다. 내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저질 폭탄이라는거.

아무튼 발표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랑 블루(나 말고)에 조심스레 접근하던 여러 나라는 눈앞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고위급 위상석을 사가는 순간 그게 사실이었다는걸 깨달았다.

당연히 일부러 영국과 러시아한테 전화해서 와서 공급을 시작할 테니 먼저 사가라고 했다. 미국의 일로 상당히 친해진 러시아는 물론이고 영국도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와 무역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해주는 중이니까.

영국과 러시아가 위상석을 사며 보란 듯이 자랑하자 자기들 나라에도 위상석을 팔아달라며 수많은 나라의 외교관들이 그랑 블루 빌딩에 쳐들어왔다.

그 가운데 미국은 나한테 잘못한 것 때문에 눈치를 보다가 고위급 위상석을 살 기회를 놓쳤다며 괴로워했다던가.

어쨌든 자기 나라에 위상석을 팔라는 요구와 로비가 단기간에 폭증하자 누나는 공평성을 위해(하나하나 만나주기 귀찮아서) 대기열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수많은 나라들은 차마 날 건드리지 못하고 누나가 만든 대기자 순위를 서로 앞당기기 위해 치열한 외교적 거래가 오고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에 이르는 외교관들이 그랑 블루 빌딩을 뺀질나게 드나드니 당연히 특종의 냄새를 맡은 국내 언론사들이 접근했고, 우리가 고위급 위상석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위급 위상석은 당연히 전량 국가에 판매해야 하는 게 옳은 행위라며 이건 엄연한 국부 유출이라고 그랑 블루와 날 성토하기 시작했다.

진실은 얇은 커튼 한 장에 가려지는 것처럼 얇은 커튼 너머를 보지 못하고 언론의 발표만 전적으로 믿으며 정말 내가 국부를 유출한다고 믿고 욕하는 자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인터넷 찌라시를 전적으로 믿지 않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날 두둔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아 전자와 후자가 인터넷에서 싸우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본 외국의 외교관들은 "폭탄을 건드리다니, 한국은 폭탄이 터지는 게 겁나지도 않는가?" 하며 폭탄이 터졌을 때 자기들한테 닥쳐올 화가 겁난다는 듯이 걱정스레 쳐다보기 시작할 무렵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귀를 닫고 살던 내 귀에도 들어왔다.

뭐가 당연한 거야? 내가 벌어온 거 내가 맘대로 팔겠다는데 지들이 무슨 상관인데?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행동에 기분이 나빠져서 영은이에게 내가 구해온 거 내 맘대로 팔지도 못하는 거냐고 푸념을 했더니 다음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설명문을 발표하는 초고속 행정처리의 위엄을 볼 수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현재의 에너지 자원은 위상석 그 자체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상석은 에너지이며 에너지가 위상석 그 자체인 지금, 위상석에서 추출한 에너지는 현대인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든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 뛰어난 범용성, 활용성을 가진 에너지원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덕에 현대 산업의 필수품으로 빠르게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위상석은 총 6단계로 구분되며, 현재 인류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확보할 수 있는 등급은 상위급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작년 11월경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정 서하 회장은 그 뛰어난 능력을 말미암아 고위급 위상석의 주기적인 입수에 성공하였으며, 그것들을 정부에 판매할 의사가 있다고 보여왔으나 개당 최소 가가 20조를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고위급 위상석을 정부에서는 동시에 구매할 여력이 되지 않아….]

…요약하면 고위급 위상석은 늬들이 생각도 못 할 만큼 짱짱 비싼 거라서 현물 거래로 여러 개를 사기에는 재정이 겁나 부담된다. 라는 게 설명문의 요지다.

발표장에서 여러 개를 어음으로 사고 국가에서 에너지를 정제해 외국으로 수출하면 안 되느냐고 어떤 기자가 질문을 던졌지만, 위상석 자체가 현금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위상석을 어음으로 결제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기에 동석한 다른 기자들의 야유만 들었다나.

어쨌든 위상석을 구매하기 위해 대기 중인 나라가 100여 곳이 넘는데, 저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영국같은 나라들도 (정상적으로는) 50일에 한 번씩 밖에 못사는데 우리나라는 매일매일 1개씩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대부분의 사람과 언론은 수긍했지만, 극우주의적인 인간들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국가를 위해 나머지 두 개도 기부를 하던가 해야지 돈 때문에 국부를 유출하는 건 빨갱이나 하는 짓이라는 헛소리를 싸지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설명문에 설득된 수많은 언론의 폭격을 맞고 찌그러져 버렸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또 기분 나빠져서 한국에 위상석을 이제 안 팔 거라고 이야기를 살짝 흘려서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위상석을 팔기 시작한 지 4개월. 수많은 나라가 내가 제공하는 고위급 위상석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인데 나는 공하의 출현 이후 일체의 사냥 중단을 이유로 고위급 위상석의 판매를 멈춰버렸다.

물론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위상석은 그대로 유지하고.

무수한 나라가 위상석을 사기 위해 대기하는 상황에 유일한 공급자가 파업을 선언해버렸다.

대기 중인 나라들이 갑작스러운 파업 선언에 놀라고 당황해서 무슨 일 때문인지 그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 특히 고위급 위상석 대기열의 끝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던 중국과 나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던 미국이 조사에 가장 열정적이었다.

-최고위 이형종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데 이거 불안해서 어디 살겠나….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그랑 블루가 있잖아.

ㄴ그랑 블루가 아니고 그랑 블루 폭탄 회장.

ㄴ고위급 위상석을 중하위급 위상석처럼 파는 위엄!

-VIP가 장모가 될 사람이니까 적어도 우리나라는 최고위 이형종의 위협에 자유로운 거지. 일본이나 미국을 봐.

-이번에 그랑 블루 회장이 출동한 이유가 정부에서 요청해서라며?

-일본이 병신같은 삽질 안 하고 우리나라에 바로 도움을 요청했으면 그 인명피해도 안 났을 텐데 ㅉㅉ

ㄴ해도 회장은 안 도와줬을 듯.

ㄴ도와주긴  커녕 공하랑 같이 날 뛰었을 듯ㅋㅋㅋㅋ

ㄴㅋㅋㅋㅋ

-4chan에서는 미국이랑 한국이랑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무진장 떠들어대더라.

-2chan 넷우익은 회장한테 도움받았다고 날뛰다가 개까이던데

그나마 우리나라는 나라는 존재 덕분에 최고위급 이형종에 대한 불안감이 크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는 미국에 발생한 세 마리의 최고위 이형종의 등장에 이어 일본에 나타난 네 번째 최고위 이형종의 출현에 경각심이 바짝 들고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어?”

그랑 블루 빌딩 40층, 내 집무실에서 공하의 출몰에 대해 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찾아보고 있는데 누나가 찾아왔길래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작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그동안 매일매일 빠짐없이 판매하던 고위급 위상석을 어째서 판매 중단했느냐고,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고 외교관들이 매일매일 들락거리느라 문지방이 닳을 정도인걸?”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고 큰가 보다?”

“어쩔 수 없어. 서하 니가 그동안 구해온 고위급 위상석 덕분에 부족한 에너지가 보충되고 세계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균형이 맞춰졌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며칠 전, 누나와 영은이는 일본이 저지른 행동에 엄청 열 받은 날 달래면서 751 연구소의 존재를 밝히자는 내 요구에 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 사실을 어떻게 폭로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의견을 나누었다.

“모든 걸 공개하기에는… 다른 못된 나라들이 이걸 보고 흉내 내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요.”

“그것도 생각해야지.”

“자고로 경제를 움켜쥔 자가 승자인 법이지 않니.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관련 분야의 핵심인 위상 에너지, 거기서 국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인 고위급 위상석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서하는 이미 본의 아니게 전 세계 국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봐도 무방해. 그러니….”

몇 가지 의견이 올라오고 기각되다가 나온 결론은 간단히 내가 공급 중인 고위급 위상석의 판매를 그냥 동결시켜버리는 거였다. 위상석공급을 무기 삼아 일본이 한 행동을 낱낱이 까발린다는 비교적 간단한 계획이다.

“751 부대와 같은 짓을 하기에는 두 가지가 걱정돼서 함부로 못 할 거야.”

“두 가지요?”

“하나는 이형종의 폭주. 자칫 잘못하면 제2의 대마도 꼴이 날 테니까. 다른 하나는 서하의 분노지.”

“아. 그러네요.”

누나도 영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깜빡하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751 연구소의 비밀을 알게 되면 당연히 하이브리드 연구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거야. 하지만 그 뒤에 서하의 분노가 어딜 향하는지 알게 되고 나서도 과연 연구에 호기심을 가질까?”

“오히려 자신들 목줄을 죌 올가미라고 여기겠지요.”

“맞아. 그러니 우리들이 "고위급 위상석의 공급을 정지합니다!" 하면 깜짝 놀란 나라들이 뭐 때문인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 애쓰기 시작할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은근슬쩍 이야기를 흘리면서 일본을 죽일 놈으로 만드는 거지!”

“좋네요. 흘릴 이야기도 적당히 "공하의 출현 이유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사냥을 못 하겠다" 라는 식으로 흘리면 위상석을 공급받지 못해서 애간장이 타는 나라들이 알아서 일본의 751 연구소에 대한 사실을 파헤친 뒤에 비난하게 되겠죠. 일본이 엄청난 욕을 먹는 건 예정된 수순이겠네요.”

누나랑 영은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게 바로 가진 자의 갑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배 효율인 고위급 위상석 하나로 저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기존 위상석의 10배 효율을 보이는 블루 스톤을 꺼냈다간 진짜 대격변이라도 일어나겠구만.

일본이 욕을 먹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영은이한테 물었더니, "그 뒤는 참모진하고 계획을 세워볼게. 일단 지금은 판매 중지부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수한에게서 내 집 정문 근처와 그랑 블루 주변을 은근히 맴도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게 판매 중단을 선언 3일째였다.

“언제쯤 이야기를 흘릴 건데?”

“이 정도면 때가 무르익었다고 봐도 될 거 같아. 마침 오늘 영국 대사랑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보려구.”

“흠. 나도 따라갈까?”

대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옆에 있으면 더 효과가 좋지 않으려나? 그런데 누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넌 지금처럼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쪽이 좋아.”

“알았어.”

신비주의라…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도 좋게 포장해주는 마법의 단어로군.

누나가 영국 대사와 접견을 한 다음 날, 영국 대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영국은 전격적으로 일본의 행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서 751 연구소에서 일어난 일을 주제로 일본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국주의라는 헛된 야욕을 잊지 못해 일반인과 능력자를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주도했다는 발표를 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서 술렁거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731부대의 후신, 751 연구소의 실태!]

[충격! 현대판 마루타. 일본은 진정 제국주의의 망령에 씐 것인가.]

[공하의 등장은 일본의 생체 실험 탓?]

모든 사실은 밝히지 않고 단지 일본이 생체 실험을 했다는 발표만 한 거였는데 세계 각국의 언론은 생체 실험을 이번 대마도에 출현한 공하의 일과 엮어서 루머 아닌 루머를 퍼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전격적인 발표에 고위급 위상석을 공급받기 위해 대기하던 나라들은 그제야 내가 위상석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걸 눈치채고 대응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라는 소식이 누나를 통해 전해졌다.

“영국한테 뭐라고 했어? 전부 말한 거야?”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구 일본의 생체 실험 일로 니가 굉장히 기분이 나빠져 있다고만 말한 게 다야.”

“……? 그 정도만 말했는데 영국은 하루 만에 751 연구소의 일까지 알아냈다고?”

“아니. 영국도 이미 751 연구소에 대한 일을 알고 있더라? 생체 실험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751 연구소를 언급하더라구.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일본 정부에 mi:6 요원이 침투해있대. 일본은 작년 일이랑 이번 사건 때문에 보안 쪽이 꽤 부실해졌나 봐.”

“영국이 그 정도면 러시아 KGB나 미국 CIA FBI도 당연히 알고 있겠구만. 그럼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입 다물고 있는 거야? 뭐 때문에?”

“당연히 전술 마도탄때문이겠지.”

“…….”

괜히 먼저 입을 열었다간 전술 마도탄 기술 공유국에서 제외될까 봐 그랬다고? 이런 씨….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면서 누나한테 의문점을 물었다.

“그런데 왜 영국을 선택한 거야? 기왕 고를 거면 좀 힘세고 발언력이 큰 나라를 고르는 게 좋지 않아? 미국이라던가 러시아 같은 거. 물론 영국의 영향력이 약하다는 건 아니지만.”

한숨을 푹 내쉬고 인터넷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말하자 간식거리를 옆에 내려놓던 누나가 말을 받아주었다.

“언니한테 들은 거, 며칠 전 정상회담 때 뭉근한 반응을 보였던 나라는 제외한 거야.”

“뭉근한 반응?”

“묘~하게 일본을 두둔하는 느낌? 그것도 전술 마도탄을 의식해서인지 살짝 일본이 받은 피해에 조의를 표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지만.”

누나의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리며 다시 컴퓨터의 인터넷 기사를 쳐다보니 누나가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주었다.

“그리고 넌 미국을 아직 껄끄럽게 여기잖니. 그래서 소거법으로 가장 무난하고 적당히 친한 영국을 고른 거야.”

“껄끄럽긴 해도 차도 살인 같은 병법도 있잖아. 미국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내 말에 누나가 놀랐다는 듯이 '웬일이니?'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쓰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것도 그런데… 미국이 어떻게든 너랑 사이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거 알고 있니?”

“미국이? 왜? 개인한테 그만큼 털렸으면 창피해서라도 피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하지만 누나의 대답을 듣고 보니 국가 간 외교나 정치 같은 문제에 사람의 감정을 갖다 붙이며 정상을 운운할 일은 아니었나 보다.

“그야 최고위 이형종이 연달아 나타나고 있잖아. 거기에 위상 세계가 원인 모를 현상으로 통합이 진행 중이고. 이런 상황이니 탈 국가급 무력을 가진 너랑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건 미국뿐만이 아니야. 거기에 넌 고위급 위상석의 유일한 대량 공급자잖아?”

최고위 이형종이 나타나면, 막대한 피해를 받으면서 최고위 이형종을 외딴 지역에 유인하거나 온갖 폭격에 핵까지 발사하면서 자국 영토가 엉망진창이 되기보단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벌리는 쪽이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라는 말이었다.

결국은 영은이 말대로 경제력을 움켜쥔 자가 승자라는 이야기가 옳았던 거다. 힘과 돈, 두 가지를 움켜쥔 나에게 미국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게 그걸 증명한다.

“블레이드 플라이어 사건 뒤로 미국이 유독 우리나라의 대우가 상향 조정됐어. 언니 말로는 너랑 그랑 블루가 속해있는 한국과 우호를 다지면서 살짝 우회하는 걸로 너한테 접근하려는 거래.”

“그게 뭐야.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서 해야지 한 다리 건너서 접근하려 한다고?  이해가 안 가네.”

그런 행동 방식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누나를 바라보니 누나는 빙긋 웃으면서 내 뺨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서 말했다.

“지금 너는 대외적으로 무척이나 심기가 나빠져 있다고 알려졌단 말야. 그런데 니가 자기들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아는 미국이 이런 상황에서 너랑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겠니? 널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폭탄 맞고 정권까지 바뀌었잖아. 대응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아무리 내가 폭탄 같다고 해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름값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까 했지만, 누나의 말을 인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국은 영국보다 한술 더 떠서 능력자 연합과 IWO, 국제 물방울 기구와 함께 대마도에서 자행된 751 연구소 생체 실험에 대한 정보를 모두 다(이형종 교배에 관한일까지!) 공개하면서 일본에게 지구적인 규모의 대대적인 사과와 함께 자숙을 요구하는 발표를 해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정 서하! 나를 봐줘!! 내가 이렇게 진심이야!" 하는 거처럼 느껴진 건 나뿐이었을까.

“와아. 저 미국이, 국방 예산에 매년 천조 씩 쓴다고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이 개인한테 저렇게나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다니,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해~.”

“사죄가 아니라 구애로 보일 정도예요.”

나 뿐만이 아니었군. 영은이랑 누나의 말에 연인들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날 물끄러미 바라보길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들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일체의 숨김 없이, 공하의 출현도 일본의 실험 탓이라는 모든 사실을 미국이 발표해버리자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렸다.

미국은 최고위 이형종의 2차례 습격에 난리 통을 겪었지만(그중에 한번은 내 수작이었지만) 세계 최강대국의 명성과 위엄은 잃지 않았는지 그 발표 한 번에 많은 나라가 일본의 악행을 완벽하게 인지했고 일본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국교 단절 메시지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지금이 20세기도 아니고 인체 실험이라니! 이형종과 인간의 혼혈을 만드는 실험이라니! 대체 무엇 때문에?!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일본이 자행한 생체 실험에 충격을 받고 반일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고 일본 제품의 불매 운동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국 정부도 반일 운동에 한 발 걸치며 "일본은 국가로서의 명예마저 내팽개친 후안무치한 나라이며 이런 나라와 수교를 맺는 것은 자국의 명예를 진흙탕에 내버리는 것과 같다."라는 강도 높은 규탄을 이어나갔다.

반일 운동이 전 지구적인 규모로 확대되기 시작하니 그때까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일본은 부랴부랴 그런 적 없다고, 증거도 없는데 억측만으로 비방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항명서를 내밀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 붓기였다.

어느 곳의 해외 채널을 돌려봐도 불타고 공하에게 쓸려나간 대마도의 항공 사진이 흘러나왔으며 미국이 발표한 생체 실험의 내용이 뉴스를 통해 연일 재방송 되는 상황이었는데 어설픈 일본의 항변은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행위라며 오히려 공격의 빌미만 주었을 뿐이었다.

“자업자득이지. 일본은 이번 기회에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서의 입장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거다.”

화연이는 물론이고.

“어쩜 호소문도 저리 병…. 바보 같을까 몰라. 일 총리는 참모진 없나 몰라?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라도 한다니.”

영은이도 무감정한 목소리로 일본 수뇌부를 조롱했으며.

“능력자 사태까지 일으켜놓고 생체 실험이라니, 일본의 수뇌는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그들을 뽑아준 일본 국민의 시민의식도 의심이 갈 정도예요.”

프랑도 신랄하게 일본 시민의 의식을 꼬집었다.

“이번 일을 일본은 쉽게 넘기기 힘들 거야. 일본을 정치적,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국가들이 간단히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나 있으니까.”

“하나는 서하가 판매하는 고위급 위상석인것은 알겠다만… 나머지 하나는 뭐지?”

누나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화연이가 돌아보며 의문을 표시하자 검지를 세우더니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전술 마도탄의 기술. 일본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청산이 완벽하게 끝나야 751 연구소에서 개발된 전술 마도탄의 사용에 잡음이 생기지 않는 거야. 어쩌면 전자보다 후자 쪽 이유로 미사일을 스스로 제작할 여력이 되는 나라들이 이렇게 들쑤시고 있는 걸지도 몰라.”

“잠깐. 아직 전술 마도탄에 대한 사실은 발표되지 않았잖아. 그걸 어떻게 다른 나라 수뇌부들이 알고…. 아.”

내 말에 영은이가 쓰게 웃는걸 보고 깨달았다.

“맞아. 공하를 처리하기 전에 정상 회담 때 전술 마도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버렸단다. 제작 방식이 그리 복잡하지 않으니 힘 좀 있는 나라라면 아마 어떤 루트로든 전술 마도탄의 설계를 구했을꺼야.”

…결국 국가의 행동 근본원리는 자국의 국익에 움직이는 것 뿐인가? 751 연구소를 만든 하늘 아래 둘도 없을 개말종들도 알고 보면 자기 나라의 발전과 부흥을 목표로 만들었을 거 아냐.

순수하게 일본의 행태에 분노해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걸 깨닫자 실망과 함께 갑작스럽게 귀찮음이 밀려오며 만사가 귀찮아졌다.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란다고, 알고 보니 겨 묻은 놈도 마찬가지로 똥이었던 거다. 진짜 세상 한번 개똥 같다.

============================ 작품 후기 ============================

파, 판사님. 이 글은 저희 집... 네? 그 소리 1000번은 들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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